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권위 붕괴 시스템으로서의 블로그
이 글은 예인님께서 쓰신 글
네티즌은 찌질하다
잡설 | 2007/08/03 16:47
에 보내는 트랙백입니다.
0.
예인님께서 쓰신 위 글은 '네티즌'이라고 불려지는 '일부' 블로거, 네티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네티즌'에 대한 의미규정은 스티브님께서 쓰신 글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아요.
스티브 한, 그들이 왜 네티즌인가?
http://blog.naver.com/steve3001/90020692501
위 글은 '인터넷 사용자'와 '네티즌'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소간 어감이 강하지만(^^;), 그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예인님 글로 넘어가서..
예인님 해당 글 댓글로도 남겼지만, 해석은 해석자의 자율성에 기반한 고유권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해석은 구체적인 맥락(조건) 상황에서만 설득력을 가질 뿐이고, 그 해석을 채택하는 다수에 의해 다수설의 형태로만 권위를 갖는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해석 그 자체의 절대적인 우열이나 위계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다만 그 해석의 (현실적인) 위계, 권위와는 상관없이, 해석으로 이뤄진 그 개별적인 텍스트(포스트)을 '대화의 매개'로 삼아 즐겁게 토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블로그라는 우리시대의 도구는 매우 순발력있게 조력하고 있구요. 그러니, 예인님께서 의도하신 바에 대해서는 다소간 해석상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차이가 오히려 즐거운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호기심 요소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다만 간단히 하나만 언급하고 넘어가죠.
저로선 예인님께서 다소간 의도하신 것으로 느껴지는 '위악' '냉소'의 수사에 대해서는 그것을 그저 개성적인 표현으로서, 수사법으로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담겨진 다소간 권위적인 계몽주의의 태도에 대해서는 우려를 갖습니다. 가령, 시민케인의 딥 포커스나 롱 테이크 기법을 이해하고, 그 철학적인 의미를 인식해야 영화비평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물론 전적으로 그런 취지로 쓰신 것은 아닐테지만요. ^ ^; ).
저 역시 때론 몹시 찌질스런 '개티즌'에 불과하지만, 그렇게 부족한 채로 서로 배울 수 있고, 또 조금씩 시민으로서의 비판적인 안목을 학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방적으로 타인의 어떤 태도들을, 그 편차와 다양한 해석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일반화시켜 재단하고, 그것을 가르치려는 태도에 대해서는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비판하려는 대상(의 태도)를 스스로 실천하고, 반복하는 아이러니라고 생각하는 때가 많아요. 그리고 그 비판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도 그다지 효율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각설하고...
예인님 글을 즐거운 대화의 '매개'로 삼아 부족한 의견이나마 끄적일까 합니다.
1. 맥락 : 디워와 아프간, 그리고 좀 오래된 황우석
디워와 아프간, 그리고 '황우석 파동'은, 그 내용의 차원에서는, 모두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 다른 이슈들입니다. 논점과 쟁점도 다르고, 그 개별 이슈(텍스트)를 둘러싼 맥락(콘텍스트)도 다릅니다.
가령, 디워/황우석 이슈 vs. 아프간 이슈를 보죠.
'애국주의' '민족주의'라는 디워와 황우석 공통의 키워드는 아프간 이슈에 대해서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적어도 문제되는 현상을 비교하면 그렇습니다. 가정적으로 예시하자면, 디워나 황우석을, 애국주의(민족주의) 정서에 바탕해서 응원하는 어떤 A의 태도는 '당연히' 아프간 이슈에 대해 '우리 국민 살리자'로 표출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 정서를 표출하는 A(들)이 많을 것으로 저는 예상합니다.
그리고 저로서는 각 해당이슈는 매우 복잡한 맥락을 갖고 있는 문제라서, 그 각 이슈들을 하나의 문제틀로 이야기하기가 몹시 어렵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뭉뚱그려서 이야기할 때 추상적인 '인상비평'의 폐해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고 염려합니다. 즉 각 사안 '내용'과 그 내용을 둘러싼 '맥락'이 다른 바에야 이 사안을 함께 동일평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좀 위험한 방식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의견과 주장의 효율성 차원에서도 그다지 찬성할 수 있는 방법론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다만 예인님께서 쓰신 취지를 살피면, 예인님께서는 다음의 점을 주목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은 (거대) 이슈 소비 패턴입니다.
