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적어도 촛불 든 시민들을 바라보는 방식은 위험하다는 한가로운 소리를 할 수 없는 정도로 '막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08년 6월 어느 날의 조선일보는 80년 5월의 조선일보를 불러온다.
조선일보, 이제 시민들을 '폭도'라고 부르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이미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 같은 환청이 들린다... )
미국산 쇠고기 장관고시 관보 게재가 예정된 역사적인 6월 26일(오전 9시 관보 게재 완료, 고시 효력 즉시 발효) 조선일보 일면 머릿기사에 실린 몇 구절을 살펴보자.
기사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이걸 굳이 요약할 필요는 없겠으나....).
ㄱ. 시위대는 불법 폭력세력이다.
ㄴ. 경찰은 왜 시위대를 화끈하게 쓸어버리지 못하나. 의지는 있는건가?
ㄷ. 어청수, 이명박, 공안당국... 이번 주말 지켜보겠다, 화끈하게 쓸어버리도록!
관련기사(10면)는 역시나다.
1. 내가 조선일보는 용서할 수 없는 이유
정말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하기 힘든 이유는 단순히 조선일보가 사실을 왜곡하고, 복잡한 역학과 다양한 원인이 내재된 어떤 사회 현상을 단편화해서 그 일면만 확대 혹은 축소해서 악의적으로 틀짓기 하며,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반저널리즘을 실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긴 하다....).
조선일보는 사회성원들에게 증오를 퍼뜨리고, 반목을 조장하며, 서로를 적으로 돌려세운다. 조선일보에는 사회 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공기로서의 언론의 기본 역할에 대한 고민이 없다. 자신들의 아가리 권력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회성원들이 어떻게 되든 말든 그건 조선일보의 관심사가 아니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1%의 '(사이비) 파워엘리트' 와 끼리끼리 잘 지내면 나머지들은 그냥 떨거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들은 오직 그 1%에게 복무한다. 독자들에 대한 배려는 이런 사이비 엘리트주의에 대한 동경을 강요하는 방식이다. 그저 적당히 냉전 사고방식의 끝없는 변주를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정체불명과 믹스해서 세련되게(실은 가장 천박하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배설해 놓는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자본주의적 욕망에 대한 고민도 없고, 반성적 성찰도 없는 비교욕구와 모방심리를 끝없이 부추긴다. 일종의 관음적 모방심리... 이건 싸이월드의 세계관이기도 하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제1철학이기도 하다...너도 억울하면 성공하렴... 아, 다시 거기에 싸구려 감상주의로 점철된 도구적이고, 피상적인 휴머니즘을 양념처럼 버무려 놓는거다. 가령 북한에서 탈출하는 주민들을 돕자던가, 가난하고, 소외된 저 무지랭이들은 우리가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뭐 이런...(물론 이건 개인적인 '적선'의 차원이지, 복지정책이나 사회 안전망에 대한 제도적 차원의 접근은 전혀 아니다)
조선일보의 끔찍한 풍경을 만들어가는 자들은 조선일보라는 기만공장의 대주주와 공장장들, 그리고 이들이 부리는 하수인들, 그리고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조력하는 소위 잘 나가는 지식인들, 문인들, 교수 나부랭이들이다. 나는 감정적인 편견을 증오하지만, 적극적인 조선일보 기고자들에 대해선 그 편견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쉽게 말해서 조선일보 적극 기고자들은 지식인 자격 상실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조선일보 기자들(실은 이 자들은 기자도 뭣도 아니고, 그냥 조선일보라는 기만공장의 부속품들에 불과하지만)이야 말해서 뭐하나. 이런 反저널리즘에 기꺼이 종사하기를 스스로 선택한 '직장인'일 뿐이고, 이 사람들은, 물론 개개인에 대해 뭐라 할 일은 아니지만, 최소한 집단이자 조선일보 시스템의 일부로서의 '조선일보 기자'는, 反저널리즘을 스스로 실천하는 아이러니의 존재에 불과하다. 이들은 저널리스트가 아니다.
