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디워관련 100토론 단상 1 : 어찌하여 진중권은 소통하기를 그치고, 권위의 사제가 되어 기어코는 꼭지가 돌았는가.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권위적 계몽주의의 종언 - 디워 관련 100분토론 단상 2.

: 무식한 대중도 존중받고 싶단 말이다.







1. 진중권의 정답, 그리고 채점  

진중권이 디워 현상의 네 가지 코드를 지적한다.

ㄱ. 애국주의 코드
ㄴ. 민족주의 코드
ㄷ. CG 기술에 대한 찬미  
ㄹ. 심형래 개인에 투사되는 인생극장 코드

진중권의 위 네 가지 가설은 모두 충분히 설득력 있는 가설이다.
다만 진중권은 문화비평가로서 '디워'를 둘러싼 사회적인 현상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이지, '디워'현상이라는 문제를 출제하고, 그 '정답'을 결정하고, 그 정답에서 일탈하는 '해석'들을 채점하는 시험관은 아니다.

그런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런데 진중권이 100분토론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 자신에게 그런 권력이, 자격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자기 해석과 다르는 이유로 비아냥과 조롱과 짜증을 폭발시키는 태도는 디워에 대해 비판하면 무조건 역적으로 취급하는, 무슨 매국노로 취급하는, 그러니 진중권이 비판하는 소위 '디워빠'로 불리는, 일부 디워 열혈펜들의 유아적 행태와 전혀 다르지 않다.

그 양자간 태도의 본질은 동일하다. 그 본질은 폭력성과 배타성이다. 물론 그 양자의 의견, 입장을 지지하는 근거들, 무기들이 있느냐 없으냐의 '부차적인' 차이만이 존재한다. 이것은 부차적이다. 적어도 그 태도 자체가 표현하는 폭력과 배타성과 비교형량하면, 그건 정말 부차적으로 보인다.

무식하면 입다물라!
진중권은 그렇게 근엄하게, 때론 짜증섞인 어투로 무식한 네티즌에게 '명령'하고 있다.


2. 문화상품 비평

당신은 왜 디워에 대해 떠느나?
그건 그저 단순한 자기과시욕에 사로잡힌 나르시시즘인가, 아니면 자신의 고결하고, 정의로운 견해에 반하는 그 '무식한 악당'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정의감의 발현인가?

문화상품에 대한 비평(행위, 그 비평의 광장)은 그저 자신의 관점, 자신의 인식틀과 방법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무수히 많은 개별 행위들의 어울림에 불과하다. 자신의 해석만이 정의라는 강박관념을 실천하는 강박증 환자들의 사이코드라마도 아니고, 자신의 정답이 세상의 정답이 되어야 한다는 칼부림 나는 권력쟁투의 콜롯세움도 아니다. 선과 악, 혹은 진보와 보수라는 획일적인 구획을 나누고, 상대 진영을 묵사발 만들어야 하는 전투가 아니다. 아니 아니어야 한다.

문화상품으로서 영화를 비평한다는 것은 자신의 관점과 타인의 관점을 섞이게 하고 싶다는, 대화하고 싶다는 소망의 표현에 다름 아니며, 그래서 좀더 재밌게, 의미있게 살고 싶다는 투정에 불과하다. 적어도 영화를 보고, 그에 대해 토론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치투쟁하는 거 아니고, 권력쟁투하는 거 아니다. 그래서 그 쟁투 끝에 얻는 건 무엇인가? 어느 일방의 승리, 그게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어느 일방의 패배, 그게 남기는 건 도대체 뭔데?  

'디워 전투에 나서자'는 '한' 네티즌의 선동적인 글을 특별히 선별해서 인용하는 진중권은, 그런 특정의 선동적 문구를 인용함으로써 논의를 자극적으로 디자인하고, 일부 디워 열혈펜이 행하는 전투를 스스로 행하고 있다. 이제 한 영화를 둘러싼 대화는 즐거운 토론이, 차이가 흥미롭게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교류가 아니라, 전투가 된다. 전투적 선동을 비판하면서 스스로는 전투를 선동하고 실천하는 이 아이러니.


3. 디워, 그리고 황우석

디워는 '악'인가?
디워는 '타도해야 하는 적'인가?
심형래는 황우석인가?

디워를 둘러싼 현상에서 디워에 대한 열광적인 일부 펜들의 맹목적 환호와 그 공격적인 배타성을 근거로, 심형래와 황우석을 등가로 맞바꾸는 그 놀라운 둔갑술, 그 놀라운 포장술에 나는 감탄하지만, 전혀 동의할 수는 없다.

해석의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문화상품을 둘러싼 견해대립과 국가권력, 언론권력, 그리고 바이오산업의 장미빛 미래를 기대하며 군침을 흘렸던 자본권력이 '담합'해서 카르텔을 구축하고, "진실보다는 애국"이라는 기괴한 이데올로기를 유포했던 황우석 파동의 광풍이 어떻게 같나?

