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드디어 (본격적으로) 한마디.
실은 관련 기사들, 관련 포스팅 메모, 정리 자료 날렸다.
다시 메모하고, 링크 주소 따고, 정리하자니.. 부담된다.
독자들도 링크 만땅인 글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쓰련다. ㅡㅡ;
0. 아프간 피랍 사태에 대해서는 떠들지 말아야지, 처음엔 그랬다.
극소수(혹은 소수, 또는 상당수?) 블로거, 독자, 네티즌들이 쏟아내는 '증오'에 그만 질려버렸다. 소름 돋고, 섬뜩했다. 자신들이 모든 진리를, 진실을 한 손에 움켜쥐고 있다는 듯한 그 뻘짓들, 과장된 제스처들이 짜증났다.
솔직히 그랬다.
하지만 언론에서도, 블로그에서도 계속 계속 관련 기사, 관련 포스트들은 쏟아지고, 관심갖고 싶지 않아도, 갖지 않을 수 없더라. 그래서 관련기사도 읽고, 관련 포스팅도 나름으로 열독해봤다. 그랬더니 생각이 좀 바뀌더라.
나는 착한 휴머니즘이 싫다.
나는 악당이 좋다.
나는 니들이 말하는 찌질이다.
아프간과 저널리즘 ; 착한 국민 vs. 찌질이 네티즌
- 나는 착한(척 하는) 휴머니즘이 싫다.
1. 아프간 이슈와 블로기즘
블로그는 가장 쉽고, 가장 경제적으로, 그러니 일상의 차원에서 공동체적인 체험을 쌓을 수 있는 유용한 도구다. 거듭 강조하지만, 블로깅의 민주적인 가치는 조금 부족해도, 조금 무식해도, 스스로 진실하다고 믿는 것, 스스로 관심을 갖는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대화를 시도하는 것, 그럼으로써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소양(대화, 존중, 토론 등등)을 즐겁게 배우는 것. 그러니 블로깅 하는 것 그 자체에 있다.
그 이야기(=참여)의 주제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이웃집 오빠든, 드라마든, 스포츠든, 영화든, 좋아하는 연예인이든. 그 주제는 모두 나름으로 소중하다. IT에 관해 쓰면 뭔가 세련되어 보이고(놀고있다), 철학자에 대해 쓰면 왠지 폼나고(얼씨구), 연예인에 대해 끄적이면 허접한 게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선입견이 허접하다면 허접할까. 소재가 가치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콘텐츠 자체로서, 그 콘텐츠에 담겨진 의식과 태도에 따라서만 블로깅의 가치는 결정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개인적인 것도 공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기도 하다. 절대적인 담론의 위계, 이런 건 개뿔, 없다고 본다. 공적 성격과 주관적 성격은 상호간에 침투하고, 섞이고,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이다.
그런데 시의성 있는 이슈는 '블로그 민주주의' 모델이 작동하는 풍경에서 좀더 적극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그건 그 이슈가 유통되는 사회에 속한 성원이라면 마땅히 관심을 갖을 만한 공적 이슈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시의성 있고, 사회성원 전체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이슈들은 그 맥락에서는 좀더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가령 현재를 표준으로 본다면, 이랜드 사태나 아프간 피랍 사건이 대표적일텐데, 나는 이런 이슈라면 사회성원으로서 마땅히 참여할 만한, 한번쯤 고민할 만한 이슈라고 본다. 서로 다른 해석들, 견해들을 통해 누가 누가 잘났나를 겨루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대화가능성의 영역을 확장하는 '기회'를 갖는거다. 그게 그 공적인, 시의성 있는 이슈가 갖는 중요성이다. 누구 KO시키고, 어떤 의견 짓밟아야 하는 거 아니다. 물론 토론은 치열하면 치열할 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어떤 이슈에 구체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선, 블로거라면, 최소한의 원칙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점을 한번쯤은 생각해야 하지 않나 싶다.
ㄱ.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한다.
모르는 게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무지는 상대적이다),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건 정말 부끄러운 거다. 블로깅하는게 무슨 시험치르는 것도 아닌데, 좀 틀리면 어떤가? 좀 부족하면 어떤가? 부족하면 배우고, 좀 남으면 알려주면 되지. 다만 좀 관용하는 자세를 갖기를 바란다.
