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씨.네 __ 아거와 관객모독: 블로거 페르소나 혹은 블로그가 도달한 슬픔

내가 흔히 온라인 실존이라고 이야기하는 블로거 페르소나(persona)는 똥을 누거나 포르노를 보며 자위 하지 않는다.  페르소나는 실존과 당연히 겹치지만, 그 양자는 서로 다르다.  블로거 '민노씨'라는 페르소나는 오프라인의 나와 같지 않고, 한 철학자의 어투를 빌면, 그저 가족 유사성을 띨 뿐이다. 나는 나라는 역할, 페르소나를 연기한다. 타인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나라는 역할을 연기한다는 점에서 그 페르소나는 나지만, 그 페르소나를 결정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페르소나는 나에게 온전히 속해 있지 않다.

페르소나와 실존, 양자는 같은 존재이지만 다른 존재가 아니라, 같은 존재라서 다른 존재다. 말장난이 아니다. '같지만 다르다'가 아니라, '같아서 다르다'는 게 중요하다. 자아는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단일한 자아란 허구이기 때문에, 자아는 서로 다른 맥락, 관계 속에서 확장한다. 그 확장하는 여러 개의 자아들이 우연과 필연으로 결합해, 마치 실루엣처럼, '나'라는 위태로운 형상으로 구성될 뿐이다. 나라는 존재에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심연이 가로 놓여 있다. 이것은 본질적이며, 그런 의미에서 동시에 실존적이다.

이 글을 쓰게 한 동기인 한 블로거의 페르소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블로거 아거의 페르소나는 몇 가지 핵심적인 키워드들을 품고 있다. 블로기즘. 대공중관계, 에피소딕 기억. 인지적 활동가. 관계적 스키마. 이노베이션. 심리학. 행동경제학... 이런 딱딱한 용어/표현들 가운데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상징은 '관객모독'이다. 블로거 아거에게 블로그란 무대이며, 블로거란 무대에 선 배우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일인극이며,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

아거의 말을 들어보자.
민노씨(@minoci)'누구나 쓰기만 하는 블로깅을 하려고 하고, 읽으려는 블로깅을 하지 않는다'고 개탄했는데, 블로그나 트위터나 모두 이기적 글쓰기다. 시간의 흐름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공인이 아닌 사람들이 블로그/트위터는 소통의 공간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고독이건 나르시시즘이건 폐인이건 중독이건 홍보건,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무대를 짜고 관객을 초청하고 싶어할 뿐이다. 그래서 남의 블로그/트위터를 읽지 않는 것을 개탄할 필요는 없다. 내가 블로그/트위터를 쓰지 않는다면 그곳은 이미 버려진 황무지일 따름이다. 그래서 블로그/트위터가 영원할 것인가를 논하는 것조차 의미없다. 아무리 문전성시고 불야성을 이루는 공간일 지라도 내가 무대에 오르지 않는 순간 그곳은 영원히 죽은 공간이 된다.

- 아거 @gatorlog,
~
"관객모독 공연이 길어지더라도 붙박이처럼 붙어서 끊임없이 뭔가를 말하고 있는 그런 배우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보는 이름모를 관객들이 있다." [관객모독]
@royalwine 고마워요, 관객님.
 


- 아거 @gatorlog
,
담담한 듯, 숨가쁜 아거의 독백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한 연극의 한 장면 같다. 그는 배우이며, 고독하다. 그가 그 고독을 부정하더라도 블로거 아거의 페르소나는 고독한 일인극의 주인공이다. 관계를 통해 의미가 생기고, 그래서 맥락이 만들어지고, 관계들의 '사이'가 발생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공간 역시 각자에게 존재하는 '간주관성'의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가 "무대에 오르지 않는 순간 그곳은 영원히 죽은 공간이 된다." 황지우는 이렇게 말한다. "이기심은 이타심은 아니다. 하지만 이타심은 이기심이다."

