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터넷 한겨레에서
블로그 서비스를 시작한다.
그게 바로 이거다.
필진.
오늘 가입했다, 난.
2.
블로그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종이신문의 퇴조를 가속화한다, 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마도'라는 단서를 붙인다면 그 종이신문의 퇴조는 예상가능하다. 컴퓨터 단말기 화면이 가지는 차가운 질감과 만질 수 없음에 대한 감촉의 결핍감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담는 수단들, 흔히 매체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한 물리적인 감수성의 질감과 차원은 점차 빠르게 바뀌어 간다.
종이신문의 대척점에서 서서 종이신문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했던, 그리하여 새로운 매체혁명을 진두지휘했던 최초의 혁명군이 라디오였다면, 텔리비전의 등장은 그 소리의 혁명에 비주얼이라는 더욱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였고, 지금 또 차원으로의 혁명을 이끌고 있는 인터넷은 블로그의 등장을 가능케 했다.
3.
종이신문이 갖는 최대 장점은 손으로 감촉할 수 있고, 그것을 펼쳐볼 수 있으며, 그것을 구겨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감촉의 세계가 지니는 매력은 그 안에 담겨 있는 정보에 대한 호불호와 연동하여 그것을 살며시 펴고 애정어린 눈길로 바라보기도 하며, 때론 불붙은 심장으로 그 종이를 모두 태워버릴 듯이 구겨버리고, 던져버릴 수 있다는 매력이다. 그건 쉽게 말해서 인간적이다. 그 매력은 인터넷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개인용 컴퓨터의 차가운 단말기 화면 위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감촉이며, 질감이다.
4.
종이신문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궁극적으로 종이신문은 제한적인 영역에서 그 생존을 이어갈 것이다. 종이신문의 매력을 무력화시키는 인터넷 매체의 잠재적 파괴력이 드디어 그 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형식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단계에서는 그 형태는 블로그다. 일인 미디어로서 블로그가 갖는 매력은 나르시즘이다. 정보와 논평, 그러니 흔히 말하는 신문 기사들을 스스로 작성하며, 불특정의 다수가 자신의 잠재적 독자이며, 스스로가 타인의 독자가 되는 구조를 블로그는 구현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스스로 작성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아이템을 설정하고, 테마를 정하고, 기사를 만든다. 그 소스는 인터넷 그 자체다. 인터넷 안에서 자기의 외면적 자아를 형성하고, 창조하고, 다듬는다. 그건 종이신문의 한정된 독자투고란의 해방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쾌락이며 즐거움이다. 그러니 종이신문이 갖는 감촉의 세계와 블로그가 갖는 나르시즘의 세계가 서로 충돌한다면, 서로의 매력을 뽐내며 경쟁한다면, 그 승부는 이미 결정났다. 블로그의 완승이 예견되는 거다.
5.
그런데 양자의 영역다툼이나 경쟁이 당연하게 예정된 것은 아니다. 나로선 종이신문이 엠피3파일이라는 강력한 매체의 등장으로 인하여 소멸하다시피한 시디형태의 음반의 운명을 뒤 따를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아마도라는 단서를 다시 붙이고 편하게 예상한다면, 종이신문이 시디의 운명을 뒤따를 것 같지는 않다. 시디는 멀지 않은 미래에 소멸할 형태의 매체라고 생각하니까. 종이신문의 운명은 아마도 LP의 운명을 따르지 않을까 싶은거다. 물론 지금의 LP메니아들보다는 좀더 광범위한 독자를 갖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블로그와 종이신문은 외면적으론 경쟁하지만, 내부적으론 상호보완하는 관계가 정립되지 않을까 싶다.
좀더 전문성을 추구하는 정보메니아, 혹은 감수성의 차원에서 종이신문의 질감에 애착하는 독자들은 종이신문에게 좀더 강력한 '전문성'을 요구할 것임이 분명하고, 종이신문은 자신의 이복형제이자, 블로그의 어머니인 인터넷신문과는 다른 형태의 전문성을 종이신문에서 구현해야 할 것이다.