좀 엄격하게 말하자면, 주장의 무게와 근거의 무게는 비례해야 한다.
주장은 1톤인데, 주장을 지탱하는 근거와 논리가 1근이면, 그건 좀 누가봐도 뻘짓이다.
이건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적극적으로 어떤 이슈에 대해 참여하고, 자신의 진실로 목소리를 보태는 것은 응원하고, 격려해야 마땅하지만, 그게 과시적인, 배타적인, 그리고 무엇보다 저열한 승부욕에 빠져서는 곤란하다(물론 그런 심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ㄴ. 표시된 발언에는 항상 공적인 책임이 수반된다.
그러니 그 책임에 대해 항상 고민해야 한다. 거대 언론만 책임이 있는 건 아니고, 단 한 명의 독자가 읽는 글을 쓰는 블로거에게도 공적인 책임은 당연히 부과된다. 물론 그 책임의 무게가 같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어떤 개인적인 글도 그것이 공중에 접해질 수 있는 형태로 발표되는 순간,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건 이미 '개인적인' 영역에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는 사생활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공적인 담론이며, 공적인 의견이 된다. 가령 나는 삼순이가 참 좋아, 이렇게 한줄 남겨도, 그게 삼순이에게만 보내는 연애편지로 쓰여졌더라도, 그건 이미 공적인, 삼식이의 손을 떠난 공적인 '담론'이 된다.
역시 생각없이 끄적거리니 글이 길어지고, 삼천포로 빠진다.
가급적 간결하게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마무리 할까 한다.
2. 한국 저널리즘의 착한 휴머니즘 ; 착한 국민 vs. 찌질이 네티즌.
이번 아프간 피랍사태에는 두 개의 여론이 존재한다.
대다수 저널들에서 쏟아내는, 의미없는 관습적 수사로서의 '국민'이 만들어내는 '천사표 여론'(A)이 그 하나다. 나머지 하나는 네티즌 찌질이들, 그러니까 나와 같은 '막가파'들이 만들어내는 '악마표 여론'(B) 이렇게 두 개다.물론 나는 이런 이분법적인 관점과 태도 그 자체가 정말 폭력이면서, 야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 신해철 몹시 싫어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서만큼은 할 말 제대로 한 것 같더라. 물론 마지막에 언급한, 피랍자들 무사귀한하더라도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고개 푹 숙이고 들어와라, 이런 쓸데없는 소리는 왜 하는건지 모르겠다. 고개 뻣뻣이 세우든, 고개 숙이든 솔직히 나는 관심 없다. 암튼, 신해철 할 말 했다. 차인표도 그렇고, 김혜수도 나름으로 그랬다. 그 주장과 의견이 어쨌든 간에, 자신의 소신으로 당당하게 진술하고, 관심을 쏟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높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저널들, 언론들이 그랬는지, 할말 했는지 솔직히 좀 의심스럽다.
민감한 사안인거 인정하고, 언론사에서 다뤄지는 기사 하나 하나에 현지 피랍인들의 생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 없지 않다는 것도 인정한다(솔직히 탈레반의 대미, 대한 전략이 언론사의 몇마디로 급변경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안의 무게로 봤을 때 충분히 고민해야 하는,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슈는 당연히 '일부' 기독교의 독선적이고, 편협하며, 배타적인 정복자식 공격적 선교활동이고, 또 그 선교활동이 갖는 위험성이다. 이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 언론이 있다면, 제발 좀 알려주시라. 내 보기엔 없다. (관련 보충 1. 하단 참조)
소위 대부분의 메이저 언론사들은 그저 피랍된 동포, 내나라 국민 걱정하는 (또 다른) 국민의 목소리를 그저 '관념적으로' 조직해냈을 뿐이고, 이전의 관습과 관성에 의해 '그려려니'하면서 '추리'했을 뿐이다. 그리고, 신해철 지적처럼, 기독교 눈치보기에 바빴다. 정치인이란 인간들 역시 뭐, 아니나 다를까다. 방구나 뽕이다.
각설하고..
네티즌은 (이미) 국민이다.