디워 열풍 뒤에 국가권력과 언론권력, 그리고 영화산업의 기이한 담합과 그런 권력의 카르텔이 과연 존재하나? 어떤 형태로 어떻게 존재하는데?


4. 목적론적 비평의 방법론

다시금 질문해보자.
비평은 무엇이며, 또 비평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진중권은 다음과 같은 취지로 진술한다.
비평은 피드백 시스템이며, 그래서 그 비평(비판)이 비평대상이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되기 위해선 그 비평은 냉정해야 하고, 감정적인 이끌림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비평은 대중의 감수성에 아부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전문비평가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텍스트를 중심에 놓고, 다른 외부의 조건들에 대해서는 폐쇄적인, 텍스트만을 중심에 놓은 방법론이 채택된다. 이 방법론은 과연 유일무이한 비평의 방법론인가?

비평은 한 해석자의 해석이며, 그 해석은 다양한 방법론을 갖는다.
어떤 방법론이 다른 어떤 방법론보다 우월한 것도 아니고, 어떤 방법론이 다른 방법론을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권력의 위계가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그 당대의 시간/공간을 지배하는 '다수설'로서의 방법론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인 권력과 권위로서 채택된 것일 수는 있을지어정, '진리'로서 채택된 것일 수는 없다.(보유 참조)

앞선 글에서 말했듯, 아리스토텔레스의 극작법은 권위있는 가설일지는 몰라도, 그걸 거절하면 쓰레기 취급되어야 하는 도덕적인 규범이나, 사이비로 취급되어야 하는 종교적 진리는 아니다.
비평가는 해석하는 자일뿐, 사제가 아니다.

대중은 계몽대상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그저 대화의 상대방으로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비평가는 권위의 사제가 되어서는 안되고, 그 대중이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말동무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전문비평 집단과 대중의 간극이 심각하다.
디워는 그 간극을 비약적으로 표출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에드워드 사이드가 주창한 '세속적인 비평'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사이드가 말한 그 '세속'은 그저 단순한 대중추수가 아닌 비평의 목적론적 이상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유.

이하 단상1.에 남겨주신 여러 블로거들의 의미있는 논평에 대한 제 대답을 정리해서 본문을 보충하는 의미로 남깁니다.

1. 시네마/무비의 구별,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그리고 괴물 (베네치안)

"상업영화, 즉 '무비'는 사회적인 담론을 제시하는 것을 거부함과 동시에 대중이 사회적인 담론에 무심하도록 만듭니다." 라고 하셨는데요.

가령 가까운 영화사를 되돌이켜보더라도, 프랑스 누벨바그 아이들이 가장 존경했던 히치콕은 철저히 '상업영화'를 찍었던 감독이었잖아요. 히치콕 영화는 어떤 영화보다 상업적이면서, 또 동시에 당대의 자본주의와 그 속에 사는 인간의 분열증적 정서를 표현했던 위대한 예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벨바그 감독들의 상징처럼 이야기되는 '작가주의' 역시도 그게 무슨 대단한 예술에 대한 지향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벨바그 출신 감독들의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난해해지는' 경향을 갖는데, 이에 대해선 정성일씨 역시, 그게 본의인지는 알수 없으만, 매우 비판적인 논평을 남기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영화'산업'과 영화'예술'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방식에 대해 찬성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그 자체로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상품'이면서, 또 '당연히'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의식지향적인 영화, 쉽게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가 있다고 치죠. 그것이 목적하는 바는 '대중의식'의 각성일테죠. 그런데 대중과 만나지 못하는, 아니 대중을 무시하는 '태도'로 대중과 만나겠다면 그건 전제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괴물은 상업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그 상업영화는 당연히 예술이기도 하겠지만요. 반복해서 제 견해를 말씀 드리자면, 저는 영화는 산업이면서 동시에 예술이지, 그 양자의 영역을 획일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표준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표준이 존재한다면, 그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해석자들의 주관적이며, 자율적인 수용회로 안에서 '상대적'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구요. 이를 획일적으로 규범화, 개념화할 수 있는 '권위'가 존재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가령 말씀하신 '괴물'을 '예술'로 보아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괴물'을 '예술적인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강한 동기가 괴물이라는 텍스트 안에 잠재되어 있다는 정도라면 그 견해에 공감합니다만. 괴물은 '당연히' 객관적으로 예술이고, '디워'는 당연히 그렇지 않다라는 지적이시라면 전적으로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2. 문자중심주의. 텍스트 중심주의 (베네치안)

