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 방문후기 : 서 버린 수레바퀴

2009/06/26 02:04
쓰다가 지우고, 쓰다가 지우고...
그렇게 다 쓰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문득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그렇게 있었다.
그런데 메모장에 아무리 쓰고 지우고, 쓰고 지워도 채워지지 않더라.

지난 6월 15일 6.15 공동선언 9주년 되던 날에 봉하에 다녀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6.15 9주년 특별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 ] 나는 오랜 정치 경험으로, 감각으로, 만일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현재와 같은 길로 나간다면 국민도 불행하고, 이명박 정부도 불행하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리면서, 이명박 대통령께서 큰 결단 내리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도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제가, 마음으로부터, 피맺힌 심정으로 말씀드립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여러분! 독재재가 칼날을 휘두르면서 광주서 백 수십명 죽이고, 인혁당 죽이고,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 우리는 결코 그 분들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 할 일을 다 해야 합니다. 행동하는 양심, 행동할 때, 누구든지 사람은 마음 속에 양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행동하면, 그것이 옳은줄 알면서도 무서우니까, 손해보니까, 시끄러우니까, 이렇게 해서 양심을 잠재워 버리거나, 도피해버립니다. 그런 국민의 태도 때문에 이 의롭게 싸운 사람들이 죄 없이 이 세상을 뜨고 여러 가지 수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 의롭게 싸운 사람들이 이룩한 민주주의는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이 과연 우리의 양심에 합당한 일인가,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만일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고초를 겪을 때 500만명 문상객 중 10분지 1인 50만명이라도, 그럴 수가 없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 이런 예우를 할 수가 없다, 매일 같이 신문에 혐의 흘리면서 정신적 타격을 주고, 스트레스 주고, 이렇게 할 수가 없다, 50만명만 그렇게 나섰어도 노 전 대통령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얼마나 억울하고, 얼마나 이 희생자들에 대해 가슴 아프겠습니까.

나는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자유로운 나라가 되려면 양심을 지키십시오. 우리가 진정 평화롭게 정의롭게 사는 나라가 되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돼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이고, 그리고 독재자에 고개를 숙이고, 그 쪽에서 아부하고 벼슬하고 이런 것은 말할 수가(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자유로운 민주주의, 정의로운 경제, 남북간 화해 협력을 이룩하는 모든 조건은 우리가 마음에 있는 양심의 소리에 순종해서, 그렇게 해서 온 국민들이 바른 생각도 갖고, 표현이나 행동해야 합니다. 선거 때는 나쁜 정당 말고 좋은 정당 투표해야 하고, 여론조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4700만 우리 국민이 모두 그러한 양심을 갖고 서로 충고하고 서로 비판하고 서로 격려한다면 어디서 이 땅에 독재가 다시 일어나고, 어디서 소수 사람들만 영화를 누리고,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이 역사상 최고로 빈부격차가 있는 이런 사회가 되겠습니까.[....]

- 김대중 대통령, 6.15 9주년 특별연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오마이뉴스. 2009.6.11) 연설 동영상을 참조해서 발췌 (오마이가 정리한 연설문은 다소 부정확한 부분이 없지 않다. 가급적 김대중 대통령의 직접적인 육성을 반영)

그날 봉하마을의 풍경을 내 손전화 사진기에 흐릿하게나마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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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 입구의 임시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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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입구 부근 전봇대에 붙여진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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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온 한 시민께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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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원으로 오르는 등산로에서 바라본 봉하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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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실험하려고 했던 오리농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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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길을 가로지르는 수로에 떠있는 아름다운 이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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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사이를 헤엄치는 오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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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에서 조문하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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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비워진 분향소, 그리고..
내 마음에 새겨져, 봉하에 있는 내내, 지금도 여전히 이따끔씩 떠오르는 정도상의 조사(弔詞)

"서 버린 수레바퀴, 한 바보가 밀고 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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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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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종소리 2009/06/26 08:27

    논바닦의 오리들의 풍경이 더 슬프게 보입니다.
    선량하고자 했던 한 인간의 순수함이 죽음에 이르도록 매도하는 시대의 슬픔
    아침커피를 마시며 부끄러워집니다.