홀로 연기하는 나는 이기적이지만, 그래서 내가 떠난 뒤에 그 무대는 텅 비어 버리겠지만, 아거가 말하는 쓸쓸하고, 때로는 한없이 정겨우며,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흘러가는 그 모든 무대들에는 관객이 존재한다. 그 관객들은 모노드라마의 관객처럼 어두운 객석에 숨어 있기도 하고, 마당극의 관객처럼 무대 위로 뛰어 오르기도 한다. 나는 늘 관객들에게 당신과 나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마당극의 주인공들이라고 이야기해왔다. 그건 일종의 바람이지만, 나 역시도 나를 연기하는 배우일 뿐이다. 나는 온전하게 나만을 연기할 수 있을 뿐이고, 그나마도 그 나는 나에게 온전히 속해 있지도 않다. 그건 참 쓸쓸하다. 우리는 어쩌면 그 쓸쓸함을 연기(延期)하기 위해 이 쓸쓸한 모노드라마를 연기(演技)하는지도 모르겠다.

블루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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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짜집시는 이렇게 멋스럽게 변주해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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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는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문득 떠올려본다. 나는 블로그라는 일인극 속에서 적으면 적고, 많으면 많은 관객들과 함께 나의 드라마를 만들어간다. 그 드라마는 지금 어디로 나아가고 있나. 내 소망과 원망과 쓸쓸함과 외로움의 체현인 이 작은 블로그, '민노씨.네'엔 어떤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는걸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건 아주 재미없는 드라마다. 치기 어린 계몽극일 뿐이다. 허망한 푸념이 떠다닌다. 하지만 내가 꿈꿨던 건 아주 멋진 마당극이었다. 그 마당이 광장이 되고, 또 때론 까페의 작은 탁자 위에 켜진 촛불이길 바랐다. 봄이면 함께 손잡고 산책하는 호수가 되고, 겨울이면 벽난로가 있는 오두막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원망과 자조와 한숨 뿐이다. 아, 이것도 참 과장이긴 하다. 블로거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과장한다.

더불어,  대개 공감하리라, 블로거의 페르소나는 '이상화된 자아'를 추구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블로거란 스스로 체현하는 실존이면서, 동시에 관객에게 비치는 '페르소나'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블로그에 비해 훨씬 더 더럽고, 끈적끈적하며, 관습적인 권력의 세계다. 블로그는 현실을 연장하고, 확장한다기 보다는 현실을 대리한다. 그 대리되는 현실로서의 블로그는 속(俗)에서 잉태한 자아가 쌓아가는 자신만의 성(聖 혹은 城)이며,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필연적인 이율배반이다.

그 드라마를 나는 온전하게 끝낼 수 있을까. 나는 내 역할을 덜 후회스럽게 마칠 수 있을까. 그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 내가 무대에서 내려가는 순간, 나와 함께 한 관객들에겐 어떤 잔상이 남겨지게 될까. 그런 상념들은 내 재미없고 메마른 글에도 가득 담겨 있다. 매순간 그 소망과 갈망, 쓸쓸함과 아쉬움은 블로그를 가득 채운다.

블로거들은 실존의 자아를 때로는 부정하고, 때로는 보완하면서 스스로 영원히 끝나지 않을, 끝날 수 없는 드라마를 조금씩 완성해간다. 블로그가 전적으로 목적론적 세계는 아니지만, 그리고 블루문과 가짜집시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의 기록이 콘텐츠가 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록은 나를 미화한다. 그렇게 나를 발가벗기는 부끄러움의 고백조차도 우리들은 미화한다. 그 미화는 하지만 이상화된 자기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이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이제 현실과 블로그는 서로 한몸이 되어간다. 그건 당연하다. 하지만 양자의 역학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하다. 블로그가 현실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그러니 이상화된 자아가 관습적인 세속의 자아를 자극하고, 일깨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 반대 방향으로, 현실 속 관습화된 자아가 블로거 페르소나를 해체하고, 거기에 현실의 권력과 관습을 이식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자기만의 드라마를 만들어가던 블로거들은 하나 둘 사라져간다. 이제 그들은 현실 그 자체가 되어버린 블로그에 적응하지 못한다. 현실이 블로그의 이율배반 속에서 축적되는 존재의 성찰들을 흉내내지 않고, 블로그가 현실의 관습과 욕망을 강박적으로 흉내낸다. 점점 더 블로그엔 블로그에만 있던 드라마들이 사라져간다. 이제 현실이 블로그를 접수한다. 이것이 지금 블로그가 도달한 슬픔이다.