누벨바그 악동으로 고다르와 함께 누벨바그를 이끈 트뤼포의 경우에도 문자중심주의에 대해서는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제 편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진중권씨의 영화해석은 너무 문자중심적이고, 또 텍스트의 서사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텍스트의 해석이 '텍스트로 돌아가자'라는 표어 하에 이뤄져야 할 필요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저는 오히려 그런 텍스트 중심주의를 깨뜨려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굳이 비평용어를 거칠게 빌자면, 독자반응비평, 혹은 수용미학적인 관점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어야 하고, 오만하고, 불친절한, 그리고 그 수준이 그다지 높다고 평가되지도 않는 저널비평에서도 문자중심주의적인 텍스트 비평(좀더 직관적으로 풀어보자면 '줄거리' 비평)에서 좀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굳이 부연하자면, 적어도 '디워'를 분석하고, 비평하는 진중권시의 방법론은 '텍스트 중심주의' 문예사조를 비유적으로 인용하자면, 신비평의 태도에 가까운데요. 저는 그 방법론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둘러싼 콘텍스트를 텍스트 해석의 얼개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독자반응비평, 혹은 수용미학적 방법론도 충분히 다른 방법론으로, 텍스트 분석의 방법론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씀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3. 가설로서의 해석. 해석의 무한한 가능성(디워를 예술로 '발견'하는 해석도 가능한가?) (베네치안)  

해석은 정답이 아니라, 하나의 '가설'일 뿐인데, 그걸 정답으로 강요하고, 그게 만장일치라고 '단정'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정말 심한 억압을 느낍니다. 그게 제 솔직한 느낌이에요. 그리고 해석은 어떤 영화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행위이지, 영화를 어떤 객관적이고, 추상적으로 규범화된 획일적인 표준으로 '등급'매기는 행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비평의 본령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진중권씨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적어도 디워에 대해서 논하시는 바를 관찰하면 그런 것 같아요. 이는 좀 과장해서 말씀드리자면 문화적 파시즘의 태도라고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좀더 적극적으로 디워라는 텍스트 자체에 대해서 거칠게나마 논하자면, '디워'를 예술로 볼 수 있는가.. 란 질문을 던지신다면, 저는 당연히 '긍정'합니다. 디워는 물론 훌륭한 영화가 아니지만, 디워를 예술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해요.

디워를 예술로 '해석'하는 제 주관적 수용회로가 '가능'할수도 있다는 차원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가령 영화가 그 전체로서, 텍스트 전체의 부피가 온전하게 보전되는 형태로서만 예술적인 가치를 획득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장면 하나, 어떤 잔상 하나로 예술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신다면, 가령 기형도가 "단 한 줄일 수도 있다"라고 노래하는 바나, 마르쿠제가 "예술은 중재된 형태로 그 혁명적인 잠재력을 표현한다"는 바의 취지를 긍정하신다면, '디워'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 가능성을 저는 제 나름으로는 발견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그 마지막 장면은 '심형래씨의 민망한 연애편지'를 말씀드리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4. 푸코, 영화의 사회적인 기능 (베네치안)

푸코 영화를 '자본주의의 반동적인 회상장치'라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죠. 저는 푸코의 방법론과 인식틀에 감탄하고, 푸코를 매우 존경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최소한 영화에 대한 푸코의 인식에 대해서는 그다지 찬성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베네치안군께서 말씀하시는 취지("영화라는 매체가 우리가 살아가는 민주주의 사회의 긍정적인 발전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에 저 역시 전폭적으로 공감하고, 영화가 그런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데요. 그것이 '예술'영화로만 가능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거듭 말씀 올리자면, 영화는 산업이면서 그 자체로 예술양식의 하나라고 보구요. 그 정도의 차이는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유럽쪽에서는 존 맥티어넌의 '라스트 액션 히어로'를 굉장히 중요한 포스트모던 경향을 표현해주는 영화로 취급(해석)했지만(그 개봉 당시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대대적인 특집을 기획했던 것으로 압니다), 정작 미국내에서는 그저그런 '애들 영화'로 폄하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해석은 그 해석을 낳는 공간/시간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가 아닌가 싶어요.


5. 비평의 영역과 재미의 영역은 같은 층위인가 (N.)

본질적으로 그 영역은 같은 것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비평'과 '영화적 재미'는 서로 구별되는 영역에 속한 것으로 취급된다고 봅니다. 이는 현실 비평이 자신의 지식을 과시적으로 배설하거나, 혹은 그 반대로 보통의 소박한 관객들이 영화 후체험(영화를 보고 난뒤에 그 영화를 매개로 좀더 즐겁게 대화하고, 그 의미를 풀어가는..)에 대해서 그다지 큰 의미를 두고 않고, 자신의 주관적인 감상과 소감을 배타적으로 '유지'하려는 성향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이 점에 대해서는 큰 아쉬움을 갖고, 양자 모두 영화를 통해 좀더 즐겁게 영화 그 자체를, 더 나아가 사람과 사회와 '관계'를 즐겁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원합니다. 양 집단(?) 모두 전향적인 태도의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5-1. 같은 층위라면 왜 그런가 (N.)

