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도 뵙지는 못했지만, 오랫동안 블로그계에서 교류해왔던 한 블로거께서 저에게 조언을 구하셨습니다. 다음(DAUM)에서 벌어진 블로거 간 분쟁에 관한 사안인데 비밀 방명록을 통해 조언을 구하셨지요. 그래서 저 역시 비밀글로 의견을 전해야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안이 갖는 공적 논의 가치를 고려해 분쟁 당사자 및 문의하신 분의 온라인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는 표현과 사적 내용은 모두 배제하고, 새로운 익명(가명)으로 표시한 상태에서 제 짧은 생각이나마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점 문의해주신 블로거께 양해를 구합니다. 이하 간단히 제 생각을 써볼까 싶습니다.

<개요 : 극단적 요약>


당사자 '을녀'의 주장 (가명. 여성) : 블로거 갑돌이 7개월 동안 나를 스토킹하고, 괴롭혔다. 경찰에 조사를 의뢰했고, 경찰은 조사를 끝내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상황이다.  

당사자 '갑돌'의 주장 (가명. 남성) : 블로거 을녀가 먼저 나에게 접근했다. 내가 '다음 뷰'에서 잘 나가는 블로거인 걸 알고, 글을 대필해달라고 요구해 나는 60여개의 글을 대필해줬다. 지금 을녀의 행동은 너무 뻔뻔하다. 맞고소하겠다.

문의자 '이웃사촌'의 입장 (가명) : "......" 이런 사건이 있다. '다음(Daum)'은 이 분쟁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 민노씨는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하다.

* 알림 : 위 '갑돌' '을녀'의 주장이 담긴 글 링크는 의도적으로 생략. 사실확인이 어렵고, 극단적 주장만 있어서..;;


0. 이웃사촌 님의 입장에 대해

* 참고 : 이웃사촌 님은 '을녀' 편에 서서 '갑돌'의 행위를 비판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갑돌' 입장에서 '을녀'의 행위를 비판하는 입장에 선 분이었다고 하더라도 제 판단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 입장은 양쪽에 공히 모두 적용되는 입장입니다.

저는 '이웃사촌'님의 행동을 순수한 동료애와 정의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옆에서 상황을 지켜본 입장"이 아니라서 이웃사촌 님과는 정서적 공감의 위치가 다르고, 이것을 차치하더라도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하며, 블로그상 공개된 자료만으론 아직은 양 쪽 어느 한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다른 편을 비판할 만한 판단재료를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갑돌과 을녀의 주장이 갖는 무게(형사사건에 해당할 만한 행위 주장)를 고려하면이 사안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개인 간의 사적인 행위'에 기반하고 있기에, 즉 어떤 공적 인물, 공적 행위에 대한 판단이 아니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적인 행위에 기반해서 그런데 그 행위로 인해 어느 한 쪽은 인격적인 치명상을 입을 수 밖에 없기에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고, 그 당사자에게 뿐만 아니라, 언제든 이런 유사한 사건에 휘말릴 수 있는 우리 자신에게도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인격이 걸린 문제인 것이죠.


1. 다음(DAUM)은 경찰도 검사도 법관도 아닙니다.

이웃사촌 님께선 "고소, 수사의 절차상 경찰에서는 직접 다음뷰에게 자료 요청"했을 것으로 말씀하셨죠. 맞습니다, '다음'에게 이 분쟁과 관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다음'에선 이 사건과 관련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다음은 경찰도 아니고, 검사는 더욱 아니며, 법관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음이 현단계에서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일은 (거의 혹은 전혀) 없다고 봅니다. 다음이라는 서비스는 약관에 명시된 회원들의 '일정한 행위들'(가령 게시물을 통해 표현된 명백한 범죄적 행위들)에 대해서만 일정한 약관상 절차/벌칙 조항에 의해 규제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극단적으로 가정해보죠. 다음이 '갑돌'과 '을녀' 주장의 진실 여부 판단에 결정적인 '비밀댓글'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다고 이 '비밀댓글'을 일반에 공개할 수 있을까요? 혹은 '비밀댓글'을 통해 갑돌과 을녀 당사자의 분쟁을 내부에서 조정할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약관을 파악하고 있진 못하지만, 전혀 그럴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다음은 '심판자'가 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그저 중립적인 관리자에 불과합니다. 다음에게 심판자 역할을 해달라고 나서는 일은 아주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뒤에 좀더 상술하겠습니다.

약관에 '분쟁 조정'에 관한 규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형식적 절차 규정이지, 다음이 그 내용을 판단해서 양 당사자의 합의를 이끌어낼 만한 실질적인 내용에 관한 중재 권한을 규정한 조항은 아닐 것입니다.


2. 포털의 임시조치(블라인드) 제도에 대해  

이른바 '임시조치'(블라인드. 명예훼손 등 사유로 권리피해 주장자가 신청하면 30일 동안 게시물을 가리는 것)는 광의로 생각하면 분쟁조정에 관한 한 장치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분쟁에서도 '갑돌' 측에서 '을녀'의 게시물을 이 임시조치 제도를 이용해 여러 번 블라인드 처리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직 법적인 판단을 받기 전, 제3자가 상식적으로 판단하기에 명백한 증거/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 자신의 인격을 명백히 침해하는 글을 올린다면, 결과적으로 그 글의 주장이 맞다고 하더라도, 그 권리 피해 주장자는 자신을 보호하고, 자기 입장을 항변할 권리를 갖고, 그것이 현존하는 임시조치 제도의 긍정적인 취지입니다.