어떤 정파적 목표(실은 이렇게 표현하기도 좀 민망한게 뭐냐면, 조선일보에는 정치철학이나 노선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있다면 사이비 엘리트주의와 수구적인 기득권, 미국에 대한 신앙이랄까...이건 정말 신앙이고, 나는 이게 불가사의할 뿐인데... 이런게 있을 뿐이다)를 설정하면 그 목표에 부합하는가, 부합하지 않는가, 자신에게 유리한가, 유리하지 않는가만이 조선일보의 관심사다. 그러니 다양한 사회성원들이 표출하는 스스로에게까지 이율배반적이곤 하는 욕망과 바람, 소망과 좌절에 대한 실존적인 고민은 조선일보에 없다. 그러니 저널리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응시''바라봄'을 기대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바라본 바를 평가하고 해석하는 차원에서는 이것이 과연 최소한의 논리에 바탕한 '논설'인가를 근본에서 의심하게 만든다.(물론 때때로 괜찮은 외부 칼럼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
2. 메시지
조선일보와 이명박 정권이 나에게, 당신에게,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어디 한번 촛불 들고 덤벼보시지...
다 밟아주겠어...
이 무식한 냄비들아...
합리적 이성과 사회 공동체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을 찾을래야 찾기 어려운 이 증오, '피상적 휴머니즘의 가면을 쓴' 조선일보의 야만이 두렵고, 또 두려울 뿐이다.
그 두려움과 함께...
도저히 더는 참기 어려운, 역겨움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조선일보, 니가 이겼다.
나에게도 끝내 증오를 가르치는구나...
... 나는 물론 이 증오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당한 증오란 무엇인가, 그건 가능하기나 할까...
그게 가식적인 화해나, 기만적인 휴머니즘보다 솔직하다는 건 알겠지만...
"실현 불가능한 이 증오가 실현 가능한 사랑이 될 때까지"(황지우) 너를 증오하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자, 산문가인 황지우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이더라... 그게 너무 쓸쓸하다... )
* 6월 25일과 26일 새벽 쇠고기 고시 항의 촛불 시위에 관한 기사.
하나만 질문하자. 전경 방패에 운동화로 헛발질하는 모습과 유모차 주부 연행하는 모습, 혹은 (그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50대 아저씨 손가락이 전경 이빨에 물어뜯겨서 절단된 모습... 어떤게 더 '법이 죽은 모습'에 가까운 건가. 양자 중에서 굳이 신문 일면에 실어야 한다면, 어떤 사진을, 어떤 풍경을 일면에 실어야겠나...
* 관련글
조선일보, 8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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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법은 죽었다 (큰 제목)
광화문 근처 골목. 한 마스크 쓴 청년이 전경방패를 향해 발길질, 그 옆 뚫린 담벼락 사이로 LPG 가스통, 그 옆에 몇몇 시위대 모습 (사진)
이명박 대통령이 불법, 폭력 시위에 대한 엄정 대응 방침을 천명한지 하루 만인 25일 밤, 서울 도심의 세종로, 태평로, 신문로는 또다시 촛불시위대의 불법, 폭력 시위로 완전히 점거됐다.
시위대 3200여명 중 일부는 물병을 던지고, 경찰버스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고, 버스를 타넘어 청와대 진출을 시도했다. 경찰은 지난 1일 새벽 이후 25일만에 처음으로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그러나 경찰은 처음부터 이들의 불법적 차도 점거를 막지 않고 그대로 방치했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훼손된 법 질서가 회복되도록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보고한 것은 하루 만에 생색내기용으로 끝난 셈이다. [....]
경찰은 오후 7시 무렵부터 500명 가량의 시위대가 차도로 나오는 것을 막지 않고 태평로 전 차로를 점거하는 것을 방치했다. [....] 대책회의는 오는 28~29일 토, 일요일을 '주말 총집중 촛불문화제'의 날로 정하고, 대대적인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이 대통령과 공안 당국이 재천명한 '엄정한 법 질서 확립' 방침은 이번 주 중대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 글 : 안준호, 김진명. 사진 : 채승우.
광화문 근처 골목. 한 마스크 쓴 청년이 전경방패를 향해 발길질, 그 옆 뚫린 담벼락 사이로 LPG 가스통, 그 옆에 몇몇 시위대 모습 (사진)
이명박 대통령이 불법, 폭력 시위에 대한 엄정 대응 방침을 천명한지 하루 만인 25일 밤, 서울 도심의 세종로, 태평로, 신문로는 또다시 촛불시위대의 불법, 폭력 시위로 완전히 점거됐다.
시위대 3200여명 중 일부는 물병을 던지고, 경찰버스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고, 버스를 타넘어 청와대 진출을 시도했다. 경찰은 지난 1일 새벽 이후 25일만에 처음으로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그러나 경찰은 처음부터 이들의 불법적 차도 점거를 막지 않고 그대로 방치했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훼손된 법 질서가 회복되도록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보고한 것은 하루 만에 생색내기용으로 끝난 셈이다. [....]
