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안내 : 스포일러 (전혀, 민감한 독자에게도, 아마도 전혀) 없습니다.
* 트위터에 썼던 단상들을 시간의 역순으로 옮기고 가급적 최소한으로 추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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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를 연기한다는 건 홍보문구일 뿐이다.
김혜자는 그저 '엄마'를 연기한다. 그래서 더 설득력있는 연기를 펼친다.


7. 이병우의 음악은 정말 훌륭하다. '집시의 시간'이나 '굿바이 레닌'에서처럼 황홀하게 빠져들만큼 좋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영화의 테마와 정말 잘 어울린다. 이병우의 음악은 김혜자가 자신의 이율배반, 자신의 모순된 진실을 담아 추는 그 춤 만큼 깊은 울림을 준다.
    
6. 마더에서 가장 슬픈 대목은 우리들의 '비루한' 행복이 유지되기 위해선 우리보다 더 비루한 누군가가 버려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행복이 누군가를 짓밟는 것이라면 그 행복은 과연 행복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인가? 
    
5. 마더는 관습적인 이야기의 구조를 영화가 얼마나 비틀수 있고, 또 그런 작위적이고, 계산된 비틀기가 어디까지 허용되며, 궁극적으론 영화의 테마와 어울리면서 영화적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영화다. 시나리오는 매우 뛰어나다. 독창성의 요소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상투성을 가장 효과가 뛰어난 극적 요소로 배치함으로써 이야기 자체의 충격을 증폭시킨다. 마더의 시나리오는 영화가 뭔지 아는 시나리오다.
    
4. 마더는 극단적인 비극의 정서를 배경으로 한다. 서로를 잡아먹는 진실이 밝혀지면, 빛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기만이 열리고, 위선이 열린다. 아, 슬프도다... 그리고 우리도 누군가를 잡아먹는다.
    
3. 그 김혜자의 진실은 여러가지 다른 층위의 진실들로 엉킨다. 싸구려 경찰의 진실, 알 수 없는 범죄자의 진실, 목격자의 진실, 그리고 피해자의 진실은 서로가 서로의 진실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
    
2. 마더는 '진실'을 김혜자를 통해 알려주면서, 최소한 그 '진실에 대한 정보'를 흘리면서 시작한다. 그 진실은 물론 이제 꼬이는 일만 남았다. 종종 인용하는 황지우의 경구, "범죄자는 거짓을 위해 진실을 진술한다. 그 때의 진실이 중요하다."
    
1. 마더는 [살인의 추억]의 소품 버전 같다. '살인의 추억'에서 전봇대에 오른 광호가 외친다, "뜨겁다, 뜨겁다." 진실은 뜨겁다. 그 뜨거운 진실은 하지만 얼마나 싸늘하고, 차가운 것인가. 그 뜨거운 진실이 차갑게 식어버리면, 이제 삶은 죽음보다 더 단단한 기만이 된다.

0. [마더]에서의 죽음의 구조는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우리사회를 둘러싼 죽음의 구조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린다. 우리들은 누군가를 죽이는데 적극적으로, 혹은 미필적으로, 최소한 의식하지 못한 채로 기여하고 있다. 우리는 그 죽음을 둘러싼 진실과 거짓의 구렁텅이에 빠져, 그렇게 우리를 기만하면서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죽음보다 더 독한 마약이 필요하다"(정현종의 시구에서 일부 빌려옴)


추.
최소한 영화의 주제가 성취된 수준, 영화라는 예술형식이 예술일 수 있는 그 작품의 매혹이라는 직관의 차원으로만 본다면 [마더]는 [박쥐]보다는 좀더 나아가고 있다. 칸의 선택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이해할 수 없는 것인데, 그건 아마도 지금/여기/대한민국이라는 일탈된, 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욕망과 그 욕망을 붙잡기 위해서 생겨나는 죄의식의 구조를 그네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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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마더(2009) - 내 새끼즘

    Tracked from Fly, Hendrix, Fly 2009/06/03 18:54 del.

    마더 감독 봉준호 (2009 / 한국) 출연 김혜자, 원빈, 진구, 윤제문 상세보기 나이를 불문하고 한국의 애들에게 믿을 구석은 엄마다. 엄마는 밥도 주고 도시락도 싸주고 학원비도 주고 용돈도 준다. 엄마는 이기적이다. 엄마에게 '정의'라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내 새끼'가 잘 되는 것이 정의이고 '내 새끼'가 엿먹는 상황에서 엄마는 염치고 나발이고 없다. '내 새끼'가 누군가와 싸워서 상처입으면 그 집에 쫓아가서 그 집 엄마와 머리 끄댕이를..