아닌가?
국민 중에서 네티즌 따로, 네티즌 중에서도 블로거 따로인건가?
대한민국 국민은 '그냥 국민' '네티즌' 이렇게 크게 양자로 분리되었던 거였어? (설마..)
적어도 네티즌은 그 자체로 국민의 여론을 대표하는 최소한의 상징성을 갖는다고 추론해야 하고, 그것이 국민 여론 따로, 네티즌 여론 따로라고 생각해야 할 하등의 논리적 근거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요 언론들에서 다루는 네티즌들은 극소수의 '증오신자'들로 대표될 뿐이며, 그렇게라도 솔직한 일부 모습이라도 적극적으로 다뤄주면 다행일 지경인데, 대다수 기사들을 살펴보면, 그저 막연하게 천사표 얼굴을 하고선 피랍된 봉사단을 맹목적으로 걱정하는 국민들이 있을 뿐이다. 국민들 (상당수가) 꽤 화나 있는데, 언론 속에는계속 천사표 얼굴로 피랍자들 걱정하는 국민들 밖에는 없다.
솔직히 좀 가증스럽다.
오히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들은 화끈하다.
한 기자는 극소수 네티즌들의 치기어린, 그리고 다소간 이해할 만한 여지 없지 않은 행위를 침소봉대하고, 네티즌 상당수를, 실은 적어도 그 효과에 있어서는, 네티즌 전부를 '찌질이'로 재단해버린다. 블로거도 당연히 개념상 '네티즌'의 일부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나 찌질이다(이런 ㅡㅡ; ).
또 다른 사회부 기자는 이번 사태가 김선일씨 사건과 '붕어빵'이고, 국민들 보호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 생색내는 몇마디로 표심을 붙잡으려는 정치인들 싸잡아 비난하는데 그 공적인 지면을 과감하게 사용하고 있다(부라보~!).
위 두 기사들은 그래도 솔직하게 '커밍아웃'하고 있다는 점에서만은 정말 높게 평가하고 싶다.
국민들이 뭘 아나, 철없는 '찌질이'인 네티즌들이 뭘 아나.
고매하신 기자님들께서 계몽하고, 가르쳐야지.
암, 그렇구 말구.
농담은 이쯤하고, 위 두 기사는 솔직히 심하게 삽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위 두 기사들에 남겨진 독자들의 댓글 논평들이야 말로, 내가 보기에는 국민들의 솔직하고, 성숙한 '여론'을 조금은 보여주는 댓글 논평들이라고 본다. 위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댓글들 읽으면서 차라리 이런 쪽팔린 수준의 기사들 보다는 일반 국민들의 소박한 의견이 훨씬 더 호소력 있고, 논리적이며, 또 비판적으로 음미할 만한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일독 강하게 권한다.
상당수 국민들이 일부 기독교 선교방법론만을 가지고 기독교 전부를 일반화시켜 비난하는 것. 나도 문제 있다고 본다. 다만 다음과 같은 점들에서 피랍 봉사단과 그 봉사단을 이끈 배후 기독교 단체들, 그 단체의 수뇌부들은 특히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가령 최한우 목사 경우를 보자.
1. 이 양반 정치와 종교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이슬람 국가에 가서 2천여명이 집단적으로 (기독교) 평화축제 한다는 황당한 발상을 실천하려고 했단다. 이거 정상인가? 이게 예정대로 였다면 8월에 벌어질 사태였다고 한다.
2. 당연히 자숙해야 마땅한 이 기독교 원로(?), 기독교 선교에 관한 기독교 권력자께서는
"공격적인 선교가 이슬람을 자극한다는 우려에 대해 “한심하다”며 “이슬람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아니라 무신론자들이며, 이슬람권에서 ‘나는 기독교인이다’고 말하면 대부분 반가워한다”고 여전히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주장한다. (관련 한겨레 기사)
3. 끝으로, 그 문제의 최한우 목사가 약 1년전(2006.06.26)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이다. 이 양반은 손석희 시선집중에 나와서도 할 말 하더라(계속 선교단 보내겠다는 투로).
참 말 잘했다.