경찰은 오후 7시 무렵부터 500명 가량의 시위대가 차도로 나오는 것을 막지 않고 태평로 전 차로를 점거하는 것을 방치했다. [....] 대책회의는 오는 28~29일 토, 일요일을 '주말 총집중 촛불문화제'의 날로 정하고, 대대적인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따라서 이 대통령과 공안 당국이 재천명한 '엄정한 법 질서 확립' 방침은 이번 주 중대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 글 : 안준호, 김진명. 사진 : 채승우.
기사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이걸 굳이 요약할 필요는 없겠으나....).
ㄱ. 시위대는 불법 폭력세력이다.
ㄴ. 경찰은 왜 시위대를 화끈하게 쓸어버리지 못하나. 의지는 있는건가?
ㄷ. 어청수, 이명박, 공안당국... 이번 주말 지켜보겠다, 화끈하게 쓸어버리도록!
관련기사(10면)는 역시나다.
시위대, 전경 2명 붙잡아 끌고다녀 (큰제목)
담 넘는 시위대 (사진)
- 글 : 조백건, 김시현. 사진 : 오종찬.
담 넘는 시위대 (사진)
- 글 : 조백건, 김시현. 사진 : 오종찬.
1. 내가 조선일보는 용서할 수 없는 이유
정말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하기 힘든 이유는 단순히 조선일보가 사실을 왜곡하고, 복잡한 역학과 다양한 원인이 내재된 어떤 사회 현상을 단편화해서 그 일면만 확대 혹은 축소해서 악의적으로 틀짓기 하며,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반저널리즘을 실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긴 하다....).
조선일보는 사회성원들에게 증오를 퍼뜨리고, 반목을 조장하며, 서로를 적으로 돌려세운다. 조선일보에는 사회 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공기로서의 언론의 기본 역할에 대한 고민이 없다. 자신들의 아가리 권력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회성원들이 어떻게 되든 말든 그건 조선일보의 관심사가 아니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1%의 '(사이비) 파워엘리트' 와 끼리끼리 잘 지내면 나머지들은 그냥 떨거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들은 오직 그 1%에게 복무한다. 독자들에 대한 배려는 이런 사이비 엘리트주의에 대한 동경을 강요하는 방식이다. 그저 적당히 냉전 사고방식의 끝없는 변주를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정체불명과 믹스해서 세련되게(실은 가장 천박하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배설해 놓는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자본주의적 욕망에 대한 고민도 없고, 반성적 성찰도 없는 비교욕구와 모방심리를 끝없이 부추긴다. 일종의 관음적 모방심리... 이건 싸이월드의 세계관이기도 하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제1철학이기도 하다...너도 억울하면 성공하렴... 아, 다시 거기에 싸구려 감상주의로 점철된 도구적이고, 피상적인 휴머니즘을 양념처럼 버무려 놓는거다. 가령 북한에서 탈출하는 주민들을 돕자던가, 가난하고, 소외된 저 무지랭이들은 우리가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뭐 이런...(물론 이건 개인적인 '적선'의 차원이지, 복지정책이나 사회 안전망에 대한 제도적 차원의 접근은 전혀 아니다)
조선일보의 끔찍한 풍경을 만들어가는 자들은 조선일보라는 기만공장의 대주주와 공장장들, 그리고 이들이 부리는 하수인들, 그리고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조력하는 소위 잘 나가는 지식인들, 문인들, 교수 나부랭이들이다. 나는 감정적인 편견을 증오하지만, 적극적인 조선일보 기고자들에 대해선 그 편견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쉽게 말해서 조선일보 적극 기고자들은 지식인 자격 상실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조선일보 기자들(실은 이 자들은 기자도 뭣도 아니고, 그냥 조선일보라는 기만공장의 부속품들에 불과하지만)이야 말해서 뭐하나. 이런 反저널리즘에 기꺼이 종사하기를 스스로 선택한 '직장인'일 뿐이고, 이 사람들은, 물론 개개인에 대해 뭐라 할 일은 아니지만, 최소한 집단이자 조선일보 시스템의 일부로서의 '조선일보 기자'는, 反저널리즘을 스스로 실천하는 아이러니의 존재에 불과하다. 이들은 저널리스트가 아니다.
