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는 그저 생겨나지 않는다. 사유를 피어나게 하는 출발점을 갖는다. 나는 그걸 발아점으로 표시하곤 한다. 물론 발아점은 세계 그 자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시선이 떨어진다. 그리고 보도 블록 틈 사이에 난 작은 풀잎을 본다. 그게 발아점일 수 있다. 무심코 지나던 지하철 계단에서 만나는 저 힘없이 파리한 걸인의 동전 바구니가 그 발아점일 수 있다. 친구들과 나눈 정담이 내가 집으로 돌아와 몇 줄이라도 그 기억을 붙잡기 위해 남기는 내 블로깅의 발아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체험은 웹에서 표시하기 어렵다. 내가 느낀 그 감동과 연민과 정감의 '물질적 뿌리'를 당신에게  보여주기 어렵다. 나는 내 발아점을 당신에게 보여줄 수 없고, 연결(링크)해줄 수 없다(물론 간접적인 형식을 통해 가능하지만-가령 유사한 사진이미지들-, 웹과 비교하면 그 기억의 물질적 뿌리를 연결하기란 상대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의미다)

하지만 웹에 있는 기억은 자신만의 주소를 갖고(URL). 대개는 기억의 주인공'들인 사람이 '거기에' 존재한다. 나는 웹을 통해 생겨난 내 사유의 출발점을, '그 사람의 고민과 사유'를 당신에게 직접 보여주고, 연결시켜줄 수 있다. 웹과  (나 아닌 다른)블로그는 블로거로서의 우리에겐 가장 가까운 세계다. 그 세계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실존의 풍경을 접한다. 그리고 그네들의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들이 도저한 인식을 갖는 지식인이라서가 아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인간을 응시하는 시선, 자기에 대한 성찰,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분노, 무엇보다 그네들의 소망을 접하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다른 블로그를 탐독하고, 그들에게 내 관심과 시간을 (자본주의식으로 표현하면) 지불 1 한다. 블로그들은 그런 관심어린 시선들을 위해, 그러니 자신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그 '인간'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지적 고민과 자기 성찰의 흔적을, 그리고 때론 자신의 부끄러움마저도 드러낸다(나는 내 부끄러움을 드러내는데 소극적인 내 자신에 대해 부끄럽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렇게 나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을 좀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세상을 좀더 풍요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모든 블로깅의 종착역은, 무슨 '파워블로거가 되자'는 개풀 뜯어먹는 공허한 사기질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인간이다. '인간'이라는 한자어가 서로 기대어 있는 두 존재를 형상화한 '사람(人)'과 그 '사이'(間)'로 이뤄져 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인간의 본질적 결핍(그것은 단순히 지적인 결핍을 이야기하는 게 전혀 아니다)을 서로 보태고, 나누는 '대화 시스템'으로서의 블로그와 연계해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링크 없는 블로그에 대해 (좀더 솔직하게 내 사적인 감상을 토로한다면) 나는 그런 블로그를 반쪽짜리 블로그라고 생각한다. 가령 박노자 글방에는 좋은 글이 많지만, 블로그에 각인되어 잠재된 관계성의 차원에서 바라보면 반쪽 블로그다. 박노자는 의미있고, 성실한 학자이며, 많은 고민어린 사유를 들려주는 지식인이지만, 블로그로선 반쪽짜리다. 왜냐하면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바탕(블로거'로서' 자기 존재의 근거이자 바탕이 되는 웹과 블로그)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부르디외를 인용하며 존경어린 추모사를 쓰는 홍세화 역시 마찬가지다. 부르디외를 인용한 취지를 스스로는 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2 

끝으로 내가 가장 많은 영감을 얻는 어떤 블로그의 소개말...
"I am linked therefore I am."


* 추. 
1. 이 글은 '링크 추천제 : 블로깅 방법론'란 글을 쓰다가 해당부분이 길어져 따로 쓰는 글이다.
2. 각주2.에 등장하는 Uglish의 주된 필명은 아틸라(a77ila)다.


