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문장이 있다.
기억을 떠올리면 다음과 같다(불완전한 기억이고, 변주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즉,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취지, 내용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그 과정(방식, 방법론)을 통해 그 취지, 내용이 전복되기도 한다'라고 평범하게 해석한다. 이 문장은 '해체주의'에 관한 해설서에서 읽었던 글인데, 아마도 그 출처는 고려원에서 나왔던 '해체비평'이라는 얇은 책일거다(이 책 꽤 재밌다).
이런 거창한(?)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써놓고 보니 좀 내 자신이 웃긴다.
어떤 독자께서 "너는 왜 그렇게 현학적이니?" 이러셨던 기억도 있고..
그런데 뭘 알아야 현학적이거나 말거나 하지.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이란게 모두다 거기서 거기일 뿐인 지식들이다.
수박 겉핥기지 뭐.
다만 내 나름 내밀한 자부심이 있다.
나는 게으르지만, 그리고 박약한 지식의 소유자지만, 어떤 텍스트의 취지와 그 취지를 구현하는, 표현하는 방식, 그 양자의 상관관계, 맥락에 대해서 나름으로 고민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아는 것에 대해서만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선 호기심을 표할 지언정 아는척하지는 않는 편이다.
각설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내용'과 '형식', '취지'와 '방법'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상상플러스'라는 지상파 오락 프로그램을 예시로 삼은 거다. 요즘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보면서도 이상하다.. 싶었던 상상플러스 [올드앤뉴]. 그건 정말 나에게는 미스터리였다.
알 수 없는 교양미(?)를 풍기며,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우리 시대 지성의 대변자(ㅎㅎ) 아나운서님께서(ㅋㅋ) 문제낸다. 별 시덥지 않은 단어 하나를 맞추기 위해 출연자들은 별별 쇼쇼쇼를 다 보여주고. 이 프로그램은 항상 아나운서님께서 마지막에 근사한 한 말씀 던지며 쫑낸다.
종종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특히나 그 마지막 마무리 인사말을 들으면서는...
참 놀고 있다.
육갑팔색이네.
이런 마음이 생기곤 했다. 속된 표현 사과 드린다.
다만 그 양반다리 아나운서양께서 '훈계'하신다면, 그런 시츄에이숑을 상상하면, 단연코 '반사'를 날리고 싶은 기분이 든다.
'우리말을 자유롭게, 아름답게' 구사할 수 있는 단어실력, 어휘력을 갖자, 뭐 이런 프로그램 취지는 그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의해 완전 뽕빨나는 느낌이라서 그런다.
1. 고정 패널이 읽는 시덥지 않은 '별명'들부터
2. '상상 plus'라는 전체 프로그램 제목부터, [Old & New]라는 세부제목까지.
왜 굳이 이렇게 영어식 표현을 제목으로 쓴걸까,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이건 프로그램의 취지를 배반하는 제목인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더군다나,
3. 일본식 표현에 대해서는 그토록 민감하지만
4. 영어식 표현에 대해선 그게 마치 "지성의 척도인양 착각"(야동 순재 옹)한다. 특히 전혀 웃기지도 않는 이휘재의 뻘짓은 불쾌지수 제대로 상승시킨다. 뉴요커 운운하면서 혀를 굴리는 모습으로 웃겨보겠다는 그 가공할만한 유머감각도 감각이지만, 이러면서 '우리말을 사랑하는' 프로그램이라니. ㅡㅡ;; 이건 영어 사랑하자는 프로그램 같다. 그렇게 '소통'이 되면 '폼나는 건지' 어쩐건지는 난 모르겠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거다.
아주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문득 생각나서 끄적거린거다.
- 그리고, 아프간 ...
아, 그리고 굳이 부연하면,
아프간 피랍에 대해서 일부 네티즌들이 갖는 증오에 대해서는 나 역시 우려를 함께 한다. 그 증오가 위험한 이유는 소위 '개독교'로 비난받고, 조롱거리가 되는 그 기독교 일부가 갖는 배타성과 폭력성을 비판하는 방식이 그 배타성과 폭력성을 흉내내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건 비판의 취지를 지워버리는 '방식'이다.
