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엔도와 거짓을 숨기기 위한 진실

2010/02/09 18:14

비판에 대한 피로감, 좀더 정확히는 거기에 남긴 나솔의 댓글(들)에서 이어지는 글.


1. 이누엔도 (Innuendo)

속임, 기만이라는 주제는 매혹적인 주제다. 그건 말과 글이 존재하는 한, 그 말과 글을 통해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러니 아마도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주제이기도 하다.

이누엔도(Innuendo) 1. (@gatorlog) http://bit.ly/d2WofU 
발화자의 부정적 편견을 우회적으로 은연중 독자/청자에게 내면화시키는 지적(수사적) 조작.
"선장은 오늘 하루 술에 취해 있지 않았다"

이누엔도(Innuendo) 2. (@gatorlog) http://bit.ly/cR19Wv
1. "의미의 단언적 전달을 제한하는 척하면서 애초 의도한 의미를 그대로 전달"
2. "사람을 간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직접적인 공격만큼 효과가 있다"

암시적인 의식조작? 우회적인 의식조작? 적당한 우리말 표현이 생각나지는 않는다. 각설하고, 아거의 우려처럼 이누엔도는 여러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ㄱ. 우선 수용자(독자/청자)를 피동화된 선동과 조작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ㄴ. 발화자가 의도한 편견을 확대하기 위한 기만적인 언술장치이며, ㄷ. 주로 인신공격을 위해 사용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누엔도는 투명한 언어가 아니라, 구정물의 언어다. 이누엔도가 판치는 세계는 점점 더 탁해질 수 밖에 없다.


2. 거짓을 숨기기 위한 진실
이누엔도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황지우의 오래된 문장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기억의 변주가 있었을 수 있으나, 대충 기억하기엔 이런 문장이다. "범죄자는 거짓을 숨기기 위해 진실을 말한다. 그 때의 진실이 중요하다." 일견 진실이 갖는 상대성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이 문장은 이중적이다. 진실은 그 자체로 거짓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그것이 첫번째다. 동시에 그렇게 거짓을 위해 동원되고, 수단화된 진실을 그렇다면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가? 이것이 정말 중요한 문제다. 거짓을 위해 동원된 진실을 그저 폐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 진실을 그 거짓을 깨뜨리기 위한 도구로 다시 재도구화할 것인가? 도구화된 진실은 어디까지가 수단이고, 또 어디까지가 목적인가? 그 양자는 어떻게 구별가능한가?

nassol  2010/02/03 16:33

저도 소망이 감지되는 비판이 좋아요. 물론 비판이 신랄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비판할 점이 있다면, 소망하는 바와 현실 사이의 현저한 차이를 꼬집으려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통쾌하기도 하고 그리고 충격효과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소망이 감지되지 않으면 무력감이 느껴져요. 비판하는 것 만으로는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소망이 없는 비판은 존재 이유가 없는 듯 하고요. 바라는 상태가 없는데 무슨 괴리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소망의 존재가 감지되지 않으면, 마치 비판하는 능력이 뛰어난 그 사람 조차도 소망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무력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비판하는 능력도 안 뛰어난 저는 더욱 무력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요. 비판하는 분이, 반드시 '대안을 제시하세요, 행동으로 보여주세요'라고 독자가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소망을 보여주지 않을 때 독자가 느끼는 무력감에 대해서 인지하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이누엔도가 기만과 조작을 위한 권력적 언술의 기술적인 방법론을 이야기한다면, '거짓을 숨기기 위한 진실'의 문제는 권력적 언술의 자기 해체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만을 위해 종사하는 진실은 어떻게 스스로의 회로 속에 들어가 그 진실로 위장된 기만의 성채를 깨뜨릴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그 정교한 회로를 해체시킬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여기에 쉬운 길, 쉬운 답은 없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소망을 대화를 서로에게 투사해볼 뿐이다. 이것은 진실과 기만의 게임이면서, 또 자기를 던져야 하는 게임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저 게임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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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이누엔도 1. 민노씨.네 블로그 글을 이해하기 위한 글

    Tracked from 외국어 공부 -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2010/02/09 23:43 del.

