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사태 : 촛불문화제와 소녀들

2008/05/08 10:56
부제 : 문득 떠오른 추억들, 그리고 항상 사랑스러웠던 이기심...


[....] 최근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겸 2MB 탄핵 집회(…)의 10대 참여율이 높은 것에 대해서 어떤 분들은 민주주의의 씨앗이라 부르며 감격하고 있는 듯 하다. 음… 뭐랄까…

왠지 2002년 월드컵 응원열기를 보면서 카니발이니 민주적 해방구니 월드컵 세대니 설레발쳤던 (그리고 열기가 사그러들자마자 버로우했던) 모습들이 떠올라서 애매한 느낌이 든다. [....]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이 모습들은 민주주의의 씨앗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예 관계없지도 않다. 바로, 민주주의의 ‘재료’다. 재료는 배합 방식에 따라서, 요리 방법에 따라서 전혀 엉뚱한 결과물로 나올 수도 있다. 재료는 사용법에 따라서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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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cold, 민주주의의 씨앗이라…  중에서


0.
지난 화요일 촛불문화제에 다녀왔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내려다보는, 아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라는 그들만의 성(城)에 둘러쌓인,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청계천, 그 광장에 그날따라 바람이 몹시 불었다. 시민들은 분노했고, 때론 즐겁게 웃었으며, 그렇게 마음을 함께 나눴다. 그게 반갑기도 하고, 늘 그렇듯 낯설기도 하였다. 그리고 내 마음에는 여전히, 세속적인 욕망과 공동체적 소망과... 그 둘 사이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는 또 다른 내가 있다.


1.
그날도 십대 소년소녀들은 저 나름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저도 결혼해서 애기 낳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조중동이 '괴담'으로 부르는 그 '비과학적 공포'에 바탕해서 과장되게, 하지만 꾸밈없이 이야기하는 소녀는, "지금 엄마는 제가 도서관에 있는 줄 알아요. ㅎㅎ" 이런 이야기로 청중의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 소녀의 공포는 비과학적이고, 그녀의 소망은 괴담에 바탕하고 있으므로 무효. 라고 '판정'는 조선일보는 참 과학적인 신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 과학적 신념에 의해 '진실'보다는 '국익'이 우선한다는 황우석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려고 그렇게도 무던히 설레발치고, 그 압도적 거짓과 기만에 의해 국익의 실체조차도 모호해지고, 자신의 정체가 발가벗겨지자, 아니면 그만이지 뭐, 이렇게 모르척 했었나보다.


2.
내 십대에도 놀랄만한 암흑과 놀랄만한 별천지와 놀랄만한 건조함과 놀랄만한 달콤함들이 있었다.
나는 한겨레를 읽었고, 노동해방문학을 읽었으며, 학교를 자퇴하고, 남산도서관으로 등교하곤 했다.
나는 '0의 이야기'를 탐독했고, 삼류 재개봉 극장들을 배회했으며, 포르노와 헐리웃 영화가 정말 내 무미건조한 삶의 구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프랑스 포르노와 헐리웃 영화들을 좋아한다. 물론 좀더 그 취향은 다채로워지기는 했지만.

어느날 남산 도서관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대학생 누나, 형들의 물결에 휩쓸려 경찰에 쫓기기도 했고, 그 때 내 호흡기로 들어온 너무도 불쾌한 그 어떤 것... 사과탄, 지랄탄, 최루탄...숨쉬기 힘든, 눈물, 콧물 마구 흘러내리는 그 '과격한 놀이'를 끝낸 뒤에 집에 돌아와선, 그 때는 집에 자퇴한 걸 숨기고 있던 바로 그 때였던 것 같은데, 어서 숨겨둔 비디오를 봐야지(그건 아마도 아주 아주 야한 비디어였을거다... )라거나, 혹은 록키시리즈 중 어떤 것을 마저 보아야겠군.. 이런 생각이 마구 마구 마음 속에서 꽃피던 그런 시절이었다.


3.
광우병 사태는 이기심에 바탕하고 있다.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이 모든 에너지는 그 바탕에 이기심이 깔려 있다.
잘못하다간 내가 X되겠구나, 싶은 위기감이 여기에 있는거다.
그게 '광우병 로또'심리다.
우리는 로또에 당첨되지 않으리란 걸 뻔히 알지만 로또를 산다.
그와 똑같이 '광우병 로또'에 당첨되지 않을 확률이 훨씬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백만분의 일, 아니 억만분의 일이라도, 그 광우병 로또에는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은거다.
이건 당연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촛불문화제에서 발언한 그 귀여운 마스크한 소녀의 발언은 정말 정말 이 사태의 본질을 명징하게 함축하고 있다.
나는 그 이기심을 지지한다.
그 이기심이 사회적인 상상력, 공동체적인 상상력과 만날 수 없다고 해도 나는 일단 그 이기심은 여전히 지지하고, 이건 지지하거나 말거나 영원히 계속될거다.

시민들은 무슨 대단한 사회적인 공동체의식이나 반미의식이나 이명박 정권에 대한 의식적인 거부나 이런거 별로 관심없다. 나부터도 이런 건 그다지 관심이 없거나, 혹은 관심을 갖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무슨 대단한 공동체의식이나, 정치권력에 대해 고도의 비판적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미국은 무조건 짜증난다는 그런 반미의식, 나에겐 전혀 없다. 시민들 대부분도 그럴거다.

