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넋두리입니다.
이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글은..
그러니까 순전히 절 위한 글입니다.
죄송합니다.
외로우니까 그러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결핍이 없다면,
그래서 바람이 없다면,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다면...
저는 글을 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스스로가 온전하게 따뜻하고, 행복하면, 글쓸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때론 논쟁을 합니다.
논쟁은 의견과 주장, 그리고 그것을 지지하는 논리와 근거로써 서로 물어뜯고, 또 죽일듯이 달려들어서 인정사정 보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중권씨 이거 참 잘합니다.
저는 진중권씨 이런 논쟁 태도 참 좋아합니다.
그게 그래도 되는 건 그게 상대방을 죽이는게 아니라,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상대방이 미워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애정을 베푸는 또 다른 방식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렇게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즐겁게 대화하는 '또 다른 방식'일 뿐입니다.
그렇게함으로써 참여자와 관객들 모두에게 인식의 지평을 조금은 더 넓혀주는 일.
그게 논쟁입니다.
그렇더라도 논쟁만을 위한 논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논쟁의 목적론적인 이상은 논리적인 우열를 가리기 위한 게임이 아닙니다.
아니, 아니어야 합니다.
논쟁이 서로 마음에도 없는 덕담이나 나누는 맞선의 가식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논쟁의 몸뚱아리가 향해야 하는 그 '길'을 말하는 겁니다.
키에슬롭스키에게 물었습니다.
= 당신은 영화가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영화는 머리와 가슴, 그 모두를 따뜻하게 해주어야 한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그래서 저는 좋습니다.
그건 머리와 가슴 모두 따뜻하게 해주는 책이에요.
그 책에는 '로맨틱한 우정'과 '사랑'에 관한 단상들이 있습니다.
그건 제 가슴과 머리를 모두 따뜻하게 해줍니다.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만 따뜻하게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가슴을 따뜻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논쟁하는 논리기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이잖아요.
때로는 자신의 부족한 지식을 과시하고 싶습니다.
저는 쥐뿔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입니다.
저는 그걸 잘 압니다.
그런데도 그 쥐뿔보다 작고 볼품없는 지식을 펼쳐놓고, 늘어놓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시장통 장사꾼처럼 호객행위를 합니다.
비판한답시고 노출증 환자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이런 저런 잡문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제가 부끄럽고, 짜증나기도 여러번입니다.
그 부끄러움과 짜증이 나르시시즘과 겹치기도 여러번입니다.
그렇더라도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해 저 나름으로는 애썼습니다.
제 무식을 반성으로 채우고, 그것을 견디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것이 언어로, 글로 표현되지 않았다면, 그게 제 한계이고, 또 제 넘치는 부족함입니다.
글에 제 목소리, 눈동자, 표정을 느낄 수 없었다면, 제가 그런 놈이라서 그런겁니다.
그렇더라도...
가끔씩은 아쉽고, 억울한 마음도 들어요.
하지만 제 글 때문에 불쾌하셨던,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제 글 때문에 소모하셨던,
제가 아는, 그리고 알지 못하는 많은 분들과 비교한다면, 저는 그다지 억울할 것도 없겠죠.
정말 죄송합니다.
물론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속으로 화가 나기도 합니다.
제가 그런 놈입니다.
김현을 저는 참 좋아하는데요.
김현이 했던 그 무수한 말들 중에서 이런 말이 있는데요.
이말이 전 제일 좋습니다.
싸워야 하는 순간,
희생해야 하는 순간,
그 순간들을 구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항상 그 타이밍은 엇박으로 제 우울한 블로깅을 더 우울하게 하는 것 같아요.
서로 '이해'하기 위해...
서로 '대화'하기 위해...
외롭고 쓸쓸하니까...
'함께' 의미있게, 따뜻하게 살고 싶어서 우리는 논쟁을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 부족함이 너무도 넘쳐서..
제 스스로가 너무도 한심스럽게 느껴집니다.
좀 힘이 들고, 나는 왜 블로깅을 하나.. 싶기도 하네요.
넋두리가 너무 길어졌네요.
황지우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이 말도 제가 참 좋아하는 말입니다.
문득 문득 저에게 힘을 주는 말이죠.
p.s.
인용한 문장들은 제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라서 그 원문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지루한 넋두리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에 혹 댓글이 있다면 고마운 일이겠지만..
이에 대한 제 답글은 없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이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글은..
그러니까 순전히 절 위한 글입니다.
죄송합니다.
논쟁의 몸과 증오의 뿌리
... 우리는 왜 싸우는걸까?
