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로보' 간담회 뒷풀이에서 여담으로 '큐로보'란 서비스명은 너무 직관적이지 못한 것 같다는 지적을 했다.
그렇다면 '큐로보'를 대신할 만한 서비스명, 큐보로라는 검색엔진의 정체성을 좀더 직관적으로 전달할 이름은 뭘까, 큐로보 간담회 후기를 쓰다가 생각이 엉뚱하게 삼천포로 빠진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만들어본 조어가 '시그노이즈'다. (적어도 나에겐) 직관적이고, 재밌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너무 딱딱하고, 역시나 오덕(후)스런 느낌이다. 그러니 검색엔진 서비스명으로는 별로다. 게다가 이미 도메인도 팔려버렸고. 그래서 아쉬운 김에 '시그노이즈'란 글꼭지나 만들어야지 싶었다.
이 글은 시그노이즈에 수록되는 첫 글이다.
시그노이즈는 물론 시그널(signal) + 노이즈(noise) 다.
영어사전이든, 국어사전이든 이런 용어는 없다.
듣보잡 조어인 셈인데, 찾아봤더니, 꼭 듣보잡만은 아닌게, 반갑게도, 혹은 아쉽게도, 웹을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하는 Modisti가 발매한 앨범 가운데 Signoise란 앨범이 있더라.
정보의 비계급성은 건 명백한 환상이다.
정보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계급적인 성격을 띈다.
특히나 언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정보들은 특히 더 그렇다.
특히나 문자 언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정보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대표적인 계급적 언어가 만들어지는 곳은 저널리즘 공장들이다.
하지만 저널리즘 공장에서는 생산하는 정보들이 갖는 계급적 표지를 그들은 드러내지 않고 숨긴다.
그걸 잘 숨겨야 성공한 저널리즘이 되고, 불편부당한 정론지가 되니까.
물론 우리나라 저널리즘은 그걸 숨길래야 숨길 수 없다.
그 계급적 표지가 너무 노골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계급적 표지를 다른 위장물들로 채색하고, 포장하며, 자신을 은폐한다.
흔히 그들은 자신의 계급성을 피상적 객관성으로 포장하고, 휴머니즘으로 채색하며, 감상적 대중심리로 마무리하곤 한다.
가령 유종호가 동아일보에 기고한 종부세에 관한 칼럼은 이런 대표적인 경우다.
유종호는 '늙은 부자의 슬픔'이라는 칼럼으로 종부세 위헌 판결을 적극적으로 두둔한다.
유종호의 계급성은 그가 '동인문학상'(조선일보)의 종신심사위원이라는 그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가 내세우는 건 그의 계급성이 아니다.
늙고 초라한, 하지만 버블세븐에 사는, 그래서 종부세 내야하는 그런 노인이다.
유종호는 이야기한다.
"인기 없는 아파트의 개척민으로 출발한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 특히 고령자는 특히 난감하다"고.
그 노인들이 얼마나 난감한지 나야 버블 비스무리한 집도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독자로서의 나는 유종호의 칼럼이 참 난감하다. 이 늙은 부자 평론가의 궤변에 대해선 글을 따로 쓸지도 모르겠다.
다시 시그노이즈로 돌아가면,
신호/잡음, 의미/무의미, 진실/거짓, 정보/역정보...
시그널과 노이즈는 서로 침투한다.
시그노이즈에서 그 상호침투는 수용자들에게 착오를 유발하고, 잘못된 환상을 그려내기 위해 설계된다.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설계되는가?
그 상호침투 방식에 대한 설계도, 그 지도를 그려내는 것이 비평을 다시 비평하는 메타비평의 사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이라는 텍스트에 대해 이런 저런 '시그노이즈'들을 만들어내는 그 모든 기만적 담론들을 비판하는 블로거의 책무 역시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리하여 어떤 정보가 시그널이고, 어떤 정보가 노이즈인지 구별하는 능력은 미네르바 아저씨의 말씀을 빌자면, 더이상 당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학습하고, 연습해야 하는 비판적 인식틀이다.
나는 저널미장센이라는 표현을 종종 쓰곤 한다.
가장 계급적인 언어이면서, 가장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척 하는 대한민국 저널리즘 언어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고민하고 있나. 우리가 막연하게 감상적으로 취하는 계급적 당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저들의 계급적 당파가 만들어내는 기만을 발전적으로 해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항상 '적대적 공생'이라는 재미없고, 지루한 게임의 희생자가 될 뿐이다.
