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딩 호러물 : '피의 중간고사' 단상

2008/09/22 11:49
* 스포일러의 불안을 고려함.


0. 고딩 호러물.

가장 가시적인 대한민국의 암적인 문제는 교육과 부동산문제일테다. 부동산 무비(?)는 영화화에 난점이 느껴지지만, 교육, 특히나 고딩용 호러는 그 사회적인 함의가 매우 중대할 뿐더러, 영화화하기 쉬운 소재다. '고사'는 이 소재를 적당히 감각적으로, 추리물의 기법을 도입해서 풀어간다. 극 초반에는 이른바 신세대의 문화코드(그게 요즘은 홍대클럽인가보다)를 적절히 양념처럼 배치하기도 한다.

이런 고딩호러물이 가능한 나라는 얼마나 될까?
아마 일본이나 한국 정도가 가능할 것 같다... ㅡ.ㅡ;

암튼, 출발은 적당히 흥미진진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가장 코믹한 장면은, 역시나, 남규리다. 다른 학생들과도 매우 두드러지게 도드라져 보이는 얼굴의 과잉 파운데이션이야 그렇다 치고, 화면을 압도하는 과도한 '서클 렌즈'(아니면 눈동자가 원래 그렇게 큰가?), 그리고 명료하지만, 기계적인 대사 강독은 코믹하다. 대사 자체나 연출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연기의 문제인 것 같다.  물론 윤정희에 비한다면 그래도 나은 수준이긴 하다.

2. 중후반부터는 영화의 속도감이 살짝 지루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이제 뭔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지루함이 영화의 가장 큰 잔상으로 남겨질지도 모를 그런 수준으로까지 추락한다.

3. 영화는 마지막 시퀀스에 의해 '기적'의 수준은 아니지만, 이 낯선 감독의 다음 작품을 충분히 기대할 만큼의 수준으로 구원받는다. 특히나 엔드 크래딧과 등장하는 아주 짧은 에피소드는 그게 얼마만큼 많은 관객들에게 호소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용감한(?)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도는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스탠리 큐브릭이 시도한 비전같기도 하다.



무의미한 장면들

윤정희가 나오는 모든 장면은 거의 무의한 수준이다. 그녀의 마지막 대사도, 물론 이해하는 바 없지 않으나, 그녀의 무의미를 구원하지 못한다. 없어도 될 뻔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다만 윤정희가 일종의 영화적 위장물로써 기능했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이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무의미가 구원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영화적 위장으로 역할을 부여했다면 좀더 디테일한 장치들이 설치되어야 했을텐다. 그런데 물론, 그런 촬영분이 있는데, 러닝타임 때문에 자른 건지는 또 모를 일이지만.


약한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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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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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4blog 2008/09/23 09:37

    한국 호러물이 포스터만큼만 무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응?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8/09/23 13:54

      ㅎㅎ
      그러게요.
      그런데 '고사'는 꽤 볼만한 것 같은데 말이죠. ^ ^

      추.
      보잘 것 없는 제 블로그가 조금이나마 '자극'이나 '동기'로 작용하셨다니 참 고마운 일입니다... 민망해서 댓글을 남기지 못했는데, 여기에서나마..

  2. 내가 내냐? 2009/01/07 06:21

    민노씨의 리뷰가 없었더라면 한국영화판에 다시 보기 힘든 `괴작` 을 놓쳤을 것입니다. 저를 기억해주신 배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얼마전 메모장에 썼던 글 올립니다.



