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겨레 좋아한다.
한겨레가 잘 나가서, 고급지(놀고있네. 이건 선언만 때리고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라서 좋아하는거 아니다.
내게 세상을 처음 알려준 신문이 한겨레라서 좋아한다.
한겨레 광고를 통해서 노동해방문학을 만났다.
노해문을 통해서 박노해의 시와 이정로의 피끓는 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난 그 때부터 세상을 본다는 게 어떤건지 조금은 깨달았다.
고종석의 매혹적인 기사들을 통해 김현과 황지우를 만났다.
김현은 좀더 커다란 지성의 세계을 엿볼 수 있게 해줬다.
그건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체험이었다.
그리고 황지우.
그는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정신의 전범 같은 존재였다.
세상 모르는 나에게,
한겨레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지성의 모험을 위한 일종의 동반자였고, 안내자였다.
나는 한겨레의 태도를 좋아했다.
한겨레의 태도는 최소한 진지했다고 기억한다.
서설이 길어지는구나.
암튼 그랬다.
조선일보에 난 기대 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그 존재 자체로 반저널리즘이라고 나는 믿고, 또 그렇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난 편견을 증오하지만, 조선일보에 대해서만은 그 편견을 버리고 싶지 않을 정도다.
다만 한겨레는 조선일보의 반대편 아닌가.
그토록 실망하면서도 지키고 싶은, 희망을 버리기 싫은 무엇인가가 남아있다고 느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버지니아 사건이 터졌다.
무고한 생명이 그렇게 죽어갔다.
이건 모든 종이신문, 온라인 저널들의 일면일거다.
한겨레도 예외 아니다.
그런데 너무 실망스럽고, 아쉽다.
아직 한겨레를 희망하기에 쓴다.
청천벽력 교민사회 "한국인 피해 입을까 불안" (큰 제목) - 3면 메인
"한때 중국인으로 전해져 안도했는데" (작은 제목)
"앞으로 멕시칸을 보는 것 이상으로 색안경을 끼고 볼까 봐 두렵다" (현지 교포 인용)
"어렸을 적 미국으로 왔다면 소수자로 크면서 억눌린 것들도 많았을 것" (위와 동)
기사 1.은 민족적인 동질감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편견을 은연중에 조장하기까지 한다. 중국인이었으면 '다행'인 사건인가? '멕시칸을 보는 것'처럼 미국내 한국인을 보면 어쩌나 하고 걱정해야 하는 사건인가? 물론 나 역시 미국내 우리 교포들 정말 걱정된다.
다만 무고한 목숨이 어처구니 없이 쓰러졌다. 그게 미국이든, 러시아든, 이라크든, 어디든.. 상관없이 그 쓰러져간 목숨에 대해 경건함와 애도를 표하는 것이 순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민족, 우리나라만 걱정하면 그게 배타적 민족주의, 배타적 맹목적 쇼비니즘과 뭐가 다른가?
범인 조승희 누구인가 - 3면 하단 2단 박스
(... 중략 .. ) 총기난사 사건의 '주인공'인 조승희씨는 (... 중략...)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으로 거의 확실시 되는 용의자를 '주인공'이란다.
이게 무슨 범죄영환가?
어디서 주인공을 찾나?
한-미 관계/FTA에 악영향 미칠까 초긴장 - 4면 메인
정부 표정 (작은제목)
관점 불분명한 친여매체로 비판받는 한겨레의 모습을 그대로 증거하고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FTA가 그렇게 걱정인건가? 아주 살짝 협상 타결 직후에 기사 몇번 때리고, 이제는 정부 걱정해주고 있는건가? 다시 강조하지만, 신문은 '이미지 매체'다. 그 제목을 어떻게 뽑고, 거기에 어떤 사진을 배치하는지, 그리고 그 기사와 기사들 사이에 어떤 의미론적 충돌이 있는지에 따라서 수용자들의 의식은 확연히 달리 반응한다.
총격 당한 유학생 부모 인터뷰 - 4면 우측 2단 박스
"해코지 걱정... 아들 당장 왔으면" (기사 가운데 큰 제목)
물론 자식을 버지니아공대로 유학보낸 그 부모 심정 이해한다.
하지만 좀 심하게 우리나라 자식만 챙기는 거 같다.
출입문 걸어잠그고 난사 ... 탄창 갈아끼우며 여유도 (큰제목) - 5면 메인
버지니아 공대 '학살의 재구성' (작은 제목)
'학살의 재구성'이란다(차라리 '범죄의 재구성'이라고 하지?). 물론 뉴스가치 높은 사건이고, 이걸 궁금해하는, 그 사건 현장을 궁금해하는 많은 독자들이 있을테다. 하지만 굳이 제목을 이렇게 자극적으로 뽑아야 하는건지 난 정말 모르겠다. 오히려 조선일보는 같은 아이템에 대해 '미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상황'이라고 조선일보답지 않게 담담한 제목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탕탕탕...' 난사현장 전세계 알린 UCC - 6면 하단 작은 3단.
팔 유학생 휴대전화 동영상 찍어 (작은 제목)
"(... 중략 ...) 사건이 벌어지자 반사적으로 자신의 매끈한 은빛 노키아 휴대전화를 뽑았다."
개인적으론 가장 실망스러운 기사다.
"매끈한 은빛 노키아" 부분에서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노키아 광고하잖건가?
정말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이상한건지, 내 감수성이란게 정말 너무 예민해서, 이렇게 나 역시도 오버하고 있는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혹 한겨레에 너무 기대가 커서 이러는건지...
내가 정말 읽고 싶었던 기사는 없었다.
그나마
위 기사가 그 관점에서 동의할 수 있는, 그리고 그 표현을 문제삼지 않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사다.
물론 일면과 외신종합(정리)한 기사와 뻔한 사설은 제외다.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선 어떤 차별도 없어야 한다.
물론 그 죽음의 무게들은 그 망자에 따라 그리고 그 망자를 바라보는 사람마다 다를테다.
하지만 그 죽음을 대하는 최소한의 경건함,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나.
그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가치라고 우리는 믿고 있지 않나.
우리는 최소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경건해야 한다.
미국인의 죽음이든, 러시아인의 죽음이든, 혹은 FTA에 항의해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고 허세욱과 같은 우리 한국인의 죽음이든 말이다.
한겨레가 그 경건함을 그 최소한의 예의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나는 느낀다.
정말 몹시 유감이다.
p.s.
언론이든 블로거든 버지니아 사건으로 미끼질은 제발 하지 않기를 바란다.
추.
먼지님께서 댓글로 알려주신건데요.
제가 읽은 한겨레신문은 4월 18일 제6판입니다.
그 이후의 판에서는 기사의 배치와 제목이 약간 바뀐 것들도 있다고 하네요.
댓글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먼지님 소식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