우리는 저널리즘이 만들어내는 '시그노이즈'에 대해 항상 의심하고, 그것이 왜 시그노이즈인지, 거기서 정보란 무엇이고, 역정보는 어떤 것이지, 유종호라는 늙은 부자 평론가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시그널(나는 계속 부자로 살면서도 세금내기 싫다는데 뭐? 뭐, 어쨌다구?)을 위장하기 위해 어떤 노이즈(휴머니즘, 감상주의, 어떤 객관화된 어떤 지표들)가 그 시그널에 침투하고 있는지를 구별해낼 수 있어야 한다. 혹은 역으로 유종호의 거짓(노이즈)이 어떤 그럴 듯한 진실들(시그널)에 의해 가려지고 있는지를 구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어울리지 않게 대단한 감투를 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존경해마지 않은 젊는 날의 황지우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 때의 진실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흔히 숭고한 것, 아름다운 것, 진실된 것은 더러운 것, 상스럽고, 기만적인 것을 위해 희생되고, 또 파괴되며, 이용된다. 마치 유종호가 늙은 부자들의 슬픔을 위해 베르테르의 슬픔을 이용하는 것처럼.
그렇다면 '큐로보'를 대신할 만한 서비스명, 큐보로라는 검색엔진의 정체성을 좀더 직관적으로 전달할 이름은 뭘까, 큐로보 간담회 후기를 쓰다가 생각이 엉뚱하게 삼천포로 빠진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만들어본 조어가 '시그노이즈'다. (적어도 나에겐) 직관적이고, 재밌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너무 딱딱하고, 역시나 오덕(후)스런 느낌이다. 그러니 검색엔진 서비스명으로는 별로다. 게다가 이미 도메인도 팔려버렸고. 그래서 아쉬운 김에 '시그노이즈'란 글꼭지나 만들어야지 싶었다.
이 글은 시그노이즈에 수록되는 첫 글이다.
시그노이즈는 물론 시그널(signal) + 노이즈(noise) 다.
영어사전이든, 국어사전이든 이런 용어는 없다.
듣보잡 조어인 셈인데, 찾아봤더니, 꼭 듣보잡만은 아닌게, 반갑게도, 혹은 아쉽게도, 웹을 중심으로 음악활동을 하는 Modisti가 발매한 앨범 가운데 Signoise란 앨범이 있더라.
정보의 비계급성은 건 명백한 환상이다.
정보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계급적인 성격을 띈다.
특히나 언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정보들은 특히 더 그렇다.
특히나 문자 언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정보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대표적인 계급적 언어가 만들어지는 곳은 저널리즘 공장들이다.
하지만 저널리즘 공장에서는 생산하는 정보들이 갖는 계급적 표지를 그들은 드러내지 않고 숨긴다.
그걸 잘 숨겨야 성공한 저널리즘이 되고, 불편부당한 정론지가 되니까.
물론 우리나라 저널리즘은 그걸 숨길래야 숨길 수 없다.
그 계급적 표지가 너무 노골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계급적 표지를 다른 위장물들로 채색하고, 포장하며, 자신을 은폐한다.
흔히 그들은 자신의 계급성을 피상적 객관성으로 포장하고, 휴머니즘으로 채색하며, 감상적 대중심리로 마무리하곤 한다.
가령 유종호가 동아일보에 기고한 종부세에 관한 칼럼은 이런 대표적인 경우다.
유종호는 '늙은 부자의 슬픔'이라는 칼럼으로 종부세 위헌 판결을 적극적으로 두둔한다.
유종호의 계급성은 그가 '동인문학상'(조선일보)의 종신심사위원이라는 그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가 내세우는 건 그의 계급성이 아니다.
늙고 초라한, 하지만 버블세븐에 사는, 그래서 종부세 내야하는 그런 노인이다.
유종호는 이야기한다.
"인기 없는 아파트의 개척민으로 출발한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 특히 고령자는 특히 난감하다"고.
그 노인들이 얼마나 난감한지 나야 버블 비스무리한 집도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독자로서의 나는 유종호의 칼럼이 참 난감하다. 이 늙은 부자 평론가의 궤변에 대해선 글을 따로 쓸지도 모르겠다.
다시 시그노이즈로 돌아가면,
신호/잡음, 의미/무의미, 진실/거짓, 정보/역정보...
시그널과 노이즈는 서로 침투한다.
시그노이즈에서 그 상호침투는 수용자들에게 착오를 유발하고, 잘못된 환상을 그려내기 위해 설계된다.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설계되는가?
