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열전 1. 내가 내냐?

2009/05/07 00:21
이 초라하고, 금방이라고 숨을 거둘 것 같은 환멸과 낙담 가득한 블로그에 뜨거운 숨결로 온기를 불어 넣는 고마운 독자들과의 대화를 기록하고자 한다. 그 첫번째는 '내가내냐'(이하 '내내')다. 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임시)필명은 의도적인걸까? 아니면 우연적인걸까? 왜 '내가 나냐'가 아니라 '내가 내냐'일까? 그건 마치 이윤택의 '홍동지는 살있다'라는 연극제목을 떠올리기도 한다(보통 '살아있다'라고 쓰지, '살어있다'라고 쓰지는 않는다).

아무튼 '내내'는 마치 옆에서 금방이라도 소주 한잔 권할 것 같은 그런 정겨운 목소리로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내내가 전하는 이야기가 '내내'라는 실존의 '진짜 목소리'임을 안다. 이 블로그를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으나, 이 블로그는 무엇보다 나라는 초라한 실존을 위해, 그리고 그 초라한 온라인 실존에 숨을 불어 넣는 '내내'와 같은 독자의 '진짜 목소리'를 위해 존재할 것이다. 그런 독자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는 날, 아무리 많은 구독자들이 피드너버 카운터를 채우더라도, 그 날이 '민노씨'라고 불리는 온라인 실존이 숨을 거두는 날이다(쓰고 나니까 뭔가 엄숙하고, 거룩한 느낌인데... 민망...ㅡ.ㅡ;; ).

'내내'에 대해 좀더 이야기하면 그는 블로그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내내에겐 블로그를 쓴면 참 좋겠다는 마음을 '내내 '(^ ^)전했지만, 별다른 반응은 아직 없는 편이다(블로그를 마련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짧은 대답을 제외하곤). 이하 '내내'가 나에게 건넨 목소리들이다. 전부를 담으려고 했으나, 의도적으로 누락된 것들도 많다. 내 답글은 사족 같은 느낌이라서 대부분 생략하고, 몇 개만 옮겨왔다.


1. 빨강머리앤주의자
내가 내냐?  2007/03/18 16:21
아직 이쪽 동네로 이사온지 얼마안되어서인가 방문자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군요. 민노씨의 열화와 같은 블로그 활동을 고려하면 여기 북적거리는 것도 시간문제겠지요. 민노씨가 언급한 모든 `주의` 를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전 민노씨 필명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전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따서 필명을 정했나...라는 생각은 했습니다만.

내가 내냐?  2007/03/20 09:43
아거님의 말씀이야 천부당 만부당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거 온라인 활동을 해보신 분들은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좋은 말씀이군요. 전 블로그 운영하지 않고 있구요.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 같네요. 맘 먹고 써놓은 글 며칠뒤에 읽으면 몸에서 두드러기가 나고 얼굴이 새빨개지는 병이 있어서요.
민노씨.네 초창기 내내의 글. 위 글에서도 간단히 답했지만, 내 필명은 우연적이면서, 별 커다란 의미는 없는 편이다. 굳이 몇 가지 의미를 담자면 이렇다.
ㄱ. 타자치기 간단하고, 발음도 간명하다는 점. (덧. 'ㄴ'와 'ㅁ'이 유음이라고 했던 부분은 수정. 아리까리해서 찾아보니 'ㄹ'만 유음이고, 'ㄴ, ㅁ, ㅇ'은 비음이다. ㅡ.ㅡ; 지금까지 'ㄴ, ㅁ, ㄹ'이 유음인 줄 알았다. 관련 링크)
ㄴ. '민노씨'라고 ~씨를 포함하고 있어서 고유성에 있어서도 꽤나 희소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점.
ㄷ. 필명을 지을 당시에 그래도 응원하는 당이 민주노동당이었기 때문에. 
ㄹ. (덧.) 민(民)+노(怒)라는 느낌도 은연중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이건 나중에 생각한 것 같다.

2. 조선일보, 80년 5월
내가 내냐?  2007/05/18 17:01
뭐 여기가 따분하다는 얘기는 아니고 블로그 활동이니 정치상황이니 그런데 관심을 못 가져서요.
몇 년전 잠깐 광주에서 일할때 5.18. 행사를 겪은 적이 있죠. 전야제 날엔 정말 많은 행사와 인원을 볼 수 있었는데 막상 5월 18일은 조용했습니다. 그 시기가 한국월드컵과 가까웠을거예요. 그때 한국이 4강 올라가니 사람들이 트럭에 올라타고 시내도로 달리며 태극기 휘날리며 만세부르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5.18을 겪은 분이 그랬습니다. "80년 5.18 때 저러다 총 맞아 죽은 사람들 많았다..." 라구요.
올려주신 두 번째 사진속의 도로가 아마 광주생활시 제가 출퇴근을 하던 도로같습니다. 걸으면서 "이 도로, 사진속에서 많이 보던 그 도로다." 라는 생각을 하곤 했거든요.

3. 기자실 통폐합 외 - 5월 23일
내가 내냐?  2007/05/24 20:05
나 원참...자장면 이 뮙니까? 짜장면 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짱깨집에서 단체시위라도 해야합니다. ㅎㅎㅎ
그럼 짬뽕 은 잠봉 인가? ㅋㅋㅋ 짜파게티 는 자파게티? 푸헛... 웃기는 사람들이네...
K양에 관한 루머는 거의 사실이라고 들었는데... 하긴 그게 사실이라고 입방아에 올라야한다는 법은 없지요.
민노씨 글이 어렵다기보다는 인터넷의 첨단을 달리지 않으면 못 알아듣는 단어가 많지요. 위 글만 해도 블로기즘이 뭔지 난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아직 블로그와 사이월드 홈페이지 구분도 못하는 판인데요.

4. 전원책에 반대하지만, 전원책에 열광하는 이유
내가 내냐?  2007/07/05 10:51
예비군조차 완전히 끝난 제겐 저런 토론은 그저 다른 세상 이야기일뿐...
아시죠? 군대 말년 병장들 쫄따구들 훈련이다 뭐다 걱정하면 "나랑 무슨 상관인데?" ㅋㅋㅋ
나랏님들...한국실정상 군대를 징집제로 하는 건 인정하고 돈만고 빽있는 인간들 힘써서 면제받는 것도 타고난 복이려니 하더라도 제발 군바리들 월급 좀 올려주쇼...
나 복무할때 월급 만원이 좀 넘었던 것 같은데 도대체 그거 가지고 한달동안 뭘 하란거요? 그 돈 가지고 야한 책 사서 손가락 장난이나 치란거요? 그러니 짬밥 높아질수록 휴가 나와서 부모님에게 용돈 달라고 하면 "넌 어째 이리 자주 나오냐?" 같은 황당한 소리나 듣는거 아니요?
피엑스 먹을거 구색좀 잘 갖추시고...도대체가 사회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과자들만 쌓아놓고 장사해먹으려니... 난 지금도 고추장에 밥 비비면 군대생각이 나서 입맛이 뚝 떨어진다오... ㅎㅎㅎ
(지금 군 실정과는 다를지도 모르겠구먼요.)
군대얘기 나오니 유난히 쫄따구 갈구던 개색기 하나 생각나네...김x완 이라고 제대한지 십수년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그 이름...

5. 디워 프리뷰
내가 내냐?  2007/07/24 14:21
얼마나 임펙트가 큰 영화였으면 영화블로그를 따로 운영하면서도 이렇게 거창한 리뷰를...
각본의 부실함이 이 영화의 최대단점으로 거론되는데 이런 괴수영화의 장르적 특징상 어떤 거창한 시나리오가 나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죠. 뻔할 뻔자의 각본에 볼거리에 치중하는 것이 어쩌면 인지상정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투자한 금액과 시간에 비해 상영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드는건 저 혼자만이 아니겠지요. 고질라나 주라기 공원이나 이무기나 용가리나 얼굴생김새가 다 거기서 거기라 전 다 비슷한 영화같아요. ^^;;

전 어렸을 적 본 고질라의 추억이 너무 강렬해서 맘껏 기대하고 본 헐리우드 판 고질라에 큰 실망을 했었는데 스케일이나 영화적 재미에서 디 워가 고질라를 크게 능가할 거라곤 생각하지는 않고 있어요. 뭐 디 워를 볼 일이 없을지라 비교분석할 일조차 없을테지만.

6년이란 시간과 엄청난 자본을 투자한 심감독의 뚝심과 집념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인데 만약 손익분기점에 턱없이 모자라는 흥행스코어를 기록하면 그건 뚝심과 집념이 아니라 심감독의 사업가적 마케팅 능력의 부족으로 그의 영화감독생명의 종말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자본의 논리란 냉정하거든요. 단순히 그의 노력만을 치하하기엔 너무 많은 인력과 자본, 시간이 투자되었습니다. 그리고 엔딩크레딧에 삽입된 심형래판 인간극장이 만약 일반인개봉 버전에까지 그대로 상영되면 심감독이 뭔가 확실히 오버하고 있는 겁니다. 영화판에서까지 개그맨 취급을 자초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아무리 자신이 부당한 대우와 취급을 받았다해도 영화적 완성도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데 "나 이렇게 고생했다." 식 영상을 집어넣으면 자신이 개그맨 출신이라는 사실을 확인도장찍는 결과밖에 안 될 것 같습니다. 벌써 어떤 관객들은 그 장면을 두고 디 워가 컬트필름으로 등극할 거란 예측까지 하거든요.