물론 현실에서 '임시조치' 제도는 아주 악용되고 있습니다. 힘 있는 기업과 정부, 소위 공인과 유명인, 권력자들이 자신을 비판하는 의견들을 폐기시켜버리는 제도로 악용되는 측면이 있죠. 심지어 일부 '맛집'에서까지 자기 가게에 대한 비평(혹평)을 지워버리기 위한 수단으로도 이 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제도에서 게시자(삭제된 게시물 게시자)의 반론권은 '권리 침해 주장자'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도 사실입니다.

(+ 인주찾기 4. 새드개그맨, <누가 명예를 말하는가?> (녹취록) : 이 글을 통해 임시조치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안들을 참조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3. 동료애와 정의감의 발현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것은 당사자가 공개한 자료에 바탕한 자유로운 토론이어야 합니다.

이 사안에서 법적인 판단은 경찰/검찰/법원에 맡겨야 합니다. 제가 보건대 갑돌도 을녀도 자신의 법적 권리를 충분히 알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당한 일에 대해선 누구보다 훌륭하게 항변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렇다고 주변에 계신 블로거들이 아무것도 해선 안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양 당사자가 공개한 자료들을 통한 사회적, 도덕적 판단과 평가는 얼마든지 자유입니다. 연판장을 돌리는 일도 자유이고, 이웃사촌 님처럼 관심을 호소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법적인 판단'을 대체하는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감정적인 정서적 선입견을 조장하는 '여론재판'을 유도하는 것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이 모든 자율적 사회적, 도덕적 판단은 인터넷이라는 자유로운 사상시장의 토론 메커니즘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 토론에서 어느 쪽의 입장을 지지하고, 또 비판하던 간에 그 주장의 질량과 부피는 거기에 합당한 근거와 자료들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갑돌 vs. 을녀' 사건에서 모두 강한 주장만 있지 스스로 '물증'이라고 할 만한 것을 제시한 바 없고, 또 있더라도 그 '진실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할만한 명쾌하지 못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양측에서 공개한 명백한 판단 재료가 과연 무엇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알고 계시면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4. 다시 강조하지만, 다음은 심판관이 아닙니다.

제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런 점입니다. 블로거들이 어떤 사적인 일이 갖는 공적 성격에 관심을 갖는 건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심이야말로 사회적 상상력, 정치적 상상력의 맹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블로그 커뮤니티의 자율적인 토론 매커니즘을 통해 이뤄져야지, 어떤 시스템의 관리자에게 의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스템 관리의 공적 측면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은 권장되어야 하지만, 그 관리자에게 아직 밝혀지지도 않은 '사적 생활에 기반한' 사건의 '심판관'이 되어달라고 요청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이 내부 자료를 스스로 판단해서 어떤 회원(다음서비스와 계약한 블로거)를 손쉽게 단죄할 수 있다고 해보죠. 이건 일개 사기업에게 마치 사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실질적인 효과를 부여합니다. 이것은 그 특정한 서비스 공간(이를테면 다음뷰를 매개로 형성되는 커뮤니티)가 생활공간 자체인 어떤 블로거에겐 일종의 사형 선고와도 같은 것입니다. 좀 과장하면, 흡사 다음(DAUM)에게 다음을 공간으로 활동하는 모든 블로거들의 '빅브라더'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같죠. 아주 위험할 수도 있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웃사촌 님 취지가 그런 취지는 아니라고 넉넉히 신뢰하고, 또 제 우려가 과한 것이겠지만요.

다시 강조하지만 블로거 사회의 자율적인 토론과 자유로운 공방을 통한 진실 추구는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마땅합니다.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일반적으론 합리적인 의심과 논리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갑돌 vs. 을녀' 사건처럼 사적으로 민감한 사실관계에 기반한 사건은 그 일반적인 토론 요건보다 좀더 엄격해야 한다고 봅니다. '공개된 명백한 사실' 혹은 양측에서 자발적으로 '공개한 자료'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판단하기에 '갑돌 vs. 을녀' 사건에서 다음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편에서 서서 이 사건을 바라보든, 법적인 판단과 사회적, 도덕적 비난가능성은 엄밀하게 분리해서 판단해야 하고, 또 이 사건을 너무 손쉬운 이분법으로 판단해선 안된다고 봅니다.

끝으로, 이웃사촌 님의 동료애와 정의감에 대해선 다시한번 넉넉한 신뢰와 더불어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 추. 다음 뷰 편집과 이 사건을 연계 시기키는 시각에 대해 ... (사족)
제 블로그(민노씨.네)는 독립형(설치형)입니다. 다음 블로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요. 더불어 '다음 뷰'에도 거의 송고하지 않습니다(최근 1,2년 동안은 아예 송고한 적도 없죠). 제 예전 글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다음뷰의 정책을 아주 강도 높게 비판해왔었죠...  물론 이제는 애정이 식어서 포기했습니다. 그 만큼(?) 다음 블로그와 다음 뷰 모두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니 굳이 다음을 편들만한 글을 쓸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모를까...

다음 뷰의 '편집(노출) 정책'을 이 사건과 연계하는 관점은, 뭐랄까, 과도한 의심인 것 같습니다. 설혹 다음 뷰 관리자가 어떤 의도를 갖고 갑돌의 글을 높게 노출시키고, 을녀의 좋은 글들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낮게 노출시킨다 하더라도, 그 글이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각자가 써온 글들(갑돌의 야구글, 을녀의 음악글)이라면 이것은 일개 사기업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될 수 있을지언정, 이 사건과 연계되어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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