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실존 : 블로그의 마음

2007/06/04 12:05
#. 이 글은 [여기]있던 글을 지우고, 추고해서 옮겨온 글입니다.

0. 온라인은 그저 '가상' 공간으로 불리지만, '가짜' 공간은 아니다. 온라인을 가상공간이라 말할 때 마치 '가짜'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도 같은데, 가상 공간 따로, 현실 공간 따로 있는건 아니다. 그저 거기에도 '삶'이 있을 뿐이다.

1. 고전적인 시공간개념과 노동개념들은 새로운 시공간개념과 노동개념들을 담아내기에 부족하다. 쉽게 말해서 우표 붙이며 편지 쓰던 시절의 감수성으로 블로그를 접한다면 블로그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웹은 마치 '가짜'처럼 느껴지고, '비본질행위'로 쉽게 착각되기도 한다. 그런 고전적인 감수성에 의한다면, 오프에서의 생활과 공간과 시간은 진짜 생활이고, 웹, 특히나 블로그질 하는 생활과 공간과 시간은 가짜 생활이다. 난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2. 온라인 실존
블로그의 기술적인 설정들은 웹상에 새로운 존재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오프/온의 이분법적 경계들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간다. 그건 나만의 감수성인가? 나는 주로 블로그상 생활, 그 자기 실존의 구축에 대해 '온라인 실존'이라는 말을 쓴다. 이런 용어가 이미 있는 용어인지, 없는 용어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느끼고, 체험할 뿐이다. 새로운 체험은 거기에 부합하는 새로운 용어들을 만들어 왔다. 나에겐 온라인 실존이라는 조어는 내 몸과 마음이 느끼고, 감촉하는 그 새로운 체험에 대한, 거기에 부합하는 언어일 뿐이다.

그 온라인실존은 웹에서, 주로 블로그를 통해 생각하고, 교류하고, 싸우고, 투정부리고, 오해하고, 그리고 사랑한다. 그는 '가짜 실존'인가? 블로그는 온라인 실존이 머무는 '집'이다. 그 집은 때론 밀어를 나누는 물래방아가 되기도 하고, 때론 자기 전부를 건 전쟁터가 되기도 한다. 그 집은 서로가 배우는 교실이 되기도 하며, 또 거대한 연대의 대륙을 만들기도 한다.
감수성의 변화. 그건 체험으로 오고, 체험으로 올 수 밖에 없다. 몸(과 마음)으로 땡기는 게 없으면 그건 체험이 아니다.


3.

삶의 모든 것은 모두 본질적이며, 동시에 현상적이다. 그걸 구별할 수는 없다. 가짜 생활 / 진짜 생활이 있지 않고, 다만 삶이 있을 뿐이다.



p.s.
언젠가 어떤 블로거가 자신의 대문에 적었던 말.

"나는 블로깅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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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블로그는 자신을 담는 그릇.

    Tracked from 감성 일기 2008/10/19 16:48 del.

    그릇을 만드는 것은 흙이지만 그릇을 쓸모있게 만드는 것은 빈 공간이다. 노자의 말씀이다. 아무리 좋은 흙을 빚어 만들어진 그릇이라 할지라도 속이 비어 있지 않으면 쓸수가 없다. 반대로 속이 비었다고 할지라도 채워 넣을 것이 없다면 역시 무용지물이다. 블로그로 무엇을 이루고 싶은 사람이 많아 보인다. 대부분 속물근성의 음험하고 흉악한 손길이 뻗어 애드센스와 같은 문맥광고 수익의 푼돈 몇푼에 일희일비하거나, 유명 블로거의 완장으로 누릴 수 있는 입신양명..

  2. Subject : 인간을 블로깅을 하며 "초 언어인" 으로 재탄생된다

    Tracked from 리카르도의 선형적인 게슈탈트 2008/10/19 22:14 del.

    다큐멘터리에 자주 등장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들. 누구나 한번쯤은 시선을 줘봤을 법한 흥미로운 꺼리 이긴하지만, 그때마다 느끼는건 과연 인간이 어떻게 탄생한것인지에 대한 갈증은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는겁니다. 지구는 이미 인간의 발자국으로 가득차있습니다. 구석구석 인간의 살결이 닿지않은 곳은 거의 없죠. 인간이 있는곳, 그곳은 과거의 자취는 시간과 함꼐 사라져버리고, 지금 그리고 현재의 인간의 삶을 위해서 만들어진 환경만이 존재합니다. 먹고 사는것이..