    '이누엔도'라는 개념에 대해서 오늘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http://www.minoci.net/1073 요전에 민노씨.네 블로그에서 댓글로 범죄자의 거짓을 숨기기 위한 진실이 뭔지 질문을 드렸더니, 민노씨가 설명하는 글을 써주셨어요. 감사드립니다. 우선 민노씨.네에 올라온 글을 읽었는데요, 좀 어려워서 정리하면서 읽었습니다. 영어 공부할 때 쓰는 쪼개기 수법을 한글로도 쓰게될 줄은 몰랐습니다 :) 대부분이 읽은 글 내용이기 때문에 제 생각을 쓴..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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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assol 2010/02/09 18:23

    앗! 반가운 마음에 글을 잽싸게 읽었는데요, 설명해주시는 글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좀 더 읽어 봐야겠어요! 프린트해서요 ^^;; 제가 모니터에 좀 약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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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nassol 2010/02/09 23:46

    움핫! 트랙백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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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2/24 13:24

      글 잘 읽었습니다. : )
      그동안 여러가지 일이 겹쳐서 밀린 댓글에 답글 쓰고 있네요. ^ ^;

  3. icelui 2010/02/12 01:32

    개인적으로는 거의 모든 진술은 상대적 토대 위에 있고, 완벽하게 옳은 진술은 첨예한 가치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에선 대부분 쓸모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부분적으로 진실한 어떤 진술이 더 큰 거짓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면 제 생각엔 그 역시도 거짓이 아닐까 싶네요. 표면이 일그러진 거울이 떠오릅니다. 우연히도 제 손이 비치는 부분은 온전한 상을 보여주지만 신체의 대부분을 마구 일그러뜨린다면 누군들 그 거울이 완전하다고 할까요. 경우에 따라선 부분적이나마 온전히 비춰진 상이 유의미한 결과를 낳기도 하겠지만(달리 말해, 누군가에겐 수단에 불과할 때도 다른 이에겐 목적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지만),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부분적인 진실성보다는 전체적인 불완전성으로 그 거울을 평가하겠지요. 만약 온전한 그 부분을 깨트려야만 비로소 사람들이 이 일그러진 거울을 인식할 수 있다면 ─ 그리고 보통은 그런 가정이 그대로 사실이 된다고 보는데 ─ 그땐 깨트리는 게 옳은 것 같습니다.

    피로감, 비판, 소망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런 생각을 끌어내요. 어떤 이는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그것을 믿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즉 그것이 강도높은 신앙적 도전이기 때문에) 나는 더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저로선 그런 입장이 (순수한 의미로) 멍청하게밖에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러나 때로는 그런 태도를 취하게 되기도 한다는 점은 이해가 되며, 희망을 담보하지 않는 듯한 비판들 중에는 바로 그런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부류도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어떤 희망이나 건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거나, 혹은 아주 도저하고 강박적인 태도 따위의 도저히 대안으로 여길 수 없는 의견만을 내어놓는 비판이라도, 그 비판의 근간이 아주 강도 높고 쉽게 비판을 제기할 수 없는, 그러나 비판의 여지가 있다는 강한 확신을 주는 대상을 향한 것이라면, 아마 저는 그런 비판을 옹호하게 될 것 같아요. 그건 아마도 제가 아주 막막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비판적인 뉘앙스를 담은 글을 쓰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런 자신을 옹호하고 싶을 뿐인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ㅇ_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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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2/24 13:34

      1. 저와는 다른 관점이긴 하지만 매우 공감합니다.
      이 문제는 상대성이라는 괴물, 사안을 둘러싼 맥락들간의 충돌 속에서 전술적(?) 차이점을 갖는 것 같습니다. '전체로서의 진실'을 추구한다는 대전제 하에서 '거짓을 위한 진실'의 기만성을 좀더 드러내고, 그것을 발가벗기는 일은 매우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동시에 거짓의 도구로 사용되는 진실 그 자체의 맹아들을 키워내 좀더 거대하게 그 모두를 포용하는 태도와 방법론도 동시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슬뤼님께서 전자를 강조하신다면, 저는 후자의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2. "어떤 희망이나 건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거나, 혹은 아주 도저하고 강박적인 태도 따위의 도저히 대안으로 여길 수 없는 의견만을 내어놓는 비판이라도, 그 비판의 근간이 아주 강도 높고 쉽게 비판을 제기할 수 없는, 그러나 비판의 여지가 있다는 강한 확신을 주는 대상을 향한 것이라면, 아마 저는 그런 비판을 옹호하게 될 것 같아요."