추.
블로그는 "당신을 위한 콘텐츠"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의미에서의 콘텐츠다. 그 콘텐츠는 '어떻게'가 아니라, '왜'를 물어보는 콘텐츠이고, 그런 의미에서 존재론적이다. 블로그의 관계적 육체는 블로거의 독백을 관계적으로 만듦으로써, 그렇게 그 독백을 대상으로 만들지 않고 상호 침투하게 만든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 블로그는 '배우'와 '관객'의 이분법을 점진적으로 해체시킨다.


* 이 글은 컴퓨터가 고장나기 전에 쓰던 글인데, 지금 새로 컴퓨터를 구입하고 나서 이어 쓴다. 도무지 마무리가 될 것 같지 않다. 실은 나는 왜 이런 이상한 글을 쓰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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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대화의 무대에서 넓혀가는 경계와 사이의 지평

    Tracked from via media 2010/03/09 15:46 del.

    어쨌든 이 맥락에서 쓰인 '무대'의 의미를 그저 어렴풋이 이해더라도, 아니 우리의 삶 자체가 무대인 것이 자명하고, 여전히 그 안에서 나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피할 수 없는 배우의 운명으로 무대에 던져져 있다 하더라도, 내 안의 나는 '무대 체질이 아니다'는 태생의 부끄럼증으로 그 무대에서 나를 끌어내리려 한다. 방황 끝에 성공회에서 순례의 천막을 찾게 되어, 신앙의 새로운 이름을 선택할 수 있었을 때, 평생 고민 많았을 마리아의 남편, 예...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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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거 2010/03/09 00:05

    앗.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민노씨의 글에 투영된 나를 볼때마다 소름이 쫙 돕니다. 온라인 실존에 관련된 이런 깊은 사색들을 이어갈 수 없을만큼 이제 관객들은 한시간대에 한무대만 바라볼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밀리세컨즈로 쪼개진 타임라인속에서 정신없이 뭔가를 붙들려고 허우적대기 때문이죠. 그런 무대에 선 배우들도 이제는 나노네트워킹 친화적으로 페르소나를 적응시켜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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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09 05:53

      기형도의 표현을 빌자면, "단 한줄" 혹은 그르니에의 어투를 빌자면, "다시 돌아가서 늘 바라보게 되는 그 순간"의 느낌들을 좀더 응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말씀주신 "밀리센컨즈"와 "나노네트워킹"에 친한 페르소나들도 의미가 없지 않고, 아거님도 저도 그런 파편화되고, 무한한 가속도로 운동하는 의미의 미로 속에서 자유롭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아거님께선 그 '단 한줄' '그 순간'의 기억들을 좀더 오래도록 붙잡아 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2. 필로스 2010/03/09 00:11

    좋은 글이네요. 감정이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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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09 05:54

      필로스님 격려를 받으니 더 기분이 좋습니다.
      물론 스스로에겐 참 부끄러운 글이지만요.