  3. Subject : 데카르트는 틀렸다.

    Tracked from 리카르도의 선형적인 게슈탈트 2008/10/26 19:54 del.

    얼마전에 본 글을 다시한번 곱씹어보며 적어볼까 합니다. 전에 악플에 대한 글을 쓰면서 떠올랐던 온라인 상의 존재, 그것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민노씨님의 글도 참고하시면 좋을것같네요. 제가 놀랐던건,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것이었죠. 온라인상에선 블로그라는것 이야말로 "개인"이라는게 존재하게 해준다는것 말입니다. 나와 같은 생각, 그걸 발견한 순간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많이 아쉬웠습니다. 너무 뭔가 빠진듯한 기분을 지울수가 없었..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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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7/06/04 13:35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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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06/04 13:35

    저도 온라인은 가상, 오프라인은 실제의 삶이라는 공식은 진부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온라인은 진실, 오프라인은 가면이 아닐까요? 온라인은 이드, 오프라인은 초자아가 지배하는 삶?
    그렇다면 온라인+오프라인=개인의 총체적 인격 내지 삶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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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6/04 15:17

      오프라인은 초자아가 좀더 강하게 발현되기도 하지만.. 그 반대이기도 한 것 같고.. ^ ^;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조화로운 균형이 총체적인 인격의 모습이라는 말씀에는 공감하게 되네요. 그 양자가 서로 따로 따로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 )

  3. 마로 2007/06/04 14:56

    자본 중심의 물질 사회에서 개개의 자아를 실현하기 힘든 오프라인이 존재한다면,
    블로그 등의 온라인이 가져다 주는 ... 자발적 생산성은...
    현실에서 폭발할 수 없는 '욕망' '희망'들을 내뿜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지 않나생각되요...
    자본이 그 공간을 잠식하고 있어..걱정은 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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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6/04 15:22

      자본권력은 블로깅의 자율성에 대한 큰 위해 요소로 잠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본권력, 특히 거대포털의 지배력, 구글 애드센스, 다음 애드클릭스 등이 부추기는 불필요한 콘텐츠들의 양산.. 기존 전통 미디어들의 편협한 권위의식 따위들은 부정적인 요소겠죠.

      다만 그것들이 항상 부정적인 것은 아니고, 거기에도 가능성이나 긍정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거기에 긍정성을 좀더 도드라지게 표현해내고, 구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요. ^ ^

  4. 커리어블로그 2007/06/04 16:29

    전 온라인은 일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차에 따라 비중도 제각가일테구요~ 물론 순수하게 자신의 열정을 담아내는 경우도 있지만 보는이도 없고 알아주는이도 없다면 그게 언제까지 존재할까요? 포스트를 보고 생각나는데로 제 생각을 몇자 적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니 오해하지 말아 주시구요 ㅎㅎ
    그리고 커리어블로그 추천포스트(랜덤)로 등록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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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6/04 19:26

      생각이야 저마다 다를 수 있는데요, 뭐. : )
      그 차이가 즐거운 대화의 바탕이 된다면 더 좋겠네요.
      논평 고맙습니다.

  5. 히치하이커 2007/06/04 20:40

    아직은 시작이라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종국에는 굳이 오프라인(현실 세계?)과 온라인(가상세계?)을 나눌 필요도 없지 않을까 합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단지 하나의 실체의 다른 면이 아닐까 싶어서요.
    그런데 "나는 블로깅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Blogging, ergo sum인가요.
    냐하하하~~ (안 웃기죠 ㅜ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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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6/04 23:44

      오, 하이커님 오랜만입니다. ^ ^
      너무 반갑네요.
      저도 자주 찾아뵈야 하는데 말이죠..
      동전의 양면.. 크게 공감합니다.

      p.s.
      데카르트가 우리 시대에 살았다면 분명히 블로깅했을 것 같습니다. : )

  6. 가즈랑 2007/06/04 22:46

    오프라인을 넘어서는 글쓰기가 과연 가능할까요.(한두번이면 모르지만, 꾸준한 글쓰기에서 말이죠.) 저도 온라인에 나타나는 모습 모두 실제 삶의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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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6/04 23:45

      저도 어느 정도 이상의 시간적 지속을 요하는 행위, 특히나 자기 실존이 가장 많은 영역에서 투사되는 '글쓰기'의 영역에서는 그 분리가 불가능하지 않나 싶기는 해요. : )

