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거리  (너바나나)

내가 체험했던 공간들 중에서 가장 밋밋하고, 여전히 불편하게 느껴지는 공간은 강남역 주변 공간이다. 거기서 십 몇 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어떤 드라마의 기억도 거기엔 없다. 아, 유일하게 관세청에서 여의도 순복음교회 강남성전 쪽으로 향하는 내리막, 그 내리막 길은 좋아하는 편이다. 거기엔 왠지 모를 쓸쓸하고, 혹은 그 반대로 그 쓸쓸함을 지우려는 억지스런 오만함이랄까, 그런 느낌이 겹쳐진다. 마치 외로운 사춘기 소녀의 어지러운 마음처럼.

내가 체험했던 공간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혜화동 극장들 뒷편의 골목, 어릴 적 놀던 왕십리 골목, 지금은 사진 놀이하는 공간으로 좀 퇴색된 삼청동의 골목, 성신여대 앞 돈암동의 주택가 골목들... 이렇게 주로 골목이다. 그건 마치 익숙한 미로 같고, 나를 감싸는 애인의 손길 같다. 길이 나에게 자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그건 정말 미로같다. 정현종이 언젠가 그런 말을 했다. '미로 속의 공간은 신비롭다, 하지만 그 곳에 들어가면, 시간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뭐 이런 식의 말. 골목들은 따뜻하고, 익숙하며, 그렇지만 항상 낯설다. 이 낯선 미로인 골목은 항상 나에게 자기들의 신비를, 쓸쓸함을 이야기해주는 외로운 사춘기 소녀들 같다.

커피카랴멜.
손잡고 골목을 여행하고 싶은.
문득.



* 발아점
맥스웰거리  (너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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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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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민혁  2009/02/28 16:08

    좋다.
    내가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 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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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3/01 00:14

      민혁씨의 골목 이야기도 좀 들어보고 싶습니다. : )
      너무 이슈포스팅만 하시지 말고, 가끔씩은 마음 한편을 쉬게 해주세용. ㅎㅎ

  2. cansmile 2009/02/28 17:29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부터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전까지 돈암동에 살았더랬지요.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하고 나서 몇 년전엔가 찾아가 보았는데, 너무도 변해버린 모습에 화들짝 놀란 기억이 있지요.

    그 뒤로는 다시 그 쪽으로 가기가 두려워지더라구요.

    실제로 그렇진 않겠지만 다시 찾았을 때 또 엄청나게 변해있다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다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글을 읽다가 익숙한 골목이 나와 한 꼭지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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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3/01 00:16

      그러셨군요.
      저도 돈암동 골목들을 가본지는 한참입니다.
      벌써 10년은 족히 된 것 같네요.
      낮은 한옥 지붕들은 참 포근한 느낌들이었는데 말이죠...

      추.
      익숙하지 않은 골목('다른 이야기')이 나와도 그냥 편하게 이야기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당. ㅎㅎ

    • cansmile 2009/03/13 11:16

      물론 다른 이야기들도 틈틈히 꼼꼼하게 리더로 받아보고 있지요. 다만 댓글을 일일히 달 수가 없을 뿐이랍니다.

  3. BoBo 2009/02/28 21:10

    민노씨가 혜화동 뒷골목 이야기를 하니 언젠가 미팅에서 만났던 상대가 생각이 나네요.
    그 친구가 '나는 늙어서 여기서 까페를 하고 싶어요. 젊은 사람들이 있는 활기찬 이곳이 좋아서요.'라고 하던 것이 참 특이했어요. 이제 갓 스물 먹은 여자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 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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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3/01 00:18

      앗, 보보님. : )

      그런 추억이 계시군요.
      스물살 아이(정말 지금 생각하면 그 느낌이 '아이'네요.. ^ ^)에게 그런 말이 나온다니 인상적일만 했겠네요...

      저도 항상 갖고 있는 소박한 꿈이 친구들(블로거벗들도 물론이고요)을 마음 편하게 초대해할 수 있는 작은 까페 하나 여는 겁니다.

  4. SuJae 2009/03/01 10:58

    저는 골몰길 말고, 시골 산길만 있는 곳에서 자라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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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3/01 18:34

      그러셨군용.
      지금 살고 계신 미국 골목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미국 골목은 왠지 정감이 있다기 보다는 좀 살벌한(아마도 영화 속 상투형들 때문에 더 그렇겠지만요) 선입견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합니다..
      워낙에 땅덩어리가 큰 나라기도 해서 더 그렇겠지만요.

      추.
      저도 본문에 골몰이라고 계속 오타를 내서 바꿨는데 말이죠. : )

    • SuJae 2009/03/01 22:38

      오타... 부끄럽습니다만 그냥 두겠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에는 '골목'이라 부를만한 길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차가 다닐 수 있는 길들이라...

      아마도 맨해튼에 나가면 비록 차들이 다니는 길이라 할지라도 고층 건물들 사이에 나 있는 길을 '골목'이라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어쩌면 할렘쪽으로 가면 너바나나님이 말씀하신 그런 분위기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5. Skyrunner★ 2009/03/01 18:56

    흐으,
    강남 대치동을 다니다보면 어쩌다 야경에 입이 떡 벌어지지만
    탁한 서울공기는.......
    으으으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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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3/01 19:24

      대치동 쪽은 그래도 좀 조용한 느낌인 것 같은데요.
      강남역 주변은 좀..흐흐..

  6. 언더그라운더 2009/03/01 21:40

    언제 스킨 바뀐거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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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3/01 21:50

      스킨 오늘 새벽에 바꿨습니다. : )
      시사블로그도 운영하시는군용!

      추.
      올블 어워드 오관왕(ㅎㅎ)을 노리시는건가요?
      올블어워드는 어쩔 수 없이 좀 비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좀 해도 너무하게 어설픈 '어워드'같습니다...;;;

    • 언더그라운더 2009/03/01 22:11

      민노씨님의 글 항상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올블로그 어워드에 대한 예리한 똥침 부탁드려요. ㅎ

      제가 올블어워드에서 우수블로그가 된 것만 봐도 이상하다는 것은 틀림없죠. 전 토크온섹스닷컴이 양지의 햇빛을 받은 것도 같아서 기분은 좋네요. ㅎㅎ


      올블어워드 비판 포스트 올리면 댓글 달게요. 전 좀 어설퍼도 좋다는 입장입니다만,, ㅎㅎ

  7. 미도리 2009/03/01 22:13

    어부지리로 올블 어워드에 선정되어 다녀왔는데 기대했던 민노씨님을 뵙지 못해
    너무 애석했어요..그런자리 첨이었는데...
    스킨이 좀 달라졌군요. RED는 이전 것이 더 상큼했는데..댓글러 폰트는 이번 것이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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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섹시고니 2009/03/01 22:17

      다른 분 리뷰에서 살짝 미도리님 뵈었다는. ㅎ

    • 민노씨 2009/03/01 23:19

      저도 미도리님 뵙지 못해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런 날이 아니라도 언제라도 시간이 허락하면 번개라도 해서 만나면 되죠, 뭐. ^ ^;

      추.
      hi8ar님께 선물 받은 스킨입니닷!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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