2. 거대 이슈에 대한 접근 및 소비 태도
'거대 이슈'에 접근하는 이슈 수용자(뉴스 소비자)의 '태도', 이 점을 예인님께서는 지적하고 계신 것 같아요. 즉 디워나 아프간, 그리고 황우석 이슈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기 보다는, 어떤 거대 이슈의 수용과 소비 패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는 제 해석입니다.
예인님께서 우려하시는 바에 대해 일면 공감합니다.
그리고 예인님의 글에 표현된 바, '찌질이'들 많습니다. 성급하게 자신의 성급한 판단과 지식을 과시적으로 발산하려고 하고, 또 타인의 해석을 일방적으로 배척하고, 해석은 그저 해석일 뿐인데, '정답'을 강요하려는 독선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 태도에 대한 비판이라는 차원에서 위 예인님의 글이 갖는 공적 비판을 인정하고, 거기에 공감합니다 다만 예인님의 비판 역시나 주장의 무게와 근거의 무게, 그리고 주장을 지지하는 논리의 일관성이라는 차원에서는 비판할 여지가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간략하게 제 의견을 적자면,
우선 네티즌들의 층위는 그야말로 다양합니다. '네티즌'을 비판한다라고 하면, 그 네티즌의 문제되는 행위유형을 특정해서 비판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너무 비유적인 수사들로 감정적인 선동을 강요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가령 황우석 이슈에 대해서는 "황우석 사태에 대한 음모론을 제기하는 위대한 네티즌은 실험실에서 며칠밤을 새고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절망해본 적이 있는가?" 라는 지적을 하셨는데, 황우석씨의 '사기행각'을 비판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밤새 절망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황우석 파동의 가장 큰 교훈으로 생각하는 언론의 기만시스템을 비판하기 위해서 '기자'가 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처럼요.
오히려 저널리즘은 많은 다양한 성향과 지식의 층위를 갖는 '시민'(네티즌, 혹은 국민)이 '상식적으로' 토론할 수 있도록 아리까리하고, 어려운 문제(이슈)들에 대해서는 '보통의 언어'로 풀어서 제시해야 하고, 얼마든지 상식에 바탕해서, 다만 자신의 주관적인 진실에 기반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똑똑하고, 명석하고, 지혜롭고.. 현실적인 표준으로는, 철학자나 교수나 무슨 평론가들만 이야기해야 하는 건 아니고, 어떤 '현상'을 비판할 때 그 현상이 갖는 사회적인 의미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지, 그 현상 속에 있는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또 그런 정도의 '지적 수준'을 담보해야만 비판이 유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령 비유적으로 이야기하면, 서울대 비판하기 위해서는 '서울대 출신'이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에 대한 논의는 이쯤하고요.
이하 앞서 좀더 강조하고 싶었던 '담론생산소비 시스템 변화'라는 관점에서 이에 대해서 좀더 씁니다.
3. 권위적 담론 붕괴 시스템, 그리고 블로그
현재의 담론 생산 및 소비 시스템, 특히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비약적인 발전은 기존 전통적인 담론 생산자들만이 절대적인 권위를 갖기 어려운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하버마스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커뮤니케이션' 매개들의 비약적인 발전은 '사회진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토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새로운 '담론 생산 및 소비' 시스템에서 가장 혁명적인 잠재력을 갖는 장치는, 물론 블로그입니다.
이제 기자, 교수, 평론가들만이 아니라 기존의 담론 소비층에 불과했던 블로거들도 글을 쓰고, 어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자신의 해석을 적극적으로 투사합니다. 저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 '새로운 시스템'이 갖는 혁명성을 옹호합니다.
'블로그 민주주의'라는 이상적 모델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 그런 물적 토대가 어느 정도는 갖춰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온라인 하부구조로서, 그 기본이 되는 물적 장치로서 '블로그'에 대해 무한한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물론 현실은 그렇게 단순한 희망대로 굴러가지는 않죠.