이런 블록버스터에 관해서 글을 쓰시자니 여러모로 다양한 반응을 감수하시느라 고생하십니다. 건필하세요.

6. 블로거뉴스 이슈트랙백 헤드라인 멋지네요~!
내가 내냐?  2007/07/27 11:02
뭐 찾아가서 읽어보니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기 비스무리한데 뭔놈의 댓글이 저렇게 많이? 하긴 한국 인터넷 문화의 특징중 하나가 여자라고 커밍아웃하고 그럴듯한 얼굴사진 붙이면 조회수 댓글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니... 민노씨도 한 인기 하지 않습니까? 블로거들과 번개도 자주 가지시는군요. 오프라인모임으로 확장되는 블로거 활동...좋아요...

7. 디워 현상
내가 내냐?  2007/08/07 12:14
디워 열풍 (광풍이란 표현은 이 논쟁의 당사자들을 빈정거리는 표현 같습니다.) 이 수그러들줄 모르네요.
디워 개봉과 더불어 충무로, 한국영화평단, 한국영화산업까지 들썩거리는군요.

연봉 많이 받는 대기업사원이라면 차라리 우러러볼까나 한국영화평론가들이 무슨 권위의식을 가질 자격이 있는 집단인지조차 의아합니다. 요즘에 포털사이트나 영화잡지에 글 써봤자 원고료 몇 푼이나 받을까요? 영화잡지 한권에 달랑 천원, 버스 한 번 타면 끝인 돈인데요.

기존의 영화평들이 현학적인 표현과 전문용어의 남발로 대중들과의 괴리감을 발생시키는데 일조했을지는 몰라도 특별히 그들이 관객을 훈계하거나 야단치거나 혐오하거나 어떤 특정한 해석을 정답이라고 강요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느꼈다면 자신의 영화읽기에 대한 최소한의 줏대도 없이 글쟁이들의 펜대에 이리저리 오가는 자신의 모습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왜 일반대중은 이 영화의 가치를 몰라줄까!` 라고 한탄하는 순간이 많은데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평론가집단이 그런 생각이 안 들까요? 그러나 그런 생각이 관객을 향한 글에서 표출되는 것을 목격한 기억이 거의 없군요. 오히려 제가 평론가들을 싫어하게 된 계기는 하x봉 같은 인간이 영화평론이라고 써갈기며 소중한 영화들에 별을 매길때나 현실개념 상실한 대책없는 386출신 평론가들의 평론이라기보다는 독립투사투쟁선언문 같은 글이지 대부분의 평론가들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그들의 글에서 최대한의 긍정적 지식을 흡수하여 제 영화읽기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민노씨가 말씀하신 지구를 지켜라 를 발견한 관객도 일반대중이 아니라 극소수의 매니아층과 평론가들이었습니다. 종합예술인 영화를 통해 상징과 의미를 발견하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결코 자의식 과잉이나 지적우월감으로 폄하될 성질의 행위가 아닙니다. 디워의 경우 영화개봉전 워낙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많은 상태에서 시사회 후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다!` 란 입소문과 효과적인 마케팅전략으로 흥행에 성공하고 이런 큰 이슈가 되었지 시사회 후 평론가들이 앞다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면 관객들이 영화 관람후 "평론가 xxx들! 이걸 영화라고 별 다섯개를 줘서 관객을 속여? 역시 평론가란 인간들 하는 소리는 믿을 게 못돼" 소리가 나왔을겁니다. 오히려 디워에 평론가란 직함을 단 인간들이 호평을 하면 그것이 그들의 직무를 배반하고 직업적 양심을 저버리는 행위로 비춰질 것 같군요. 물론 영화역사엔 평론가와 관객을 모두 사로잡은 영화가 무수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역사에 기록될 명작들의 경우고 디워 는 그런 종류의 영화는 아니죠.

한국의 평론가들의 삽질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한국영화평단의 큰 문제점은 그런 권위주의적인 태도같은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빨리 변화하는 영화계의 트렌드에 적절히 대응하고 반응하지 못해 어떤 새로운 트렌드의 출현에 어떤 포지션을 취할지 즉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중에 헛소리한다고 욕을 먹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래도 일반대중보다 영화를 먼저 보고 해석하는 평론가의 특성상 그런 리스크를 안고 공짜 시사회표를 얻고 글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트렌드에 가장 먼저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는 관객의 취향과 담론이야말로 평론가에 앞서는 것 아니냐? 라고 질문할 수 있겠죠. 그런 질문이 나오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근원적인 문제는 영화제작의 주체인 제작자와 감독, 시나리오작가들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관객의 모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라! 그것이 바로 명화다! 라는 명제가 그들에겐 떨어집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명제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안다면 흥행에 실패하는 영화가 나올 수 없겠죠? 영화뿐만 아니라 제가 예전에 근무했던 음반쪽의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음반출시시 대충 판매고를 예상하는데 그 정확도는 30%를 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럴싸한 변명이라면 예술작품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려면 세월이 흘러야한다. 라는 상식을 적용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과연 일년, 이년, 십년뒤에 디워에 대한 평가가 어찌 이뤄질지 예측해보는 것이 디워를 왜 까냐, 넌 심빠냐, 심까냐 라는 말싸움보다 더 디워를 위한 긍정적 평가행위가 될겁니다. 포털사이트를 둘러보면 "심감독의 사례를 모델로 삼아 충무로는 제작풍토를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가져가야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16mm 단편영화라도 한 편 찍어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기 바랍니다. 충무로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조폭영화나 싸구려 섹스코미디 영화 찍는 것이 아닙니다. 민노씨가 좋아하시는 정성일씨가 그랬죠? "요즘 평론가들 16mm 단편영화나 한 편 찍어보고 영화얘기 떠드는지 모르겠다." 라구요.제가 영화이야기를 할 때마다 항상 제 마음 한구석에 부끄러움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민노씨가 인용하신 정성일씨의 인용구는 틀렸습니다. 재미있는 칸느수상작과 재미없는 칸느수상작의 구분이란 건 없습니다. 자신이 느끼고 받아드릴 영화와 자신이 느낄 준비와 각오가 되어있지 않는 영화의 구분이 있을 뿐입니다. 지나치게 능동적인 영화감상법이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 있겠지만 이에 대한 대답 역시 정성일씨가 일찌감치 한 상황입니다. 그는 우문현답과 자문자답을 동시에 한 셈이죠.

에드 우드처럼 훗날 변종된 형태의 찬사로 재평가받는 작품과 감독은 많습니다. 심감독도 그런 가능성은 보여줬다 생각합니다. 디워 논쟁의 가장 추한 논객은 평론가 행세 실컷하면서 평론가들을 까는 척하는 글을 쓰는 얄팍한 심성을 가진 네티즌들이지 평론가나 심빠들이 아니었습니다. 어제 저녁 쓰고 수정하려니 민노씨 블로그 접속이 되지 않더군요. 사무실 컴 문제인가...집에서 추후에 수정했습니다.

8. 읽은 책, 읽고 싶은 책, 읽고 싶지 않은 책
내가 내냐?  2007/09/12 20:05
한겨레 필통까지 운영하시느라 몸이 한껏 무거워보입니다. 며칠전 키노 21에 디스터비아 리뷰 올리신 것 봤는데 댓글을 못 달았군요. 볼 기회가 요원하거든요. 밀양 을 며칠전 볼 정도니 세상의 영화개봉과 제 감상은 동떨어져 있습니다. 밀양 을 본 후기는 민노씨와는 좀 다르긴 합니다만 지금은 길게 적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충무로 짬밥 좀 드신 양반이라고 해서 이창동의 영화이력을 우습게 볼 수준은 훠얼씬 넘어선 것은 자명한 사실같습니다. 얼마전 거국적으로 유명세를 탄 모감독님도 작품 자체만으로 회자되었다면 오죽 좋았을까요.

서부전선 이상없다. 는 영화로 보았는데 (이거 영화도 걸작이죠.) 소설로 읽어도 괜찮을 성 싶던데요? 한겨레 선정 도서이건 타임지 선정 도서이건 그저 텍스트의 한 기능역할에 지나지 않겠지요. 죽기 전에 보아야할 영화 1000편... 이런 식으로요. 저야 매일 민노씨 글을 읽으니 오래간만은 아닌데 민노씨는 간만이시죠? 건필하시길.