  3. 소셜로그 2010/03/09 00:27

    제가쓰고 있는 소셜로그라는 필명이 부끄럽게 느껴지네요... 누구에게 공감받기위해 블로그에 글을써왔던 저인데 갈증은 늘 해소가 안되더군요.. 한편 저는 페르소나르 오프라인의 확장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고민들을 생각나게 해 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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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09 06:02

      별말씀을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별 자체가 점차로 의미 없어지겠습니다만, 양자는 상호 침투, 보완하는 관계라는 생각을 당연하게 갖고 있습니다. 지금/여기에서 오프라인은 솔직함의 공간이라기 보다는 관습적인 권위와 억울림이 그 권위와 억울림을 인정하는 만큼 비례해서 주어지는 순응적 쾌락과 교환되는 공간이고, 차라리 온라인은 오프라인에서 억울린 자아가 스스로를 해방시키며 현실에서는 감촉하지 못했던 다양한 감각들을 회복하는 공간에 가깝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오프와 온라인이 친해지면서, 오프라인의 관습들이 무비판적으로 이식되는 현실이 개인적으론 몹시 아쉽게 느껴집니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에 충격을 주고, 지속적인 자극으로서, 삶의 거울로서 작동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 거울은 다양한 삶의 실존들이 서로 스스로 역할하고, 또 그렇게 거대한 대화를 만들어가는 거울이겠죠.

  4. mahabanya 2010/03/09 00:29

    나는 오늘도 뭔가를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ㅋㅋㅋ

    진지한(혹은 진지하려고 한) 글에 뻘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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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09 06:03

      이런 가벼운 댓글도 참 훈훈하지 않습니까? : )

  5. 비아메디아 2010/03/09 00:46

    아, 며칠 전 아거님과 통화하다가 이 부분을 이야기하다가 전화가 끊겼는데, 민노씨의 블로그에서 가상의 대화가 이어지네요. 나 자신이 스스로를 오해하고 부인하면서, 실제로는 갈망(욕망)했던 어떤 지점을 매우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군요. 제 마음 한구석이 선연해지는 걸 발견합니다. 여전히 쓸쓸한 슬픔이지만, 이 역시 삶이라는 희극의 한 자락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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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09 06:07

      제 설익은 상념들을 주신부님께서 온전하게 품어서 빛과 향기와 형체를 갖는 풍경으로 만들어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추.
      아거님과는 종종 통화를 하시나보네요.
      두 분 모두 부럽습니다. :)

  6. okto 2010/03/09 00:51

    헐~ 글이 뭐이리 어렵나요-_-; 설마 초딩들 와서 놀지 못하게 하실려고...

    '내 블로그는 당신을 위한 컨텐츠가 아니다'
    그래도 속으로는 남으로 인해 읽혀지고 평가되거나 동감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당신만을 위한 컨텐츠는 아닐지 몰라도 나만을 위한 컨텐츠라면 온라인 상에 공개적으로 놓여질 필요조차 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 본의 아니게 (=귀찮아서!) 쓰는 것 보다는 읽는 것 위주로 하고 있다보니 이 부분이 더 명확하게 느껴지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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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09 06:10

      옥토님께서 솔직담백한 논평을 주셨네요. :)
      말로 하면 쉽게 풀어갈 이야기도 글을 쓰면 왠지 글이 글을 쓰고, 또 그 사이에 생겨나는 행간들이 다시 글을 만들고.. 그런 것 같습니다. 좀 쉽게, 쉽게 써야할텐데 말이죠... ^^;;

      말씀 주신 것처럼 스스로를 위해 쓰지만, 그 글의 첫 독자이자 평론자는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항상 평가되거나 동감을 불러일으키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매한가지일 것으로 저 역시 생각합니다.

  7. 민노씨 2010/03/09 06:11

    *본문 추고.
    오타 수정 및 불명료한 문단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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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icelui 2010/03/09 08:43