우선 피랍된 우리 국민, 봉사단 살려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걸 부정하고, 그냥 죽어, 이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솔직히 그 '심리'가 처음에는 정말 끔찍했는데, 그 속사정을 이리 저리 듣고 보니, 다소 격앙되어, 감정적으로 그렇게 비상식적인 일탈로 표출되었구나, 그 배경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 솔직히, 강하게 든다.
다만 그래서는 안되는게 뭐냐면, 그럼 그 독선적인 선교형태를 갖는 (일부) 기독교(의 행태)를 '개독교'로 부르면서 비판하는 이유인, 그 편협함, 배타성, 존중 결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고상한' 휴머니즘, 인간애, 민족애, 동포애에 기대어 그렇게 하면 안되는게 아니라, 최소한 비판하는 대상의 속성을 그대로 흉내내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렇다는거다.
하지만 최한우 목사 본인 말처럼, 책임은 국민 당사자가 지는 방향으로 '시급히 정책을 전환'하자. 유사사례가 일본에 이미 있다고 한다. 국가는 국민을 살리되, 그 국민(들)이 행한 과실과 오판으로 인해 생긴 손실은 그 국민과 그 국민(봉사단)에 대해 책임을 갖는 단체와 조직에게 부과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요약한다.
피랍자 무조건 살리자.
다만 책임은 묻자.
물론 그 책임, 관련 기독교 단체들이 연대해서 져야 함은 물론이다.
(덧. 댓글논평을 확인하니 다소간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요. 저는 피랍과 관련한 구호에 투여되는 '경제적' 손실에 대한 비용을 복구하는 차원에서 국가가 그 비용소모에 직접적인 책임을 갖는 '개인 혹은 단체'에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한 것이지, 피랍자나 관련 기독교단체가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그럴 수도 없겠지만요. 이점에서는 오해를 풀어주시길 바랍니다).
* 보충 1.
펄님께서 소개해주신 (한국일보의) '의미있는 기사들'입니다.
펄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 한국 개신교 강한 선교 열망에 외국서 마찰 잦아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07/h2007072019100984330.htm
* 사설 '해외 위험지역 '모험선교' 자제해야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07/h2007072218033676070.htm
* 칼럼] 원하지 않는 손님 (특히 일독 권합니다.)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07/h2007072418583624420.htm
* 외부기고] 진중권, '디지털 시대의 중세적 순교'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07/h2007072317521486330.htm
* 외부기고] 정진홍 '낯가림과 오만의 문화' (특히 일독 권합니다)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07/h2007072619312324060.htm
p.s. 안내.
현재 방문인원을 추정건대..
오늘 자정 전에, 즉 트래픽이 새롭게 초기화되기 전에, 트래픽 초과로 제 블로그 접근이 제한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혹여라도 그런 일이 있다면.. 죄송하다는 말씀 미리 올립니다.
실은 관련 기사들, 관련 포스팅 메모, 정리 자료 날렸다.
다시 메모하고, 링크 주소 따고, 정리하자니.. 부담된다.
독자들도 링크 만땅인 글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쓰련다. ㅡㅡ;
0. 아프간 피랍 사태에 대해서는 떠들지 말아야지, 처음엔 그랬다.
극소수(혹은 소수, 또는 상당수?) 블로거, 독자, 네티즌들이 쏟아내는 '증오'에 그만 질려버렸다. 소름 돋고, 섬뜩했다. 자신들이 모든 진리를, 진실을 한 손에 움켜쥐고 있다는 듯한 그 뻘짓들, 과장된 제스처들이 짜증났다.
솔직히 그랬다.
하지만 언론에서도, 블로그에서도 계속 계속 관련 기사, 관련 포스트들은 쏟아지고, 관심갖고 싶지 않아도, 갖지 않을 수 없더라. 그래서 관련기사도 읽고, 관련 포스팅도 나름으로 열독해봤다. 그랬더니 생각이 좀 바뀌더라.
나는 착한 휴머니즘이 싫다.
나는 악당이 좋다.
나는 니들이 말하는 찌질이다.
아프간과 저널리즘 ; 착한 국민 vs. 찌질이 네티즌
- 나는 착한(척 하는) 휴머니즘이 싫다.
