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녀 단상 3 : 루저론

2009/11/18 08:33

이제 벌써(?) 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떡밥도 소강 및 망각 국면에 돌입하는 것 같다. 벌써 글을 두 개나 썼지만, 최근 뒤늦게 이 이슈 논의에 합류한 서울비의 지각글에 힘입어 좀더 생각을 정리해본다. 이 주제는 생각하면 생각이 정리되는게 아니라 더 많아진다.

우선 짧게 : '미수다' 폐지론에 찬동한다.  
신체에 대한 조롱은 이제 일상적인 언어유희다. 그렇게 타인의 외모를 깔봄으로써 스스로 우월하다고 착각하는 놀랍게 진화된, 그래서 더욱 저열하고, 천박한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사회는, 나와 당신, 우리는 그렇게 고상하지 않다. 우리는 조선일보처럼 거룩한 언론사가 아니니까. 그래도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지상파 공영 프로그램에서 그 한계는 좀더 엄격해야 마땅하다. '[미수다]만 문제냐?' 이런 의견도 있던데, 맞는 말이다. 그런데 [미수다]는 특히 문제고, 이번 루저녀 사태(?)는 그게 일회적인 해프닝이 아니라,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기본이 되는 심리적 관극틀, 그 기본 골격이라는 점에서 문제다.

그러니 한국일보가 언론사로선 이례적으로 사설을 통해 주장했다는 미수다 폐지론에 대해 나는 적극 찬동한다.  이 문제를 근본에서 구성하는 다양한 우리사회의 조건들, 그 천박하고,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물신숭배(스펙숭상), 비교와 질투의 공격적 폭력성이 내면화된 심리적 야만상태를 해결하는 일은 아주 어렵고, 또 너무 너무 먼 길이다. 그걸 하지말자는 게 아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자는 거다.

지금 당장의 합리적 실천은 '제작진 교체'가 아니라, 미수다 '폐지'다. 이건 뻑하면 파시즘 타령하는 철부지 리버럴이 주장하는 것처럼 표현의 자유 억압과도 상관 없다. 한국일보 사설이 말하듯 소비자인 시청자로서의 정당한 권리 추구다. 재활용 불능인 쓰레기는 치우자는 거다. 재활용 불가능 쓰레기를 대체하는 쓰레기가 주변에 널렸고, 그런 쓰레기는 계속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에 쓰레기를 치우지 말자는 논리 같지 않은 논리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다른 쓰레기와의 형평(?)을 위해 쓰레기 치우지 말자는 말인가?



루저론 : 도전하는 승리자로서의 루저.

이 어떤 의미를 동원해 보아도 외모를 묘사하는 데 적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외모만 가지고는 루저가 될 수가 없는 것이죠. 거꾸로 말하면, 외모를 놓고 루저 운운 하는 것은 말의 뜻도 모르고 쓰는 것입니다. (...) 이렇게 루저가 되기 위한 자격은 상당히 까다로움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나 보고 루저라고 손가락질 할 일이 아닙니다.
- 들풀, 루저가 되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 
들풀이 이야기하듯 '루저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뭔가를 시도했어야 실패를 하든 말든 할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미수다에서 말하는 루저는 루저라는 말의 본래적인 의미에서는 성립불가능한 말, 비언이다. 그건 그저 한 철부지와 그 철부지를 꼭두각시로 도구화한  저질 방송의 뜻없는 수사에 불과하다.

늘 새롭게 패배(lose)하는 자가 예술가입니다. (고로께, 내 글에 대한 논평)
사무엘 베케트에 대한 기억의 변주라고 한다("Ever tried. Ever failed.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S.Beckett). 좀 엉뚱한 기억 하나를 꺼내온다. '아바타' 개봉을 앞두고 카메론 신도들을 흥분으로 몰아가고 있는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의 오래 전 인터뷰. "당신은 완벽주의자라면서요?"(기자) "아니요, 저는 최고주의자입니다."(카메론) 내 기억의 골방에는 여전히 감미로운 목소리로 영화이야기와 영화음악을 들려주는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이 흐른다. '탁월한 이야기꾼' 정성일은 카메론 영화를 '다음 영화를 위한 실패작'이라는 관점으로 이야기한 바 있다. 카메론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카메론의 현재 작품은 다음 작품을 위한 실험과 도전일 뿐이다. 즉, 기존 작품들은 다음 작품의 좀더 높은 성취를 예비하기 위한 실패작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니 카메론은 죽을 때까지 '완벽'한 영화를 만들지는 못할거다. 왜냐하면 그는 더 높은 성취를 위해 계속 실패할테니까.