9. 진중권 블루스
내가 내냐?  2007/09/25 13:01
이런 명절날에도 민노씨의 포스팅은 멈추기를 거부한 철마와 같이 거침없군요.^^
우리에게도 정서적, 예술적으로 만끽할만한 인문학적 교양이 풍부하게 담긴 영화들이 많이 존재했다면 디워 같은 영화에 이런 가열찬 논쟁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진중권 발언의 핵심은 디워가 걸작이다, 졸작이다를 떠나서 "논평할 가치조차 없다." 라는 문장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 명제에 충실했다면 진중권 본인이나 그 반대편이나 이런 무수한 담론을 형성할 이유조차 없을터이니 말입니다. 다행히도 대중들에게 `기회는 이때다.` 하고 거국적으로 두드려맞던 평론가집단은 이후로 디워에 대해 언급자체를 거부하고 있더군요. 최적의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아무리 욕을 얻어먹어도 그들은 최소한 자신들의 직무가 어디까지인지를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증거이지요. 오히려 최후까지 디워로 이야기거리를 만드는 부류들이야말로 기회주의적 정치가의 작태를 유감없이 과시하는 부류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 행히도 앞서 언급한 인문학적 교양을 맛볼 영화들이 많지는 않더라도 소수는 한국영화계에도 존재하더라구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로 혹평을 면치 못했던 (제게는 역시나 유쾌한 걸작이었지만요. 한국영화계의 아쉬운 한 부분입니다. 홍상수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가 졸작이다.! 라는 평에 수많은 찬반담론이 풍부하게 펼쳐지는 문화계라면 디워 사태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홍상수감독이 그의 가장 절망적 필모그래피인 극장전 이후 발표한 해변의 여인은 데뷔부터 그를 주목한 열혈팬들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했을진 몰라도 디워로 불필요하게 머리가 복잡해진 한국관객의 사고를 충분히 환기시킬 정도의 상징들을 충분히 담고있었습니다. 극중의 대사는 여러모로 작금의 한국영화계의 상황을 유쾌하고 서늘하게 조롱하는 암시와 상징의 역할을 합니다.

스 티븐 프리어스의 더 퀸이란 영화역시 뒤늦게 감상했는데 일반대중들과 그 위에 군림한다고 생각한다는 계급과의 문화적 갈등과 사고의 충돌과 타협과정을 적절하게 묘사한 걸작이었습니다. 아무리 영국왕실홍보 영화라고 폄하하는 평이 있더라도 (대표적으로 황진미씨) 이정도로 홍보영화를 만들 국가의 문화적 국력이란 것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또한 `대영제국` 이라 칭해졌던 국가와 `디워`라는 영화로 문화계가 시끄러워지는 국가의 문화적 소양의 차이일겁니다. 사망한지 20년이 지난 독재자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에도 검열이다 초상권 침해다 하는 태클을 거는 나라와 아직도 고루하게 왕실제도를 고집하는 국가의 살아있는 원수의 일상을 밀착해서 관찰하는 나라의 문화가 각각 어떤 작품들을 양산하는지 고찰할 하나의 표본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들 헬렌 메릴 옹의 연기를 극찬하던데 저는 토니 블레어 총리를 연기한 마이클 쉰의 호연이 마음속에 각인되더라구요. 근데 황진미씨의 글은 완성도의 편차가 너무 심해서 그녀의 직업스킬이 글쓰기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자신의 환자에게 투약할 약을 본인이 드시고 글을 쓰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디워와 300의 서사구조를 비교하는 글도 본 것 같은데 심감독이 영구아트의 기술을 잘 살려서 300같은 영화를 한 편 찍어주길 바랍니다. 서사구조는 300이나 디워나 거기서 거기 같거든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이무기 정도면 비슷할 것 같은데요.^----^

10. 친절한 금자씨, 평범한 악의 세계 :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내냐?  2008/07/23 05:59
영화블로그가 개점휴업상태여서 궁금했는데 당분간 이곳에 글을 모으려 하시나봅니다. 영화블로그 마지막 글에 소개하신 오퍼나지를 최근에 보았는데 판의 미로라는 처절하게 아름다운 악몽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 점이 아쉽기만 했습니다. `한` 이라는 소재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너무 친숙한 정서라서 외국인이 묘사한 그 `한` 이 좀 싱거워보이더라구요.

금자씨에 대한 애정이 상당하시군요. 예전 글에도 극찬을 하셨는데...전 영화메세지보다 영화에 쏟아부은 스타일과 상징이 훨씬 관심이 가더군요. 저도 케이블을 통해 이 영화 많이 보았습니다. 금자씨가 일하는 오달수의 빵집 이름이 `나루세` 인데 박감독이 일본감독 나루세 미키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기 위해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로자와 아키라나 오즈 야스지로등의 거장에 묻힌 일본영화의 거목인데 시간 나시면 걸작 몇편은 필견의 가치가 있습니다.

금자씨의 최대 악수는 이영애의 캐스팅이다...영화를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제 소신입니다. 물론 흥행을 고려해서겠지만 그렇다면 화끈한 이영애의 누드라도 한 컷 집어넣었더라면 진짜 흥행에 도움이 되었을텐데요. 박감독의 하드코어한 전작들의 정서를 생각해보면 너무 배우를 고려한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배두나,신하균,송강호등을 그렇게 멋지게 활용한 복수는 나의 것과 비교하면 금자씨는 힘이 너무 떨어져버렸습니다. (전 복수는 나의 것이야말로 박감독이 좋아한다는 타란티노의 왠만한 작품보다 월등한 퀄리티를 지닌 걸작중의 걸작으로 생각합니다. 올드보이의 흥행덕분에 이 명작이 너무 묻혀진 감이 있어요.)

말씀하신 정치적 메세지를 최민식의 캐릭터에 좀 더 노골적으로 집어넣었으면 많은 사람들이 다른 측면에서 다앙하게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요, 금자씨도 오백만이상 관객이 든 것으로 아는데 그 많은 관객들이 어떤 감상으로 극장문을 나섰을지 궁금합니다. 전 금자씨를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의 다크사이드 버전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도 오래간만에 댓글을 쓰니 손가락이 잘 돌아가지 않는군요.
민노씨  2008/07/23 09:28
정말 너무 너무 반갑네요. ^ ^
그동안 종종 내내님 뭐하실까 궁금해했더랬습니다.

* 오퍼나지는 '판의 미로'가 주는 깊고, 풍성한 느낌이라기 보다는 조금은 무채색에 가까운 작품인 것 같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같은 감독의 작품인줄 알고 봤다가 다 보고 나서야 '판'을 찍은 감독은 제작자로만 참여한 걸 알았죠. 말씀처럼 '한'이나 '모성애'는 무엇보다 익숙한 정서이기 때문에(그런 정서에서는 우리가 '선수급'이기 때문에?) 좀 싱겁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았던 것도 같습니다.

* 나루세... 그런 일화가 있었군요. 몰랐던 사실입니다. 내내님 추천도 있고 하니 꼭 한번 살펴봐야겠네요.

* 이영애에 대해선..
저는 이영애의 연기력에 대해선 내내님과 의견을 함께 하지만, '금자'라는 캐릭터의 이율배반을 체현할 수 있는 실존의 연기자로 선택된 이영애에 대해선 감독의 선택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 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의 작품들 중에서 그저 가장 맘에 드는 영화가 뭔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 역시 가장 '개인적인 취향'으로 맘에 드는, 가장 아름다운 영화는 [복수는 나의 것]이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특히나 저는 마지막 장면의 아이러니와 유머감각에 대해선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데요. 그 아이러니(송강호가 자신의 죽음, 그 직접적인 원인이 뭔가를 궁금해하는)에 대한 내내님의 견해도 몹시 궁금하네요. 다만 금자씨의 버라이어티하고, 입체적이며, 중층적인 함의와 역동적인 구성과 비교한다면, 다소 '소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최민식의 캐릭터
저는, 이런 의견이 기존의 리뷰에서 언급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최민식과 이영애의 캐릭터에는 실제의 사건(주교사 사건, 혹은 여고생 협박전화 사건... 그 유명한 이윤상 사건이죠)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요. 그런 실제로 있었던 사건의 이미지가 겹쳐져서, 물론 말씀처럼 좀더 적극적인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져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오히려 지금이 가장 적정한 수준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박하사탕의 다크사이트 버전"이라는 말씀은 정말 인상적이네요.

11. [다크나이트] 단평 : 삼각관계, 전해지지 못한 진실들
내가 내냐?  2008/08/16 02:14
민노씨에겐 다크 나이트가 기대에 조금 못 미쳤던 모양입니다. 최근 몇 년간 제작된 영화중 이 정도로 평단과 관객의 극찬을 모두 이끌어낸 영화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인기몰이가 대단하더군요. 덕분에 저도 몇 년만에 극장을 찾는 큰 행사(?)를 가졌습니다.