위 답변으로 갈음합니다. ^ ^
그것은 궁극적으로 같은 층위에서 서로 구별없이 비평하는 것, 그리고 그 비평에 대해 즐겁게 대화하고, 영화를 매개로 자신의 인식 지평을 좀더 크게 확대하는 것, 이런 일들이 '재미'로 일상적으로 향유되기를 바랍니다.


6. 전문가 집단의 비평에 대한 가치 평가(N.)

솔직히 현실적으로 신뢰하고, 또 그 의견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비평가들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간략히 기존 비평가를 언급하자면,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비평가는 정성일씨구요. 온라인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허지웅씨의 견해는 꽤 신뢰하는 편입니다.

한국 영화 비평의 수준(?)에 대해서도, 물론 제 주관적인 판단에 불과합니다만,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든 것 같구요. 특히나 저널리즘에서 행하는 비평들, 그리고 포털의 시스템과 연계되어 업/다운, 한줄 논평.. 등을 행하는 비평은 그 자체로 비평으로 인정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다만 전문비평의 영역은 여전히 의미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구요. 대중들이 만들어내는 아마추어 비평들과 서로 많은 접점을 갖고 즐겁게 대화를 만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저로서는 전문비평이 대중들의 소박한 비평에 많은 자극이 되고, 또 그렇게 대중들의 자발적인 비평문화가 고양되는 이런 모델이 정립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7. 영화에 대한 비판을 관객에 대한 비판으로 동일시하는 문제 (별밤)

물론입니다. 양자는 서로 별개죠. 다만 서로가 '정답'이라고 우기는 태도에 대해서는 그것이 그저 해석이고, 또 관점의 차이임을 인정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즐겁게 대화할 수 있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뭐 서로 '응원'하고, '지지선언'하고.. 이러고 있으니.. 좀 이상해보입니다.


8. 관객들과 '호흡'하는 비평이란 무엇인가 (Gloridea)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호흡'하는 그 다양한 행위 유형을 추상적으로 개념화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네요. 그 '호흡'과 '존중'의 형태는 객관적인 추상화가 어려운 개별 상황마다의 '편차'를 갖고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다만 최소한으로 제 소박한 견해를 말씀 드리자면, ㄱ. 적어도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항상 인정하는 태도가 견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ㄴ. 그리고 비평행위의 목적성과 부합하는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필연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9. 진중권 토론 태도는 '자위행위' 같다 (과객)

자위행위라는 표현은 ^ ^;; 굉장히 강하지만, 직관적으로 진중권씨의 태도를 상징하는 표현같네요. 물론 진중권씨도 사람이고, 때론 꼭지 돌 수 있고, 그 분노가 비평의 동인이 될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것을 과도한 공격성향으로, 과시적인 제스처로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리는지에 대해선.. 진중권씨에게 막연하게나마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아쉬움이 깊네요.


10. 계몽대상으로서의 대중 (이스트라)

대중을 일방적인 "계몽 대상"으로 보는 태도를 비판해주셨는데요. 전폭적으로 공감합니다. 물론 '대중심리'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때론 폭력적이지만, 그 현상 자체를 '대중, 혹은 시민'과 동일시해서 적대적으로 취급하는 것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설득하고, 유혹하고, 대화하는 '상대방'으로 바라본다면, 이런 비평태도가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물론 때로는 '싸워야 할 필요'가 존재하겠지만, 최소한 '디워'에 대해서는 그렇게 싸워야 할 이유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합니다. 서로 충분히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매개라고 생각해요.


11. 촘스키가 좌파 지식인들의 방법론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대중을 가르치려 들지말고 사실을 보여주고 그들이 스스로 결론을 내릴수 있도록 도와주워라" (시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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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Subject : 대중타령은 기만이다

    Tracked from Bad Land 2007/08/17 12:49 del.

    나는 '대중'이라는 존재가 실체없는 허상이라 믿고 있다. 노지아 님이 "대중과 지식 엘리트"라는 글이 내 입장과 얼추 비슷하다. ‘대중’이란 과연 어떤 집단인가? 사람들이 툭하면 끌고 나오는 저 ‘대중’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평범한 불특정 다수’를 가리키는 아주 소박한 말인 것처럼 사용되는 경향이 있지만, 적어도 ‘대중’이란 말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결코 소박하지 않다. ‘대중’은 허구적인 집단이며, 엄밀히 하자면 집단도 아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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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즈랑 2007/08/11 10:35