그 상호침투 방식에 대한 설계도, 그 지도를 그려내는 것이 비평을 다시 비평하는 메타비평의 사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이라는 텍스트에 대해 이런 저런 '시그노이즈'들을 만들어내는 그 모든 기만적 담론들을 비판하는 블로거의 책무 역시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리하여 어떤 정보가 시그널이고, 어떤 정보가 노이즈인지 구별하는 능력은 미네르바 아저씨의 말씀을 빌자면, 더이상 당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학습하고, 연습해야 하는 비판적 인식틀이다.
나는 저널미장센이라는 표현을 종종 쓰곤 한다.
가장 계급적인 언어이면서, 가장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척 하는 대한민국 저널리즘 언어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고민하고 있나. 우리가 막연하게 감상적으로 취하는 계급적 당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저들의 계급적 당파가 만들어내는 기만을 발전적으로 해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항상 '적대적 공생'이라는 재미없고, 지루한 게임의 희생자가 될 뿐이다.
우리는 저널리즘이 만들어내는 '시그노이즈'에 대해 항상 의심하고, 그것이 왜 시그노이즈인지, 거기서 정보란 무엇이고, 역정보는 어떤 것이지, 유종호라는 늙은 부자 평론가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시그널(나는 계속 부자로 살면서도 세금내기 싫다는데 뭐? 뭐, 어쨌다구?)을 위장하기 위해 어떤 노이즈(휴머니즘, 감상주의, 어떤 객관화된 어떤 지표들)가 그 시그널에 침투하고 있는지를 구별해낼 수 있어야 한다. 혹은 역으로 유종호의 거짓(노이즈)이 어떤 그럴 듯한 진실들(시그널)에 의해 가려지고 있는지를 구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어울리지 않게 대단한 감투를 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존경해마지 않은 젊는 날의 황지우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범죄자는 때론 거짓을 (숨기기) 위해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 때의 진실이 중요하다.
그 때의 진실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흔히 숭고한 것, 아름다운 것, 진실된 것은 더러운 것, 상스럽고, 기만적인 것을 위해 희생되고, 또 파괴되며, 이용된다. 마치 유종호가 늙은 부자들의 슬픔을 위해 베르테르의 슬픔을 이용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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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11월 20일은 블로거들의 YTN 블랙 투쟁의 날!
Tracked from Skyjet의 매일매일의 감성일기 2008/11/19 12:34 del.캡콜드 님의 제안 (http://capcold.net/blog/2146) 처럼 저도 11월 20일에 블랙 투쟁에 참여합니다. YTN을 포함한 지금 정부 안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늘 밤, 웹자보 올립니다. 많이 퍼트려 주시길. ps. nooe님께. 이것도 블로거 액션의 하나의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동참해 주실꺼죠? :) 그 밖에 많은 블로거 여러분들의 참여 바랍니다.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잠깐 쉬기 위해 한 rss를 켜면 늘 민노씨의 글이 먼저 걸리네요.............ㅎㅎ
한 이틀째 순위권을 먹는 것 같습니다.....^^
나무를 숨기기 위해서는 숲이 가장 좋고 시체를 숨기기 위해서는 전쟁터가 가장 좋다고 하죠..
거짓말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진실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수없는 거짓말의 나열보단 거짓말의 나열 속에 진실을 섞어줘야 완벽해진다라고 하잖아요..
그때의 진실은 진실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거짓말을 완성하기 위한 소도구에 불과하죠...
(그냥 인용구에 쓸데없는 덧글을 남겨 봅니다...^^;;;)
시그노이즈라.....뭔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너무 사이버틱한 느낌도.....
덧 : 간만에 김우재씨 블로그에 찿아갓는데 민노씨 댓글이 있더군요!!!
반가운 곳에서 반가운 댓글....ㅎ
좀 사이버틱한가요? ㅎ
우재씨께서는 정말 필력 대단하시죠. : )
ㅋㅋb
멋진데요~
댓글 없는 와중에 고맙습니다. ㅎ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얍, 고맙습니다. : )
의미상으론 큐로보 서비스명으로 훌륭해보이지만, 여전히 직관적으로 보이진 않네요...^^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저에겐 직관적이긴 한데.. 대중적인 어감이 아니라서요. ㅎㅎ
역시나 제가 좀 감수성이 마이너(?)한 것 같기도 하구용.
잼없는 글 흥미롭게 읽어주셔서 감솨~!