    영화를 본 후 감독의 이력이 너무도 궁금해서 네이버를 검색했더니 `창` 이란 가명이 전부다. 혹시 김기덕이 정체를 숨기고 만든 영화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사가 못 만든 영화는 분명하지만 내 눈에는 감독이 `알고도`, `일부러` 영화를 이렇게 X같이 만들었다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한국영화판에 애증이 사무친 인간같기도 하다.) 인구에 두고두고 회자될 엔딩크레딧의 키치적 발상은 그 의구심에 그럴듯한 근거를 제공한다. 이 영화의 설정은 단순히 `못 만들었다.` 라는 단평으로 납득하기 힘든 기상천외한 플롯과 상황으로 가득한데 그 중 압권은 `문제를 풀면 살려주고 못 풀면 죽이겠다.` 고 죽음의 퀴즈쇼를 선언해놓고 문제를 푼 학생을 가차없이 죽여버리는 엽기적 뒤통수치기였는데 극중 학생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본답시고 잔머리를 굴리던 나는 그 장면에 이르러 두 눈만 말똥말똥거릴 뿐이었다. 화면빨의 기이함도 각본못지 않은데 여고생을 거꾸로 매달아놓고 남규리와 재회시키는 장면은 창 감독의 데뷔분야라는 CF 영상을 검색해보고 싶게 만들 정도였다.



    배우캐스팅은 만점이다. 남규리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출연자들이 한 외모씩 해서 그녀들을 보는 즐거움만으로도 dvd 대여료가 아깝지 않았다. 반면 남학생들은 생긴 것도 멍청한 것들이 캐릭터는 훨씬 멍청하게 설정해서 그들이 죽어자빠질땐 `고 색기들 쌤통이다.` 라는 흐뭇한 가학적 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남규리를 비롯한 처자들을 압도하는 포스는 역시나 이범수에게서 뿜어졌다. 코미디배우를 공포영화에 캐스팅한 이유를 의아해한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을 감독은 미리 예견한 듯 그 대답을 최적의 순간에 배치했다. 마지막 강당씬의 이범수의 퍼포먼스는 코미디와 개그로 다져진 감각이 원천에 깔리지 않는 연기자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거기다 이 모든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이얼 아저씨...

    그는 각본을 읽은 순간 고사가 한국영화계의 음지의 오발탄 같은 존재가 될 것임을 직감한 `천재형` 연기자이거나 불러주는 영화가 없어 밥숟가락 놓기 직전인 `생계유지형` 연기자 둘 중의 하나가 틀림없다. 어쩌면 그 둘다일 수도 있고.

    마지막 장면을 보며 마냥 웃을 수 만은 없었던 것이 창감독이 한국영화판에 날리는 불타오르는 증오와 저주 내지는 FUCK YOU! 가 화면에 언뜻 스쳤기 때문일까?



    놀라운 사실은 저예산을 투자해 발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가 손익분기점은 물론이고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사실인데 이건 디워가 천만관객 돌파한 것보다 더 큰 성과로 보일 뿐만 아니라 투자자들에게 이윤을 발생시켰다는 성과는 창감독의 차기작에 대한 높은 가능성을 내포한다. 박찬욱도 봉준호도 데뷔작의 성과는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창감독이 2번째 영화로 그의 자학적 유모어가 완성형의 모습을 갖출지 충무로 영화판의 자폭의 최단코스를 걷게 될지 명확히 판가름날 듯 싶다.



    민노씨 이런 영화 발견하시면 혼자만 품고 계시지 마시고 제발 추천 좀 부탁이요...





    고사는 대여과정부터가 일종의 컬트적 해프닝으로 시작되었다. 가도 가도 대여중인 고사. 참다 못해 주인 아줌마에게 물었다. "고사 인기 많은가 봐요?" 아줌마 왈, "요즘 중간고사 기간이라 많이들 빌려보나봐요..." 고사엔 확실히 뭔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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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1/07 07:27

      괴작이라는 표현이 참 어울립니다. : )

      실은 제가 너무 호의적으로 평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엔드크레딧의 반전(저는 오히려 영화 전체의 메시지보다 이 엔드크레딧의 반전이 갖는 메시지가 훨씬 더 강렬했는데 말이죠)은 인상적입니다.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들은 간략히 요약하면요.