    민노씨가 좋아라하는 영화에 대한 이슈라 그런지, 그간 쓰신 글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평론가들이 많이 위협을 느끼고 있나 보네요. 예전에는 영화 잡지에 평론 하나 적으면 전부 굽신거렸는데, 이제는 일반인들도 영화에 대해 다들 한마디씩 할 줄 알게 되니 그런 걸까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크게 한번 양 편으로 갈려 서로의 입장을 내세우는 이슈들이 생길수록 사회가 점점 유연하게 변하리라는 희망은 가집니다. 절대 불변할 것만 같던 교조적 진실(도그마)이 깨지는 것을 좀더 많은 사람들이 확인하는 기회가 될테니까요. 그런데 가끔은 너무 불편할 정도로까지 과열되는 경향이 있어서 가슴속에 앙금이 남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7/08/11 18:22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정리가 안된달까.. ^ ^;
      그런 부분이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참 고맙네요. ㅎㅎ

      가즈랑님의 중요한 지적처럼("유연하게") 비평은 도그마를 깨뜨리면서, 스스로 권위를 추구하는 어쩔 수 없는 권력욕을 추구하게 되는 경향을 (현실적으론) 갖는다는 점에서 도그마 딜레마적인 존재위치를 갖는 것 같아요.

      다만 디워에 대해서는 이렇게 강압적으로 해석을 편협하게 일원화하고, 그것이 진리라고 주장할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좀 우스워보이는데요. 가만히 보면 제 글도 필요이상으로 목소리에 힘을 준 것 같아서 좀 민망하네요. ㅡㅡ;;

  2. 화분 2007/08/11 12:59

    어찌보면 다 그런거지, 뭐 그런거야.
    중권씨도 역사적으로 워낙 빠들한테 많이 당했더라고요.
    그래서 빠 알러지가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아픈만큼 성숙해지기 보다 신산해진 것 같아요.

    언젠가 한 시인이 평론가들이 자신의 시를 갖고
    무슨 주의네, 사상이네 풀어먹을 때는
    이게 뭔 소리래? 황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7/08/11 18:27

      ㅎㅎ
      반가운 화분 오셨고만요.
      "아픈만큼 성숙해지기 보다 신산.."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다만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투쟁해야 할 때와 대화해야 할 때가 결정되겠다 싶긴 하지만, 적어도 디워 때문에 이렇게 '전투적인 분위기'가 생길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의견은 충분히 다를 수 있고, 그 의견과 주장을 지지하는 근거의 권위도 다를 수는 있겠지만.. 나만 옳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그 '비평'이 궁극적으로 목적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그 방법론은 물론 '이론적인 방법론'이라기 보다는, 쉽게 직관적으로 풀자면, 그 '태도'를 말하는 겁니다. 그 태도가 '비평의 이론적 얼개'들과 '별개'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어려워요.

      p.s.
      한국은 안오시남? : )

  3. 속류히피 2007/08/11 17:22

    글쎄요. 진중권은 '영화 같지도 않은 영화'를 보는 대중을 무시했다기보다는 '영화 같지도 않은 영화'를 영화 같지도 않다고 왜 말을 못하게 하느냐를 주장한 게 아닐까요? 사실 핵심도 그거고요. 영화가 좋은 영화인지 나쁜 영화인지는 가치판단의 영역이니까 '꼭지가 돌' 이유는 없는 거죠. 단지 그 말을 못하게 하는 분위기에 '꼭지가 돈' 거 아닌가요?

    스킨 바꾸시니까 가독성이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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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8/11 18:30

      그렇다면 그 주장, 불만, 비판이 좀더 유효한 방법론에 대해 고민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론 냉정하고, 열띤, 그야말로 인정사정 보지 않아야 하는 '국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디워가 그런 국면인가, 그런 구체적 상황인가 제 나름으로 판단하면.. 글쎄요, 별로 그런 심각한 상황 아니거든요.

      꼭지에 꼭지로 대응하는 것이 전문가, 혹은 전문가의 태도이어야 할까요? ^ ^;;

  4. sylphion 2007/08/11 17:57

    저도 위의 속류히피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어제 토론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말도 못하게 하는 것이 문제다'였습니다. 그리고 진중권씨가 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를 내리던 간에 그냥 '개무시'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오히려 대중들이 그런 비평에 대해서 일일이 분노하고 쫓아가서 악플다는 모습이 더 우스워 보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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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8/11 18:35

      주신 말씀의 논리대로라면, 소위 '심빠'로 불리는 일부(정말 일부라고 생각하고 싶고, 또 보호해야 할 '어린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요) 독자들께서 영화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무시'하면 되지 않나요?

