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하고 있는 구글 웨이브에 관련 대화가 있어 생각을 정리할 겸 써본다. 

1. 익명성을 존중한다는 의미.
나는 익명성을 존중한다. 그리고 익명성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사람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행위에 있어 원칙이 되어야 한다. 익명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을 표현함에 있어, 실명을 쓰거나, 가명(필명/예명. 광의의 익명)을 쓰거나 또는 아예 무명(협의의 익명)을 고집하는 그 선택권을 마땅히 존중한다는 의미다. 즉, 인격적 존재자인 어떤 인간의 자율적 선택을, 그 자유를 존중한다는 의미다. 이것은 마땅히 그래야 하는 원칙인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영화잡지 프리미어의 한 좌담회에서 행인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그 비유가 나에겐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거리를 걸으며 주민등록증을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행인)

2. 예외로서의 실명성 : 권리와 의무의 공적 귀속 
앞서 이야기한 전제에서, 실명성은 그 실명성을 요구해야 할 구체적인 필요가 존재할 때만 아주 예외적으로 요구될 수 있을 뿐이다. 실명성이 요구되는 영역은 주로 국가의 공적 제도(금융실명제, 공시제도, 세금 따위를 생각해보자)와 연계한 (금전적) 계약 영역  혹은 구체적인 공적 책임이 행위자에게 귀속되어야 하는 영역 등이다. 그래서 이런 영역을 제외하고는 실명성을 강제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는 상대방의 선택권, 그 자유를 무시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사적인 관계, 상호간 실존의 흔적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실명성을 요청(강제가 아니다)하는 일은 '관습적 문화'의 문제가 된다. 하지만 그 밖의 영역에서 익명성은 당연한 원칙이다. 우리나라 인터넷 실명제가 바로 그런 선택의 자유를 어떤 구체적인 공익성에 대한 별다른 이론적, 과학적, 통계적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채 손쉽게 제한해 버리는, 그저 통제적인 관리 마인드로 행정 수월성, 형사처벌 편의성을 강조하는, 쉽게 말해 국민들을 예비 범죄자로 보는, 아주 몹쓸 제도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 제도를 지지한다면, 그건 나로선 참 기이한 일이다.

3. 블로거의 익명성(가명성)과 실명성, 그리고 실존성
블로깅이라는 영역, 주로 어떤 글을 써서 그것을 공개하고, 그 텍스트를 매개하여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 그 관계의 영역은 어떤 영역일까? 블로깅은 광의의 언론작용, 출판 행위이기 때문에 추상적인 차원에서 공적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이 영역에서 실명성이 반드시 필요하거나, 이를 강제할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표현 행위는 광의의 언론 작용이고, 공적 성질을 어느 정도는 띠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하나를 선택해서 그것만을 옳다고 말하거나, 혹은 어떤 하나를 상대적으로 선호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고, 좋거나 나쁜 것도 아니며, 내 선호에 따라 타인을 함부로 평가해서도 안되는, 그저 자유를 가진 인간의 선택에 속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익명성이라는 원칙과 실명성이라는 예외는 블로거에게도 마찬가지다. 익명성(가명성)을 유지하는 어떤 블로거도, 또는 실명성을 고집하는 어떤 블로거도 그것 자체로 평가되어서는 안된다. 나에겐 그런 차이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나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그 블로거의 실존성이기 때문이다(온라인 실존).

즉, 내 블로깅을 되돌아 보면, 그렇게 필넷 시절의 필벗들, 내 블로깅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게이터로그의 아거를 비롯한 블로거벗들을 돌아보면, 그들과 대화하며 조금씩 신뢰를 쌓고, 또 내밀한 우정을 키웠던 그 모든 과정에서, 해당 블로거들의 '개인정보 공개'는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개인 정보 공개는 (호감이든 아니든 간에) 편견의 요소로 작용했던 것 같다. 나에게 블로깅은 지속적인 대화(물론 이 대화에는 당연히, 마땅히 논쟁을 포한다. 그리고 그런 토론과 논쟁은 가장 중요한 대화다.)를 통해 관계의 구체성이 생겨나고, 공감의 폭이 넓어지며, 함께 뭔가를 소망할 수 있는 우정이 피어나는 여행일 뿐이다. 그 여행에서 우리는 그저 서로를 걱정하고, 위로와 격려를 나누며, 함께 모험을 꿈꾸는 길동무를 만날 뿐이다. 그네들의 개인 정보가 그 우정어린 모험에 무슨 그리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난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여정을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익명성이 조금씩 실명성을 드러내기도 했고, 좀더 구체적인 관계 자체의 실존성을 띠게 되었을 뿐이다.


보유. 표현의 자유와 책임 귀속 : 투명성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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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나란 인간은 대단한 속물이기 때문에, 해당 블로거들의 오프라인 개인 정보가 아주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내 스스로에 대한,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내 속물근성에 스며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한 교활한 거짓말일 수도 있겠다. 다만 의식의 차원에서나마 위 본문에는 단 한 단어의 거짓도 없다.

* 이전 관련글
구글의 인터넷 실명제 거부 : 실명제는 예외고, 익명성은 원칙이다.(09.4.10) http://minoci.net/802
인터넷 실명제 : 익명성이 예외라는 주장에 대해 (09.4.20)  http://minoci.net/819
유튜브와 인터넷실명제 : "패찰 안 달면 돌 못 줍는 나라" [by neo](09.4.15) http://minoci.net/813
: 모두 '구글 유튜브가 실명제를 거부한 사건과 관련한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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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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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뭘더 2010/01/17 09:02

    실명과 익명사이에서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같은 이유로 현재의 필명을 가졌습니다.
    좋은글 보고갑니다. 좋은 휴일 되시길..^^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1/17 11:46

      엑스파일 펜이셨나요? : )

  2. 김원철 2010/01/17 10:24

    개념글!

    "그런 의미에서 "당당하게 나를 밝히고 대화하는 형태"라거나 혹은 "모든 개인의 정보를 비공개하는 투명성 떨어지는 형태"라는 표현은 일견 합리적인 서술인 것처럼 보이지만, 당당함이나 정당성, 혹은 투명성과는 별로 실질적 인과를 맺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실명을 쓰면서도 인터넷 실명제는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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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1/17 11:48

      아이코, 감사.. ^ ^;
      나름 오랜만에 찾아주셔서 더 반갑네요.
      모쪼록 새해 운수대통하시길!

  3. 김원철 2010/01/17 12:07

    제가 댓글을 오랜만에 달아서 그렇지 RSS 구독은 꾸준히 합니다. 트위터로 민노씨 글 추천도 자주 하거든요. ^^; 블로그에 Disqus 설치하면 트위터로 링크 걸린 것도 모니터링해서 댓글처럼 달아주는데 함 써보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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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1/17 12:39

      그러셨근영. ㅎㅎ.

      디스커스..는 기능은 훌륭하지만, 독자들이 느끼는 수용 감수성이, 제가 독자일 때의 경험을 생각해보면 좀 위압적? 복합다단? 이런 느낌이라서... 아직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조언에는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 )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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