Footnote.
  1. 타블로이드 블로그에 대한 우려. 초강추. by 게이터로그-MT. 특히 누난의 글을 인용한 부분이 연상되어 참조링크로 소개한다. 우리나라 블로그계가 현실적으로 암울한 이유는 "지적 거래"가 블로거에게 별다른 기대를 주지 못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즉, "마케팅의 귀재"들이 그저 '착한 바보' 취급 받는 풍토가 바뀌어야  블로그 문화의 질적 고양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Back]
  2. 홍세화는 부르디외 추모글에서 삐에르 부르디외에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행한 첫번째 강연과 마지막 강연을 짧게 소개하고 있다. 부르디외는 사회학 교수로 부임한 첫 강연에서는 그 학교와 교수들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20년 뒤 마지막 강좌에선 부르디외 자신을 주제로 삼았다고 한다. 홍세화는 그 글에서 "사회와 만나는 방식에 관한 지식인의 자기성찰은 사회 참여의 기본 조건이며, 출발점"이라고 쓰고 있다. 홍세화는 필진네트워크, 현 한겨레블로그에서 글방을 열고 상당기간 활동했는데, 그 방식이란 타인이 편집을 대리하는 방식이었다. 명망가에는 보잘 것 없는 공간이었겠으나, 웹이라는 또 다른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성찰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거다. 그저 인터넷한겨레 홍보수단으로 자신의 이름을 빌려줬을 뿐이다. 초기 홍세화 글방에 쏟아진 그 무수한 관심과 시선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런 홍세화글방을 보며 부르디외를 '존경'한다는 지식인의 모습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당시 홍세화는 필벗들-한겨레블로거의 애칭-의 강한 문제제기와 호소, 특히 Uglish가 쓴 '늙은 개에게 신기술 가르치기' 강추.가 기억에 남는데, 를 접하고, '젊은 벗들과 호흡하겠노라' 약속했지만, 그 이후 행보를 보건대 허언으로 끝났다고 본다. 나는 이런 블로그를 '진열장 블로그'라고 생각한다. 요즘 주목받는 우모씨 블로그도 대체로 알 수 없는 사적 잡담의 '진열장' 같은 느낌이고, 대체로 명망있는 지식인란 사람들 블로그가 이런 '사람없는 진열장' 같은 모습이다. 이런 점에선 그래도 박노자 글방은 댓글창으로나마 대화하고 있으니, 그나마 양반이란 생각도 든다. [Back]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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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웹이 아닌 앱의 시대가 오고있다.

    Tracked from Devspace@Crow 2009/12/16 22:00 del.

    이 글은 링크없는 블로그: 반쪽짜리 블로그에서 출발하여, @minoci님, @pariscom님과의 대화를 통해 발전해서 쓰여졌습니다.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웹은 HTTP프로토콜을 기반으로 HTML을 통한 유연한 링크를 이용해 정보사이의 소통이 가능한 길을 열었고, 이는 블로그와 위키를 만나면서 새로운 소통의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소통의 시대는 현대사회가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장벽에 가로막혔다. 지정학적 혹은 정...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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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9/12/15 10:56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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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12/15 20:27

      리퍼러에 낯선 주소를 발견했는데 그 쪽에서 온 건가요?
      모쪼록 제 부족한 아이디어를 좀더 멋진 사이트로 완성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

  2. 아거 2009/12/15 13:38

    "I am linked therefore I am." 이라는 말은 물론 미국의 심리학자 케네스 거겐 http://en.wikipedia.org/wiki/Kenneth_J._Gergen 이 했지요.
    우리 말로 하면 어떻게 되나요?
    나는 링크되어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수동태라 조금 어색하죠?

    "링크되어 있기에 나는 존재한다".
    이것도 좀 어색하고...

    어찌됐건 디지털/웹 시대의 실존을 표현하는데 꽤 적합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 ^

    거겐과 실존에 대해서는 일전에 "사회적 매체 시대의 일인칭 복수: Myselves"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http://gatorlog.com/?p=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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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12/15 20:34

      '일인칭복수' 글은 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네요. : ) 좀더 선명한 느낌이랄까요? 예전에는 읽었을 때의 상황이 부산/피곤(?)했던지 명확하게 읽히지 않았던 것 같다는 희미한 잔상이 있습니다.

      글 후반 '굿바이 레닌'을 모티브로 한 자서전적 기억에 관한 글은 제가 놓쳤던 글 같은데, 저 역시 매우 좋아하는 영화라서... 자전적 기억의 두번째 이야기도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 : )
      http://gatorlog.com/memory/?p=671

      추. 그런데 '메모리' 블로그에서 '자서전적 기억'으로 검색해도 안나오네요. ^ ^; 두번째 이야기는 아직 쓰지 않으신건가요?