만화를 베이스로 하는 영화들을 보면 어떠한 형태로든 원작의 아우라가 영화 전반에 걸쳐 깔려져 있는데 (300,씬 시티 는 아예 `만화` 영화죠) 배트맨은 원작의 중요한 배경인 고담시의 세기말적이고 음울하며 사악한 분위기를 싸그리 제거해버리고 현재 미국인이 사는 도심 그대로를 영화의 배경으로 썼더군요. 성같은 저택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어야 마땅한 브루스 웨인은 도심 한가운데 타워 팰리스를 연상시키는 빌딩 펜트하우스에서 재벌 2세 노릇을 하고 있구요. 그런데 묘한 것이 이런 현대 도심 한가운데를 질주하는 배트맨과 조커는 서커스단 광대처럼 보여야 정상일텐데 그렇게도 시카고 중심가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만화영웅은 처음이었습니다. 특히 어둠속에서 쪼그리고 앉아 망토를 휘날리며 목표물을 응시하는 배트맨의 고뇌에 찬 표정을 (표정이래봤자 입모양밖에 없지만요.) 볼때는 만화캐릭터의 영화화에 있어 최상의 경지에 이른 연출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게 될 정도였구요. 배트맨 VS. 조커의 캐릭터연출도 흥미로웠습니다. 컴플렉스에 갈등하는 수퍼히어로야 요즘 영화에 흔한 설정이지만 다크 나이트에서는 두 주인공을 거의 심리적, 정신적 장애인 수준으로까지 압박하는 각본이 여러가지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낼 여지가 다분합니다. 더 재미있는 설정은 수퍼히어로 영화답지 않게 주인공은 별 특별한 능력도 없다는 것이지요. 배트맨의 능력은 끽해야 미션 임파서블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가 다크 나이트에 관한 네티즌 리뷰를 거의 스킵하고 있는 유일하고 결정적인 이유는 그놈의 `조커` 타령을 보기가 지겹고 따분해서입니다. 히스 레저란 배우의 죽음이 영화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고 유독 문화예술계에 요절한 아티스트에 대한 대접이나 평가가 후한 것을 감안해도 조커의 경우에는 평론가나 팬이나 좀 심하다 싶은 것이 저 혼자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전 영화를 보면서 그저 `또 하나의 괜찮은 광인 캐릭터가 탄생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고 히스 레저의 연기에서 잭 니콜슨의 그림자도 언뜻언뜻 비추어진다고 느낀 적이 여러번이었거든요. 특히 웃음소리에서.

유망한 배우의 죽음은 그 자체로 애도하고 추모하면 충분한 것이지 과도한 의미부여는 영화감상의 시야를 방해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간단히 비교를 해볼까요? 다크 나이트에 출연한 몇몇 배우들은 모두 사이코살인마역을 연기한 경력이 있습니다. 크리스찬 베일은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게리 올드만은 레옹에서, 마이클 케인은 드레스드 투 킬에서. 과연 히스 레저의 조커가 저 셋중 누구를 압도한 연기냐고 택하라면 저는 상당히 오랜 시간 선택을 망설이게 될 것 같습니다. 영화시작과 더불어 시작되는 은행털이 씬에서의 조커의 존재감은 무시무시할 정도였지만 중반을 넘어서 수다가 심해지면서 그 존재감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다가 마지막 고층빌딩에서의 배트맨과의 대결씬은 차라리 팀 버튼의 조커가 그리워지더군요. (아무리 비교를 안 하려해도 그 부분에서만큼은 팀 버튼의 배트맨과 비교를 안 할래야 안 할수가 없더라구요.) 조커란 캐릭터가 원래 수다쟁이 역할이긴 하지만 다크 나이트에서의 조커만큼은 침묵이야말로 최고의 대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스크린에서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섬뜩하게 부활한데다 히스 레저의 조커에겐 잭 니콜슨의 유머감각이 턱없이 부족해서 장황하게 내뱉는 대사가 좀 심심했어요.

히스 레저뿐만 아니라 놀란 감독의 영화에서는 거의 모든 배우들이 발군의 연기력을 과시하고 있어 다크 나이트 역시 2시간 30분이라는 적지 않은 상영시간을 적은 액션으로 (다크 나이트의 액션씬은 `액션 블럭버스터` 답지 않게 짮기 그지 없습니다.) 메꾸는 데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호연이 큰 작용을 했습니다. 다크 나이트가 액션 영화가 아니라 범죄 느와르 영화라는 호평을 얻는것이 공감이 갔습니다. (마이클 케인과 모건 프리먼을 한 영화에 출연시키다니 놀란 감독은 천재이거나 행운아이거나 아니면 둘 다 입니다.)

메멘토는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가 기억을 되찾으려 하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억을 오랜 시간 지속시킬 수 없는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있어 그 기억이란 것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진실과 사실이란 것이 항상 유동적이고 그것에 반응하는 자신의 행동 역시 종잡을 수 없어 그는 자신과 주위의 환경을 본의 아니게 변화시키죠. 프레스티지에서 두 주인공은 마술이라는 하나의 매게체에 집요하게 집착하는데 그 둘이 마술에 접근하는 방향과 방법은 상이합니다. 덕분에 그 주위 인물들은 둘의 행동에 본의든 아니든 관여하여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받습니다. 다크 나이트 역시 범죄라는 하나의 대상에 접근하는 배트맨과 조커, 하비 덴트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모양새로 주위 환경에 영향을 가합니다. 민노씨가 말씀하신 `관계` 에 대한 접근이 다크 나이트가 처음은 아니었지요. 놀란 감독이 이런 블럭버스터를 감독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여건하에 작업한다는 사실은 타 감독들에게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할 겁니다.

리뷰어의 멘트중에 음미할 만한 구절이 있어요.
"조커의 원맨쇼로 진행된 영화다.", 혹은 "조커의 포스에 밀려 배트맨이 조연처럼 초라하게 느껴진다."
팀 버튼의 배트맨 이후 전지전능한 초능력자로서의 수퍼히어로는 사라지고 그들도 인간처럼 컴플렉스를 느끼는 보다 현실적인 존재로 묘사됩니다. (아무리 놀란 감독이 수퍼히어로 영화의 판을 새로 짰다 해도 팀 버튼의 배트맨의 가치가 훼손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다크 나이트에서는 한 술 더 떠 우리의 수퍼히어로는 한없는 무기력과 슬럼프에 빠져 있습니다. 배트맨은 더 이상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회의까지 느끼고 은퇴할 결심까지 하지요. `범죄소탕` 이니 `정의구현` 같은 말은 애시당초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것을 조커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정장을 한 브루스 웨인, 그러니까 크리스찬 베일의 모습이 전작인 배트맨 비긴즈 보다 좀 더 `초췌하고 피곤해보인다.` 라고 느낀 관객이 저 이외에 또 있다면 그것은 바로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배우야말로 대단한 연기력의 소유자라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배트맨의 갑옷과 마스크를 무겁고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하고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짐을 대신 짊어주길 원하는 배트맨의 착잡한 내면을 그만큼 자연스럽게 표정에 담아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연기`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연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관객이나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연기자들 사이에서는 가장 평범한 사람의 연기가 미친놈 연기보다 쉽고 선역연기가 악역연기보다 어렵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레이첼의 죽음이후 그녀의 본심에 대해 오해하는 브루스 웨인의 모습은 연민의 정까지 느끼게 만들고 이 모습을 바라보는 마이클 케인의 얼굴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죠.

"당신은 수퍼히어로가 아니라 영웅놀이에 지친 부자집 한량일 뿐입니다." 라구요. 배트맨이 수퍼히어로 영화의 새역사를 썼다는 찬사가 단순한 거품섞인 찬사는 아닌 듯합니다.

민노씨는 조커와 배트맨과의 대립,갈등구도가 그렇게 매끄럽지 못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배트맨이야 범죄자 소탕이 목적이니 그렇다쳐도 조커의 배트맨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그러한 지적이 설득력있게 들립니다. 팀 버튼의 배트맨에서는 둘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한 명백한 설정이 전제되어 있죠. 조커는 브루스 웨인의 부모를 죽인 원수이며 배트맨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니까요. 그러나 다크 나이트에서는 `서로를 위해 없어서는 안될 공생공존의 존재` 로서 애매하게 둘사이의 `우정` 을 규정지은데다 (조커의 연기뿐만 아니라 대사도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3류철학 잡문 나부랭이가 꽤 되는데 그 `카리스마` 적 연기에 모두 묻혀진 감이 있습니다.) `투 페이스` 하비 덴트라는 비중있는 조연이 둘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조커 VS. 배트맨이라는 대립구도의 집중력이 분산될 수도 있었죠. 이 하비 덴트라는 카드는 잘못 써먹으면 없으니만 못한 존재로 전락해릴수도 있는 애물단지같은 존재입니다. 제가 다크 나이트에서 가장 주목한 캐릭터이기도 한데 하비 덴트는 자신의 신념을 가장 순수한 열정으로 실천하려다가 가장 큰 상처를 입게 되는 인물입니다. 그것도 배트맨과 조커, 선과 악을 두개의 존재 모두로부터요. 그래서 미국 정치상황을 그와 연계하여 해석하는 평도 있습니다만. 그런데도 놀란 감독은 영화 말미에서는 하비 덴트를 거의 조커나 배트맨과 동일한 비중을 가진 존재로 끌어올립니다. 풍자의 의도인지 다음 속편을 위한 포석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

이제 3편을 만들도록 강요하는 워너브러더스사와 이제는 거물이 되어버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경전이 모든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킬터인데 과연 스파이더맨 3이나 대부 3편같은 작품이 나올 것인지 아니면 스타워즈 시스의 복수같은 작품이 나올 것인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울 것입니다. 조커같은 확실한 카드를 써먹어서 마땅한 악역이 없다는데 잭 니콜슨의 조커가 존재하는데도 조커를 부활시킨 놀란 감독이니만큼 관객의 뒤통수를 또 다시 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봐야할 겁니다.