  2. Subject : 마더 (Mother, 2009)

    Tracked from 진사야의 비주얼 다이어리 2009/06/03 19:22 del.

    * 아래 내용부터는 영화감상을 방해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함유되어 있습니다.혹여 못 보신 분들은 맨 아래로 이동해 주세요 : )mother, Mother, MOTHERIntroduce봉준호 감독의 신작 <마더>를 맨 처음 극장에 가서 눈에 담은 지난 주말 즈음. 극장가를 빠져나오면서 내 머릿속은 무작위로 복잡해지고 있었다. 장담하건대 <마더>는, 먼저 본 작품이자 올 상반기 흥행의 쌍두마차를 형성하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

  3. Subject : 보다 (3)

    Tracked from 몽상연구소™ 2009/06/28 23:22 del.

    천사와 악마 [Angels & Demons]_CGV Ron Howard 한국에서 천주교는 지도자, 원로란 이들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들 그리고 그들을 충실히 따르는 신도들의 뻘짓 덕택에 '개독'이란 말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진 개신교에 비해 무척이나 호감 가는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허나 사회에 대한 기여와는 별개로 종교의 형식이나 이야기에 있어서 더 이해가 안 가는, 아니 이해할 수 없는 쪽은 천주교다. 주류란 이들이 업수이 여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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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키노 2009/06/03 16:17

    도저히 극장행을 미룰 수 없는 평이네요. ^^ <도쿄!>도 음악이 이병우 씨였던 거 같은데, 그때도 정말 좋았습니다. 게다가 "영화가 뭔지 아는 시나리오"라니! 오오, 기대 만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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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6/05 00:33

      소재적인 한계(너무 식상하다는 불만)를 지적하시는 지인도 계셨지만, 저로선 꽤나 볼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당할 수 있을만큼 묵직한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추.
      박쥐 리뷰는 잘 읽었습니다.
      부분부분의 지적에 대해선 꽤나 공감했습니다.
      물론 총체적인 영화에 대한 판단에서는 이견이 있었지만요.

    • 키노 2009/06/05 01:25

      민노씨의 뻠뿌에 힘입어, 저도 어제 보고 왔습니다. 역시 기대만큼 좋았습니다.
      제 개인사와 관련한 몇 가지 때문에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봉 감독님에게 기대할 수 있는 걸 대부분 다 본 것 같아서 후련하다고 할까요? 밑에 mahabanya님과 달리, 전 약간 지나치게 작위적인 화면 구성이 조금 거슬렸지만요.
      그래도 엄청 몰입했는지, 손에 쥐고 있던 영화표는 걸레가 다 됐고, 잘 들어보려던 음악은 마지막 거밖에 기억이 안 나네요. ㅠㅠ
      그리고 박쥐 감상문은 거의 환각상태에서 쓴 거라,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 민노씨 2009/06/05 01:45

      1. 저도 부분부분의 컷들에서 상투적이며 전형화된 심리적 조건반사, 그 긴장을 부여하는 장면들(가령 김혜자의 작두질)은 물론 효과적이긴 하지만, 저렇게밖에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나... 너무 손쉬운 선택이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2.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포개지는 바로 그 음악을 말한 겁니다. 저 역시 마지막 장면, 그리고 엔드크래딧의 전반부까지 흘러나오는 그 음악 때문에 첫장면이 다시 떠오른거고요.. ^ ^;

      추.
      겸손이 과하십니다.
      꽤나 뛰어난 리뷰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프레시안의 이택광이나 레디앙의 이안젤라의 '마루타비평'보다는 훨씬 뛰어난 리뷰로 개인적으론 읽었습니다.

  2. 진사야 2009/06/03 19:24

    결국 누군가를 잡아먹는 인생, 참 뼈아프죠.
    잘 읽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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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6/05 01:12

      논평과 트랙백 고맙습니다. : )

  3. mahabanya 2009/06/03 19:36

    봉감독의 최근 영화 3개를 묶으면 박찬욱의 '복수 3부작' 처럼 '부조리 3부작' 정도로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살인의 추억, 괴물, 이번에 마더까지...영화 안에서 보여주는 온갖 계층의 부조리...그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도와줘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정작 필요하면 속을 뒤집어 놓는 상황....

    별거 아닌 것으로 긴장감을 자아내는 화면 연출이 기가 막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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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6/05 01:17

      인상적인 논평이시네요. : )
      특히나 한국적인 정치/경제/사회적인 상황을 그 이미지들의 깊숙한 모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좀더 평가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만 괴물은 좀 그 형상화에선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요.

