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벗 민정씨(파리2대학 언론학 박사과정)가 보낸 서면 질문에 대한 간단한 답변들. 


Q1. 인터넷 규제에 관한 법률들의 도입 이후 네티즌들의 행동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는지?
정보통신망법 상 '명예훼손'을 비롯한 불법정보에 관한 규정들
정보통신망법 44조의3 임시조치
정보통신망법 44조의 5 제한적 본인확인제(소위 '인터넷 실명제')  
전기통신기본법 47조상 허위사실유포죄(이른바 '미네르바' 사건의 근거조항)
공직선거법 93조 1항 상 선거전 180일동안 침묵 강요 ( http://www.minoci.net/936 )
저작권법상 형사처벌 조항들 등등

1. 네티즌들의 행동에 어떤 구체적인 변화가 있었는지는 사회과학적 심층 면접조사를 통해서 밝혀질 수 있는 바, 여기에선 개인적인 추론으로 갈음한다.
2. 인터넷 규제 법률들은 자유로운 표현을 제약하는 속성을 갖는다고 본다. 이는 기존 관련자료를 통해서 보더라도 명백하다.
3. 가장 심각한 것은 수치나 통계를 통해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인 내적 억압, 자기 검열적 순응화다.
4. 이러한 환경에서 특히 정치적인 이슈나 권력자(거대기업/공직자/정치인)에 대한 시민들의 자율적 감시기능은 현저히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이는 정부에서 내세우는 공적인 가치(공정한 선거, 명예훼손 대상자들의 인격권 보호 등)보다 훨씬 더 심각한 언로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기본 요체의 위축을 가져온다고 할 수 있다.

참조자료1. 오병일의 2009년 자료
참조자료2. 인주찾기 컨퍼런스 '인터넷 실명제' 이정환의 발표 중 우지숙 교수의 '실명제 영향' 연구 부분 참조.

Q2. 국가주도적인 인터넷 규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과거 권위적인 군사정권들은 적극적으로 언론을 통제했다. 87년 민주대항쟁 이후 언론 자유는 크게 신장했다. 그리고 21세기 바야흐로 인터넷 시대가 도래했다. 정확히 말하면 (월드와이드)웹으로 불리는 대중적인 인터넷의 폭발적인 팽창으로 말미암아 기존 미디어 패러다임은 변환기에 들어섰다. 여전히 지상파 방송이 차지하는 미디어적 영향력은 큰 변동이 없지만, 기존 종이신문 영역은 웹 유통망이 적극적으로 잠식하고 있다.

웹에서의 의미생산과 유통은 분산화된 크고 작은 허브들을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유동적 구조를 갖는다. 고정된 중앙집권적 의미 생산과 유통을 분산화함으로써 빅브라더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낮추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웹을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은 넌센스 같다. 하지만 웹 시대의 빅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1984'와는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가능할 수도 있다. 비교적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두텁게 보호했던 노무현 정부마저도 국가주도적인 인터넷 통제에 대한 욕망은 저작권법(우상호)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여기에서 주된 타켓은 포털이다. 새로운 언론성을 부여받은 (대한민국에 특유한) 포털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대한민국 네티즌들의 실질적인 활동영역을 고려하면 대단히 자연스러운 접근방식 같다. 이것은 이중의 문제다. 포털이 지배하는 웹 유통망이 그 자체로 빅 브라더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그 하나라면, 포털을 지배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웹의 의미유통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권력이 나머지 하나다.

Q3. 선거법상의 인터넷 실명제의 적용이 실질적으로 한국의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Q4. 한국의 규제에 대해 인터넷 과잉규제라는 논란이 많은데 이에 대해 네티즌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1. 앞서 설명한 것처럼 웹 통제권을 갖기 위해 권력이 취하는 방식은 제도를 통해 포털을 지배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정부의 인터넷 규제에 가장 효과적으로 저항하기 위해선 산업/기술/문화의 차원에서 포털 종속성을 깨뜨리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이런 움직임, 즉 웹에서 자기만의 공간을 독립적으로 구현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어떤 운동도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2. 이와 더불어 제도 개선 운동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부분은 너무도 뻔한 내용이라서 생략.
3. 네티즌 스스로의 자율적인 정보 민주화 운동이 필요하다. 가령 '인터넷 주인찾기'는 그 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Q5. 모바일 시대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어떻게 전망하는지?
스마트 폰으로 상징되는 무선웹의 시대에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정부라기 보다는 엔터테인먼트/게임이다. 어떤 영역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선택을 하던간에 '기회비용'이 존재한다. 아이폰/아이패드의 놀라운 신세계에서 사용자들은 두 가지 가능성에 직면한다. 커뮤니케이션의 놀라운 기술적인 진보를 스스로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 하나라면,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무한 공세에 스스로 항복선언하는 가능성이 그 나머지다. 아거가 '아이폰과 침묵의 소용돌이'에서 지적했듯,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제들이 실질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담보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기술과 기계는 이미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어떤 정신과 문화를 채워넣을 것인가이다. 상업적인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들은 이미 자신들의 모든 화력을 여기에 집중시키고 있다. 그것이 전적으로 나쁘다거나 옳지 않다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런 산업적인 경향들은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위축시키는 '자발적인 포로화'를 증폭시킬 수 있다. 그러니 그 경향에 저항하는 새로운 항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모바일 시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진화는 말 그대로 환상에 불과하다.


* 관련 추천
"....오웰은 외적으로 우리를 압제하는 세력에 의해 우리가 지배당할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반면 헉슬리의 혜안은 사람들에게서 개인의 자주성, 성숙함, 그리고 역사성을 뺏는데는 Big Brother같은 사람이 필요없다고 내다 보았다. 바로 사람들은 자신들을 억누르는 것을 사랑하게 되고, 그들에게서 생각할 능력을 빼앗아간 테크놀로지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중략...) 헉슬리가 Brave New World Revisited 에서 언급했듯이, 오웰의 1984에서는 사람들이 지독한 고통에 의해 통제될 것이라고 보았지만, Brave New World에서는 지독스러운 쾌락에 의해 통제될 것으로 보았다. 간략히 말해, 오웰이 두려워 했던 것은 우리가 증오하는 것들이 우리를 지배할 것을 두려워 한 반면, 헉슬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망칠 것을 두려워 했다."(닐 포스트만)

- 아거, 닐 포스트만의 타계에 부쳐... (20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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