    더불어 듣지 못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가슴맺힌 육성을 듣는 듯 부끄러운 마음으로 아침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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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6/26 20:09

      별말씀을요...
      종소리님과 같은 분들이 많아지면 대한민국도 희망을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추.
      문득 커피가 땡기는군용!

  2. 종소리 2009/06/26 09:40

    트래백을 거는 방법을 잊어버려 링크걸었습니다 ㅠㅠ
    어차피 비밀글해봐야 들통날꺼같아 그냥 오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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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6/26 20:14

      종소리님 한겨레 블로그에 글을 쓰시고, 링크를 거셨다는 말씀인가요?
      좀 있다가 들러봐야겠네요. : )

  3. 미스터멧 2009/06/26 19:10

    아 그새 또 많이 변했네요.
    김대통령님의 연설이 저를 부끄럽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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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6/26 20:22

      앞서 다녀오셨나보네요.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은 큰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다만 행동하는 양심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라면 좋겠습니다. 그런 '작은 방법'들을 우리들이 스스로 만들어가야겠고요..

  4. skyrunner★ 2009/06/26 22:21

    흐으으으으으~~~~
    덕수궁 분향소를 강제철거한건 뭔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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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6/30 08:42

      [제767호] “쓰레기를 청소했을뿐” (한겨레21.09.7.3) : 대한문 분향소 철거 작전 서정갑 인터뷰 : "좌파 정권 10년 동안 싸우면서 쌓인 체증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 http://bit.ly/L7vur ) 이 글을 참조하시면... ㅎㄷㄷ.

  5. 운이엄마 2009/06/27 10:07

    오랜만에 들어왔는데..한동안 마음이 무겁네요..마음이..깊은 바닷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기분입니다..고마운 줄도 모르고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속에서 헛웃음으로 같은 시간의 삶을 살아가는....뭐라 딱히,표현이 떠오르질 않네요..그저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따름입니다..이유모를 부끄러움에 조용한 반가움도 함께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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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6/30 08:43

      답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요 며칠 경황이 없고, 여전히 필요 이상으로 제가 게으른 바람에...

      반가움을 전해주셔서 저 역시 무척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격려 말씀 고맙습니다..

  6. 운이엄마 2009/06/27 10:24

    내 블로그에다 담아봤습니다..먼저 양해를 구하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의 손이라도 잡고 위로받고픈데..그냥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네요..사정상 컴퓨터앞에 앉질 못해서 그동안 못 읽은 글들
    천천히 읽어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맘이 다소 정돈되네요..감사드립니다..건강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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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6/30 08:48

      이글루스에서 '운이엄마'라는 필명을 쓰시는 것이 맞는지요?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운이엄마'로 구글링해봤는데 정확한 결과인지 모르겠네요.. ^ ^;

      제 부족한 글을 담아주신 점은 물론 고맙습니다.
      다만.. ^ ^; 제 글을 링크(글주소)로 인용하시고, 거기에 간단하게(이렇게 댓글로 논평을 주신 것처럼) 의견을 보태주시면, 그 자체로 운이엄마께서 운영하시는 블로그의 훌륭한 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또 이 글처럼 그림이 많은 글인 경우에는.. ^ ^;;;;
      제가 독립블로그를 운영하는 지라 그 그림주소를 외부로 빼지 않는 이상은 좀 트래픽에 부담이 되기는 합니다. 물론 그림를 외부로 돌리고, 그 주소를 제 글에서 다시 링크 거는 형식으로 해도 되긴 하지만, 그리고 그렇게 하면 물론 트래픽 부담이 좀 덜해지지만..이게 좀 귀찮아서요.. 그리고 그렇게 하면 스크랩한 경우에는 그 스크랩글에서의 그림이 표시되지 않게 되고요;;;;

  7. 골룸 2009/06/30 13:13

    정도상님의 저 글을 볼 때마다 그 외로웠을 걸음 걸음에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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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6/30 18:23

      그러셨군요...
      저도 저 글을 떠올릴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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