많은 경우에, 기존의 권위적 매체들에서 생산되는 담론들은 여전히 그 질과 수준에 있어서(물론 그 콘텐츠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산출한다는 것은 힘들겠지만요), 다수 블로거, 네티즌이 생산하는 콘텐츠보다 뛰어납니다. 예인님 말씀 그대로죠. 질적으로 좀더 '고급의 콘텐츠'이고, 좀더 책임과 근거를 갖고 쓰여지는 글들이 당연히 많습니다.
제가 많은 영감을 얻고, 또 블로그에 대해서 많이 배우는 '아틸라님' 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블로그는 '뉴스 소비 패턴'의 변화에 있어서 의미있는 '단계'에 있지, 뉴스 생산 시스템 전반을 재구성할 만한 역량을 갖고 있지는 못합니다. 앞으로도 기존의 전통적인 담론생산 시스템의 한 '요소'로서 블로그는 존재하는 것이지, 그것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단계에 까지는 이르지 못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긴 하지만요.
즉 블로그는 기존의 담론 생산 시스템 변화에는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그동안의 전통적인 뉴스 '소비 패턴'을 변화하는 강력한 동인이라는 점에서, 현단계의 블로그, 그리고 블로거, 네티즌은 의미를 좀더 강하게 갖고 있는 것 같아요(사적으로 첨언하자면, 아틸라님께서 "민주주의는 블루오션"이라는 포스트를 어서 작성해주시길 기대합니다. ^ ^;).
다만 기존의 담론들, 그 담론의 구체적인 어떤 성격들을 비판하는 역할은 여전히 의미있고, 또 가치있는 블로기즘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비판이 집단적이고, 감정적인 어떤 정서에 의해 쉽게 휘발되는 '냄비'근성이 아니기를 바라지만요.
그러니 기존 담론 생산집단, 그 전통적인 시스템에서 만들어지는 담론들, 콘텐츠들을 비판하는 역할은 충분히 의미있는 행위라고 생각하구요. 블로거들이, 네티즌들이 수행하는 비판의 '편차'와 다양한 '층위'들을 무시하고, 어떤 일시적이고, 현상적인 차원만에만 주목해서, 그것을 추상적으로 일반화하여 네티즌의 행태는 찌질하다고 말하는 것은 좀 곤란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좀 찌질하면 어때요. ^ ^;
(실은 저도 찌질이를 굉장히 증오하긴 하지만요. ㅡㅡ;; 자기 증오인가요? ㅎ)
찌질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찌질한 행위, 현상'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구요.
이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찌질스런 행위 유형을 비판하는 의견이 이렇게 있고, 또 그 의견을 비판하는 의견이 있고, 또 제 글도 또 다른 어떤 블로거께서, 혹은 예인님께서 다시 비판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의견들이 '대화'로서 순환하고, 또 그런 순환이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그렇게 즐겁게 의견으로서 대화할 수 있다면, 저는 좋겠습니다.
다만 고양된 의견만이 발표되어야 하고, 다수의 부족한 의견은 침묵해야 한다면..
그 권위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어떻게 그 권위가 부여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로선 전통적인 권위 형성 시스템에 대해선 매우 회의적이라서요, 그다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고상한 의견들만 유통되는 메마른 풍경보다는 시장판의 언어들, 아직 여물지 못한 의견들이 그 자체로 생생하게 피어나는 풍경이 좋습니다. 다만 주장의 무게는 근거의 무게에 비례해야 하고, 또 어떤 사사로운 의견도 공적으로 발표된 이상은 그 공적 의견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져야겠죠.
이상입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그런데 솔직히 쓰고 싶은 말은 계속 무럭무럭 피어나고.. ㅡㅡ;;
끝이 없을 것 같아서요.
예인님께 특별한 고마움을 전합니다.
여기서 미쳐 나누지 못한 이야기에 대해선, 앞으로 종종 대화를 갖기를 기대합니다.
p.s.
이제 주말이라서 블로깅 휴식타임이겠군요.
부족한 글이지만 주말 블로깅을 즐기시는 블로거들에게 조금이나마 어필(?)하고자 ㅎㅎ
올블 '나의 추천 글'에 올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예인님께서 쓰신 글
네티즌은 찌질하다
잡설 | 2007/08/03 16:47
에 보내는 트랙백입니다.