진짜 별 다섯개 만점을 주고 싶은 부분은 영화보다도 음악이었습니다. 한스 짐머도 자신의 마스터피스를 연출해내었어요.

레이첼역의 배우가 바뀐 것과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에 대해 말이 많은데 제가 보기엔 놀란 감독은 그녀에겐 애시당초 아무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저 블럭버스터 영화에 의무적으로 끼워넣어야만 하는 역할인 것처럼 취급하는 듯 했는데.

12. 고딩호러물 : '피의 중간고사' 단상
내가 내냐?  2009/01/07 06:21
민노씨의 리뷰가 없었더라면 한국영화판에 다시 보기 힘든 `괴작` 을 놓쳤을 것입니다. 저를 기억해주신 배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얼마전 메모장에 썼던 글 올립니다.

영화를 본 후 감독의 이력이 너무도 궁금해서 네이버를 검색했더니 `창` 이란 가명이 전부다. 혹시 김기덕이 정체를 숨기고 만든 영화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사가 못 만든 영화는 분명하지만 내 눈에는 감독이 `알고도`, `일부러` 영화를 이렇게 X같이 만들었다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한국영화판에 애증이 사무친 인간같기도 하다.) 인구에 두고두고 회자될 엔딩크레딧의 키치적 발상은 그 의구심에 그럴듯한 근거를 제공한다. 이 영화의 설정은 단순히 `못 만들었다.` 라는 단평으로 납득하기 힘든 기상천외한 플롯과 상황으로 가득한데 그 중 압권은 `문제를 풀면 살려주고 못 풀면 죽이겠다.` 고 죽음의 퀴즈쇼를 선언해놓고 문제를 푼 학생을 가차없이 죽여버리는 엽기적 뒤통수치기였는데 극중 학생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본답시고 잔머리를 굴리던 나는 그 장면에 이르러 두 눈만 말똥말똥거릴 뿐이었다. 화면빨의 기이함도 각본못지 않은데 여고생을 거꾸로 매달아놓고 남규리와 재회시키는 장면은 창 감독의 데뷔분야라는 CF 영상을 검색해보고 싶게 만들 정도였다.

배우캐스팅은 만점이다. 남규리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출연자들이 한 외모씩 해서 그녀들을 보는 즐거움만으로도 dvd 대여료가 아깝지 않았다. 반면 남학생들은 생긴 것도 멍청한 것들이 캐릭터는 훨씬 멍청하게 설정해서 그들이 죽어자빠질땐 `고 색기들 쌤통이다.` 라는 흐뭇한 가학적 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남규리를 비롯한 처자들을 압도하는 포스는 역시나 이범수에게서 뿜어졌다. 코미디배우를 공포영화에 캐스팅한 이유를 의아해한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을 감독은 미리 예견한 듯 그 대답을 최적의 순간에 배치했다. 마지막 강당씬의 이범수의 퍼포먼스는 코미디와 개그로 다져진 감각이 원천에 깔리지 않는 연기자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거기다 이 모든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이얼 아저씨...

그는 각본을 읽은 순간 고사가 한국영화계의 음지의 오발탄 같은 존재가 될 것임을 직감한 `천재형` 연기자이거나 불러주는 영화가 없어 밥숟가락 놓기 직전인 `생계유지형` 연기자 둘 중의 하나가 틀림없다. 어쩌면 그 둘다일 수도 있고.

마지막 장면을 보며 마냥 웃을 수 만은 없었던 것이 창감독이 한국영화판에 날리는 불타오르는 증오와 저주 내지는 FUCK YOU! 가 화면에 언뜻 스쳤기 때문일까?

놀라운 사실은 저예산을 투자해 발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가 손익분기점은 물론이고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사실인데 이건 디워가 천만관객 돌파한 것보다 더 큰 성과로 보일 뿐만 아니라 투자자들에게 이윤을 발생시켰다는 성과는 창감독의 차기작에 대한 높은 가능성을 내포한다. 박찬욱도 봉준호도 데뷔작의 성과는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창감독이 2번째 영화로 그의 자학적 유모어가 완성형의 모습을 갖출지 충무로 영화판의 자폭의 최단코스를 걷게 될지 명확히 판가름날 듯 싶다.

민노씨 이런 영화 발견하시면 혼자만 품고 계시지 마시고 제발 추천 좀 부탁이요...

고사는 대여과정부터가 일종의 컬트적 해프닝으로 시작되었다. 가도 가도 대여중인 고사. 참다 못해 주인 아줌마에게 물었다. "고사 인기 많은가 봐요?" 아줌마 왈, "요즘 중간고사 기간이라 많이들 빌려보나봐요..." 고사엔 확실히 뭔가가 있다.
민노씨  2009/01/07 07:27
괴작이라는 표현이 참 어울립니다. : )실은 제가 너무 호의적으로 평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엔드크레딧의 반전(저는 오히려 영화 전체의 메시지보다 이 엔드크레딧의 반전이 갖는 메시지가 훨씬 더 강렬했는데 말이죠)은 인상적입니다.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들은 간략히 요약하면요.
ㄱ. 우선 '웨더맨' :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영화인데, 케이지의 연기도 좋지만, 마이클 케인의 명연을 확인할 수 있어서 참 좋더만요.
ㄴ. '카포티'는 이제서야 봤는데요. 정말 연기가 세칭 아해들이 하는 말로 '쩝니다'드라마 자체의 울림은 그다지 크지 않은데 정말 명연기를 보여주더만요.
ㄷ. '스마트 피플'도 재밌게 봤습니다. '사이드웨이'나 '스트레인저 댄 픽션'처럼 꽤나 지적인 느낌의 영화인데, 조연들의 호연이 정말 대단합니다. 특히나 이복 남동생역으로 나오는 그 배우(스파이더 맨3의 '샌드맨')는 정말 인상적이더라구요. 그 배우는 사이드웨이에서도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말이죠.
ㄹ. 견자단의 영화 '엽문'과 '도화선' : 둘 모두 스토리로 보면 꽤나 뻔한 영화인데, 사람의 신체가 보여줄 수 있는 액션의 묘한 쾌감이랄까, 활동사진의 역동적인 이미지들, 그 동선들에 나름의 매력을 부여하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더군요. 특히 엽문은 아직 개봉하지는 않았지만, 개봉하면 극장에서 꼭 다시 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이소룡 영화나 홍콩 느와르의 총격씬들, 그리고 와호장룡의 액션 이미지에 깃들여져 있는 개성과 우와함과 인물의 성격에 대한 일체감이라는 차원에서는 여느 액션영화는 구별되는 매력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스토리는 너무 뻔하긴 하지만요...
내가 내냐?  2009/01/26 19:40
민노씨도 카포티 라는 명화를 지나치지 못하셨군요. 우연히 dvd 사이트를 통해 알게된 카포티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 `IN COLD BLOOD` 를 구입해본 후 카포티가 `IN COLD BLOOD` 를 집필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카포티` 를 접하고 결국엔 아주 최근에 책으로 발간된 `IN COLD BLOOD` 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카포티 는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의 원작자인데 이런 살벌무도한 논픽션소설을 썼다니 처음엔 도저히 한 작가가 탄생시킨 창조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티파니에서 아침을` 을 다시 감상하니 그저 막연하게 떠올렸던 주제가 `문리버` 라든가 세기의 요정 `오드리 헵번` 의 매력등등외에 그 촌철살인의 기지넘치는 대사가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그것은 트루먼 카포티의 `IN COLD LOOD` 라는 논픽션소설 (이 용어 자체가 말이 안되긴 하지요.) 을 진지하게 마주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지요.

영화나 소설로 창조하기에도 끔찍하기만 한 캔자스시티의 네가족 살인사건에 흥미를 느낀 카포티는 수년에 걸쳐 수집한 방대한 양의 인터뷰와 자료를 바탕으로 논픽션문학의 신기원이라 일컬어지는 `IN COLD BLOOD` 를 집필하는데 (책 또한 엄청난 분량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살벌끔직한 원고를 집필한 후로 단 한편의 제대로 된 책을 집필하지 못하고 알콜중독자의 삶을 마감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첫 감상은 아무리 그가 자료수집에 충실했다 하더라도 이토록 세부적인 묘사까지는 과연 가능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오히려 전 영화 `카포티` 에도 드러나듯이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작가로서의 지적허영심과 명성에 대한 욕심, 지식인이라는 카포티의 자부심이 상당히 책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 속물적이고 적극적으로 발휘되었을 것이란 의심을 지울수가 없더군요. 영화 `카포티` 에 대한 리뷰에도 이런 감상평이 소수존재하죠. "지식인들의 잔인함마저 느껴지는 영화..." 라구요. 실제 카포티는 두 범죄자, 특히 페리에게 적극 공감하며 그와 자신을 동질화시키는 심정을 토로하면서도 그의 항소와 사면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에게 그래야하는 의무감과 책임은 전혀 없습니다만.