      비평은 그 자체로 대화하겠다는 의지인데, 다만 중요한 것은 대화의 방법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논평 고맙습니다. : )

      p.s.
      논평 중에서 "개무시"라거나 "우스워보입니다" 라는 표현에 대해선, 물론 솔직하게 표현하시고자 하는 취지인 것은 알겠습니다만, 이 상황에서는 좀.. ^ ^;;

  5. 속류히피 2007/08/12 12:25

    "때론 냉정하고, 열띤, 그야말로 인정사정 보지 않아야 하는 '국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디워가 그런 국면인가, 그런 구체적 상황인가 제 나름으로 판단하면.. 글쎄요, 별로 그런 심각한 상황 아니거든요. "
    진중권은 그런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뭐 진중권까지 안 가도 저는 이 상황이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보이지는 않거든요. 민노씨도 이 이상현상이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지금까지 '말하는 태도'를 문제삼는 사람들이 주로 극우파들이었다는 점에서 좀 오바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말하는 내용에 대한 비판은 없이, '싸가지가 없다' '토론에서의 예의가 없다.' '토론에 나오면서 티셔츠 나부랭이 걸치고 나오는 건 무슨 예의냐?' 등의 비난을 하던 사람들이 주로 극우파들이었기에 그런 것도 같습니다. (이 문단에 대해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좀 더 나아가서, 방법론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한 말씀 드리자면, 100분토론에서 진중권이 보여준 모습이 권위적이고 계몽적인 '나쁜' 전문가의 전형이라고 보고 계신 듯한데 제 눈에는 전혀 그렇게 안 보였다는 것입니다. 저도 '당연히' 권위적으로 군림하고 대중을 무시하는 전문가는 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디 워 현상'에서 전문가들이 보여준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이라고 하시는 의견에는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오히려 예를 들자면, 그 토론에서 반대측의 하재근이 전형적으로 대중을 무시하는 함량미달의 '전문가'라고 저는 봤습니다. "한국영화에 대해 한국 평론가는 칭찬을 해야한다."는 말은 좀 떨어지는 영화지만 평론가들이 잘 한다고 칭찬을 해서 대중들이 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말이잖습니까? 이거보다 더 대중을 무시하는 말이 있을까요? 이거보다 더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말이 있을까요? 평론가가 대중들과 가장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은 바로 자신의 전문적인 식견에 맞춰 가장 객관적으로 비평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너무 긴 댓글 죄송합니다. 트랙백을 이용할까도 생각했지만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 듯해서 그냥 댓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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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8/12 22:48

      말씀 잘 들었습니다.
      실은 히피님께서 트랙백 보내주신 글에 대해서도 나름으로 '반론'을 작성할까 싶은데요. 물론 싸우자는 거 절대 아니고, 그저 히피님과 즐겁게 대화하자는 그런 취지이고, 이 마음만은 이해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각설하고..
      "티셔츠" 따위를 평가표준으로 삼는 어떤 견해에 대해서는 그게 극우든 극좌든 뭐든.. ^ ^;; 솔직히 언급할 만한 거리가 되지 않는 것 같구요. 굳이 그런 '말장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오해 안합니다. 제가 아무리 오독이 심해도 설마 그런 취지 까지를 오해하겠는지요? ^ ^

      저는 하재근씨 견해를 비교적 '그 토론 주제'에 한정한다면 옹호하는 입장이구요. 하재근씨의 '해석'이 비평의 고전적인 패러다임 속에서 '감상적인 요소'를 도입한 얼치기처럼 '오독'되는 경향이 없지 않겠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방법론이고, 이론틀에 바탕한 입장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에 고대로 있는 그 '비평'이라는 말의 사전적 어원을 바탕으로 하재근씨를 가르치려는 진중권씨의 태도에 대해서는 좀 뜨아하게 됩니다. 물론 진중권씨를 그렇다고 제가 전적으로 배척하는 건 물론 아니지만요. : )

      별말씀을요.
      히피님의 논평은 제게도 큰 즐거움이고, 또 고마움인걸요. 개인적인 바람을 표하자면, 말씀 정리하셔서 트랙백 한방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

  6. 속류히피 2007/08/12 17:17

    저는 "감상적인 요소"라기 보다는 선동적인 요소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얼치기로 오독"한 게 아니라 평론으로 '장난질' 많이 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 사람의 평론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죠. 예전에 학벌사회와 관련된 토론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좀 순진하다거나 순수하다거나 뭐 그런 인상을 받았는데 말이죠. 하여간, 이번에 보면서 이 사람이 '착한 척'하면서 여럿 잡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정도로 고도의 술수를 부리는 인물로는 안 보이지만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폐해는 상당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어떤 기사에서 봤더니 이른바 노빠진영의 유명한 전사라고 하더군요. 그럼 그렇지 했습니다. 물론 이른바 노빠에 대한 가치판단은 접고 말이죠.