나는 다만 이건 정말 거지발싸개 같은 협상이고, 이 협상은 협상도 아니다라는 건 안다.
그래서 총선 한 달전에 협상 스케줄이 결정되었고, 총선 끝나자 마자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협상을 일주일 만에 쫑냈으며, 그렇게 미국축산업계에 한아름 선물바구니 준비하고 이명박과 부시가 캠프데이비스에서 사진 한방~! 한 그 일련의 파노라마, 그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이명박의 즉흥적인 '애드리브'의 진정성을 도무지 신뢰할 수 없게 하는거다.


4.
"미국인이 먹는 똑같은 쇠고기"
요즘 본격적인 미국신문을 선언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여전히 미국축산협회 홍보지 같은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이제 너무 들어서 지겹다. 이건 정부에서 친여 기득권신문 일면에 내보낸 광고와도 물론같다. "광우병은 엉터리 소동"(5월 6일자 사설)이고, "어떤 탤런트의 미친 발언"이 "인터넷을 주름잡고 있는 사태"(5월 5일자 사설)를 막으려면, 이제라도 "국정의 예견, 조정, 감시, 통제 기능"(위동)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고 일장 훈계하신다. 이명박이 가난한 국민들을 너무도 사랑하여 "가난한 국민들을 '미쳐도 좋으니 고기를 먹겠다고 환장한 인간들로 만들어 버렸"듯(강유원), 조선일보는 무식한 국민들을 너무도 사랑하여, 감히 미국민과 한국민을 동격에 놓는 불경을 저지르고 있다.

언젠가 아틸라님은 이렇게 이야기한 적 있다.

세계관의 혼란: 선거로 권력을 잡은 사람이 쿠테타로 권력을 잡은 사람처럼 행동하면 도대체 그의 정통성은 어디서 오는걸까? (아틸라)

이건 마치 쿠데타 사령부에서 내리는 지령같은 느낌도 들고, 대한민국 정부가 과연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부가 맞나 싶은 생각도 들게 한다. 계엄 상황, 혹은 준전시상황을 방불케하는 조선일보의 설레발은 물론 그 이면에 '뉴미디어 전쟁'의 전초전으로 이 광우병 사태를 위치시키려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들게 한다. 밀리면 죽는다는 절박함이 이렇게 눈치빠른 조선일보를 더욱 더 노골적인 야만으로 이끌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거다.

그러니 '거대신문이 방송을 장악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라는 흥미롭고, 본격적인 싸움이 광우병 사태와 맞물려 펼쳐지려고 하고 있다. 조선일보, 급하긴 급했나 보다. 양상훈 칼럼은 그 조바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나는 실은 광우병 사태 보다는 이 싸움에 오히려 관심이 간다. 이에 대해선 따로 글을 쓰고 싶다). 암튼 미디어오늘, 프레시안, 그리고 조선일보 칼럼에서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미디어 장악을 위한 본게임은 그 소녀의 욕망과 나와 당신들의 욕망, 그리고 광우병을 통해 드러난 우리들의 이율배반적인 욕망들까지를 총체적으로 조정하고 싶다는 조선일보의 야심이 걸린 아주 아주 '커다란 한판'이 될 것임에 분명해 보인다.

좀더 쉽게 말해볼까...
"피디수첩이 없었다면, 저 무식한 족속들이 이렇게 길길이 날뛰는 일은 없지 않았겠어?"
누군가, 가려진 미디어 저 뒤 편에서 이렇게 혀를 차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던져질 주사위가, 미친 소 덕분에, 좀더 빨리 던져진 느낌이다.



사족. 좀 딴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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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추천글(팟캐스트)
새드개그맨, 청계천 촛불 문화제 현장 리포트 (08.05.04)

foog, 잡념 : 미국산 쇠고기 개방 사태에 대해
[.... ] 요컨대 쇠고기 개방 문제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복잡한 사안이다. 그것은 자유무역의 부작용, 식량의 생산과 소비 체계의 부조화, 육식 소비로 인한 환경적 재해,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소비불평등 등 여러 근본적이고 철학적이고 경제학적인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물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이 이러한 문제의 실체에 조금이나마 접근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부시 행정부의 등장이 미제국주의의 실체를 두드러지게 했다면, 이명박 정부의 등장이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두드러지게 한 측면도 있다. 그런 한편으로 자칫 일부에서 보이는 이명박 정부를 절대악으로 상정하는 저항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우려도 있지 않은가 우려되기도 한다.

marishin, '광우병 정국' 단상
'광우병 정국'은 새로운 정치의 희망과 가능성이기 이전에, '한국 사회'가 안에서 스스로 무너져내리는 '내파'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아주 분명하며 불길한 징후다. 기성 세대는, 제도권 정치는, 그리고 언론은 이 요구과 현실의 괴리를 이해하고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이 문제는, 젊은이들이 광우병 촛불집회를 새로운 참여 정치의 공간으로 발전시킬 상상력과 감성을 발휘하고, 전략과 전술을 개발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또 그들과 적극 연대하고 그들을 지원할 세력이 존재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낡은 감성과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는 한, 좌파 세력이 끼어들 자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capcold, 민주주의의 씨앗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