보통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무조건 책에 지고 들어간다.` 라는 이 바닥의 전통같은 것이 있기 마련인데 전 오히려 가지칠 분은 과감히 쳐버리고 두 시간 분량으로 효율적으로 압축한 영화 `IN COLD BLOOD` 를 책보다 더 높이 사고 싶습니다. 일단 흑백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끔찍한 비극을 맞이하는 평화로운 미국중산층 피해자와 인간이라 볼 수 없는 두 명의 가해자의 범죄행각을 정말이지 소름끼치고 한기를 느끼게 할만큼 냉철하고 사실적이며 공포스럽게 묘사해내었거든요. 전 데이빗 핀처의 세븐 을 처음 볼때 잔인한 장면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음에도 불구하고 (세븐에서 범죄장면은 전부 등장인물의 나래이션으로 설명되지 케빈 스페이시가 직접 범죄를 실행하는 장면은 없죠.) 등줄기에 흐르는 한기를 느꼈는데 `IN COLD BLOOD` 로 그러한 두번째 경험을 했습니다. 바로 트루먼 카포티 가 바라는 것이 그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불만이라면 두 범죄자에 대한 카포티의 온정적인 시선이 적지않게 느껴진다는 것인데 (이것에 대해선 출판당시 관계자들에 의해서도 비판받았던 부분이죠.) 잔인하게 살해당한 일가족이 정말 미국사회의 건전한 표상이 될 정도로 청교도적이고 금욕적인 집단이었다는 사실 역시 책에서 자세히 묘사되었기 때문에 두 범죄자의 심리묘사에 상당히 치중한 책과 영화의 후반부가 그닥 제 마음을 두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저지른 범죄는 사형제도의 존폐론을 우습게 만들 정도로 잔인한 것이었기 때문이죠. 카포티의 주의를 집중시킨 것 역시 이 범죄의 철저한 계획성과 야만성, 잔혹성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카포티` 에서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의 연기가 오스카감이었다면 (실제로 수상했죠.) `IN COLD BLOOD` 의 두 범죄자 연기 또한 질식할 만합니다. (배우이름이 지금 기억나지 않네요.) 두 영화를 자세히 보면 `IN COLD BLOOD` 의 범죄현장이 상당부분 `카포티` 에서 재현되는데 당시 범죄기록을 자세히 검토해서 `카포티` 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한다면 `IN COLD BLOOD` 의 감상을 필수적인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군요. 퀸시 존스의 음산한 음악을 배경으로 하는 캔자스시티의 외딴 농장의 흑백화면은 멀리서 잡은 롱샷만으로 범죄의 분위기를 물씬 풍겨내고 있으니까요. 아직 안 보셨다면 `IN COLD BLOOD` 를 헐리우드사상 가장 사악한 범죄영화로 추천합니다.

13. 댓글소녀와 뻥구라닷컴
내가 내냐?  2008/10/25 07:36
오래간만입니다. 민노씨
항상 올리시는 글을 보곤 있는데 오늘 유난히 재미있는 포스팅이군요.
사실 댓글소녀 아래에 있는 글은 집중해서 읽지 않았지만요.
댓글 하나 다는건 절대 어렵지 않지만 글쓴이의 의도와 반응을 염두에 두고 심사숙고해서 댓글을 다는건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건 한국인터넷 문화를 보면 너무 자명하지요.특히 특정사이트의 대문에 걸려있는 자칭 인기블로거의 댓글들을 보면 차라리 없으니만 못한 의미없는 (글이란 단어를 붙이기조차 아까운) `글자들` 의 조합이 난무한데 글쓴이가 과연 그 댓글들을 보고 그걸 칭찬이나 추천이라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또 그 대문에 걸려있는 블로그의 내용들이란 것들이 저작권법 싸그리 개무시하고 퍼온 사진들의 나열뿐이라 제목만 보고 들어갔다다 낚시에 걸린 제 자신을 자책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아서요... 물론 민노씨야 블로그 문화를 선도하는 `진품` 블로거이시지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그 방면에 전설이 된 분이지요.) 아예 자신의 글에 댓글 차단 기능을 설정해서 읽기만 가능하도록 한 분이 계신데 참 진정한 글쟁이란 생각을 합니다. 요즘 절필하신 것이 안타깝지만요. 민노씨도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14.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 사건 : 자백의 증거능력
내가 내냐?  2008/10/29 12:00
마지막 문단에 그 병사의 안녕을 기원하는 착한 맘씨의 글을 남겨주신 점은 역시 민노씨답습니다만, 한국현대사회는 군대의 그것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치열하며 냉정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저로서는 저 병사의 앞날을 무턱대고 격려해줄수 만은 없군요. 근데 요즘은 지능지수 85 도 현역입영대상인가봐요? 이거이거...사실 군대에서 고문관들은 본인보다 주위병사들이 더 피곤하고 힘든 경우가 많은 경우를 상기해보면 저 한국판 검프병사는 빨리 제대시켜주는 것이 한국군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위 글에 대해서는 엔디의 댓글도 참 인상적이다.
엔디  2008/10/30 13:45

그런데, 언론들도 그렇고 왜 IQ 85를 그렇게 강조하는지 모르겠네요. IQ는 대체로 평균이 100으로 된 정규분포를 따릅니다. 85~115는 굉장히 평균적인 수준의 지능지수입니다. 특별히 떨어지는 지능이 아니에요.
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query1=b20j0539a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f/f7/IQ_curve.svg

실제로 장애를 판별할 때에도, IQ가 75 이하로 떨어져야 장애(정신지체)로 판정됩니다. 포레스트 검프도 IQ가 75였죠. (관련 링크)  실제로 저만 해도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의 IQ 점수를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그 친구 IQ가 86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공부 잘 하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일반적으로 학교 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물론 학교에서 치른 IQ 검사에 따른 점수였으니 그 친구가 대충 찍고 잔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요.)
엔디는 요즘 너무 블로깅 장기 휴업을 지나 거의 폐업상태인데... 언제쯤 복귀할건지 궁금하다...

15.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 브래드가 아니다 :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단평
내가 내냐?  2009/02/27 13:04
데이빗 핀처 라는 감독의 작품이 워낙 호불호가 갈리는 감독인데 이번 영화도 여지없나 보군요. 그래도 핀처와 피트라는 이름덕에 사람들 기대는 엄청나게 몰고 다니는 모양이던데요... 아카데미상 13개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하고요(물만 실컷 먹고 말았습니다만)

핀처라는 감독하면 떠오르는 말은 첫째도 스타일, 둘째도 스타일, 세째도 스타일... 그놈의 스타일덕에 말아먹은 영화도 에일리언 3편과 패닉 룸 이고 (제가 1편 다음으로 좋아하는 에일리언 시리즈입니다만) 스타일덕에 터뜨린 영화도 세븐이고 스타일 덕분에 호불호의 최전선에 위치한 영화도 파이트 클럽이고... ㅎㅎㅎ (전 사실 파이트 클럽 에 대해서는 선뜻 호쪽에 표를 던지기가 좀 망설여집니다)

데이빗 핀처가 그 `스타일` 을 확실하게 양보한 덕에 발표한 전대미문의 걸작이 조디악 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영화 역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영화이지요. 참 핀처 라는 감독은 당대에 평가하기 어려운 개성넘치는 인물같아요. 언젠가는 자신의 일대기를 스타일리쉬하게 영화로 만들면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요.

벤자민 버튼 은 그 내용만으로는 그렇게 기대를 하기 어려운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브래드 피트 의 이름값으로 영화의 완성도를 기대하기에는 피트의 연기력이 좀, 아니 많이 떨어지지요. 매니아를 그토록 확보하고 있는 파이트 클럽조차 냉정하게 보자면 극을 이끌어나가는 실질적 주인공은 피트보다는 에드워드 노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세븐을 가끔 다시 감상하면서 전설적인 케빈 스페이시도 당연하지만 기네스 필트로의 짧은 등장이 없었다면 그야말로 피트는 꼬붕형사노릇에 멈추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피식 웃곤 하는데 벤자민 버튼 에서는 케이트 블란쳇의 도움을 많이 받나 봅니다. 실제생활에서나 극중에서나 여복은 여전하군요.

데 이빗 핀처같은 개성넘치는 재능을 가진 감독의 대중적인 감각의 수용이 그만의 스타일을 잠식하는 독약으로 작용하지 않기를 그의 팬으로 바라며 벤자민 버튼의 dvd 출시를 기대해봅니다. 근데 상영시간이 166분이라니 정말 어느 이십자평대로 포레스트 검프 2탄이 되지는 않았을지 걱정되는군요.