    그리고 진중권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의 토론이 아닙니다. 당연히 진중권의 '비평론'에 대해 하재근은 자신의 '비평론'은 이거라고 명백히 밝혔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전문가가 가르친다는 인상을 풍긴 것은 가르치는 전문가의 예의없음이 아니라 가르침 당하는 전문가의 무능력을 '비난'해야죠. 일반 대중에 대한 진중권의 '일방적인 가르침'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일면 수긍할 수도 있지만 하재근에 대해서는 전혀 수긍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상도덕'에 대한 논의가 아닌 다음에는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세상을 보는 가치관에 있어서 멀다기 보다는 가까운 님과의 사이에도(그렇다고 믿습니다.^^) 같은 현상을 보는 눈이 이렇게 차이가 있는데 먼 데에 있는 사람과는 어떨지 사실 좀 끔찍한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이렇게 대화가 가능하지만(맞죠?^^) 지향점이 먼 사람들과는 역시 표대결밖에 없는 것인지... 뭐 물론 이런 게 민주주의겠지만 말이죠.^^ 역시, 트랙백을 이용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냥 맥락이 이어지는 댓글로 남깁니다.

    혹시 몰라서 그러는데, 방명록에 질문 하나 남겨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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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그후 2007/08/12 19:37

    진중권의 이번 대응은 속류히피님 말처럼 "말도 못하게 하는 작금의 상황" 에 대한 것이었지 민노씨 말씀처럼 대중을 계몽대상으로 보고 무시한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좀 불순한 생각이지만 한 번쯤 악플러들을 제어할 필요도 있다고 보구요. 다른거 다 떠나서 악플 문제 그 자체만도 정말 심각하지 않나요, 오히려 민노씨님이 상황을 안일하게 보시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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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8/13 03:02

      그러셨군요.
      해석이야 다를 수 있는거죠, 뭐. : )
      악플러에 대해서는 저 역시, 그 악플러가 미성년이 아니라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쉬움을 전하자면 의견을 전해주시는 바는 물론 저로서도 반가운 일이지만, "안일하게" 라는 감정적 수사를 굳이 동원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 ^;

  8. djinni 2007/08/12 23:23

    이 포스트의 제목이 탁월 하군요 ㅎㅎ
    여기에 대고 진중권이 "말도 못하게 하는 작금의 상황" 어쩌구 그럽니다.
    이제야 처음으로 대중이 의사 표현을 한 것인데... 이걸 오히려 대중이 절대 권력을 가지고 평론가들의 입을 막았다고 하니... 대중은 더욱 꼭지가 돌아버립니다.

    악플/사이버 테러는 분명 문제이지만 그건 어디서나 논란/이슈에 발생하는 것들입니다.
    굳이 그걸 이야기의 대상으로 잡고 싸잡아서 대중의 본래의 의견에 물타기 하는것은 매우 비겁하지요.

    아무튼 대부분 민노씨의 의견에 동의 합니다. 좋은 글 잙읽었습니다. 저도 너무 치우치지 말아야겠슴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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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8/13 03:06

      고맙습니다. : )
      실은 제목이 좀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을 꽤 많이 했는데요.
      이렇게 너그럽게 해석해주시니 저로선, 솔직히 좀 많이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제가 좀 많이 속물이라서요. ^ ^;

      대중, 민중, 시민이라는 말이 갖는 그 추상성 때문에 다소간 논의가 뜬구름 잡기가 되는 경향도 많은 것 같기는 합니다만.. 여전히 소수의 권위자들이 대중(민중, 시민)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모델보다는 서로 소통하는 공동체적 유기성이 담보된 의사소통구조가 구축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 유기적인 모델 안에서 전문 비평의 역할도, 그리고 소박한 시민으로서의 일상적인 비평의 역할(이런 대중비평의 역할에서 블로그는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구요)도 서로 상생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네요.

  9. 시계태엽오렌지입니다. 2007/08/13 00:44

    한 마을에 화려한 휴가라는 편의점이 개봉하고 뒤이어 심형래 편의점이 개봉했다.
    그 편의점들의 주인은 한두명이 아니라 마을 상인들 모두가 공동으로 투자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지갑을 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상인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때 일이 터져 버렸다.
    심형래씨가 주변 장삿꾼들이 자신을 조직적으로 따돌리고 있다고 울분을 토하면서 소비자들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고 다른 상인들은 아니라면서 심형래 편의점을 이용하지 마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동네 주민들이 점차 집밖으로 나오더니 호기심에서 심형래 편의점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결국 대박이 터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심형래 편의점에서 줄을서서 기다리던 소비자들이 바로 옆가게인 화려한 휴가편의점에서도 많은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두 편의점 모두 대박이 터진 것이었다.
    그러자 애초에 싸움을 말리려던 몇몇 상인들마저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왕 벌어진 싸움을 말리기보다는 더 불을 붙일수록 더 많은 소비자들이 집밖으로 나와서 돈을 쓴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동네 주민들이 심빠, 심까로 패를 지어서 싸울수록 상인들의 지갑은 두둑해지자 그들은 싸움을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말 잘하는 몇몇 앞장이들을 전면에 내세우고는 뒷짐만 진채 웃고있었다.
    자. 이제 돈잔치는 시작됐다. 싸움에 불을 붙여라. 그동안 홀대받고 가난하던 지식인들도 이 잔치에 참석하라. 아주 자극적인 말을 써서 싸움할수록 황금알은 더 커진다.
    한국영화의 건전한 발전, 생산적인 논의, 그런것은 상관없다. 어차피 벌만큼 벌고나서
    뒤에가서 생각하면 그만이다.
    --- 시태오입니다. 화려한휴가가 500만을 육박하는 것과 100분토론을 보고 느낀 제 개인적인 생각을 한번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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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8/13 03:11

      시태오님 와주셨군요. ^ ^;
      며칠 안되었는데 벌써 친숙해지는 느낌입니다.