추.
http://iblogger.kr/286 (부자유로부터의 사색)
잘 읽었습니다..
왠지 시그노이즈로 안읽히고 싸이노이즈로 읽혀요~ ㅎㅎ
그런가요?
그나저나 주말에 올려주시기로 한 팟캐스트는 어디에? ㅠ.ㅜ;; ㅎㅎ
꽤 기다리고 있다는 압박 겐세이를..ㅎㅎ
소리웹 미디어토크 45회 페이지에 아래와 같은 덧글을 남겼는데 못보셨군요~ ^^;;;
"이번 주 방송, 너무너무 잘 들었습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네요. 그리고 하고싶은 말도 되게 많습니다. 반대되는 의견도 솔찮이 있는데요. 요즘 제가 이직을 하는 바람에 새 회사에 적응을 하느라 힘에 겨워 마이크를 쉽사리 잡지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민노씨께는 정말 미안한 맘만 들어요 가끔 전화 주실 때마다 ‘이번 주엔 올릴거다’ 하다가 결국 못올리고…양치기 소년이 되었다는… ㅜ.ㅜ 조만간 어떤 방법으로든 위의 각 주제에 대하여 따로따로 팟캐스트를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공표를 해놓으면 좀 더 제 자신을 구속하게 되겠지요? ㅎㅎㅎ"
앗, 지송. ㅎ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살펴봤네요.
(그런데 뭘 하느나 정신이 없었나 보니, 게으름 피우느라 정신이 없었군용..ㅠ.ㅜ;; )
전혀 미안해하실 일은 아니지만.. ^ ^;
많은 애청자들을 위해서라도 짬내시기 어렵겠습니다만, 가급적 더 많이 마이크를 잡으시면 좋겠습니다.
추.
"솔찮이"의 압박이 상당히 두렵고만용.
ㄷㄷㄷ;;;
꿈보다 해몽인가요. ㅎㅎ
첨엔 그리 와닿지 않는 조어였는데, 설명을 들으니 참 맘에 드누만요.
ㅎㅎ
글꼭지 작명으론 실패했지만, 해몽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입니다. : )
읔.. 방금 JNine님의 블로그에서 민노씨의 댓글 읽고 긴 댓글을 남겼는데..(제가 주인행세하는^^;) 티스토리의 트래픽 부하로 날려버렸네요.ㅠ.ㅠ
전 직관적 작명에 특히나 음절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섯음절이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직관에 파고들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Blographic은 이미 한계를 갖는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한계'를 적극적으로 '설정'한다는 의미를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지만요. (궁금합니다. 수면 위로 내비친 의미뿐만이 나이라 수면 밑에서는 어떤 의미와 사고의 과정을 거쳐서 만든 이름인지..)
이름이 이미 내포한 운명이라는게 생각보다 크다는 생각이..
yahoo는 연예오락사교 사이트 이상 가기 힘든 이름 같고, google은 좀 무서운 이름 같아요. naver는 never의 운명의 길을 갈지 모르고 daum은 다음의 무언가에 자리를 내주어야 할 운명일지도...^^;
혹시 또다른 공간, 도메인 등에 대한 기획이 있으신지...
앗, 이제야 발견했네용. 지송.
1. 음절수가 꽤 중요하죠. 공감합니다. 하지만 괜찮은 도메인들은 이미 거의 모두 선점된 상태라서요.. 한계가 있었습니다.
2. 다만 블로그래픽에 관한 경우에는 정말 굉장히 열띤(?) 내부 논의가 있었습니다. 관련해서 저는 도메인도 새로 구입하기도 했구요(blozn.com). 그리고 기존에 확보했던, 휴면상태인 도메인(it-da.net 과 .com)도 후보로 올렸구요. 제가 후보로 추천한 도메인 말고도 다른 도메인들도 여럿 후보로 올라왔었습니다.
하지만 내부 투표에서 결국은 블로그래픽이 갖는 어감이나 의미, 안정감이나 뭐 이런 큰 장점 때문에 채택되었습니다. : )
3. 아직까지는 없지만...
누에님께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지 고맙게 청취하겠습니다. ^ ^
민노씨에게 제안하고 싶은 아이디어는 많은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제안해도 괜찮을지 몰라 주저하는 부분이 많답니다. (뜬금없거나 주제 넘어버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계속 추상적 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만, 뭐 이것 역시 그냥 생략해버릴 수는 없는 단계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도서관의 자료구축 의미와
박물관의 전시의 의미
학교의 배움의 의미
공동체(생산,분배가 공정히 이루어지는)의 재생산의 의미
등을 가질 공간이 구축되기를 바라고 있는데
일단 그런 논의와 '합의 방식'을 엮어갈 수 있는 메타 공간(모내기, 발아판 등등의 의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파워블로그'에 관련된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 지금으로써는 시간이 지나면 그냥 흐지부지해져버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그런 논의들을 이어가고 발전시키거나 변화시킬 공간이 절실하네요.
