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썼던 글을 보관 차원에서 이동합니다. 글 부피를 줄이는 방향에서 추고합니다.
좀 노골적으로 말하자.
가령 과거 북핵사태와 관련한 민노당의 어수선함, 그 우왕좌왕을 평범한 일반시민들이 어떻게 바라볼까? '아직도 저런 이론타령인가..' 일 것으로 나는 판단한다. 솔직히 다수 평범한 시민들이 그 이론을 '학습'한다고 해서, 그 사회에 관한 태도나 정치적인 관점을 바꿀 것 같지도 않다. 물론 공부할 생각도 없겠지만. 재밌는 드라마 보기도 바빠죽겠는데 재미 하나 없는 이념 학습, 정치 학습에 관심이 생길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직도 NL과 PD가 의미있나를 생각해보면..
나로선 회의적이다.
이는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의 '지적유희'에 가깝지 않나 싶은거다. 거기에 공감하는 '시민, 민중, 대중'이 그다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 논의에 시민들이 대중들이 참여할 수 없다면, 그게 어떤 의미인가? 어떤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가? 관념적인 유희, 과거에 대한 향수, 교조주의적 관성에 젖은 자동반복적인 패턴에 불과하지는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나는 '게임' '영화' '미디어' 등 소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관한 논의야 말로 21세기적인 사구체논쟁의 중심에 선 하위 주제들이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 삶에 피부처럼 와닿아 있는 문제들이고, 이런 것들을 매개로 해야만 그 실천적인 방법론 차원에서 좀더 큰 효용을 갖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라고 불리는 많은 오피니언 리더들의 상당수가 '주사파'가 갖는 그 상황 상황마다의 '선택'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인 인식을 갖고 있고, 그렇게 발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과거(?) 민주노동당 안의 NL, 특히 주사파에 대한 비판은 상당한 수준이었다고 안다.
그 비판은 주사파가 갖는 논리적인 정당성에 대한 학술적 고민의 소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사파가 갖는 '맹목적 교조주의'가 '진보세력'의 외연을 '좁히는' 쪽으로 기능한다는 현실적인 안타까움, 현실적인 정세판단이 그 비판이 갖는 핵심이라고 나는 본다. 현실적 고민과 동떨어진 '소아적 당파성에 함몰된 관념적인 고민'이라는 거지.
쉽게 생각하자.
어떤 사회 변혁도 소수의 당파적 순결성만으로 성취될 수 없다. 시민과 대중(이 양자의 성격은 분리되어 고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이 함께 할 때 가능한 것이라는 그 자명한 이치를 생각해본다면, 극단적인 이론적 순결성, 그 교조주의적인
운동형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Goya
가령 과거 북핵사태와 관련한 민노당의 어수선함, 그 우왕좌왕을 평범한 일반시민들이 어떻게 바라볼까? '아직도 저런 이론타령인가..' 일 것으로 나는 판단한다. 솔직히 다수 평범한 시민들이 그 이론을 '학습'한다고 해서, 그 사회에 관한 태도나 정치적인 관점을 바꿀 것 같지도 않다. 물론 공부할 생각도 없겠지만. 재밌는 드라마 보기도 바빠죽겠는데 재미 하나 없는 이념 학습, 정치 학습에 관심이 생길까?
80년대 소위 '사구체논쟁'(*주 : 한국사회 정체성 논의. NL 민족민주반봉건. 남한의 특수한 역사성을 강조한 입장 / PD 민중민주반독재. 계급투쟁 관점을 강조한 입장. 그 다수설로서의 결론은 소위 '신식국독자', 즉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 라고 얼핏 기억한다)은 정말 큰 의미가 있었던 논의였고, 이를 통해 많은 청년들이, 시민들이 사회비판적 안목을 갖출 수 있었다고 본다. 인정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직도 NL과 PD가 의미있나를 생각해보면..
나로선 회의적이다.
이는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의 '지적유희'에 가깝지 않나 싶은거다. 거기에 공감하는 '시민, 민중, 대중'이 그다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 논의에 시민들이 대중들이 참여할 수 없다면, 그게 어떤 의미인가? 어떤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가? 관념적인 유희, 과거에 대한 향수, 교조주의적 관성에 젖은 자동반복적인 패턴에 불과하지는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나는 '게임' '영화' '미디어' 등 소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관한 논의야 말로 21세기적인 사구체논쟁의 중심에 선 하위 주제들이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 삶에 피부처럼 와닿아 있는 문제들이고, 이런 것들을 매개로 해야만 그 실천적인 방법론 차원에서 좀더 큰 효용을 갖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게 삶이란
약지 손가락에서 간신히 반짝이는
작은 다이아몬드를 지키기위해
매달 부어야하는 상환원리금이다.
- 겨울종소리, '삶이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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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아점
안수찬, 21세기적 ‘사회구성체’ 논쟁 불지핀다 (2005. 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