그리고 더불어 부연하면, 거대매체, 거대언론들이 보여주는 그 순진한 휴머니즘, 그 착하디 착한 휴머니즘도 솔직히 좀 짜증난다. 그런 뻔한 소리 하려고 지면과 전파 낭비하나, 싶은 생각 솔직히 생긴다.
특히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들)의 인식은 정말 가공할만한데(물론 그 솔직함에 대해서만큼은 평가하고 싶다. 최소한 어떤 울림도 주지 않는 형식적 휴머니즘을 지루하게 설교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일부 네티즌을 "찌질이"라고, "막가파"라고 비난(김정우 기자)하기 전에, 그 비판의 방식이 과연 그 '찌질이'들을 얼마나 계몽할 수 있을지를(그 취지가 실현되는 효과 차원에서), 그리고 그 원색적이고, 감정적이며, 도덕심 충만한 비난은 찌질스럽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보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나야 곤조 블로거를 표방하는 경박한 블로거라서 이렇다고 치고, 소위 '불편부당'과 '객관성'을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중앙일간지에서 이런 식으로 '막장'에 동참하겠다고 나서면 뭐하자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나 역시 아프간을 둘러싼 일부, 정말 일부 네티즌, 블로거들의 '증오'가 좀 심리적으로 버거워서 관련글도 일부러 피했고, 또 나 자신 글을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 도저히 관심을 어쩌지 못해, 오늘 나름으로 관련기사, 관련포스트들을 찬찬히 정독해보니, 중앙일간지의 교과서적인 휴머니즘 보다는 다수 블로거와 네티즌의 솔직한 비평이 훨씬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더라.
아프간에 대한 중앙언론, 특히 종이신문의 형식적 휴머니즘과 '자기배반'에 대해서는 조만간 글을 쓸까도 싶다.
사족이 길었다.
이상이다.
기억을 떠올리면 다음과 같다(불완전한 기억이고, 변주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추구하는 방식에 의해 해체된다.
즉,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취지, 내용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그 과정(방식, 방법론)을 통해 그 취지, 내용이 전복되기도 한다'라고 평범하게 해석한다. 이 문장은 '해체주의'에 관한 해설서에서 읽었던 글인데, 아마도 그 출처는 고려원에서 나왔던 '해체비평'이라는 얇은 책일거다(이 책 꽤 재밌다).
이런 거창한(?)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써놓고 보니 좀 내 자신이 웃긴다.
어떤 독자께서 "너는 왜 그렇게 현학적이니?" 이러셨던 기억도 있고..
그런데 뭘 알아야 현학적이거나 말거나 하지.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이란게 모두다 거기서 거기일 뿐인 지식들이다.
수박 겉핥기지 뭐.
다만 내 나름 내밀한 자부심이 있다.
나는 게으르지만, 그리고 박약한 지식의 소유자지만, 어떤 텍스트의 취지와 그 취지를 구현하는, 표현하는 방식, 그 양자의 상관관계, 맥락에 대해서 나름으로 고민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아는 것에 대해서만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선 호기심을 표할 지언정 아는척하지는 않는 편이다.
각설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내용'과 '형식', '취지'와 '방법'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상상플러스'라는 지상파 오락 프로그램을 예시로 삼은 거다. 요즘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보면서도 이상하다.. 싶었던 상상플러스 [올드앤뉴]. 그건 정말 나에게는 미스터리였다.
알 수 없는 교양미(?)를 풍기며,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우리 시대 지성의 대변자(ㅎㅎ) 아나운서님께서(ㅋㅋ) 문제낸다. 별 시덥지 않은 단어 하나를 맞추기 위해 출연자들은 별별 쇼쇼쇼를 다 보여주고. 이 프로그램은 항상 아나운서님께서 마지막에 근사한 한 말씀 던지며 쫑낸다.
"4천 8백만(7백만?) 국민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그 날까지, 올드앤뉴는 계속됩니다"
종종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특히나 그 마지막 마무리 인사말을 들으면서는...