16. 비극과 희극 사이에서 길을 읽다 : [박쥐] 프리뷰
내가 내갸?  2009/05/06 01:55
허... 이거 뭔 말씀이 뭔 말씀인지... 당췌 알아들을 수가 없구만요.
그래도 박쥐 란 영화가 이렇게 많은 담론을 이끌어내는 것을 보니 그래도 `텍스트` 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만할 가치가 있는 작품인가 봅니다. 요즘에 골머리 아픈 것이 점점 지겨워져서 그냥그냥 눈에 쉽게 들어오는 영화들만 봐와서 그런가 박쥐 라는 영화가 확 땡기네요.

그래도 워낙 기존의 한국영화들이 장황하게 구태의연한 설명조의 화면들을 늘어놔서 그런지 이렇게 상징들을 의미심장하게 깔아놓은 `척` 하는 영화가 가끔씩 나와서 나쁜 제 머리를 더욱더 복잡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은근히 가져봅니다. 근데 솔직히 전 박감독 영화를 보고 그렇게 깊은 의미가 들어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게 제대로 된 비유라고 생각치는 않지만 제 얕은 지식으로 더듬어보면 70년대 락밴드들에게는 `난해함` 이라는 코드가 무슨 유행이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음반에 삽입되던 시절이 있었지요. 당대의 팬들은 무슨 철학책까지 들춰가며 해석을 한다고 설레발을 쳤는데
요즘에 와서는 `저 가사 지들도 뭔 소린지 모르고 쓴 것이다.` 라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단 말이죠. 그렇다고 박감독 영화가 지도 뭔 소린지 모르고 찍었다는 이야기는 아니구요, 자칭 비주류 영화를 찍는다고 자처하는 감독치고는 너무 화면 곳곳에 멋을 많이 부린 흔적이 보여서요 (대표적인 예로 금자씨) 대중앞에서는 비주류니 ,b급무비 감독이니 해도 속으로는 제일 똑똑하고 아는것 많은 식자층에게 제대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속물근성이 살짜쿵 엿보여서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이 더욱더 기대됩니다. 진정한 b급무비란 것은 평론가들이 아예 상대도 안해주는 영화들이 대부분인것을 상기해보면 박감독의 야심은 장르의 치밀한 교배를 통한 작가주의의 정점에 도달하고 있지 않은가 추측해봅니다. 그리고 그의 야심이 성공적인 수확을 맺기를 바랍니다. 요즘 본 한국영화들을 열거해보자니 언급하신 트뤼포의 `거장의 졸작이 바보천치의 걸작보다 운운` 하는 어록에 딱 들어맞는 것 같거든요.

제가 박감독의 영화에 가지는 불만은 아이러니하게도 삼류관객들이 지들이 이해못하는 영화에 대고 짖어대는 가장 대표적인 문구인 `건방지게 관객을 가르치려 한다.` 는 말인데요, 정말 똑똑하고 아는 것 많은 감독이라면 한 수 가르쳐주실때 두 수, 세 수 얼마든지 배울 용의가 있습니다만 박감독의 영화는 가르침을 넘어서 `니들 대가리로는 가르쳐줘도 이해 못할걸? 가서 평론가들 평이나 열심히 읽고 그래도 이해못하겠으면 니들 수준에 맞는 영화나 봐` 라는 학교에서 공부잘하는 우등생들이 밑바닥에서 기는 친구들에게 보내는 시선을 자꾸 영화에 투영시키려 하는 것이 눈에 훤히 보여서요.

반대로 각종 영화장르를 아우르며 갈고 닦은 실력을 화면 전반에 화려하게 깔아놓는 영상을 보면 아무리 공부잘한다고 잘난체를 해도 속으로 깊은 시샘과 열등감이 느껴지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박감독 영화의 매력이지요. `한국영화` 에 조르즈 시발 (발음이 맞나 모르겠네요.) 의 음반을 사운드트랙에 삽입할 생각은 아무 한국영화감독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말입니다. (금자씨에서)

제 짧은 눈으로 볼 때 박감독은 본인이 사랑한다는 b급 무비보다 공동경비구역 같은 철저한 주류의 영화를 만들때 가장 자신의 진가가 발휘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작되는 영화도 그런영화를 한 작품 정도만 더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의 최고걸작으로 꼽는 영화가 바로 단편영화모음 쓰리 의 에피소드인데 b급 정신이 충만한 그 단편조차 어지간한 영화적 지식이 없으면 만끽하기 어려운 작품이었거든요. 제가 뱀파이어 영화 박쥐 에 대한 호불호의 평을 읽으면서도 한편으로 했던 기대는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게도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크리스찬 슬레이터, 안토니오 반데라스 같은 별들의 전쟁을 만들려다 별똥별 신세도 되지 못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보다는 나의 취향에 맞겠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기대는 그다지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박감독에 대한 과대평가니 거품 운운하는데 제가 꼽는 진정한 과대평가와 거품은 봉감독이라 생각합니다. 괴물은 물론이고 살인의 추억 에서조차 그는 과분한 명성을 얻고 있죠. 굳이 제 호불호를 나눈다면 전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의 열작품보다는 이창동, 김기덕, 홍상수 의 한작품 에 제 시간을 투자하겠습니다.

민노씨  2009/05/06 23:08
친애하는 내내님께서 알아들을 수 없겠다니 심하게 찔립니다. ^ ^. 스포 불안을 염려하다보니 써도 그만 안써도 그만인 밍숭미숭한 글이 된 것 같네요. 앞으로 신경 쓰겠습니다.

휴일은 잘 보내셨는지요?
안그래도 내심 궁금하던 참입니다.
이렇게 다시 찾아주시니 정말 반갑네요.

1. 무비토크에서 링크님이 지적하는 것처럼 그래도 이만큼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감독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라는 허구를 통해 현실을 우리가 성찰해야 하는, 추구해야 하는 진실의 이미지들(예술을 통해서 그 진실은 여전히 추상적인 이미지의 형태로만 감지된다고 보는데요) 반추할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예술의 의미이자, 특히나 이토록 대중적인 영화라는 예술형식이 갖는 큰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박쥐라는 영화가 확 땡"긴다는 내내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ㅎㅎ

2. 지난 친금 글에서도 표했습니다만, '친절한 금자'같은 경우에는 영화적인 재미라는 차원에서 그 표현의 과장은 충분히 이해될만한 수준이고, 또 그 표피의 이미지들이 작품의 내재적인 진실과 호응한다는 점에서도 저로선 단순히 "겉멋"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관점에서는 '지구를 지켜라'와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이야기는 뒤에 좀더 이야기할까 싶고요.

3. 지적 속물근성
지적 속물근성에 대해선 박찬욱의 기존 영화, 혹은 이번 영화보다는 앞으로 개봉될 홍상수 영화('잘알지도 못하면서')가 좀더 적극적인 예시가 될 것 같습니다. 홍상수는 이번에 아주 노골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외부(대중)의 불만에 관한 이야기를 찍는 것 같은데요(물론 이전작들도 대체로 그런 경향이 강했지만요). 지식인의 속물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또 동시에 관조하며 '짓궂은' 방식으로 성찰하는 홍상수의 스타일이 이번 영화를 분기점으로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거나 혹은 지긋지긋한 '변주'에 머물거나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4. 권위적이며 계몽적이라는 성격
박찬욱 영화가 그렇게 권위적인 성격을 강조하거나, 대중적인 취향이나 수준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B급 영화의 스타일을 추구하지만 그러기에는 그 주제가 너무 무거운 영화를 찍고 있다는 점이 이전에는 대단히 창조적인 균열의 에너지로써 영화의 완성도에 기여했다면, 이번에는 그런 자의식 과잉이 영화의 스타일에 소통 불가능한 작위적 코드(바이러스)를 심었던 것은 아닌가 싶어요.

4-1.
그런 차원에서 무비토크에서도 이야기했습니다만, 저 역시 대중적인 스타일이라는 관습적인 억압이 박찬욱의 영화에 대한 창조력을 높일 수 있는 긍정적인 '조율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점에서 "주류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자신의 진가"가 발휘된다는 내내님의 입장에 매우 공감하게 됩니다.

5. '창조적 인용'이라는 차원 : [쓰리, 몬스터]의 경우
저 역시 '쓰리'에서 박찬욱의 에피소드는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그 영화에서 기존 영화에 대한 '창조적 인용'의 흔적은 크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만(다음에 기회가 되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 ) '창조적 인용'이라는 차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지구를 지켜라]겠죠. 그리고 이스트우드의 영화적인 연대기 전체, 이안이 장르의 규칙들을 자신의 탁월한 역량으로 재소화하는 그 놀라운 해석력 등이 영화사적으로는 '창조적인 인용'의 관점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찬욱의 경우에는 그것이 마치 '아버지의 욕망을 모방하는 불안'(혹은 해롤드 블룸의 관점을 빌자면 자신이 극복해야 하는, 하지만 닮고 싶은 선배의 영향에 대한 불안)을 통해서 '흔적'으로만 영화적으로 형상화된다는 점에서 그 불안이 얼마나 박찬욱이라는 실존의 내부에서 재해석되었는지가 그 영화의 완성도에 반영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차원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이안은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안은 누구보다 스타일리스트라는 생각을 저 개인적으론 있고, 그렇게 영화적인 형상화에 대한 '융통성'이랄까요? 그런 점에서 박찬욱보단느 훨씬 더 '장인적인 성격'이 높다고 봅니다(그건 이안과 박찬욱의 장단점이겠지요).

