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미투로그 댓글창에 메모했던거. 앞으론 메모 끝나면 살짝 추고해서 옮겨적을까 싶다. 매일이 될 수도 있고, 가끔이 될 수도 있고,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어제 (2.12)
어제 (2.12)
0. 크렌베리스는 들으면 들을수록 좋다. 너무 간만에 들어서
그런가? 몇 년만에 들긴 했다. 그렇게 다시 크렌베리스를 근 보름 정도 듣고 있는데... 아, 빠져드는구나. 커피, 캬라멜처럼. 마치 연애의 감정처럼... 연애의 풍경이 이런 노래같다면 좋겠다.
17. 새벽 이 시간이 참 좋다.
다들 나와 같은, 내 상상의 동료인, 수줍고, 겁많은 친구들만 빼놓곤, 모두가 자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해서인가보다.
이건 무슨 보호심리인건가...?
때론 사람들은 내가 무슨 대단히 호전적이거나, 혹은 비판적인 사고(씩이나..)를 가진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은 난 참 내가 생각해도 과도한 열등감을 가진, 필요 이상으로 수줍음을 잘타는, 그런데 그걸 숨기기 위해, 오랫동안, 오랜 시간 동안 연습한, 그래서 연습의 껍질이 살처럼 굳어진... 그런 사람일 뿐이다.
오늘 (2.13)
0. 새벽 2시. 오늘도 크렌베리스를 들으면서 웹서핑을 한다. 김은혜가 청와대 들어간다는 소식도 듣고(난 인상 좋은 아줌마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자 사회에선 전설이었단다. 그래?), 아거님 댁에 들렀다가 이런 '섹시'한 글(멜로디언)도 읽었다. "건강한 자본주의" 란 말이 묘한 울림을 준다.
1.
'건강한 자본주의'는 마치 형용모순 같다.
이게 말이되는거야?
이런 즉각적인 반응을 나는 내 안에서 조건반사처럼 일으킨다.
하지만 천박한 자본주의보다는 나을테지.
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포로다, 명백한 포로.
내 욕망은 대화와 놀이와 그리고 포르노와 어떤 따뜻한, 지금은 닿을 수 없는, 살에 향해 있다.
그리고 문득 나는 생각한다, 나는 불행하다.
그런데 그 불행의 증거들은 너무도 초라해서, 나는 내 불행에 대해 항거한다. 나에게 좀더 근사한 불행의 증거들을 남겨달란 말이다. 자본주의적 욕망은 불행도 비교대상으로 스스로에게 내면화시킨다.
드라마 자본주의, 환상 자본주의의 편린들...
이게 말이되는거야?
이런 즉각적인 반응을 나는 내 안에서 조건반사처럼 일으킨다.
하지만 천박한 자본주의보다는 나을테지.
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포로다, 명백한 포로.
내 욕망은 대화와 놀이와 그리고 포르노와 어떤 따뜻한, 지금은 닿을 수 없는, 살에 향해 있다.
그리고 문득 나는 생각한다, 나는 불행하다.
그런데 그 불행의 증거들은 너무도 초라해서, 나는 내 불행에 대해 항거한다. 나에게 좀더 근사한 불행의 증거들을 남겨달란 말이다. 자본주의적 욕망은 불행도 비교대상으로 스스로에게 내면화시킨다.
드라마 자본주의, 환상 자본주의의 편린들...
2.
억압.
에 대해 생각했다.
글을 쓰는 일은 항상 일정한 치유의 목적을 갖는 것 같다.
*** 블로그에 들렀는데, *** 책을 읽지 않아서 쉽게 말하긴 그렇지만... 자뻑 스탈은 그게 학자 혹은 작가의 개성이라고 너그럽게 해석해도(?).. "놀고있네" 이런 자연스런(?)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책 하나 히트 시키면 이렇게 되는건가? 이런 속물적인 상상력이 마구 무럭무럭 자란다.
에 대해 생각했다.
글을 쓰는 일은 항상 일정한 치유의 목적을 갖는 것 같다.
*** 블로그에 들렀는데, *** 책을 읽지 않아서 쉽게 말하긴 그렇지만... 자뻑 스탈은 그게 학자 혹은 작가의 개성이라고 너그럽게 해석해도(?).. "놀고있네" 이런 자연스런(?)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책 하나 히트 시키면 이렇게 되는건가? 이런 속물적인 상상력이 마구 무럭무럭 자란다.
2-1.
억압에 대해 쓰려고 했다가 엉뚱한 글을 썼다. 글은 (적어도 나에겐) 치유의 목적을 갖는데... 그건 그 글이 나에게 내가
대화를 건네는 방식이고, 대화는 항상 치유의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이것도 원래 하고 싶었던 소리는 아닌데.. ㅡㅡ; )
2-2. 글쓰기는 일종의 억압에 대한 도발이자 탈주이며 그 자체로 다시 억압이다.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다.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다.
2-2-1. 그 억압에서 도망치고 싶은, 그 억압을 찢어버리고 싶은 욕망은 문법 속에 갇힌다. 어떤 막힌 욕망들, 감춰진 욕망들은 글을 통해 풀어질 기미가 안보이고, 그 끝에 남는 건 아주 원시적인 의성어..
가령, 아~~~~!!!! 이런 따위.
* 이런 글에 댓글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댓글창을 막을까 말까.. 생각해본다.













해바라기(우리영화)는 개념없는 조연(허이재)이 어떻게 영화를 말아 먹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두고 두고 반성적으로 회고되어야 마땅하다. 학예회를 해도 이것보단 낫겠다. 김래원 연기는 꽤 훌륭하다. 내일, 아니 오늘(2.13) 무비토크는 '배우가 망친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