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독자에게 권력을...!
최근에 글을 통해서 '파워블로그'(혹은 '블로그(거)파워')에 대해 쓴다고 언급하곤 했는데, 물론 아직 제대로 진도를 내고 있지는 못하다. 너무 뻔한 소리가 될 것 같다는 불안이 커서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게으름이 한몫 차지하고 있다. 아직 쓰여지지 않은 그 글에서 결국 내가 가장 말하고 싶은건 '독자에게 권력을!'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제 정보 생산자가 갖는 중요성만큼이나 정보 소비자가 갖는 중요성, 고전적인 창작권력과 비평권력보다 궁극적으로 독자권력은 점점더 그 중요성을 더해간다고 느낀다. 이건 굳이 독자반응비평이나 수용미학을 언급하지 않아도 피부로 체감하는 문제다. 독자가 좀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세우지 못하고, 그 독자권력을 블로거가 지지하지 못한다면, 블로그는 의미있는 대안적 권력으로 자신을 세우기 몹시 어려워진다. 이건 가장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다.
소비자권력, 혹은 독자권력...
최근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에 대한 수구적 정치권력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들은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반동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1. 아거의 블로그 카테고리에 관한 연재
흥미로운 연재가 시작되었다. 블로거 아거는 블로그 카테고리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온라인 서점 주미를 인용한다. 온라인 서점 주미에 대해 아거는 다음과 같은 부분을 가장 먼저 주문한다.
2.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블로그에 한정해서 논하자.
블로거의 입장에서는 독자, 특히나 열혈독자의 취향과 욕구를 배려하고, 그들과 대화 가능성을 좀더 확장하려는 노력을 자연스럽게 시도하게 된다. 그렇다면 구체적 방법론으로 블로그(컨텐츠)의 커스터마이징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블로그 커스터마이징은 커뮤니케이션 에너지의 확장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으로써, 전략으로써 고민되어야 한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요구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존중을 담은 대화의 형식, 때론 토론의 형식을 통해 구현된다. 아주 단순한 의사표시, "글이 좋습니다" 혹은 "잘 모르겠습니다" "글의 입장에 반대합니다"라는 의사표시는 블로거의 입장에서는 때론 의미없는 반응에 불과할 수 있고, 특히나 부정적인 평가인 경우("글이 뭐 이런가?"라는 반응)에는 심한 불쾌가 수반할 수도 있지만, 현명한 블로거라면 자신과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에너지를 확장할 수 있는, 그래서 좀더 효과적인 커스터마이징을 위한 귀한 재료로 삼아야 마땅하다.
3. 대화형 블로그와 주문형 블로그, 그리고 독백형 블로그
나는 블로그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 관계는 '대화'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결국 블로그는 대화인 셈이다.
그래서 블로그는 대화형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블로그를 하는 가장 커다란 의미이며, '대화'는 블로그라는 어쩌면 따분한 '물건'을 그 모든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놀랍고, 흥미로운 생산물들 보다 흥미롭고, 역동적으로 만들어주는 궁극의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블로그는 사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웹상에 공개된 출판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는 어쩔 수 없이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 양자는 블로그의 이중성과 이율배반을 그리고 블로그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블로거의 실존적인 개성과 독자들의 반응이라는 흥미로운 역학들을 매우 즉각적으로, 시시각각 만들어낸다. 블로거의 영원한 숙제인 이 역학들 사이에서의 '실존적이며 지리적인 위치설정'은 그 블로그가 갖는 빛깔과 향기, 질량과 부피에 직접적으로 관계한다.
우리는 독자들의 주문에 따라 그들의 취향에 자신의 개성을 복속시키면서 주문형 블로그가 될 필요는 전혀 없다. 비가시적 독자들의 욕망과 속물근성에만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미끼블로그'가 되라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하지만 블로거의 개성을 과도하게 주장하면서, 블로그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터무니없는 강변을 늘어놓아서도 안된다. 어쩔 수 없이 블로그는, 블로거는 그 양자의 요구들 속에서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 스스로와 대화하게 되고, 그렇게 실존과 자아가 중재하는 갈등과 긴장들 속에서 글을 쓸 수 밖에는 없다.