    전 차라리 블로그에 풀어놓는 내가 더 나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상화된 자기이지만, 동시에 현실에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취할 수 없는 태도나 생각을 꺼내놓는 거니까. 너무 고상한 척 할 때도 있고 너무 유치할 때는 더 많이 있는데, 어쨌든 그게 나인걸
    아마 그래서, 어설퍼도 나답다 생각하는 나를 보이고, 내겐 가장 근사한 내 생각들을 풀어놓았는데 아무런 관심이나 더욱이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 같기도 하고요. 그게 또 계속 글을 적게하는 오기로 나타나는 것도 재밌다 싶고. 되도록 검색이 되지 않게 하고 블로그 주소도 안 적으려 하는 건, 무관심과 소외를 스스로 조장했다는 핑계를 내 자신에게 선물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 같다는 것도 그런 점을 생각하면 또 재밌습니다. 내 안에서 소외라는 현상에 대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자기합리화와 그런 현상을 수용하지 못하는 오기가 기묘한 동거를 하고 있는데 과연 어느 쪽이 내 본연의 모습이고 어느 쪽이 (자가)학습된, 연기하는 나인지… 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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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10 20:34

      아, 반가운 이슬뤼님. :0
      아주 공감합니다. 오프라인에서의 모습도 나고, 온라인에서의 모습도 나지만, 아무래도 좀더 '자기답고 싶은 모습'은 온라인에서 구현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본연의 나라는 건 신화이거나 혹은 환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점점 더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환상과 신화를 회의하거나, 혹은 실현하는 것도 나이긴 하지만요.

  9. 가즈랑 2010/03/09 12:46

    정말 많이 좋아하면 닮는다고 했나요?

    민노씨 글에서 예전 무버블 타입에서 글 쓰시던 아거님의 모습을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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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10 20:36

      무버블타입에서 글을 쓰던 당시 아거님과 직접 교류하지는 못했습니다만, 무버블타입의 게이터로그는 여전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블로그입니다.
      그나저나 언제 한번 뵈야죠? :)

  10. leopord 2010/03/10 13:34

    “헤겔은 어디에선가, 모든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은 두 번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소극으로.”

    민노씨의 '비극'을 보면서, 앞부분만 언뜻 읽었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 생각나더군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온라인 인격의 개탄은 시간이 지난 뒤 조금은 우습고 쑥쓰러운 소극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건 저 역시 벗어나지 않고요. 과장하고 또 과장하는 것이 블로거니까요. :)

    저 역시 현실세계와 온라인 세계의 모습이 서로 다르고, 또 온라인의 인격도 매체별로 성격이 달라짐을 스스로 바라보면서 여전히 자아가 분열하고 있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인격이란 결국 관계망의 문제라는 걸 생각하면서도 말이지요. 이를 억지로 통합하겠다는 아이디어는 부질없을 겝니다. 다만 그 간격이 지나치게 커지거나, 온/오프 중 어느 한 쪽에 무게가 쏠리는 걸 가능한 통제할 필요를 느끼고 있어요. 온라인 인격을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아직 그러고 싶진 않군요.

    전 제 블로그가 더 이상 저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좋든 싫든 구독자와 같이 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고 봐서요. 다만 구독자에 휘둘리지 않고(정확하게는 구독자에 휘둘린다는 자기검열과 거리를 두고) '나 자신의 이야기'를 꾸준히 할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민노씨도 그럴 수 있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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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10 20:41

      제가 다소 우울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고요. 말씀처럼 총체성에 대한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다만 절망과 희망의 풍경들을 좀더 이성적으로 응시하고, 그 정체를 파악함으로써, 혹은 최소한 스스로 상념의 형태로나마 붙잡음으로써 좀 덜 외로운 세계에서 함께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ㅎㅎ.

      레오포드님께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멋지게 이어주시길 바라봅니다.
      격려 말씀 고맙습니다. :)

  11. 짜가 2010/03/13 15:10

    안녕하세요. 몰래몰래 찾아와서 열심히 읽고는 살짝 도망가버리는 일인입니다. ^^;

    블로거 페르소나는 제가 요즘에 많이 생각하던 주제인데, 이 글은 저에게 생각할 것을 아주 많이 주었고 제가 가진 혼란을 조금 정리도 해주었습니다. 무대위에 홀로 선 배우같은 비교는 참 공감을 주었고, 현실이 되버린 블로그란 뜻은 솔직히 잘 이해가 안되고 있습니다. 그니깐, 전 아직도 제 블로그에서 혼자 모노드라마를 쓰는중? ^^