고로께 글을 인용한 단상을 트위터에 남겼는데, 이를 발아점 삼아 주낙현신부와 짧은 대화가 있었다.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제자 열 두 명마저 떠나갔던 선생. 그러나 거기서 역사가 일어나죠.(주낙현)
말하기 좀 조심스럽습니다만, 결국... '예수님도 루저' 셨던건가요? ()
예, 저는 그분이 실패한 이들과 함께 한/하는 실패한 이였다고 봅니다. 다만 보잘 것 없는 이들과 연대해서 역사를 만들어 간 것이라고요. 삶에 대한 평가 기준의 방향을 바꾼거죠. (주낙현)
아주 공감합니다. 예수의 현실적 실패(욕망에 좌절한 육체의 죽음)는 결국 현실 조건을 근본에서 다시 바라보도록 만든 존재의 성취라는 점에서 그 위대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의 육체는 세속적인 인간사회의 욕망에 좌절해서 결국 죽음을 '얻었다'. '잃음'이 아니라 얻음이다. 육신의 죽음이라는 현실의 좌절이 동시에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만드는, 그렇게 '존재'를 다시금 근본에서 성찰할 수 있게 해준 '성취'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도전과 성취, 그리고 그 좌절의 역사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맞닿아 있다. 

그리고 오늘 새벽 '게이터로그'에 갔다.

악한(evil)한 것과 선한 (good) 것은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 이를 위해하기 위해서는 악마(evil)라는 것은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면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evil은 좋은 것(good substance)의 변질이기 때문이다.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도 태어날 때부터 악의 세력이 아니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Sith Lord가 되어갔듯이, 좋은 것이 악한 것에 자리를 뺏긴 것이 바로 악의 실체인 셈이다.
- 아거, Don't be evil의 참된 의미,
우리가 멈추는 순간, 자동발생으로,  악이 싹트고, 무럭무럭 자란다. 그게 우리 인간이 세상이 스스로 자가발전하는 슬픈 작동원리다.

그러니...

“가장 평화로운 때는 평화를 이뤄냈다고 자평하는 순간이 아니라, 바로 평화를 위해 평화파괴주의자들과 투쟁을 벌이며 그들을 현재의 반평화 무드에서 몰아내려는 노력을 하는 때이다.”
- 아거, 노벨평화상 넌센스.
과정이 생략되고, 결과만이 유일한 가치로 남은 사회에서 루저는 과시적 표지를 갈망하는 비언어의 감옥 속 죄수다. 그 수인은 그 감옥에서 신음하는 우리 자신의 욕망이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그 감옥에 갇혀 세상이 우리에게 길들여 놓은 욕망에 아무런 질문 없이 침묵할 때, 우리는 그 때 비로소 더이상 성취할 수 없는, 더이상 도전할 수 없는 완전한 루저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도전하는 루저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인간과 사회를 다시금 성찰케하는 가치의 전복자들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싸움의 과정 속에 있는 루저는 위대한 승리자들에 다름 아니다.


* 관련
루저녀 단상 : 미수다 혹은 순진한 포르노.
루저녀 단상2 : 스펙사회와 신나는 마녀사냥

* 발아점
서울비의 글

* 관련 추천
한국일보 사설
고로께의 논평들.
주낙현의 단상들. (하나) ()
들풀, 루저가 되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 
아거, Don't be evil의 참된 의미,
아거, 노벨평화상 넌센스.