0.
예인님께서 쓰신 위 글은 '네티즌'이라고 불려지는 '일부' 블로거, 네티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네티즌'에 대한 의미규정은 스티브님께서 쓰신 글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아요.
스티브 한, 그들이 왜 네티즌인가?
http://blog.naver.com/steve3001/90020692501
위 글은 '인터넷 사용자'와 '네티즌'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소간 어감이 강하지만(^^;), 그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예인님 글로 넘어가서..
예인님 해당 글 댓글로도 남겼지만, 해석은 해석자의 자율성에 기반한 고유권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해석은 구체적인 맥락(조건) 상황에서만 설득력을 가질 뿐이고, 그 해석을 채택하는 다수에 의해 다수설의 형태로만 권위를 갖는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해석 그 자체의 절대적인 우열이나 위계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다만 그 해석의 (현실적인) 위계, 권위와는 상관없이, 해석으로 이뤄진 그 개별적인 텍스트(포스트)을 '대화의 매개'로 삼아 즐겁게 토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블로그라는 우리시대의 도구는 매우 순발력있게 조력하고 있구요. 그러니, 예인님께서 의도하신 바에 대해서는 다소간 해석상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차이가 오히려 즐거운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호기심 요소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다만 간단히 하나만 언급하고 넘어가죠.
저로선 예인님께서 다소간 의도하신 것으로 느껴지는 '위악' '냉소'의 수사에 대해서는 그것을 그저 개성적인 표현으로서, 수사법으로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담겨진 다소간 권위적인 계몽주의의 태도에 대해서는 우려를 갖습니다. 가령, 시민케인의 딥 포커스나 롱 테이크 기법을 이해하고, 그 철학적인 의미를 인식해야 영화비평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물론 전적으로 그런 취지로 쓰신 것은 아닐테지만요. ^ ^; ).
저 역시 때론 몹시 찌질스런 '개티즌'에 불과하지만, 그렇게 부족한 채로 서로 배울 수 있고, 또 조금씩 시민으로서의 비판적인 안목을 학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방적으로 타인의 어떤 태도들을, 그 편차와 다양한 해석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일반화시켜 재단하고, 그것을 가르치려는 태도에 대해서는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비판하려는 대상(의 태도)를 스스로 실천하고, 반복하는 아이러니라고 생각하는 때가 많아요. 그리고 그 비판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도 그다지 효율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각설하고...
예인님 글을 즐거운 대화의 '매개'로 삼아 부족한 의견이나마 끄적일까 합니다.
1. 맥락 : 디워와 아프간, 그리고 좀 오래된 황우석
디워와 아프간, 그리고 '황우석 파동'은, 그 내용의 차원에서는, 모두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 다른 이슈들입니다. 논점과 쟁점도 다르고, 그 개별 이슈(텍스트)를 둘러싼 맥락(콘텍스트)도 다릅니다.
가령, 디워/황우석 이슈 vs. 아프간 이슈를 보죠.
'애국주의' '민족주의'라는 디워와 황우석 공통의 키워드는 아프간 이슈에 대해서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적어도 문제되는 현상을 비교하면 그렇습니다. 가정적으로 예시하자면, 디워나 황우석을, 애국주의(민족주의) 정서에 바탕해서 응원하는 어떤 A의 태도는 '당연히' 아프간 이슈에 대해 '우리 국민 살리자'로 표출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 정서를 표출하는 A(들)이 많을 것으로 저는 예상합니다.
그리고 저로서는 각 해당이슈는 매우 복잡한 맥락을 갖고 있는 문제라서, 그 각 이슈들을 하나의 문제틀로 이야기하기가 몹시 어렵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뭉뚱그려서 이야기할 때 추상적인 '인상비평'의 폐해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고 염려합니다. 즉 각 사안 '내용'과 그 내용을 둘러싼 '맥락'이 다른 바에야 이 사안을 함께 동일평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좀 위험한 방식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의견과 주장의 효율성 차원에서도 그다지 찬성할 수 있는 방법론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다만 예인님께서 쓰신 취지를 살피면, 예인님께서는 다음의 점을 주목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은 (거대) 이슈 소비 패턴입니다.