      ㄱ. 우선 '웨더맨'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영화인데, 케이지의 연기도 좋지만, 마이클 케인의 명연을 확인할 수 있어서 참 좋더만요.

      ㄴ. '카포티'는 이제서야 봤는데요.
      정말 연기가 세칭 아해들이 하는 말로 '쩝니다'
      드라마 자체의 울림은 그다지 크지 않은데 정말 명연기를 보여주더만요.

      ㄷ. '스마트 피플'도 재밌게 봤습니다.
      '사이드웨이'나 '스트레인저 댄 픽션'처럼 꽤나 지적인 느낌의 영화인데, 조연들의 호연이 정말 대단합니다. 특히나 이복 남동생역으로 나오는 그 배우(스파이더 맨3의 '샌드맨')는 정말 인상적이더라구요. 그 배우는 사이드웨이에서도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말이죠.

      ㄹ. 견자단의 영화 '엽문'과 '도화선'
      둘 모두 스토리로 보면 꽤나 뻔한 영화인데, 사람의 신체가 보여줄 수 있는 액션의 묘한 쾌감이랄까, 활동사진의 역동적인 이미지들, 그 동선들에 나름의 매력을 부여하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더군요.

      특히 엽문은 아직 개봉하지는 않았지만, 개봉하면 극장에서 꼭 다시 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이소룡 영화나 홍콩 느와르의 총격씬들, 그리고 와호장룡의 액션 이미지에 깃들여져 있는 개성과 우와함과 인물의 성격에 대한 일체감이라는 차원에서는 여느 액션영화는 구별되는 매력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스토리는 너무 뻔하긴 하지만요...

  3. 내가 내냐? 2009/01/26 19:40

    민노씨도 카포티 라는 명화를 지나치지 못하셨군요. 우연히 dvd 사이트를 통해 알게된 카포티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 `IN COLD BLOOD` 를 구입해본 후 카포티가 `IN COLD BLOOD` 를 집필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카포티` 를 접하고 결국엔 아주 최근에 책으로 발간된 `IN COLD BLOOD` 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카포티 는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의 원작자인데 이런 살벌무도한 논픽션소설을 썼다니 처음엔 도저히 한 작가가 탄생시킨 창조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티파니에서 아침을` 을 다시 감상하니 그저 막연하게 떠올렸던 주제가 `문리버` 라든가 세기의 요정 `오드리 헵번` 의 매력등등외에 그 촌철살인의 기지넘치는 대사가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그것은 트루먼 카포티의 `IN COLD LOOD` 라는 논픽션소설 (이 용어 자체가 말이 안되긴 하지요.) 을 진지하게 마주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지요.

    영화나 소설로 창조하기에도 끔찍하기만 한 캔자스시티의 네가족 살인사건에 흥미를 느낀 카포티는 수년에 걸쳐 수집한 방대한 양의 인터뷰와 자료를 바탕으로 논픽션문학의 신기원이라 일컬어지는 `IN COLD BLOOD` 를 집필하는데 (책 또한 엄청난 분량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살벌끔직한 원고를 집필한 후로 단 한편의 제대로 된 책을 집필하지 못하고 알콜중독자의 삶을 마감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첫 감상은 아무리 그가 자료수집에 충실했다 하더라도 이토록 세부적인 묘사까지는 과연 가능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오히려 전 영화 `카포티` 에도 드러나듯이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작가로서의 지적허영심과 명성에 대한 욕심, 지식인이라는 카포티의 자부심이 상당히 책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 속물적이고 적극적으로 발휘되었을 것이란 의심을 지울수가 없더군요. 영화 `카포티` 에 대한 리뷰에도 이런 감상평이 소수존재하죠. "지식인들의 잔인함마저 느껴지는 영화..." 라구요. 실제 카포티는 두 범죄자, 특히 페리에게 적극 공감하며 그와 자신을 동질화시키는 심정을 토로하면서도 그의 항소와 사면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에게 그래야하는 의무감과 책임은 전혀 없습니다만.