1. 아프간 이슈와 블로기즘
블로그는 가장 쉽고, 가장 경제적으로, 그러니 일상의 차원에서 공동체적인 체험을 쌓을 수 있는 유용한 도구다. 거듭 강조하지만, 블로깅의 민주적인 가치는 조금 부족해도, 조금 무식해도, 스스로 진실하다고 믿는 것, 스스로 관심을 갖는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대화를 시도하는 것, 그럼으로써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소양(대화, 존중, 토론 등등)을 즐겁게 배우는 것. 그러니 블로깅 하는 것 그 자체에 있다.
그 이야기(=참여)의 주제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이웃집 오빠든, 드라마든, 스포츠든, 영화든, 좋아하는 연예인이든. 그 주제는 모두 나름으로 소중하다. IT에 관해 쓰면 뭔가 세련되어 보이고(놀고있다), 철학자에 대해 쓰면 왠지 폼나고(얼씨구), 연예인에 대해 끄적이면 허접한 게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선입견이 허접하다면 허접할까. 소재가 가치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콘텐츠 자체로서, 그 콘텐츠에 담겨진 의식과 태도에 따라서만 블로깅의 가치는 결정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개인적인 것도 공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기도 하다. 절대적인 담론의 위계, 이런 건 개뿔, 없다고 본다. 공적 성격과 주관적 성격은 상호간에 침투하고, 섞이고,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이다.
그런데 시의성 있는 이슈는 '블로그 민주주의' 모델이 작동하는 풍경에서 좀더 적극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그건 그 이슈가 유통되는 사회에 속한 성원이라면 마땅히 관심을 갖을 만한 공적 이슈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시의성 있고, 사회성원 전체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이슈들은 그 맥락에서는 좀더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가령 현재를 표준으로 본다면, 이랜드 사태나 아프간 피랍 사건이 대표적일텐데, 나는 이런 이슈라면 사회성원으로서 마땅히 참여할 만한, 한번쯤 고민할 만한 이슈라고 본다. 서로 다른 해석들, 견해들을 통해 누가 누가 잘났나를 겨루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대화가능성의 영역을 확장하는 '기회'를 갖는거다. 그게 그 공적인, 시의성 있는 이슈가 갖는 중요성이다. 누구 KO시키고, 어떤 의견 짓밟아야 하는 거 아니다. 물론 토론은 치열하면 치열할 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어떤 이슈에 구체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선, 블로거라면, 최소한의 원칙을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점을 한번쯤은 생각해야 하지 않나 싶다.
ㄱ.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한다.
모르는 게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무지는 상대적이다),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건 정말 부끄러운 거다. 블로깅하는게 무슨 시험치르는 것도 아닌데, 좀 틀리면 어떤가? 좀 부족하면 어떤가? 부족하면 배우고, 좀 남으면 알려주면 되지. 다만 좀 관용하는 자세를 갖기를 바란다.
좀 엄격하게 말하자면, 주장의 무게와 근거의 무게는 비례해야 한다.
주장은 1톤인데, 주장을 지탱하는 근거와 논리가 1근이면, 그건 좀 누가봐도 뻘짓이다.
이건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적극적으로 어떤 이슈에 대해 참여하고, 자신의 진실로 목소리를 보태는 것은 응원하고, 격려해야 마땅하지만, 그게 과시적인, 배타적인, 그리고 무엇보다 저열한 승부욕에 빠져서는 곤란하다(물론 그런 심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ㄴ. 표시된 발언에는 항상 공적인 책임이 수반된다.
그러니 그 책임에 대해 항상 고민해야 한다. 거대 언론만 책임이 있는 건 아니고, 단 한 명의 독자가 읽는 글을 쓰는 블로거에게도 공적인 책임은 당연히 부과된다. 물론 그 책임의 무게가 같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어떤 개인적인 글도 그것이 공중에 접해질 수 있는 형태로 발표되는 순간,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건 이미 '개인적인' 영역에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는 사생활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공적인 담론이며, 공적인 의견이 된다. 가령 나는 삼순이가 참 좋아, 이렇게 한줄 남겨도, 그게 삼순이에게만 보내는 연애편지로 쓰여졌더라도, 그건 이미 공적인, 삼식이의 손을 떠난 공적인 '담론'이 된다.