시작은 하나의 도메인 이름을 갖는 공간, 최소한의 합의된 규칙(예를들어 기존 참여자가 모두 동의하면 참여자 후보를 참여자로 받아들인다, 어떤 주제의 논의를 할 것이다)만 있다면 두 명의 참여자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이지만 블로그래픽은 무겁고 딱딱해져있네요. 그래서 더 그동안의 논의를 공개하는 쪽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뭐 이건 내부를 잘 알지 못하는 외부자의 제안에 불과합니다.^^)
이건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개인블로그에서 연대블로그로 가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겠고요. 이런 공개된 논의를 통해서 그것이 실패로 보이던 성공으로 보이던 앞으로의 끊임없는 구축과 허물기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그'라는 것의 장점 중 하나가 이런 '재구축'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 그러니까 끊임없이 고치를 틀고 깨고를 반복하며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라 생각해서요. 기존의 덩치만 점점 커가고 우둔해져가는 것들에 대한 대안의 자리에 하나의 큰 축이 될 수 있을꺼라 생각하거든요.
별말씀을요.
정말 고마운 말씀이십니다.
'논의' 외부 공개
이미 논의과정에서도 그런 안이 있었습니다.
재정이나 참여동인간의 프라이버시(?) 정보를 제외한 이런 저런 논의들은 그것 자체로 이런 팀블로그를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공개를 하자/추후 정리해서 공개하자.. 뭐 이런 안이 있었습니다.
이 안이 구체적인 실천을 이끌어내지 못한 이유는, 이건 저 스스로에게 반성적으로 묻곤 하는 질문인데요. 아직은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라는 점이 가장 큰 것 같고, 또 이런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방법론이 아직은 정립되지 못했다는 점이 큰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가급적 공개적으로, 그리고 좀더 다양한 시도들로 날렵하게(?) 이런 실효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론들을 고민하고자 합니다. 이를테면 기존 '포럼툴'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각자의 블로그 공간에서 논의를 제안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또다른 제안인데요.
각각의 댓글 주소를 좀더 적극적으로 알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댓글을 통해 이루어지는 논의들이 묻혀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이요. 그리고 BBcode를 쓰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댓글알리미에 주소가 뜨긴하지만 http://minoci.net/661#comment14729
각 글의 댓글에서 주소를 알아낼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걸랑요.
1. 댓글 알리미 부분은 텍스트큐브에 문의해야할 성격이라서요.. ^ ^;;
2. BBcode
ㄱ. 한번 설치해볼까 싶어서 관련 플러그인을 찾아봤는데, 아주 오래전에 첫 태터용 플러그인으로 제작된 것이 바로 BBcode더군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업데이트가 이뤄진 것 같지는 않아서.. 일단 기술적으로 관련 플러그인이 제공되고 있지 않다는 점.
ㄴ. 저같은 설치형 블로그에서는 자칫 트래픽의 부담을 초래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서 망설여진다는 점.
ㄷ. 태그 구현 여부가 댓글 커뮤니케이션에 본질적인 장애요소가 되지는 않는다는 점.. (링크가 지원되니까요)
이런 점들 때문에 생각은 있었지만... ^ ^;
'시그노이즈'라는 개념을 담고 있는 이미지 분석글 트랙백으로 드리려했는데 안되는군요. 수동 연결입니다.
Trackbeg
이명박 대통령과 일왕의 관계
http://nooegoch.net/312
글 잘 읽었습니다. ^ ^
트랙백 문제는...ㅡ.ㅡ;;;
또 Trackbeg입니다.
[이벤트]세장의 사진 속에 담긴 조작에 대한 분석
http://nooegoch.net/314
보셔요. 적절한 조어이지요?..-_-;
민노씨의 생각도 궁금해서 말이에요....뻘쭘
이미 읽기는 했습니다만... ^ ^;;
제가 워낙에 둔해서 그 세 장의 그림에 담긴 수수께끼를 풀길 없어서 논평은 남기지 못했습니다...;;;
지금가면 누에님께서 생각하신 해석을 접할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