    보통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무조건 책에 지고 들어간다.` 라는 이 바닥의 전통같은 것이 있기 마련인데 전 오히려 가지칠 분은 과감히 쳐버리고 두 시간 분량으로 효율적으로 압축한 영화 `IN COLD BLOOD` 를 책보다 더 높이 사고 싶습니다. 일단 흑백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끔찍한 비극을 맞이하는 평화로운 미국중산층 피해자와 인간이라 볼 수 없는 두 명의 가해자의 범죄행각을 정말이지 소름끼치고 한기를 느끼게 할만큼 냉철하고 사실적이며 공포스럽게 묘사해내었거든요. 전 데이빗 핀처의 세븐 을 처음 볼때 잔인한 장면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음에도 불구하고 (세븐에서 범죄장면은 전부 등장인물의 나래이션으로 설명되지 케빈 스페이시가 직접 범죄를 실행하는 장면은 없죠.) 등줄기에 흐르는 한기를 느꼈는데 `IN COLD BLOOD` 로 그러한 두번째 경험을 했습니다. 바로 트루먼 카포티 가 바라는 것이 그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불만이라면 두 범죄자에 대한 카포티의 온정적인 시선이 적지않게 느껴진다는 것인데 (이것에 대해선 출판당시 관계자들에 의해서도 비판받았던 부분이죠.) 잔인하게 살해당한 일가족이 정말 미국사회의 건전한 표상이 될 정도로 청교도적이고 금욕적인 집단이었다는 사실 역시 책에서 자세히 묘사되었기 때문에 두 범죄자의 심리묘사에 상당히 치중한 책과 영화의 후반부가 그닥 제 마음을 두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저지른 범죄는 사형제도의 존폐론을 우습게 만들 정도로 잔인한 것이었기 때문이죠. 카포티의 주의를 집중시킨 것 역시 이 범죄의 철저한 계획성과 야만성, 잔혹성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카포티` 에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의 연기가 오스카감이었다면 (실제로 수상했죠.) `IN COLD BLOOD` 의 두 범죄자 연기 또한 질식할 만합니다. (배우이름이 지금 기억나지 않네요.) 두 영화를 자세히 보면 `IN COLD BLOOD` 의 범죄현장이 상당부분 `카포티` 에서 재현되는데 당시 범죄기록을 자세히 검토해서 `카포티` 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한다면 `IN COLD BLOOD` 의 감상을 필수적인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군요. 퀸시 존스의 음산한 음악을 배경으로 하는 캔자스시티의 외딴 농장의 흑백화면은 멀리서 잡은 롱샷만으로 범죄의 분위기를 물씬 풍겨내고 있으니까요. 아직 안 보셨다면 `IN COLD BLOOD` 를 헐리우드사상 가장 사악한 범죄영화로 추천합니다.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01/30 19:02

      이런 내내님의 댓글을 이제야 발견하네요. ^ ^;;
      답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중에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작가로서의 지적허영심과 명성에 대한 욕심, 지식인이라는 카포티의 자부심이 상당히 책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 속물적이고 적극적으로 발휘되었을 것이란 의심"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저 역시 꽤나 공감하는 바입니다.

      'In Cold Blood'가 아닌 '카포티'에서도 그런 세속적인 욕망과 본능적인(그래서 차라리 실존적이고, 역설적으로 순수한) 욕망 사이의 긴장과 갈등은 영화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In Cold Blood'는 무척 인상 깊은 작품이셨나 봅니다.
      기회가 닿는대로 꼭 봐야겠네요.

      깊이 있고 풍성한 논평에 대해선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렇게 좋은 글이 그저 댓글로만 남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아쉽네요.
      추정적인 승낙을 예상하는 바, '카포티'와 관련한 내내님과의 대화는 포스팅하고 싶네요. : )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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