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임, 별빛들, 속삭임들...

2007/08/04 23:50
형준이가 정은임에 대해 썼더라.
어찌나 반갑던지... 
그런데 기분이 이상하다.
막 불안한거야, 그게 정은임 때문인지, 그 지나버린 시간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멀리 있는 달콤한 향기들.
바다 속에 가라앉은 깜깜하게 숨겨진 꿈들.

시간은 마치 파스텔같다.
추억은 언제나 그 실제보다 좀더 따뜻하게 채색된다.
그 때를 떠올리면, 지금보다 그닥 낭만적이거나, 혹은 굉장한 희망에 부풀거나, 철없는 설렘들로 일상이 피어나거나..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지금처럼 그렇게 지루하고, 또 지금처럼 그렇게 식상한 흑백톤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문득 그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거다.
 
검푸르게 빛나는 새벽.
내 작은 골방.
그 작은 라디오 속에서 떨리는 듯, 속삭이는 정은임의 목소리...
지금이라도 어딘가로부터 들려올 듯 하다.
그러면 마치 세상의 모든 별빛들이 그 목소리에 스며들어 반짝거릴 것만 같다.


나는 영화 참 좋아하는데..
영화를 정말 정말 좋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이다.
정성일과 정은임.
정말 환상의 콤비였지. ㅎㅎ
(물론 홍동식도 있었지만...)

언젠가 이안의 결혼 피로연을 비평하면서 정성일과 정은임이 나눈 농담이 갑자기 기억난다.  

미국으로 유학가 거기서 자리잡은 주인공에게 부모들은 어떻게든 결혼시켜려 한다. 그런데 이 주인공은 게이다. 그걸 알리 없는 부모들은 맞선을 강요하고, 그리고 이 주인공은 별별 조건을 요구한다. 발레 전공하고, 박사학위는 두 개 정도 있고.. 뭐 그런 여자.

정은임이 그 줄거리 듣다가,
"세상에 그렇게 완벽한 여자가 있어요?"
장난스럽게 묻는다.

정성일이 (특유의 무뚝뚝한 듯한 말투로) 대답한다.
"정은임씨요"

그 때 얼마나 정성일이 부럽던지. ㅡㅡ;
왜 이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는지는 잘 모른다.
왜 그 기억이 지금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냥 정은임에게 갑자기 편지를 보내고 싶어졌다.
이 글은 정은임씨에게 보내는 편지다.
그런데 무슨 편지가 이래?

정은임은 이제는 답장을 보낼 수 없겠지만...


은임씨 고마워요.
당신 때문에 제 삭막한 새벽들이 참 아름답게도 빛났더랬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늘 그렇게 속삭이는 환한 별빛들처럼 그렇게 빛나시기를...



오늘 신청곡은,
늘 그랬듯이,
'집시의 시간' 중 '불의 축제'에 나오는 그 노래입니다.

여기...




p.s.
다음 블로거뉴스에 정은임 태그가 있더군요.
참 반가웠습니다.
정은임씨를 따뜻하고, 소중하게 기억하는 한명으로서 고맙기까지 하더군요.
그런데 글을 쓴 블로거에게 어떤 양해도 없이 제목을 함부로 바꾸는 것 같던데요.
정은임씨.. 이 모습 봤으면 가만 있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ㅎㅎ
이 글은 물론 다음 블로거뉴스에 송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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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정은임, 그녀를 추억하며 Lenny Cravitz : It ain't over till its over

    Tracked from Log : Lampard 2007/08/06 15:57 del.

    정은임, 그녀를 떠나 보낸지 3년 그 이름을 잊고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찾은 그 목소리를 이젠 놓치지 않으렵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그녀의 목소리가 그리우시면.. 정은임 추모 사업회 관련글 [정은임⑤] 고 정은임 아나운서 추모물결 넘실 정은임, 그녀를 떠나 보낸지 3년 라디오스타 정은임 아나운서 아~그리운 그녀-정은임 아나운서 3주기를 맞이하며... 정은임이 우리에게, "끝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니다"

  2. Subject : 나의 마지막 라디오, 정은임을 추억하다

    Tracked from A Piece of Cake (ver 1.1) 2008/01/31 15:41 del.

    정은임 아나운서가 2004년 사고로 생을 마감한지 벌써 3년이 넘어간다. 갑자기 다시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떠올린건 얼마전 피시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그녀 방송파일 때문이었다. 점심먹고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그녀 죽음을 전해들었을때 느꼈던 심한 상실감이 기억난다. 더이상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상실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정영음과의 기억, 그 좋았던 추억 때문이었을게다. 공부가 일이었던, 고등학교때 토요일마다 밤을 세워 숨죽이며 라디오를..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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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멤피스 2007/08/05 00:45

    덕분에 정은임씨 방송에서 자주 듣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도 그녀가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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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8/05 00:49

      정말 그때 그립네요.
      꽤나 많은 연애편지들을 보냈죠, 우리들 모두요. .
      그게 정은임씨에 대한 연애편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어떤 막연한 비밀결사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였던 것 같아요.

  2. 가즈랑 2007/08/05 01:39

    왠지 민노씨가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셨을 거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링크해주신 음악을 듣고 있으니, 참 평화로워지네요. 인공의 악기도 아니고, 멋부리는 아카펠라도 아니고 나즈막한 소녀의 목소리 덕분일까요. 그리고 은임씨는 이렇게 기억해주는 사람이 많아서 외롭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아름다운 글 잘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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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8/05 02:00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중 하나입니다.
      정말 정은임 FM 영화음악 시절에는 질릴 정도로 자주 들었던 곡이에요.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다시 듣네요.

      늦게 주무시네요? : )

  3. 화분 2007/08/06 03:40

    정은임..듣느니 첨이구만. 비밀결사 단원이 아니라 미안하오.
    그래도 민노씨가 누군가를 그리워 하는 걸 보니 좋네.
    산 사람도 그리워하고 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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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8/06 17:03

      ^ ^;;
      안그래도 요즘 필벗들 생각 자주 하는데..
      알겠음둥~!

  4. 람반장 2007/08/06 16:02

    요즘 다시 듣기를 애청중인데, 이런 저런 생각이 참 많이 나고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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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8/06 17:04

      그러시군요. : )
      저는 예전에 녹음했던 테이프들, 꽤 많이 녹음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디있는지 모르겠습니다. ㅡ.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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