역시 생각없이 끄적거리니 글이 길어지고, 삼천포로 빠진다.
가급적 간결하게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마무리 할까 한다.
2. 한국 저널리즘의 착한 휴머니즘 ; 착한 국민 vs. 찌질이 네티즌.
이번 아프간 피랍사태에는 두 개의 여론이 존재한다.
대다수 저널들에서 쏟아내는, 의미없는 관습적 수사로서의 '국민'이 만들어내는 '천사표 여론'(A)이 그 하나다. 나머지 하나는 네티즌 찌질이들, 그러니까 나와 같은 '막가파'들이 만들어내는 '악마표 여론'(B) 이렇게 두 개다.물론 나는 이런 이분법적인 관점과 태도 그 자체가 정말 폭력이면서, 야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 신해철 몹시 싫어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서만큼은 할 말 제대로 한 것 같더라. 물론 마지막에 언급한, 피랍자들 무사귀한하더라도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고개 푹 숙이고 들어와라, 이런 쓸데없는 소리는 왜 하는건지 모르겠다. 고개 뻣뻣이 세우든, 고개 숙이든 솔직히 나는 관심 없다. 암튼, 신해철 할 말 했다. 차인표도 그렇고, 김혜수도 나름으로 그랬다. 그 주장과 의견이 어쨌든 간에, 자신의 소신으로 당당하게 진술하고, 관심을 쏟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높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저널들, 언론들이 그랬는지, 할말 했는지 솔직히 좀 의심스럽다.
민감한 사안인거 인정하고, 언론사에서 다뤄지는 기사 하나 하나에 현지 피랍인들의 생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 없지 않다는 것도 인정한다(솔직히 탈레반의 대미, 대한 전략이 언론사의 몇마디로 급변경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안의 무게로 봤을 때 충분히 고민해야 하는,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슈는 당연히 '일부' 기독교의 독선적이고, 편협하며, 배타적인 정복자식 공격적 선교활동이고, 또 그 선교활동이 갖는 위험성이다. 이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 언론이 있다면, 제발 좀 알려주시라. 내 보기엔 없다. (관련 보충 1. 하단 참조)
소위 대부분의 메이저 언론사들은 그저 피랍된 동포, 내나라 국민 걱정하는 (또 다른) 국민의 목소리를 그저 '관념적으로' 조직해냈을 뿐이고, 이전의 관습과 관성에 의해 '그려려니'하면서 '추리'했을 뿐이다. 그리고, 신해철 지적처럼, 기독교 눈치보기에 바빴다. 정치인이란 인간들 역시 뭐, 아니나 다를까다. 방구나 뽕이다.
(그리고 부연하자면.. 이번 사태를 아프간에 있는 미군을 철수하고, 한국군을 철수하는 명분으로 삼겠다는 민주노동당.. 뭐, 입장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실은 전폭적으로 그 원론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다만 정치적인 센스를 좀 발휘했으면 한다. 전략적으로 그다지 실익이 크지 않다. 고리타분한 정치적 공세로 본다. 차라리 일부 기독교의 폐단을 적극적으로 비판한다면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각설하고..
네티즌은 (이미) 국민이다.
아닌가?
국민 중에서 네티즌 따로, 네티즌 중에서도 블로거 따로인건가?
대한민국 국민은 '그냥 국민' '네티즌' 이렇게 크게 양자로 분리되었던 거였어? (설마..)
적어도 네티즌은 그 자체로 국민의 여론을 대표하는 최소한의 상징성을 갖는다고 추론해야 하고, 그것이 국민 여론 따로, 네티즌 여론 따로라고 생각해야 할 하등의 논리적 근거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요 언론들에서 다루는 네티즌들은 극소수의 '증오신자'들로 대표될 뿐이며, 그렇게라도 솔직한 일부 모습이라도 적극적으로 다뤄주면 다행일 지경인데, 대다수 기사들을 살펴보면, 그저 막연하게 천사표 얼굴을 하고선 피랍된 봉사단을 맹목적으로 걱정하는 국민들이 있을 뿐이다. 국민들 (상당수가) 꽤 화나 있는데, 언론 속에는계속 천사표 얼굴로 피랍자들 걱정하는 국민들 밖에는 없다.