    별 상관이 없는 포스팅을 쓰다가 갑자기 이 글이 생각이 나서 링크를 걸었습니다. 제가 아직 트랙백 같은걸 걸어본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차차 알게 되겠지요. 아무튼 이렇게 소심한 인사를 드리고 갑니다. 종종 들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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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16 11:14

      앞으로는 대놓고 찾아오셔서 대놓고 댓글 한방씩 쏴주시면 좋겠습니다. :D
      첫인사 남겨주셔서 참 반갑고, 고맙습니다.

      추.
      "현실이 되어버린 블로그"는 말 그대로 현실의 부정적인 속성들, 대한민국 시스템의 부정적 속성들에 대한 항체로서, 저항으로서 존재하는 블로그의 속성들, 가령 탈권위적 속성 따위가 꽤나 희석되고 있는 것 같다는 취지를 담은 표현입니다. 제가 너무 부정확하게 서술한 것 같아서 살짝 손을 봤는데도 명료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 부분을 지적해주시는 독자들이 여럿 계시네요..

  12. munis  2010/03/15 17:56

    와우, 반갑게 읽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댓글 남기네요.(오픈아뒤란 걸 만들었어요. 이런 것도 제겐 새로운 시도죠. 나의 메일함이나 블로그와 연결된 아뒤가 아닌 이름. 인터넷 세계에서 부여받은 이름이라고 할까요? 제가 오픈아뒤에 대해 정확히 잘 몰라 일단 이렇게 느껴집니다. 오프라인의 나의 정체라고 할 만한 것과 연결된 게 없는 이름, 그냥 떠다니는 이름, 블로깅하는 이름, 말 거는 혹은 응답하는 이름 등등. 암튼, 뭔가 낯설고 새로운 느낌이 동시에 스멀거립니다.ㅎ)
    저는 본격 블로그의 세계를 민노씨로부터 알았다고 할 수 있어서,
    블로그 혹은 블로거의 정체성에 대한 민노씨의 글에서 아주 많이 배웁니다.
    더구나 제가 개인적으로, 매체와의 연결접속이 만드는 제3의 인격이란 무엇일까, 그러한 나인 동시에 아닌 것들의 관계가 만드는 공동성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관계와 연결이라는 의미에서 공동체라고 이야기할 수 있기나 할까? 등에 관심이 있어서요.
    저는 우리의 인간성이 어떤 환경 가운데 얼마나 변형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변형이 현재의 실존 방식을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는지 알고 싶거든요. 분명히 현재는 이 매체의 사용이 우리를 돌이킬 수 없게 바꿔나가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 해서요. 민노씨께서 이 글을 완성하시길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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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16 11:16

      (저도) 와우~!! 정말 오랜만입니다.
      물론 제 희미한 기억이 맞다면 말이죠.
      앞으로 종종 근황이라도 전해주시면 참 반가울 것 같습니다.

      명주씨께서도 격려로 주신 바대로, 이 주제를 함께 완성해가기를 바라봅니다.

  13. 아크몬드 2010/03/17 23:15

    아직도 블로그, 블로거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고 계신 모습을 보니..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블로고스피어가 양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룬 오늘날에는 정말 다양한 분들이 블로그를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블로그에 대한 깊은 고민이나 방문자와의 면밀한 의사소통은 찾아 보기 힘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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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28 11:13

      아크몬드님의 댓글을 이제야 발견하네요. :)
      격려 말씀 고맙습니다.
      아크몬드님께서 생각하고, 또 발전시켜가고 있는 블로그에 대한 생각들도 들어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14. 민노씨 2012/08/04 01:48

    제목 수정
    블로거 페르소나 혹은 블로그가 도달한 슬픔: 아거와 관객모독
    >> 아거와 관객모독: 블로거 페르소나 혹은 블로그가 도달한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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