참 놀고 있다.
육갑팔색이네.
이런 마음이 생기곤 했다. 속된 표현 사과 드린다.
다만 그 양반다리 아나운서양께서 '훈계'하신다면, 그런 시츄에이숑을 상상하면, 단연코 '반사'를 날리고 싶은 기분이 든다.
'우리말을 자유롭게, 아름답게' 구사할 수 있는 단어실력, 어휘력을 갖자, 뭐 이런 프로그램 취지는 그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의해 완전 뽕빨나는 느낌이라서 그런다.
1. 고정 패널이 읽는 시덥지 않은 '별명'들부터
2. '상상 plus'라는 전체 프로그램 제목부터, [Old & New]라는 세부제목까지.
왜 굳이 이렇게 영어식 표현을 제목으로 쓴걸까,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이건 프로그램의 취지를 배반하는 제목인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더군다나,
3. 일본식 표현에 대해서는 그토록 민감하지만
4. 영어식 표현에 대해선 그게 마치 "지성의 척도인양 착각"(야동 순재 옹)한다. 특히 전혀 웃기지도 않는 이휘재의 뻘짓은 불쾌지수 제대로 상승시킨다. 뉴요커 운운하면서 혀를 굴리는 모습으로 웃겨보겠다는 그 가공할만한 유머감각도 감각이지만, 이러면서 '우리말을 사랑하는' 프로그램이라니. ㅡㅡ;; 이건 영어 사랑하자는 프로그램 같다. 그렇게 '소통'이 되면 '폼나는 건지' 어쩐건지는 난 모르겠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거다.
아주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문득 생각나서 끄적거린거다.
- 그리고, 아프간 ...
아, 그리고 굳이 부연하면,
아프간 피랍에 대해서 일부 네티즌들이 갖는 증오에 대해서는 나 역시 우려를 함께 한다. 그 증오가 위험한 이유는 소위 '개독교'로 비난받고, 조롱거리가 되는 그 기독교 일부가 갖는 배타성과 폭력성을 비판하는 방식이 그 배타성과 폭력성을 흉내내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건 비판의 취지를 지워버리는 '방식'이다.
그리고 더불어 부연하면, 거대매체, 거대언론들이 보여주는 그 순진한 휴머니즘, 그 착하디 착한 휴머니즘도 솔직히 좀 짜증난다. 그런 뻔한 소리 하려고 지면과 전파 낭비하나, 싶은 생각 솔직히 생긴다.
특히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들)의 인식은 정말 가공할만한데(물론 그 솔직함에 대해서만큼은 평가하고 싶다. 최소한 어떤 울림도 주지 않는 형식적 휴머니즘을 지루하게 설교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일부 네티즌을 "찌질이"라고, "막가파"라고 비난(김정우 기자)하기 전에, 그 비판의 방식이 과연 그 '찌질이'들을 얼마나 계몽할 수 있을지를(그 취지가 실현되는 효과 차원에서), 그리고 그 원색적이고, 감정적이며, 도덕심 충만한 비난은 찌질스럽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보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나야 곤조 블로거를 표방하는 경박한 블로거라서 이렇다고 치고, 소위 '불편부당'과 '객관성'을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중앙일간지에서 이런 식으로 '막장'에 동참하겠다고 나서면 뭐하자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나 역시 아프간을 둘러싼 일부, 정말 일부 네티즌, 블로거들의 '증오'가 좀 심리적으로 버거워서 관련글도 일부러 피했고, 또 나 자신 글을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 도저히 관심을 어쩌지 못해, 오늘 나름으로 관련기사, 관련포스트들을 찬찬히 정독해보니, 중앙일간지의 교과서적인 휴머니즘 보다는 다수 블로거와 네티즌의 솔직한 비평이 훨씬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더라.
아프간에 대한 중앙언론, 특히 종이신문의 형식적 휴머니즘과 '자기배반'에 대해서는 조만간 글을 쓸까도 싶다.
사족이 길었다.
이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