0.
수능이 끝났다.
 

83.
후회와 반성은 다른데, 난 반성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왜냐면..
그건 나에게 유리하니까.
후회하는 건 어떤 경우에도 불리하다.
난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스스로 옳다고 믿지 않으면 싸울 수 없고,
스스로 잘못했다고 느끼지 않으면 희생할 수 없다."고 김현은 그랬다(행복한 책읽기)

그런데 어떤 순간에 싸워야 하는지, 어떤 순간에 희생해야 하는지..
그걸 결정하는게 결정적이다.
그 결정은 결정적이므로,
냉정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기적이어야 한다.   


2.
양자택일의 외나무 다리도 아니고..
어떤 하나를 위해서 다른 하나를 전면적으로 거절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아닌데..
어떤 순간들은 우리에게 드라마가 우리에게 학습시킨 그 과장된 비장감을 연기하게끔 한다.
너무 감정이입되는 거다.
우리들은 어느샌가 운명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아, 드디어 나는 운명의 다리를 건너는구나.. 하는 거!

그런데 되돌이켜 생각하면, 그건 단지 어떤 선택이거나, 혹은 선택의 목전에서 잠시 진하게 흔들렸던, 마치 핸드폰의 진동처럼 부르르~~ 했던, 순간인 경우도 많다.

그렇게 심각할 필요 없다.
진지하지만, 유쾌하게 그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면 그만인거다.
심각할 필요 없는거다.


21.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인데..
난 고3에 자퇴했고, 그건 대단한 신념이거나, 저항이거나가 아니라..
그저 내가 이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학교가 더이상 나에게 줄 것도 없고, 나를 사육하고 있다고 느꼈으니까..
그걸 거절한거다.
그건 나에겐 그저 선택이었고, 그래서 그 선택이 나에게 다소간의 시간들을 방황하게도 했지만..


그건 나에겐 아직도 최고의 선택 중 하나다.

인간은 자기가 믿는 그대로를 산다.
다른 것으로 살거나, 다른 어떤 것의 욕망으로도 살 수 없다.  

그건 어떤 인간이 스스로 바라는 어떤 전범, 황당한 슈퍼스타로 산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그 모든 시스템, 보이지 않는 매트릭스를 초월할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가 믿는 그대로를 살 수 밖에 없다.

그건 자명하다.

왜냐하면, 자기가 믿는 그대로, 그 말은 자기가 믿는 실천 그대로, 자기에게 익숙한 근육의 움직임 그대로, 를 번역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야만스럽고, 어리석은 어른의 사회, 객관적인으로 무장한 다수자의 재판정은 쉽게도 성공이나 실패로 판결내릴테지만.. 그렇더라도 그 믿는 그대로, 를 어떤 식으로든 흠집낼 수 조차 없다.  

그건 참 좋다.


17.
정현종 시집 중에 '고통의 축제'란게 있다.

다만 고통이면서 축제인
축제이면서 고통인
그거..
그건 도대체 뭘까,
생각해본다.

그건 아마도 이기심일 뿐인 욕망과 이기심이지만 이타심인 소망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깊은 간극일테다.
혹은 그건 일상이거나, 시스템이거나, 어떤 권력이 작동하는 메카니즘이거나..
일테지.

그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린 그것 때문에 죽기도 하고, 기뻐서 춤추기도 하고, 웃으면서 울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그걸 죽일 수는 없어서..
그걸 우리에게 떼어내면
우리가 죽으니까.
 
거기에 투항하지는 말고,
즐겁게 저항하자.
부디.. 살아서



나는 감금된 말로 편지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감금된 말은 그 말이 지시하는 현상이 감금되어 있음을 의미하지만,
그러나 나는 감금될 수 없는 말로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영원히.
나는 축제주의자입니다.
그중에 고통의 축제가 가장 찬란합니다.
합창 소리 들립니다.
[우리는 행복하다](까뮈)고.
생의 기미를 아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안녕.

- 정현종, '고통의 축제 - 편지' 중에서




p.s.
2년 전 수능 즈음에 썼던 글 두 개를 모아서 추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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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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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즈랑 2007/11/16 02:27

    두번의 수능을 치고 나오던 때가 생각나네요. 점수야 어찌되었든 후련했던 느낌은 생생합니다. 그리고 학교 앞에서 기다려주던 부모님께도 고생하셨다는 말씀드리고...

    그건 마치 제대하고 나오던 날과 비슷했어요. 앞으로 어떤 미래가 있을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즐거운 그런 하루요. :)

    덧) 정현종 시인의 시 인용부분 가운데 '감듬'이라는 건 '감금'의 오자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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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11/16 03:44

      그런 추억이 계시군요. : )

      p.s.
      감듬은 감금의 오타 맞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
      감듬이라니.. ㅡ.ㅡ;

  2. mepay 2007/11/16 01:14

    고3때 자퇴를 하셨군요..어쩐지 범상치 않으시다 했더니..군대에서도 병장때 많이 나태해지는걸 보면 고 2까지만 하고 졸업하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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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11/16 03:45

      군대 비유는 그런 소리를 참 많이 들었던 것 같네요. : )
      정말 그러면 그나마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3. 히치하이커 2007/11/17 16:41

    저도 좀 더 일찍 생각을 갖고 의지에 따라 행동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힘드네 어쩌네 해봐야 남탓만 하는 것 같고.
    뭐, 이제부터라도 살면 되겠지만요. 아프지만 즐겁게.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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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11/18 15:47

      아직 한참 잘난척하셔도 될만큼 젊은 분께서..
      즐겁게 즐기시길. : )

  4. 애시드시티 2007/11/18 20:32

    민노씨 수능을 마친 애시드입니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
    다시 인사드려서 너무 좋네요
    반가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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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11/19 08:26

      드디어 수능을 무사히 마치셨군요. : )
      저도 참 반갑습니다.
      필벗들 송년회나 모임이 있으면 한번 뵈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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