거기엔 경제논리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종이신문은 그 독자가 구독료를 지불해야 하니까. 그건 인터넷 신문이 그 독자수에 비례하여 이윤을 창출하는 광고수입과는 다른 차원의 요구들을 종이신문에 요구할 것임을 의미한다. 소수화된 정보메니아들은 인터넷을 통해 받아보는 정보보다는 좀더 고급한 정보에의 욕구를 종이신문에 표시할테고, 그런 요구에 의해 좀더 분명한 당파성을 표시하는 종이신문들이 제작될 것이다.
한겨레의 중단없는 전진을 바란다.
~~~~~
위 글은 내가 필넷에 처음 가입한 날 등록한 포스트다.
그게 2005년 11월 03일이다.
새벽 알바 마치고, 피시방에서 필진에 가입하고 즉흥적으로 쓴 글이다.
추고를 할까 했지만, 왠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너무 뻔한 내용이라서, 지금 다시 읽으니 좀 민망한 기분마저 든다.
필넷 '안'에서의 내 나름의 실험을 '잠정적으로' 중단한다.
물론 필진들과의 교류는 앞으로도 계속 할 생각이고, 또 그렇게 희망한다.
앞으로도 한겨레와 필넷을 응원할테지만,
그 안에서 포스팅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필넷이 블로고스피어를 대표하는 진보적 시민, 진보적 지식인의 '온라인 근거지'가 되기를 나는 희망했지만, 그래서 미래의 한겨레 미디어를 견인할 수 있는 핵심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기를 몹시도 바랬지만, 지금으로선, 그건 꿈꿀 수는 있지만, 감촉할 수 없는, 저 멀리 있는 낯선 풍경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겨레의 중단없는 전진을
필진 네트워크의 중단없는 전진을
진심으로 바라는 바다.
트랙백
트랙백 주소 :: http://minoci.net/trackback/24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여기군요 (웃음) 이제 이곳에 종종 들르지요.
그럼 기운내시길 바라면서...
전 총총총...
괄호 안의 (웃음) 이거 재밌는데요.
고맙습니다.
: )
아, 안타깝네요. 장소도 중요하지만 여기서도 충분히 잘하실겁니다! 힘내세요~
너바님 덕분에 잼있는 채팅성 코멘트 서비스(?) 해봤네요.
종종 들어가서 얘기나누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자주 가게 될 것 같지는 않은.. ^ ^;;
p.s.
그런데 http://hypertext.tistory.com/23
이 글 읽어보니 정말 악질적인 '표절'이 있었더군요.
이따가 논의 확산에 조금이나마 일조하고자 포스팅할 생각입니다.
: )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고맙습니다.
그 현실의 역학, 구조적 위선의 가공할만한 압박을 상상해보니..
정말 짜증 이빠이 상승하네요. - -;;
하지만 말씀하셨듯이 그런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리브리스님의 의견이 존중되어야겠죠. 제가 너무 성급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다만 리브리스님께서 '공개적으로' 포스팅하신 취지를 '추정'한다면, 이런 관행에 '본격적으로 항의'하겠다는 의미로 읽히기도 하는데요. 딱히 책을 쓰신 분들이 리브리스님과 '직접' 엉켜있지 않다면, 같은 필드에 계신 분들이라도.. ^ ^; 크게 문제되지는 않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이 놈의 현실이 참 원망스럽습니다. ㅡ..ㅡ;;
p.s.
나중에 검색방법 좀 알려주세요. ㅎ.
어떤 키워드를 사용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저도 나름으론 찾는 건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 )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쓴 글이라지만 아주 강한 힘이 있는 것 같네요. 잘 되시길 바라며..
혜민아빠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찾아주셔 격려해주시니 반갑고, 고맙습니다.
: )
사이버 탐정님 /
탐정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해당글에 갔는데요. 리브리스님은 아무런 반응 없던걸요?
메일로 연락하셨나요?
p.s.