2. 거대 이슈에 대한 접근 및 소비 태도
'거대 이슈'에 접근하는 이슈 수용자(뉴스 소비자)의 '태도', 이 점을 예인님께서는 지적하고 계신 것 같아요. 즉 디워나 아프간, 그리고 황우석 이슈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기 보다는, 어떤 거대 이슈의 수용과 소비 패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는 제 해석입니다.
예인님께서 우려하시는 바에 대해 일면 공감합니다.
그리고 예인님의 글에 표현된 바, '찌질이'들 많습니다. 성급하게 자신의 성급한 판단과 지식을 과시적으로 발산하려고 하고, 또 타인의 해석을 일방적으로 배척하고, 해석은 그저 해석일 뿐인데, '정답'을 강요하려는 독선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 태도에 대한 비판이라는 차원에서 위 예인님의 글이 갖는 공적 비판을 인정하고, 거기에 공감합니다 다만 예인님의 비판 역시나 주장의 무게와 근거의 무게, 그리고 주장을 지지하는 논리의 일관성이라는 차원에서는 비판할 여지가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간략하게 제 의견을 적자면,
우선 네티즌들의 층위는 그야말로 다양합니다. '네티즌'을 비판한다라고 하면, 그 네티즌의 문제되는 행위유형을 특정해서 비판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너무 비유적인 수사들로 감정적인 선동을 강요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가령 황우석 이슈에 대해서는 "황우석 사태에 대한 음모론을 제기하는 위대한 네티즌은 실험실에서 며칠밤을 새고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절망해본 적이 있는가?" 라는 지적을 하셨는데, 황우석씨의 '사기행각'을 비판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밤새 절망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황우석 파동의 가장 큰 교훈으로 생각하는 언론의 기만시스템을 비판하기 위해서 '기자'가 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처럼요.
오히려 저널리즘은 많은 다양한 성향과 지식의 층위를 갖는 '시민'(네티즌, 혹은 국민)이 '상식적으로' 토론할 수 있도록 아리까리하고, 어려운 문제(이슈)들에 대해서는 '보통의 언어'로 풀어서 제시해야 하고, 얼마든지 상식에 바탕해서, 다만 자신의 주관적인 진실에 기반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똑똑하고, 명석하고, 지혜롭고.. 현실적인 표준으로는, 철학자나 교수나 무슨 평론가들만 이야기해야 하는 건 아니고, 어떤 '현상'을 비판할 때 그 현상이 갖는 사회적인 의미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지, 그 현상 속에 있는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또 그런 정도의 '지적 수준'을 담보해야만 비판이 유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령 비유적으로 이야기하면, 서울대 비판하기 위해서는 '서울대 출신'이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에 대한 논의는 이쯤하고요.
이하 앞서 좀더 강조하고 싶었던 '담론생산소비 시스템 변화'라는 관점에서 이에 대해서 좀더 씁니다.
3. 권위적 담론 붕괴 시스템, 그리고 블로그
현재의 담론 생산 및 소비 시스템, 특히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비약적인 발전은 기존 전통적인 담론 생산자들만이 절대적인 권위를 갖기 어려운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하버마스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커뮤니케이션' 매개들의 비약적인 발전은 '사회진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토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새로운 '담론 생산 및 소비' 시스템에서 가장 혁명적인 잠재력을 갖는 장치는, 물론 블로그입니다.
이제 기자, 교수, 평론가들만이 아니라 기존의 담론 소비층에 불과했던 블로거들도 글을 쓰고, 어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자신의 해석을 적극적으로 투사합니다. 저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 '새로운 시스템'이 갖는 혁명성을 옹호합니다.
'블로그 민주주의'라는 이상적 모델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 그런 물적 토대가 어느 정도는 갖춰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온라인 하부구조로서, 그 기본이 되는 물적 장치로서 '블로그'에 대해 무한한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물론 현실은 그렇게 단순한 희망대로 굴러가지는 않죠.