블로그는 마음껏 독백하고자 하는 욕구와 독자들의 마음에 들고 싶다는 욕구들 사이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고, 그 긴장의 크기가 커질수록 블로그의 에너지는 증폭한다.
블로그는 대화해야 한다.
대화함으로써 자신의 독백이 갖는 공적인 성질,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명제의 의미를 그 대화의 풍경 속에서 획득하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독자로서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일종의 대화이며, 복화술로만 중얼거리는 어떤 블로거의 독백도 의미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대화의 풍경 속에 있다. 그것이 표현된 독백이라면 그렇다.
모든 것이 대화이긴 하지만 현재 전략적으로, 방법론적으로 가장 필요한 대화의 방식은 좀더 솔직하게 당신이 당신의 시간과 정신적인 노동의 기회비용을 기꺼이 포기하면서 읽고 있는 당신의 블로그들에게 좀더 강하게 '주문'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익명의 악플러도 블로그를 망치지만, 얌전하고, 수줍은 독자들 역시 블로그가 발전에는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언젠가 CF 카피로 쓰였던 명언(?)처럼 '표현하지 않는다면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속담을 빌자면, '입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귀신도 모른다.'
나에게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주문해달라,
기꺼이 커스터마이징하겠다.
* 발아점
단순 분류 효과와 블로그의 카테고리 [1] (아거) @ The Blographic.
최근에 글을 통해서 '파워블로그'(혹은 '블로그(거)파워')에 대해 쓴다고 언급하곤 했는데, 물론 아직 제대로 진도를 내고 있지는 못하다. 너무 뻔한 소리가 될 것 같다는 불안이 커서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게으름이 한몫 차지하고 있다. 아직 쓰여지지 않은 그 글에서 결국 내가 가장 말하고 싶은건 '독자에게 권력을!'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제 정보 생산자가 갖는 중요성만큼이나 정보 소비자가 갖는 중요성, 고전적인 창작권력과 비평권력보다 궁극적으로 독자권력은 점점더 그 중요성을 더해간다고 느낀다. 이건 굳이 독자반응비평이나 수용미학을 언급하지 않아도 피부로 체감하는 문제다. 독자가 좀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세우지 못하고, 그 독자권력을 블로거가 지지하지 못한다면, 블로그는 의미있는 대안적 권력으로 자신을 세우기 몹시 어려워진다. 이건 가장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다.
소비자권력, 혹은 독자권력...
최근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에 대한 수구적 정치권력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들은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반동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1. 아거의 블로그 카테고리에 관한 연재
흥미로운 연재가 시작되었다. 블로거 아거는 블로그 카테고리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온라인 서점 주미를 인용한다. 온라인 서점 주미에 대해 아거는 다음과 같은 부분을 가장 먼저 주문한다.
책의 커버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책방에 들어서면 자주 가는 코너가 있듯이, 가상 서점도 역시 단골 고객들의 기호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게 배려할 필요가 있다.
- 아거, 주미 (Zoomii) 중에서
- 아거, 주미 (Zoomii) 중에서
2.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은 원래 커스터마이즈(customize), 즉 무엇을 주문을 받아서 만들다라는 영어로서 보통 생산업체나 수공업자들이 고객의 요구에 의해서 제품이나 물건을 고객이 원하는대로 만들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일종의 맞춤 서비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래에 들어서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 IT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개발된 솔루션이나 웹사이트 등을 구입 또는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이 원하는 형태로 재구성 또는 재설계하는 것을 말합니다. [....]
- 팁앤테크 [관련용어] 커스터마이징이란... 중에서
- 팁앤테크 [관련용어] 커스터마이징이란... 중에서
블로그에 한정해서 논하자.