1. 댓글에 댓글달기는 어떻게 하는건가요? ㅎ
2. 일단 이 사안은 묵혀둬야겠네요. - -;
1. 댓글에 있는 댓글쓰기를 누르고 답한 글은 해당 댓글의 맨 아래에 붙는 구조입니다.
2. 메일은 안 보냈습니다. 보시고 결정하시겠죠. 저도 일단 묵혀둘 생각입니다.
역시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댓글 설명은 고맙습니다.
탐정님 : )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역시나 '공적 정의' 보다는 '당사자의 선택'이 우선되어야 하는 사안인 것 같습니다. 권리의 성격도 그렇구요. 이런 것들 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좀 씁쓸하긴 합니다. -..ㅡ;;
볼펜이 나왔을 때에도 모두들 연필의 시대가 끝났다고 장담했고, 전자북을 보고는 두터운 책에게 미래는 없다고 떠벌렸지만 지금도 이 모든 것들이 그대로 존재하며 오히려 더 발전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종이신문 역시 그럴 것이라는 예언(?)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볼펜과 책이 그러했듯이 종이신문 역시도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역할에 충실했을 때에만 그런 값진 결과를 얻을 수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금의 블로고스피어는 과연 어찌될지 기대가 되는게 사실이네요. 민노씨가 지난 2005년의 첫 포스트를 떠올리며 이 글을 적으신 것처럼, 분명히 그때에도 누군가 지금을 기억하며 미래를 걱정하며 지난날을 추억하고 있을까요? :)
종이신문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예외적 전망을 아직 갖고 계시군요. ^ ^; 저도 물론 종이신문의 미래에 대해선, 현재의 지배적인 의견이 그대로 실현가능할는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다만 한국의 종이신문 저널리즘을 생각한다면, 종이신문에 그다지 큰 기대를 할 수 없다는 것도 이제는 점점더 자명해지는 것 같아요.
p.s.
필넷의 공적인 운영 정책에 항의하는 의미로 거기에 있던 글들을 옮겨올 수 있는 건 옮겨오고 있어요. 좀더 구체적으로는 '잡.보.지 글방 폐쇄 사건'을 통해 드러난 (표시된 바에 한정하자면) 권위주의와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폐쇄저인 의사수렴 구조, 그리고 그 무기력에 좀 크게 실망해서.. 일년 반 정도의 '나름의 실험'을 '그 안에' 진행하는 것은 잠정적으로 중단하려고 합니다.
이사추카함다 ㅋㅋㅋ :D
이곳도 마찬가지로 번창하시길
글고 그러길 잘햇다고 결론내리게 되시길.... :)
노네님 첫 댓글 담아주셨네요. ^ ^
솔직히 필넷에서 글쓰고 싶어서 좀 손가락이 간질간질합니다. ㅡ.ㅜ;
좀 참고 있어요.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데..
뭐, 결정된 건 없죠. ^ ^
첫시작도 멋지게 하셨었군요. 전 그냥 Start.. 쓰고 말았던거 같은데.
:)
종이냄새나고 아날로그적인 종이매체를 좋아했었는데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과연 사람냄새나고 사실적인것들인가에 대해서는 물음표상태입니다
멋지다니.. ^ ^;
과찬이십니다.
그냥 즉흥적으로 쓴 추상적인 전망에 불과하고, 또 그닥 독창성도 없어 보이네요. 지금 읽으니. 과도한 수사도 좀 민망한 기분 들고 말이죠.
저 역시 종이든, 포탈이든.. 저널리즘으로 불릴만한 '관점과 시각'이 존재하는지 의문입니다. 그냥 이익집단에 불과한 '원칙없는 당파성' 혹은 '장사속'만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앗. L 왔고만.
자주 오기요.
그런데 페이지 그렇게 늦게 열려?
내가 들어올 땐 그렇게 늦지는 않는데. ^ ^;
대충 1, 2초 내외.
민노씨,이거 휴지나 세제라도 사왔어야 하는데....
민노씨의 글은 계속됩니다....^^
행지형님 오셨고만요. ^ ^
고맙습니다.
저도 당분간은 좀 딴생각 하려구요.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