어떤 정파적 목표(실은 이렇게 표현하기도 좀 민망한게 뭐냐면, 조선일보에는 정치철학이나 노선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있다면 사이비 엘리트주의와 수구적인 기득권, 미국에 대한 신앙이랄까...이건 정말 신앙이고, 나는 이게 불가사의할 뿐인데... 이런게 있을 뿐이다)를 설정하면 그 목표에 부합하는가, 부합하지 않는가, 자신에게 유리한가, 유리하지 않는가만이 조선일보의 관심사다. 그러니 다양한 사회성원들이 표출하는 스스로에게까지 이율배반적이곤 하는 욕망과 바람, 소망과 좌절에 대한 실존적인 고민은 조선일보에 없다. 그러니 저널리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응시''바라봄'을 기대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바라본 바를 평가하고 해석하는 차원에서는 이것이 과연 최소한의 논리에 바탕한 '논설'인가를 근본에서 의심하게 만든다.(물론 때때로 괜찮은 외부 칼럼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
2. 메시지
조선일보와 이명박 정권이 나에게, 당신에게,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어디 한번 촛불 들고 덤벼보시지...
다 밟아주겠어...
이 무식한 냄비들아...
합리적 이성과 사회 공동체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을 찾을래야 찾기 어려운 이 증오, '피상적 휴머니즘의 가면을 쓴' 조선일보의 야만이 두렵고, 또 두려울 뿐이다.
그 두려움과 함께...
도저히 더는 참기 어려운, 역겨움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조선일보, 니가 이겼다.
나에게도 끝내 증오를 가르치는구나...
... 나는 물론 이 증오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당한 증오란 무엇인가, 그건 가능하기나 할까...
그게 가식적인 화해나, 기만적인 휴머니즘보다 솔직하다는 건 알겠지만...
"실현 불가능한 이 증오가 실현 가능한 사랑이 될 때까지"(황지우) 너를 증오하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자, 산문가인 황지우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이더라... 그게 너무 쓸쓸하다... )
* 6월 25일과 26일 새벽 쇠고기 고시 항의 촛불 시위에 관한 기사.
[현장] 4천 촛불 가두행진, '유모차 주부도 연행' (뷰스앤뉴스, 최병성)
새벽2시 광화문, ‘유모차맘’이 물대포 껐다 (한겨레, 이태희)
“저 평범한 엄마입니다, 근데 왜 저를 여기 서게 만듭니까”
최악의 폭력진압, 50대 손가락 잘려 (뷰스앤뉴스. 최병성)
새벽2시 광화문, ‘유모차맘’이 물대포 껐다 (한겨레, 이태희)
“저 평범한 엄마입니다, 근데 왜 저를 여기 서게 만듭니까”
최악의 폭력진압, 50대 손가락 잘려 (뷰스앤뉴스. 최병성)
하나만 질문하자. 전경 방패에 운동화로 헛발질하는 모습과 유모차 주부 연행하는 모습, 혹은 (그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50대 아저씨 손가락이 전경 이빨에 물어뜯겨서 절단된 모습... 어떤게 더 '법이 죽은 모습'에 가까운 건가. 양자 중에서 굳이 신문 일면에 실어야 한다면, 어떤 사진을, 어떤 풍경을 일면에 실어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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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8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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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인이 본 KBS 문제와 촛불집회 (강명욱 KBS 피디, 창비주간논평)
그들의 눈에 공영방송 사장 자리는 챙겨야 할 전리품에 불과하고, 따라서 법으로 보장된 임기(2009년 11월)조차 하찮게 보이는 모양이다.
KBS 내부 역학에 대한 의미있는 참조. 물론 내부 '일인'의 말만으로 사안을 입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엔 부족함이 있겠으나 현 노조의 성격에 대한 부분, 정연주 체제가 들어서면서 "팀원제"가 도입되고, 1300여 개 중간간부의 보직이 날라갔다는 부분에 대해선... 反정연주 내부 정서의 일단이 조금은 이해되기도 한다. 그들의 눈에 공영방송 사장 자리는 챙겨야 할 전리품에 불과하고, 따라서 법으로 보장된 임기(2009년 11월)조차 하찮게 보이는 모양이다.
무한조소: “나 잡아가슈” (아거)
[.... ]검찰청 게시판에 가서 ‘나 잡아가슈’하고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남겨놓는 정말 전대미문의 자수운동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이런 황당한 뉴스를 들으면 시민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바로 이명박이에게 가운데 손가락 날릴게 분명하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진 단체들이 자신들의 주장과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 시민들에게 의회나 기업에 ‘항의 전화’를 걸어달라는 운동을 공개적으로 벌인다. 이처럼 시민들 혹은 지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벌이는 공개적인 저항 운동을 이른바 grassroots campaign이라고 한다.