... 우리는 왜 싸우는걸까?
외로우니까 그러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결핍이 없다면,
그래서 바람이 없다면,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다면...
저는 글을 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스스로가 온전하게 따뜻하고, 행복하면, 글쓸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때론 논쟁을 합니다.
논쟁은 의견과 주장, 그리고 그것을 지지하는 논리와 근거로써 서로 물어뜯고, 또 죽일듯이 달려들어서 인정사정 보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중권씨 이거 참 잘합니다.
저는 진중권씨 이런 논쟁 태도 참 좋아합니다.
그게 그래도 되는 건 그게 상대방을 죽이는게 아니라,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상대방이 미워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애정을 베푸는 또 다른 방식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렇게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즐겁게 대화하는 '또 다른 방식'일 뿐입니다.
그렇게함으로써 참여자와 관객들 모두에게 인식의 지평을 조금은 더 넓혀주는 일.
그게 논쟁입니다.
그렇더라도 논쟁만을 위한 논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논쟁의 목적론적인 이상은 논리적인 우열를 가리기 위한 게임이 아닙니다.
아니, 아니어야 합니다.
논쟁이 서로 마음에도 없는 덕담이나 나누는 맞선의 가식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논쟁의 몸뚱아리가 향해야 하는 그 '길'을 말하는 겁니다.
키에슬롭스키에게 물었습니다.
= 당신은 영화가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영화는 머리와 가슴, 그 모두를 따뜻하게 해주어야 한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그래서 저는 좋습니다.
그건 머리와 가슴 모두 따뜻하게 해주는 책이에요.
그 책에는 '로맨틱한 우정'과 '사랑'에 관한 단상들이 있습니다.
그건 제 가슴과 머리를 모두 따뜻하게 해줍니다.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만 따뜻하게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가슴을 따뜻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논쟁하는 논리기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이잖아요.
때로는 자신의 부족한 지식을 과시하고 싶습니다.
저는 쥐뿔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입니다.
저는 그걸 잘 압니다.
그런데도 그 쥐뿔보다 작고 볼품없는 지식을 펼쳐놓고, 늘어놓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시장통 장사꾼처럼 호객행위를 합니다.
비판한답시고 노출증 환자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이런 저런 잡문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제가 부끄럽고, 짜증나기도 여러번입니다.
그 부끄러움과 짜증이 나르시시즘과 겹치기도 여러번입니다.
그렇더라도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해 저 나름으로는 애썼습니다.
제 무식을 반성으로 채우고, 그것을 견디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것이 언어로, 글로 표현되지 않았다면, 그게 제 한계이고, 또 제 넘치는 부족함입니다.
글에 제 목소리, 눈동자, 표정을 느낄 수 없었다면, 제가 그런 놈이라서 그런겁니다.
그렇더라도...
가끔씩은 아쉽고, 억울한 마음도 들어요.
하지만 제 글 때문에 불쾌하셨던,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제 글 때문에 소모하셨던,
제가 아는, 그리고 알지 못하는 많은 분들과 비교한다면, 저는 그다지 억울할 것도 없겠죠.
정말 죄송합니다.
물론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속으로 화가 나기도 합니다.
제가 그런 놈입니다.
김현을 저는 참 좋아하는데요.
김현이 했던 그 무수한 말들 중에서 이런 말이 있는데요.
이말이 전 제일 좋습니다.
"스스로 옳다고 믿지 못하면 싸울 수 없고,
스스로 틀렸다고 생각하지 못하면 희생할 수 없다"
싸워야 하는 순간,
희생해야 하는 순간,
그 순간들을 구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항상 그 타이밍은 엇박으로 제 우울한 블로깅을 더 우울하게 하는 것 같아요.
서로 '이해'하기 위해...
서로 '대화'하기 위해...
외롭고 쓸쓸하니까...
'함께' 의미있게, 따뜻하게 살고 싶어서 우리는 논쟁을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 부족함이 너무도 넘쳐서..
제 스스로가 너무도 한심스럽게 느껴집니다.
좀 힘이 들고, 나는 왜 블로깅을 하나.. 싶기도 하네요.
넋두리가 너무 길어졌네요.
황지우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이 말도 제가 참 좋아하는 말입니다.
문득 문득 저에게 힘을 주는 말이죠.
"실현 불가능한 이 증오가 실현가능한 사랑이 될 때까지... "
p.s.
인용한 문장들은 제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라서 그 원문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지루한 넋두리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에 혹 댓글이 있다면 고마운 일이겠지만..
이에 대한 제 답글은 없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