  7. 그만 2007/06/05 16:07

    드디어 우린 블로그에서 철학을 발견하고 있는건가요.. 그런가요? ^^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포스트군요. 제 나름 생각했던 글을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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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6/07 01:46

      그만님께서 인상적으로 읽어주셔다니 기분이 좋습니다만... ^ ^;; 좀 과한 격려신 것 같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더 추고하고, 좀더 보충하고, 다듬어서 등록할 걸 그랬네요. 말씀 고맙습니다. : )

  8. 미고자라드 2007/06/06 03:18

    어떤 심리학자는 우리가 엿보길 원하는 욕구가 있듯이, 반대로 내보이길 원하는 욕구도 있다고 합니다. 온라인에서 내가 만든 나의 이미지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 오프라인과는 다른 내가 내보이길 원하는 이미지이죠.

    물론 이건 순전히 온라인상에서만 활동할 때이고, 일단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접목(오프라인 모임에도 나가고 ^^)되면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로만 '꾸밀'수가 없겠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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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6/07 01:48

      블로그란 일종의 대화에 관한 '게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게임은 자신의 의지대로 진행되는 게임이 아니라, 다른 실존의 적극적인 투사들, 항전들로 이뤄지는 게임이라서.. ㅎㅎ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로만 '꾸미'"기란 굉장히 힘들겠다 싶어요. 그게 블로깅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

  9. Asuka_Feanaro 2007/06/06 11:59

    저도 오프라인만큼이나 온라인을 중요시합니다. 윗분이 말씀하셨듯이, 오프라인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타의적인 정체성이 유입되어 있지만 온라인에서는 순수하게 자의적인 정체성을 가질 수 있어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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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6/07 01:50

      그런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온/오프의 특징적인 모습들조차도 서로 역전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너무도 많은 변수가 있고, 또 그 실체에 영향을 주는 다채로운 환경들이 있어서.. ^ ^;;

      다만 말씀처럼 자기의지적 자아가 좀더 강조되는 영역은 아무래도 '블로그상의 자아'겠다 싶기는 해요. : )

  10. 비트손 2008/10/19 22:09

    아주 오래전부터 두고 두고 읽어 온 글이지만 언제 읽더라도 마음을 추스리기 좋은 글인것 같아요.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고쳐
    쓰고 트랙백 걸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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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0/20 00:14

      부족하고, 거친 글을 이렇게 두고 두고 읽어주시니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 )

  11. 리카르도 2008/10/19 22:15

    이런.. 오타난 제목이 트랙백 걸렸군요.. 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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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0/20 00:15

      다시 거실 수 있도록 삭제할까요? ^ ^;

  12. Playing 2008/11/02 10:39

    안녕하세요 ~ 처음으로 인사드리네요
    본문의 글 잘 봤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오프라인에서 풀지 못하는 감정과 욕구를, 온라인에서 마음껏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 뿐이죠"

    심리학에서 잠시 다룬 것에 바탕을 둔 우둔한 학생의 짧은 생각이지만 조금 아쉽습니다
    현재 인터넷에서 지켜야 하는 에티켓은 물론 기본적인 감정과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는 것을
    당연히 온라인에서 그리해도 된다고 믿고, 그런 믿음을 사실로 알며 정당화시키는 분들이 많아지는 거 같네요

    하루 빨리 기본적인 에티켓과 언급하신 '삶'의 한 방법인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간격이 좁혀지길 바랍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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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마법사 2010/10/11 17:11

    오랜만이예요. ^^
    요즘 블로그질이 뜸하다 보니 뜨끔... ㅋㅋ 한 걸요.
    블로그의 마법사와
    트위터의 마법사와
    미투데이의 마법사와
    페이스북의 마법사는
    닮은 듯 다르고
    그들은 또한 오프라인의 마법사와 다른 듯 닮았죠.
    그 모든 게 저이고...
    저는 지금도 여전히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는 블로그에서 트위터에서 미투에서 페북에서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고...

    뭔 소리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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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10/11 17:32

      앗, 정말 오랜만입니다. :)
      최근 오랜만에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정말 컴플렉스 덩어리인데 말이죠.

      아참, 이제 새 그림 올릴 때 되지 않았나요? ^ ^

      추.
      하나만 더!
      인터넷 주인찾기 컨퍼런스 안오시나요?
      http://twtmt.com/cards/4478
      꼭 오셨으면 좋겠습니당!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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