추.
1. 봉준호를 저평가하시는 이유에 대해서도 나중에 들어볼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 )
2. 내내님과의 대화, 정리해서 따로 포스팅하고 싶네요. 기존에 제 블로깅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말 깊이있는 논평을 주시는 고마운 독자들이 계시는데요. 내심 '독자 열전'이라는 타이틀로 내내님과 같은 고마운 독자이자 제 블로깅의 비평가들께 제 나름으로 작으나마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간단한 후기.  
1. 잊고 있었던 댓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런 저런 감상들이 피어난다. 때론 잊고 싶었던 기억의 편린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때론 더 없이 따뜻한 정감의 느낌들이 다시 살아오기도 한다. 좀 노가다긴 하지만 쓰길 잘했다.

2. 자주 내 글보다 댓글로 남겨진 논평이 훨씬 의미있다고 느껴질 때가 부지기수이고, 그런 논평을 접하면, 그 글들이 '댓글창'이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 갇혀 있는 듯 해서 참 아쉽다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이렇게나마 정리하니 그 아쉬운 마음, 독자에게 빚진 마음을 좀 더는 것 같기도 하다.

3. 자신의 블로깅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해나가야할 블로깅의 방향을 설정하는데도 이런 댓글 논평 정리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슬럼프에 빠진 블로거라면, 이런 작업들을 통해 블로깅의 의미를 다시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도 갖게 된다.

4. 칭찬과 격려를 주는 독자들은 블로깅에 있어서 더 없이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그렇게 우호적인 독자들만을 상대로 '끼리끼리의 성'을 쌓고자 함은 아니다. 가감없는 비판으로 내 정체되고, 게으른 인식의 틀을 깨뜨려주고, 또 내 부족한 체험을 메워주는, 그저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대화를 나는 원한다. 그런 댓글을 통한 대화들로 서로 성장하고, 서로에게 작으나마 위로가 되길 원한다(내가 무슨 댓글에 편애를 갖는 것은 아니고, 링크와 인용을 통한 대화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블로그를 통한 대화방식이다). 그런 차원에서 내가 앞으로 독자 열전에 그 고마운 이름을 올리는 독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언제라도 내 블로깅의 부족함을 허심탄회하게 지적해주고, 내 글을 더욱 혹독하게 비판해주시라. 거듭 부탁드린다. 당신들에겐 내 쥐뿔만한 자존심으로 오해하거나, 괜한 감상적인 연약함으로 그 취지를 왜곡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보잘 것 없는 블로그를 따뜻한 온기와 깊이있는 인식으로 채워주는 많은 독자들께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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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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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aylene 2009/05/07 04:26

    아 저도 소중한 독자 1人이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좀더 열심히 읽고 피드백을 해야할 듯..
    내내님은 정말 멋진 분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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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5/07 05:12

      아 저야말로 레일린님의 소중한 독자 1人이 되고 싶습니당. :D
      레일린님 덕분에 무플 면하네요.
      내내님과 소주 한잔 하는 날이 오면 레일리님도 꼭 초대하고 싶네요.
      물론 우선 한국에 오셔야 겠지만요. : )

  2. 의리 2009/05/07 07:49

    댓글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트랙백으로 날려도 될만한 양과 질이네요.
    글쓴이에게 참 고마운 독자가 아닌가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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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5/08 17:11

      맞습니다.
      정말 제 블로깅에 강한 의미를 던져주는 고마운 분이시죠.

  3. 상오기 2009/05/07 10:29

    댓글 하나 하나 모두 하나의 포스팅 수준 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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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5/07 12:53

    예전에 foog님이 연말결산하신 글에서 "댓글 달고 싶어지는 블로그"를 꼽으셨던 기억이 나네요. 상당수 블로그의 댓글이 있으나마나한 것들이 많은데 이렇게 멋진 댓글러(라는 용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를 독자로 만들고 또 그 댓글을 모아 보여주는 민노씨의 블로그야 말로 진정 "댓글 달고 싶어지는 블로그"가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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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5/08 17:33

      무슨 이런 과찬을요..;;; (민망하다능..;; )
      좀 다른 관점에서는 역시나 논쟁적인 이슈에 부합하지 않는 글인 경우에는 댓글이 많이 달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런 글의 경우에는 '지속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그 속성상 당연하지만, 한편으론 아쉬움이랄까, 한계랄까를 오히려 더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블로그상 블로거와 독자의 관계는 꾸준하고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그렇게 대화의 밀도를 높여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물론 대부분의 블로그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믿지만요.

  5. 비밀방문자 2009/05/07 18:55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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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5/08 17:55

      별말씀을요.
      제가 오히려 고마울 따름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 좋은 글을 저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아쉽네요...
      블로그 하나 마련하셔서 이런 좋은 글은 공개해주시면 참 좋을텐데 말이죠.

      일단 비밀글로 써주신 리뷰들은 전체적으로 통독은 했습니다.
      천일야화를 듣는 마음으로 찬찬히 다시 읽어가야겠습니다.

      특히 아래글들 가운데 '박찬욱의 팬'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그 계기가 된 기사는 저도 읽었던 기사였습니다. ㅎㅎ.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던 점이 반갑더군요(아무리 우호적으로 생각해도 인터뷰어라는 그 친구의 역량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아서요... 박찬욱에게는 너무 부당한 취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그 '니체'에 관한 글은 제 글이었나요? ㅡ.ㅡ;;; 그 다소 아쉬운 네티즌 인터뷰어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의 연상에서 제 글을 언급하신건가 싶은 생각도 들어 살짝 민망해지더만요. : )

  6. 비밀방문자 2009/05/07 18:55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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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비밀방문자 2009/05/07 18:55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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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비밀방문자 2009/05/07 14:27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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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비밀방문자 2009/05/07 14:29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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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비밀방문자 2009/05/07 14:31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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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비밀방문자 2009/05/07 14:45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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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비밀방문자 2009/05/07 19:04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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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내가 내냐? 2009/05/07 15:15

    박찬욱 감독은 영화평론가 시절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특유의 달필로 영화잡지에 소개하곤 했죠. 자신이 애착을 가지는 고전을 자신의 영화에 은근슬쩍 깔아놓는 것이 혹자에게는 오마쥬로 혹자에게는 표절로 해석됩니다.

    저는 쓰리 의 마지막 박찬욱 단편의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온몸이 묶여 움직임이 불가능한 강혜정이 이빨로 임원희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결말을 영화 중반쯤 본능적으로 연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저 역시 박감독 평론의 애독자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구요. 그 순간에 십수년전 그가 잡지에 기고한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가 반사적으로 떠올랐어요. MONKEY SHINES 라는 호러영화로 교통사고를 당한 주인공이 얼굴만 움직일 수 있는 최악의 식물인간이 된 후 그의 보행을 돕기 위해 고용한 지능높은 원숭이가 나중엔 주인공의 가족을 죽이고 휠체어에 탄 주인공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는 것인데 팔다리를 꼼짝할 수 없던 주인공이 원숭이를 유인해 죽이는 방법이 바로 이빨로 원숭이를 물어 죽이는 것이었지요. 그 영화와 쓰리 를 비교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를 과장한 것이 아니냐구요? 절대루요.
    이건 흔히 예술쟁이들이 하는 얘기로 `필` 이라는 것인데 이건 어거지로 갖다붙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랬다면 십수년전 딱 한 번 본 영화 MONKEY SHINE 과 박찬욱의 글이 찰나에 제 머리속에 떠오를리가 없죠. 제가 무슨 천재도 아니고. 이렇게 박감독의 영화에서 어디서 본듯한 장면을 떠올리며 복기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박쥐 도 그런면에서 풍부한 볼거리가 있을 것 같군요. 내일은 박감독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를 빌려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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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5/08 18:12

      저도 박찬욱이 평론가시절 영화 주간지 타블로이드판(제목이 뭔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무가지였던가 아니면 몇 백원이었던가....)에 쓰던 평론들을 읽곤 했습니다. 솔직히 그 땐 제가 지금보다도 훨씬 더 과문했던 때라서 알 수 없는 저항감이 생기기도 했고, 잘 이해되지 않는 리뷰들도 많았던 기억이 어렴풋 떠오르네요.

      오마쥬와 도용의 분리는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에 의해 가늠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서 세부적인 표준을 마련하기란 꽤나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합니다. 아주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창작'이란 것도 일종의 '창조적인 도용'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할 때도 종종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위대한 대가들은 있기 마련이지만요(하지만 이 경우에도 세계가 우연적으로 그 대가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들, 스스로 세계의 매개로 포착된 전달자에 불과하다는, 즉, 세계가 이미 품고 있는 진실을 발견해내고, '발견자'로서 그 발견을 재현하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도 하기는 하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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