블로거의 입장에서는 독자, 특히나 열혈독자의 취향과 욕구를 배려하고, 그들과 대화 가능성을 좀더 확장하려는 노력을 자연스럽게 시도하게 된다. 그렇다면 구체적 방법론으로 블로그(컨텐츠)의 커스터마이징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블로그 커스터마이징은 커뮤니케이션 에너지의 확장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으로써, 전략으로써 고민되어야 한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요구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존중을 담은 대화의 형식, 때론 토론의 형식을 통해 구현된다. 아주 단순한 의사표시, "글이 좋습니다" 혹은 "잘 모르겠습니다" "글의 입장에 반대합니다"라는 의사표시는 블로거의 입장에서는 때론 의미없는 반응에 불과할 수 있고, 특히나 부정적인 평가인 경우("글이 뭐 이런가?"라는 반응)에는 심한 불쾌가 수반할 수도 있지만, 현명한 블로거라면 자신과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에너지를 확장할 수 있는, 그래서 좀더 효과적인 커스터마이징을 위한 귀한 재료로 삼아야 마땅하다.
3. 대화형 블로그와 주문형 블로그, 그리고 독백형 블로그
나는 블로그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 관계는 '대화'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결국 블로그는 대화인 셈이다.
그래서 블로그는 대화형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블로그를 하는 가장 커다란 의미이며, '대화'는 블로그라는 어쩌면 따분한 '물건'을 그 모든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놀랍고, 흥미로운 생산물들 보다 흥미롭고, 역동적으로 만들어주는 궁극의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블로그는 사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웹상에 공개된 출판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는 어쩔 수 없이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 양자는 블로그의 이중성과 이율배반을 그리고 블로그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블로거의 실존적인 개성과 독자들의 반응이라는 흥미로운 역학들을 매우 즉각적으로, 시시각각 만들어낸다. 블로거의 영원한 숙제인 이 역학들 사이에서의 '실존적이며 지리적인 위치설정'은 그 블로그가 갖는 빛깔과 향기, 질량과 부피에 직접적으로 관계한다.
우리는 독자들의 주문에 따라 그들의 취향에 자신의 개성을 복속시키면서 주문형 블로그가 될 필요는 전혀 없다. 비가시적 독자들의 욕망과 속물근성에만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미끼블로그'가 되라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하지만 블로거의 개성을 과도하게 주장하면서, 블로그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터무니없는 강변을 늘어놓아서도 안된다. 어쩔 수 없이 블로그는, 블로거는 그 양자의 요구들 속에서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 스스로와 대화하게 되고, 그렇게 실존과 자아가 중재하는 갈등과 긴장들 속에서 글을 쓸 수 밖에는 없다.
블로그는 마음껏 독백하고자 하는 욕구와 독자들의 마음에 들고 싶다는 욕구들 사이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고, 그 긴장의 크기가 커질수록 블로그의 에너지는 증폭한다.
블로그는 대화해야 한다.
대화함으로써 자신의 독백이 갖는 공적인 성질,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명제의 의미를 그 대화의 풍경 속에서 획득하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독자로서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일종의 대화이며, 복화술로만 중얼거리는 어떤 블로거의 독백도 의미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대화의 풍경 속에 있다. 그것이 표현된 독백이라면 그렇다.
모든 것이 대화이긴 하지만 현재 전략적으로, 방법론적으로 가장 필요한 대화의 방식은 좀더 솔직하게 당신이 당신의 시간과 정신적인 노동의 기회비용을 기꺼이 포기하면서 읽고 있는 당신의 블로그들에게 좀더 강하게 '주문'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익명의 악플러도 블로그를 망치지만, 얌전하고, 수줍은 독자들 역시 블로그가 발전에는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언젠가 CF 카피로 쓰였던 명언(?)처럼 '표현하지 않는다면 사랑이 아니다' 그리고 속담을 빌자면, '입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귀신도 모른다.'
나에게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주문해달라,
기꺼이 커스터마이징하겠다.
* 발아점
단순 분류 효과와 블로그의 카테고리 [1] (아거) @ The Blographi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