솔직히 좀 가증스럽다.
오히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들은 화끈하다.
한 기자는 극소수 네티즌들의 치기어린, 그리고 다소간 이해할 만한 여지 없지 않은 행위를 침소봉대하고, 네티즌 상당수를, 실은 적어도 그 효과에 있어서는, 네티즌 전부를 '찌질이'로 재단해버린다. 블로거도 당연히 개념상 '네티즌'의 일부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나 찌질이다(이런 ㅡㅡ; ).
- '막가파 네티즌' 왜 이지경… / 한국일보 김정우 기자
-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707/h2007072618401621950.htm
또 다른 사회부 기자는 이번 사태가 김선일씨 사건과 '붕어빵'이고, 국민들 보호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 생색내는 몇마디로 표심을 붙잡으려는 정치인들 싸잡아 비난하는데 그 공적인 지면을 과감하게 사용하고 있다(부라보~!).
- 어디서 본듯 잊고픈 악몽 되살아나다 / 한국일보 김종한 기자
-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707/h2007072719453421950.htm
위 두 기사들은 그래도 솔직하게 '커밍아웃'하고 있다는 점에서만은 정말 높게 평가하고 싶다.
국민들이 뭘 아나, 철없는 '찌질이'인 네티즌들이 뭘 아나.
고매하신 기자님들께서 계몽하고, 가르쳐야지.
암, 그렇구 말구.
농담은 이쯤하고, 위 두 기사는 솔직히 심하게 삽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위 두 기사들에 남겨진 독자들의 댓글 논평들이야 말로, 내가 보기에는 국민들의 솔직하고, 성숙한 '여론'을 조금은 보여주는 댓글 논평들이라고 본다. 위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댓글들 읽으면서 차라리 이런 쪽팔린 수준의 기사들 보다는 일반 국민들의 소박한 의견이 훨씬 더 호소력 있고, 논리적이며, 또 비판적으로 음미할 만한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일독 강하게 권한다.
상당수 국민들이 일부 기독교 선교방법론만을 가지고 기독교 전부를 일반화시켜 비난하는 것. 나도 문제 있다고 본다. 다만 다음과 같은 점들에서 피랍 봉사단과 그 봉사단을 이끈 배후 기독교 단체들, 그 단체의 수뇌부들은 특히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가령 최한우 목사 경우를 보자.
1. 이 양반 정치와 종교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이슬람 국가에 가서 2천여명이 집단적으로 (기독교) 평화축제 한다는 황당한 발상을 실천하려고 했단다. 이거 정상인가? 이게 예정대로 였다면 8월에 벌어질 사태였다고 한다.
2. 당연히 자숙해야 마땅한 이 기독교 원로(?), 기독교 선교에 관한 기독교 권력자께서는
"공격적인 선교가 이슬람을 자극한다는 우려에 대해 “한심하다”며 “이슬람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아니라 무신론자들이며, 이슬람권에서 ‘나는 기독교인이다’고 말하면 대부분 반가워한다”고 여전히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주장한다. (관련 한겨레 기사)
3. 끝으로, 그 문제의 최한우 목사가 약 1년전(2006.06.26)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이다. 이 양반은 손석희 시선집중에 나와서도 할 말 하더라(계속 선교단 보내겠다는 투로).
"세계 175개국에 나가서 활동하는 우리 국민의 안전을 정부가 100% 보장한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효과적으로 안내하거나 또 필요시 경고할 수 있지만, 최종 책임은 국민 당사자가 지는 방향으로 시급히 정책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 [기고/최한우] 위험국가 여행 규제법안 행정편의적 발상 아닌가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1&n=200606260024
참 말 잘했다.
우선 피랍된 우리 국민, 봉사단 살려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걸 부정하고, 그냥 죽어, 이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솔직히 그 '심리'가 처음에는 정말 끔찍했는데, 그 속사정을 이리 저리 듣고 보니, 다소 격앙되어, 감정적으로 그렇게 비상식적인 일탈로 표출되었구나, 그 배경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 솔직히, 강하게 든다.