  3. fjkd 2009/12/16 00:56

    나는 게시판형 블로그에서 독립형 블로그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걸 봤을 때 게시판형 블로그의 너무 강한 연결을 견딜 수 없어서 나간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들 사이의 즉각적인 연결은 게시판형 블로그가 강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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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12/16 15:52

      서비스형("게시판형"이라고 써주신) 블로그는 내부순환 연결기제를 갖습니다. 이것은 블로그의 관계성에 주목한 것이라기 보다는 내부 트래픽을 증폭시키기 위한, 그러니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블로그의 관계성'과는 그다지 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 점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4. 아거 2009/12/16 17:10

    자서전적 기억은 기억 연구에서 정말 중요합니다.
    두번째 글을 쓰려고 했다가, 이것저것 밀려서 뒤전으로 가고 그러다가 흐지부지 생각이 없어진게
    아닌가 싶네요.

    다만

    자서전적 기억에 대해서는 계속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http://gatorlog.com/memory/?p=1333

    아까 트위터에도 언급을 헀는데...
    http://twitter.com/gatorlog/status/6721548481


    일인칭 복수글...말이죠.. 제게는 중요합니다. 실존적으로도 그렇고 현재 하고 있는 작업과도 관련이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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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12/16 18:07

      '소설이 회고록인 경우'는 일전에 '게이터로그-독백과 방백'에서 아주 인상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에피소딕 메모리'로 옮겨오셨군요. : )

      저 역시 기억과 인간심리에 관한 아거님의 관심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로서 매우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작업에 큰 진전이 계시길 바랍니다!

  5. 비르투 2009/12/17 14:05

    88만원세대 책 보고 우석훈 씨 좋아해서(요즘은 민노씨님이 링크 건 그 일을 보면서 회의적으로 변했지만) 블로그 눈팅을 자주 했는데, 이상하게 답답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더군요. '임시연습장'이라는 블로그 이름처럼 혼자 쓰는 연습장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궁금했는데, 링크가 없고 소통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군요.
    역시 블로그가 갖는 최고의 가치는 '소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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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12/18 19:12

      요즘은 '소통'의 의미가 변질/왜곡/과장 된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만, 역시나 블로그는 가장 경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웹의 지배적인 형식으로서의 아주 평범한(!) 아주 소박한(!), 그렇게 평범하고 소박한 시민들의 자율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웹 대화시스템의 물적 기반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갖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방적인 독백'이 정말 그저 독백으로만 멈춰서 있는 블로그들을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본문 제목으로도 썼지만, 반쪽짜리 블로그라고 생각하죠...

  6. icelui 2009/12/19 11:01

    아무리 사소한 공간으로 사용할 때도 그것이 어디로든 연결될 수 있고 어디서든 연결할 수 있는 웹에 존재하는 한, 그것은 전적으로 사적인 공간은 아니라고 다이어트 사건과 관련해서도 얘기했었지만, 그럼에도 저 역시 제 블로그는 연습장이자 불규칙적인 일기장으로 삼고 있습니다(워낙 누구한테 보여주기엔 좀 창피한 글들도 있고). 한 화면에 딱 하나의 글만 보이게 한 것도 일기장이라는 관념을 강하게 심으려는 생각에서였고……. 반쪽을 지향하는 블로그입니다. (...)

    제 블로그를 변호해 보려는 강박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저 스스로도 위에 상술한 내용과 모순되고 있는 제 블로그를 변호할 수 없다고 느끼면서도, 그러나 그것을 바꾸고 싶지는 않은, 모순적이어서 인간적이라는 말밖에는 당장 떠오르지 않는 어떤 심리에서 글을 적습니다. =) 다만 필요한 경우의 소통에는 노력을 해야겠고, 그럴 때는 그 소통에 매개된 모든 맥락들을 ─ 트랙백이든 출처든 ─ 짚으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죠. 민노 씨만큼 인용과 출처를 표기하는 것까진 좀 귀찮아서 아무래도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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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Isaiah Velez 2011/03/1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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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8plpuslpl262uy2l.com/

    민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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