      저도 그런 희소성을 갖는 비판이라면 대단히 우호적으로 바라볼 것 같습니다.

  4. leopord 2010/02/12 11:14

    "소망 없는 비판은 무력하다"는 nassol 님의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이누엔도, 어떻게 그런 사악한 지혜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단서가 되겠네요.

    고향 내려가기 전에 인사 드립니다. 구정도 되었으니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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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nassol 2010/02/13 22:09

    이슬뤼님> 댓글을 읽고서 그 댓글에 뭐라고 쓸지 수첩에다 써뒀는데 제가 읽어도 잘 정리가 안되네요 ^^; 조금 더 생각해보고 정리가 되면 댓글을 달게요~ 그리고 비판과 소망에 대해 남겼던 댓글에 대해서 약간의 부연 설명을 제 블로그에 올렸어요. http://tln.kr/1e5n 대략, 비판은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당장 대안이나 행동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비판하는 생각이 계속되면 대안이나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적었어요.

    leopord님 > 공감하신다니 기쁩니다. 아거님이 알려주신 바에 의하면, 이누엔도 리터러시를 키워야 한다고 합니다. 이누엔도수법을 썼다는 걸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그 수법을 누군가 써도, 그것에 '당'하지 않으니까요. ^^

    두 분 모두, 물론 민노씨도 함께, 즐거운 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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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celui 2010/02/14 11:34

      제 글을 다시 읽어 보니 몇 마디는 지시하는 대상을 좀 더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어 보여요. 그런 점이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을 낳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강박적이거나 너무 고고한, 지속적으로 실천하기엔 너무 부담스런 태도에서 제기되는 비판들'로 제가 이해한 민노 씨의 이전 글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고, nassol님의 글과 연관지을 만한 맥락이라면 아마 '어떤 희망이나 건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비판'으로 표현한 부분들일 텐데, 링크된 글에 적어놓으신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과 비판과 그 사이의 '괴리'라는 표현이 아주 맘에 들어요.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제가 말한 부분이 그 괴리라는 말과 통할 것 같습니다. 그 괴리란 비판의 대상으로서의 현실과 지향점으로서의 소망 사이의 것일 테니, 비판은 수단과 방법을 (아직) 제공할 수 없더라도 분명한 지향성만은 가져야 한다는 얘기로 저는 이해하게 되고, 앞서도 얘기했듯 그 타당성에 수긍이 가며, 앞으로는 뉴스나 신문을 보며 수도 없이 토해내는 비판적인 불평들이 보다 분명한 지향성을 가진 것들이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ㅇ_ㅇ;

      누구나 복 받는 새해를 기원합니다.

  6. 닭장군 2010/02/15 20:11

    전 제목을 '아르헨도'로 읽었어요. 그래서 아르헨도가 또 무슨 사고친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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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2/24 13:37

      아르헨도가 뭔가 했는데, 아르헨티나 국적으로 병역을 기피한 이현도씨의 별칭인가 보네요. : )

  7. 무한 2010/02/19 13:03

    다음 발행글 기다리다 목 빠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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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2/24 13:38

      앗, 무한님 정말 정말 오랜만입니다. : )
      올해는 한번 뵈어야 할텐데 말이죠. ㅎㅎ.

  8. nassol 2010/02/22 17:36

    이슬뤼님, 누구나 복 받는 새해...에서, 저는 '누구나' 부분이 마음에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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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3/08 21:10

      그러셨고만요. :)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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