다만 그래서는 안되는게 뭐냐면, 그럼 그 독선적인 선교형태를 갖는 (일부) 기독교(의 행태)를 '개독교'로 부르면서 비판하는 이유인, 그 편협함, 배타성, 존중 결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고상한' 휴머니즘, 인간애, 민족애, 동포애에 기대어 그렇게 하면 안되는게 아니라, 최소한 비판하는 대상의 속성을 그대로 흉내내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렇다는거다.
하지만 최한우 목사 본인 말처럼, 책임은 국민 당사자가 지는 방향으로 '시급히 정책을 전환'하자. 유사사례가 일본에 이미 있다고 한다. 국가는 국민을 살리되, 그 국민(들)이 행한 과실과 오판으로 인해 생긴 손실은 그 국민과 그 국민(봉사단)에 대해 책임을 갖는 단체와 조직에게 부과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요약한다.
피랍자 무조건 살리자.
다만 책임은 묻자.
물론 그 책임, 관련 기독교 단체들이 연대해서 져야 함은 물론이다.
(덧. 댓글논평을 확인하니 다소간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요. 저는 피랍과 관련한 구호에 투여되는 '경제적' 손실에 대한 비용을 복구하는 차원에서 국가가 그 비용소모에 직접적인 책임을 갖는 '개인 혹은 단체'에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한 것이지, 피랍자나 관련 기독교단체가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그럴 수도 없겠지만요. 이점에서는 오해를 풀어주시길 바랍니다).
* 보충 1.
펄님께서 소개해주신 (한국일보의) '의미있는 기사들'입니다.
펄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 한국 개신교 강한 선교 열망에 외국서 마찰 잦아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07/h2007072019100984330.htm
* 사설 '해외 위험지역 '모험선교' 자제해야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07/h2007072218033676070.htm
* 칼럼] 원하지 않는 손님 (특히 일독 권합니다.)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07/h2007072418583624420.htm
한국 개신교의 해외 파송 선교사는 170여개 국 1만6,000여명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두번째 규모다. 타 종교의 선교활동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이슬람권에서까지 공격적 선교활동을 함으로써 한국 교회 내부에서조차 무모한 양적 팽창주의, 정복주의적 행태로 비판받고 있는 한국 개신교도들이 왜 아프간에서, 자신들이 속한 교회 담임목사의 말대로 그곳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손님이 돼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가.
아직도 이데올로기 충돌의 질곡에 옥죄여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이 문명 충돌의 언저리에 또 얼쩡거려서야 되겠는가. 종교를 바탕에 깐 충돌은 이데올로기의 충돌보다 훨씬 뿌리 깊고 그 결과는 더 처참하다는 것을 역사와 현실은 보여주고 있다. 원하지 않는 손님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 외부기고] 진중권, '디지털 시대의 중세적 순교'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07/h2007072317521486330.htm
전세계에 제 나라 깃발을 꽂으려 했던 제국주의자들의 심보와 비슷한 욕망을 본다. 제국주의자들이 '미개한 종족'이라 불렀던 것을 기독교인들은 '미전도종족'이라 부른다.
* 외부기고] 정진홍 '낯가림과 오만의 문화' (특히 일독 권합니다)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707/h2007072619312324060.htm
여러 해 전에 인도의 사르나트에 있는 녹야원에 간 일이 있습니다. 모든 아픔에서 풀려나는 지혜를 부처님께서 설파하신 '처음자리'에 서는 감동은 사뭇 경건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환청인 듯 문득 찬송가 소리가, 그것도 우리말로 들렸습니다.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제게 말했습니다. '여기 와서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제 이루었습니다. 감격스러울 뿐입니다.' 팔다리에 힘이 빠졌습니다. 분노 때문도 아니고, 부끄러움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상식 없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긴 공포가 거기 환한 웃음으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그림자는 지금 우리의 더운 여름을 불안과 분노와 연민과 원망으로 뒤덮고 있습니다.
p.s. 안내.
현재 방문인원을 추정건대..
오늘 자정 전에, 즉 트래픽이 새롭게 초기화되기 전에, 트래픽 초과로 제 블로그 접근이 제한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혹여라도 그런 일이 있다면.. 죄송하다는 말씀 미리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