많은 경우에, 기존의 권위적 매체들에서 생산되는 담론들은 여전히 그 질과 수준에 있어서(물론 그 콘텐츠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산출한다는 것은 힘들겠지만요), 다수 블로거, 네티즌이 생산하는 콘텐츠보다 뛰어납니다. 예인님 말씀 그대로죠. 질적으로 좀더 '고급의 콘텐츠'이고, 좀더 책임과 근거를 갖고 쓰여지는 글들이 당연히 많습니다.
제가 많은 영감을 얻고, 또 블로그에 대해서 많이 배우는 '아틸라님' 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블로그는 '뉴스 소비 패턴'의 변화에 있어서 의미있는 '단계'에 있지, 뉴스 생산 시스템 전반을 재구성할 만한 역량을 갖고 있지는 못합니다. 앞으로도 기존의 전통적인 담론생산 시스템의 한 '요소'로서 블로그는 존재하는 것이지, 그것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단계에 까지는 이르지 못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긴 하지만요.
즉 블로그는 기존의 담론 생산 시스템 변화에는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그동안의 전통적인 뉴스 '소비 패턴'을 변화하는 강력한 동인이라는 점에서, 현단계의 블로그, 그리고 블로거, 네티즌은 의미를 좀더 강하게 갖고 있는 것 같아요(사적으로 첨언하자면, 아틸라님께서 "민주주의는 블루오션"이라는 포스트를 어서 작성해주시길 기대합니다. ^ ^;).
다만 기존의 담론들, 그 담론의 구체적인 어떤 성격들을 비판하는 역할은 여전히 의미있고, 또 가치있는 블로기즘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비판이 집단적이고, 감정적인 어떤 정서에 의해 쉽게 휘발되는 '냄비'근성이 아니기를 바라지만요.
그러니 기존 담론 생산집단, 그 전통적인 시스템에서 만들어지는 담론들, 콘텐츠들을 비판하는 역할은 충분히 의미있는 행위라고 생각하구요. 블로거들이, 네티즌들이 수행하는 비판의 '편차'와 다양한 '층위'들을 무시하고, 어떤 일시적이고, 현상적인 차원만에만 주목해서, 그것을 추상적으로 일반화하여 네티즌의 행태는 찌질하다고 말하는 것은 좀 곤란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좀 찌질하면 어때요. ^ ^;
(실은 저도 찌질이를 굉장히 증오하긴 하지만요. ㅡㅡ;; 자기 증오인가요? ㅎ)
찌질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찌질한 행위, 현상'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구요.
이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찌질스런 행위 유형을 비판하는 의견이 이렇게 있고, 또 그 의견을 비판하는 의견이 있고, 또 제 글도 또 다른 어떤 블로거께서, 혹은 예인님께서 다시 비판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의견들이 '대화'로서 순환하고, 또 그런 순환이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그렇게 즐겁게 의견으로서 대화할 수 있다면, 저는 좋겠습니다.
다만 고양된 의견만이 발표되어야 하고, 다수의 부족한 의견은 침묵해야 한다면..
그 권위가 어떤 식으로 형성되고, 어떻게 그 권위가 부여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로선 전통적인 권위 형성 시스템에 대해선 매우 회의적이라서요, 그다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고상한 의견들만 유통되는 메마른 풍경보다는 시장판의 언어들, 아직 여물지 못한 의견들이 그 자체로 생생하게 피어나는 풍경이 좋습니다. 다만 주장의 무게는 근거의 무게에 비례해야 하고, 또 어떤 사사로운 의견도 공적으로 발표된 이상은 그 공적 의견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져야겠죠.
이상입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그런데 솔직히 쓰고 싶은 말은 계속 무럭무럭 피어나고.. ㅡㅡ;;
끝이 없을 것 같아서요.
예인님께 특별한 고마움을 전합니다.
여기서 미쳐 나누지 못한 이야기에 대해선, 앞으로 종종 대화를 갖기를 기대합니다.
p.s.
이제 주말이라서 블로깅 휴식타임이겠군요.
부족한 글이지만 주말 블로깅을 즐기시는 블로거들에게 조금이나마 어필(?)하고자 ㅎㅎ
올블 '나의 추천 글'에 올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