아거님 지적처럼 미국이라면 양잿물도 먹을 미국 광신도 조선일보가 왜 이런 미국적 상황에 대해선 침묵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법무부(검찰, 경찰)도 그렇다. 이게 법리적으로 업무방해가 성립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가... 아니면 조선일보의 협박에 짜자꿍을 맞춰주겠다는 건가... [.... ]검찰청 게시판에 가서 ‘나 잡아가슈’하고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남겨놓는 정말 전대미문의 자수운동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이런 황당한 뉴스를 들으면 시민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바로 이명박이에게 가운데 손가락 날릴게 분명하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진 단체들이 자신들의 주장과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 시민들에게 의회나 기업에 ‘항의 전화’를 걸어달라는 운동을 공개적으로 벌인다. 이처럼 시민들 혹은 지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벌이는 공개적인 저항 운동을 이른바 grassroots campaign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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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창으로 순간 이동!제가 출근하는(제 직장은 아닙니다만) 곳에 조선일보가 매일 들어오는데 헤드라인을 보면 "관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관보라고 하기에도 그 질과 수준이 너무 저열하네요...
정말 요즘 유행하는 말로 "영혼이 없는" 신문 같습니다.
요즘 들어 개인사는 더욱 분주해지는데..
PC 앞에 앉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기사 만 읽게 되는군요..
자막도 한 달이나 밀렸고, 블로그 포스팅도 나날이 밀린다는 건 안중에도 없는데.. 촛불집회 기사나 광우병 관련 기사는 급물살을 타고 있고, 그 모습을 보며 분노하기에도 지쳐갑니다..
조갑제는 결국 '총을 왜 사용하지 않는가'란 논조로 그 천박한 바닥을 드러냈더군요.
미국에선 아동성폭행범을 사형하는 건 위헌이란 판결이 났다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 괴롭히는 거 쉬운 일 아니지요..
그런 발언은 장난으로도 위험합니다.
하물며 모 언론의 뭔가를 지냈다는 나이도 많은 양반이 주책을 떨어도 정도가 있지.. 문맹율이 높은 개발도상국에서나 있었던, 그것도 과거의 양상이 되버린 폭력 진압방식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다니 국가적인 망신도 이 정도면 미국식으로 넘버원입니다..
회교도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데.. MB정부와 깝제씨 정도면 총부리를 들이대서라도 회교도에게 돼지고기를 먹이겠군요..물론 그 옆에서 반주에 맞춰 날나리 춤을 출 언론사도 준비되어 있으니.. 시민은 대체 누굴 믿어야 하나요..
말씀처럼 저들의 수준이 그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저들의 도발 때문에 시민들까지 덩달아 흥분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는 점일텐데요. 저들의 저열한 선동과 광기에 좀더 성숙한 도덕성과 괴롭지만 스스로 되돌아보는 높은 시민의식으로 저들에게 맞서야겠죠... 궁극적으론 저들도, 저들이 그토록 무시하고, 증오하는 '무식한 대중'보다 훨씬 더 불쌍한 영혼들일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저들의 한심한 작태를 접하면... 안쓰러움 보다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군요...
28년이 지났는데, 왜 변한 것이 없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더 무서운 것이 저런 기사를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고대로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에요.
추:수정했습니다. 어려지고 싶었나봐요 어흑.ㅠㅠ
인과율 없는 신앙같은 증오를 퍼뜨리는 거.. 그게 정말 가장 무섭고, 위험해 보입니다.
추.
28년.. ^ ^;
사소한 착오가 계셨던 것 같네요.
* 제목 수정 : 쇠고기 고시... -> 고시 강행..
* 본문 사소한 추고 : 불필요한 중복 표현을 덜어내는 정도로..
아, 본문에서도 처음으로 물대포를 쏘며.. 라고도 되있는데 이게 처음인가요 --
"경찰은 지난 1일 새벽 이후 25일만에" 라는 한정이 있어서요... 이 부분은 환희님께서 사소한 착오가 계신 것 같네요. ^ ^;
정말 뭐 이젠 허탈할 뿐입니다.
정부와 그 홍보지들 휴,
그냥 개가 짖는다.. 이렇게 무시하고 싶지만...
아직 조선일보는 꽤 강력한 매체력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아가리 권력이라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