      비유적으로 풀어주셨네요.
      논평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주신 논평은 상품 마케팅의 차원, 그리고 그것과 함께 공생하는 미디어와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그리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해석이라고 봅니다. 그 점에서는 저 역시 크게 공감해요.

      이번 논의에서 진중권씨의 상대 패널로 나오신 하재근씨의 전언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되는 것 같은데요. 그 점은 무척 아쉽네요. 저는 개인적으론 하재근씨의 취지에 깊이 공감하는 바가 큽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10. 시계태엽오렌지입니다. 2007/08/13 06:48

    변변치 않은 글에 공감하신다니 고맙습니다. 저도 하재근씨를 겨냥해서 이야기 한것은 아닌데 표현력이 약한 관계로..... 솔직히 그날 토론은 의도적으로 말싸움으로 전개한듯한, 아니 조장한것 같았습니다.
    진중권씨에게 개인적으로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날은 토론에 참석한 목적을 모르겠더군요. 그리고 요즘 아주 적극적(?)으로 네티즌과 싸우는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무 목적없이 네티즌과 싸우는 모습이 도리어 뭔가 의도를 가지고 하는게 아닌가하고 의심스럽기도하고 화가나기도 해서 두서없이 감정적으로 적었습니다. "가난하고 홀대받던 지식인들"이란 문구가 너무 마음에 안드네요. 급히 쓰다보니까.. 이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세상을 조금 음모론적인 시각으로 보는면이 있어서요..
    "어떤 문제의 원인을 모르겠다면 그것으로 인해 일어나는 결과를 유심히 살펴보라."
    라는 말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습니다. 살아보니까 세상일이 되게 복잡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그 법칙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더라구요.
    끝으로 날도 더운데 몸 건강하십시요. 이렇게 즐거운 대화를 할수 있어서 너무 기쁘네요.
    (참, 한겨레 너무 많이 변한것 같습니다. 그판에 같이 끼어 들어서 적극적으로 논란에 불을 붙이는 걸 보고서
    너무 씁쓸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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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8/13 07:52

      제가 고맙죠. : )

      하재근씨의 발언취지는 영화라는 문화상품의 특수성과 그 관객이 영화비평에 적극적으로 '개입'되어야 한다는 점, 즉 수용미학적인 비평의 방법론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관점으로 말씀하신 게 아닌가 저는 해석했는데요. 이에 대해 진중권씨가 대하는 방식은 원론적이고, 다소간 식상한, 그리고 필요이상으로 감정적인 반발이었다고 느꼈습니다. 저 역시 진씨에 대해 비교적 호감을 갖고 있었던 터라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다만 제 지난 글들을 돌아보니.. ㅡㅡ;;
      역시나 저 역시 다소 과장적이고, 또 감정적인 글을 쓴 것 같아서 좀 민망해지네요.. 저야 뭐 진중권씨와 같은 비평의 (현실적인) 무게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요.

      진중권씨께서 보여주시는 토론 이후의 반응에 대해서는..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의도적인 것 같기도 하고.. ^ ^; 체질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다만 이렇게 형식적인 엄숙주의를 깨치고나와 '지랄'(자극적인 표현에 대해선 양해 부탁드립니다)하는 모습도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이기는 합니다. 비록 그 방식이 다소 폭력적이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솔직해 보인달까.. 그러기도 해서요.

      한겨레.. 에 대해서는 지난 한겨레블로그에서 활동하던 때부터 굉장히 많은 아쉬움을 갖고 있는데요. 어떤 철학도 발견할 수 없는 인터넷한겨레의 운영(특히 한토마나 필넷), 황우석 파동 때의 뜨뜨미지근한 행보, 조선일보와 기고자를 나눠쓰는 것, 포스코사태(금속노조 광고 거절), 지난 버지니아 공대 사건에서의 선정적 보도행태 등등.. 좀 마음에 안들고, 아쉽고.. 그러네요.

      저 역시 시태오님과 이렇게 대화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모쪼록 휴가철 건강 조심하시구요. : )

  11. egoing 2007/08/14 05:25

    매우 정교하게 상황을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파쇼즘을 걱정하면서, 그 불안전한 에너지지 앞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격이라고 할까요? 이런 것은 지식의 올바른 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진중권님의 두뇌를 흡모합니다만, 그의 입을 싫군요. 부족한 글 살짝 걸어두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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