    • JNine 2009/06/05 01:26

      핫핫. 괴물은 그냥 '밥먹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정도로 봤습니다.
      괴물에 대한 영화평을 쓰기도 했는데 http://mahabanya.com/101
      아무튼 마더는 묘하게 지루한 듯 하지만 재미는 있는 영화...

    • 민노씨 2009/06/05 01:40

      마하반야 블로그는 제이나인님께서 운영하는 또 다른 블로그인건가요?
      묘하게 지루하지만 사건과 이야기의 조율이 꽤나 절묘했던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후반부로 갈수록 전반부의 지루함은 의도적이었던건가..라는 생각을 들게 할만큼.. 효과적으로 극적인 설정들을 배치한 것 같습니다.

    • 비밀방문자 2009/06/05 02:33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민노씨 2009/06/05 16:37

      그러셨고만요. : )

  4. 종소리 2009/06/04 11:01

    마지막 음악속에서 토해 버리고 싶은 진실을 삼키고 꺽꺽대지도 못하는 엄마의 얼굴에 오버랩되는 우리의 남루한 얼굴을 봅니다.
    음악때문에 더 자리를 뜨기 어려웠던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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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6/05 01:32

      친애하는 종소리님 와주셨고만요.
      절묘한 표현이시네요. : )
      100% 공감합니다.

  5. 오르페오 2009/06/05 11:42

    사진 아래에 쓰신 문장과 '추'에 완전 공감합니다. :D

    역시 영화를 보면 그 음악이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나보네요.
    굉장히 구슬프다는 생각을 하면 어느 순간 달콤한 멜로디로 바뀌어 있는
    정말 야릇한 곡이었습니다. 보는 내내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했던
    영화와 꼭 어울리는 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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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6/05 16:39

      "보는 내내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했던 영화와 꼭 어울리는" 이라는 논평이 참 적절한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봤네요.. 다시 보고 싶기도 한데 정말 그럴지는 잘 모르겠네요. : )

  6. 물빛 고양이 2009/06/05 22:39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막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전작들에 비해 영상미가 뛰어났다는 것에 주목하게 되더군요. 버스에서 그렇게 춤추는 민족이 또 있을까요. 이번에 수상에 밀린 것은 관광버스 춤을 이해하지 못한 깐느이기 때문일 꺼라는 과대망상을 해봅니다.

    디테일에 신경쓰시는(?) 분들은 버스안에서 침을 놓는 김혜자가 자살한거라는..혹은 원빈이 원래는 정상인데 엄마에게 복수한거라는...막장 드라마를 쓰시던데. 민노씨 의견은 어떠신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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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6/07 06:23

      '아름답다'고 느끼셨군요. : ) 저는 아름답다는 느낌보다는 처연하다거나 혹은 좀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기괴하다'는 느낌이 좀더 강했는데요. 말씀처럼 칸의 선택은 아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마더'가 본선 경쟁작은 아니고, 주목할만한 시선(맞나? 헷갈리긴 하네요.^ ^; )이긴 합니다만, 저로선 최소한 '박쥐'보다는 훨씬 좋았거든요.

      해석이야 저마다의 마음입니다만, 원빈이 복수를 위해서 그랬다는 건 ㅡ.ㅡ;;; 뭐, 초큼 멀리 나간게 아닌가 싶습니다. 원빈의 '진실'이 김혜자에게는 '복수'거나 '원죄'일수는 있겠습니다만, 원빈이 목적을 '의도'했다는 건 상식을 벗어나는 해석인 것 같습니다.

    • 민노씨 2009/06/07 06:23

      추.
      답글이 늦어져서 지송.
      이제야 발견해서요.. ^ ^

  7. silent man 2009/06/28 23:27

    각각의 우회로를 따라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야 말로 "마더"의 가장 큰 장점이겠죠.
    저처럼 '마더'의 죄책감과 불안을 느낄 수도 있을 테고, 누군가는 절절하지만 섬뜩한 모성에 대한 영화로 볼 수도 있을 테구요.

    민노씨의 말 가운덴 "그 김혜자의 진실은 여러가지 다른 층위의 진실들로 엉킨다. 싸구려 경찰의 진실, 알 수 없는 범죄자의 진실, 목격자의 진실, 그리고 피해자의 진실은 서로가 서로의 진실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가 가장 와닿네요.

    도대체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뒤엉켜 가는 애매모호함이 참 맘에 들었거든요. : )

    perm. |  mod/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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