* 이 글을 쓰던 중 블로그편집기(WLW) 단추를 잘못눌러 잠시(5초?) 글이 공개된 적 있다. 이게 리더들에 자동송고되는건지 어쩐건지는 헷갈리는데... 그랬다면, 리더 독자께 혼선을 드려 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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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루저녀, 거짓으로 탐하는 세상

    Tracked from 두호리닷컴 ★ Dooholee.com 2009/11/18 09:11 del.

    요즘 별 생각 없이 뱉은 말이 감당치 못할만한 일이 되어버리는 상황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최근 '루저대란'을 촉발한 이도경씨만 해도 그렇습니다. 굳이 된장녀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여자라면 한번쯤 '수다'조로 해봄직한 이야기를 꺼냈는데요. 그동안 '억압(?)' 받아왔던 남자들의 신경을 건드리면서 '폭발'해 버리네요. 이도경씨는 불행하게도 그 빌미를 제공한거지요. 게다가 말 붙이기도 좋게 '루저'라는 강력한 단어를 사용하심으로 몸소 '열폭크리'를...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
  1. 마법사 2009/11/18 09:19

    결국 3편까지 쓰셨군요.
    그래도 아직 할 말이 남으셨을 것 같아요.
    생각할 거리를 무궁무진하게 남긴, 덕분에 민노씨(네님? 그냥 씨로 끝내려니 아무래도 어색...;;) 글을 읽을 수 있게 한, 이번 사태에 고마워해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
    주낙현 신부님과의 대화는 가슴으로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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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11/18 13:01

      오, 반가운 마법사님!
      지속적인 관심 고맙습니다. : )
      그냥 민노씨라고 호칭하시면 금방 익숙해집니다. ㅎㅎ.

  2. Draco 2009/11/18 11:58

    그런데 미수다처럼 히트상품(?)을 폐지해봐야 거의 비슷한 프로가 어느 방송사에서든 또 만들어질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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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11/18 13:02

      저도 어떤 불량식품은 좋아하지만(?), 이건 좀 너무 심한 불량식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3. 민노씨 2009/11/18 12:54

    * 사소한 추고.
    어색한 표현, 군더더기 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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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11111 2009/11/18 12:58

    루저녀가 무슨의미로 loser 라는 말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저 상황에서 루저가 쓰일땐 loser 가 '패배자' 라기보단 '성공도 못하고 잘하는것도 없고 노력도안하는 찌질한놈' 정도의 의미인데, 이 이슈를 가지고 패배 도전 승리 뭐이런 거창한 글을 쓰시는건 조금 오바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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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11/18 13:03

      너무 거창했나요? ㅎㅎ.
      제가 종종(?), 자주(!) 오버하곤 합니다. :D

  5. 11111 2009/11/18 13:08

    살작기분나쁘실 수도 있는데 웃어넘겨 주시니 미안해 지는군요 ㅎ 포스팅 잘 보고 있습니다ㅎ 제가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해 어쩔땐 좀 읽기 어렵긴 하지만ㅎ 수고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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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11/18 13:11

      별말씀을요. :)
      이 정도 논평이라면 꽤나 솔직담백한 논평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기회가 닿으시면 솔직담백한 논평 부탁드립니다.
      이런 솔직한 논평들은 저를 되돌아보는데도 참 많은 도움을 줍니다.

  6. icelui 2009/11/18 14:24

    하던 말던
    좀 엉뚱한 기억 하나를 나오 꺼내온다.
    비로서
    ---------------------------------------------
    하던 말던은 하든 말든으로, 비로서는 비로소로 씁니다. 원래 오타는 비밀글로 지적하지만 민노 씨(민노 씨로 불러야 하나요 민노씨 님으로 불러야 하나요? ㅇ_ㅇ;)는 털털한 ─ 내지는 그러려고 노력하는 ─ 성격이시니 그냥 적어둡니다.

    사무엘 베케트의 얘기에서부터 연결되는 부분은 잘 읽었고 닮고 싶은 진지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도하지 않고서는' 될 수 없는 루저와는 다르게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루저인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진취적 루저와 패배주의적 루저(본문에서 언급된 완전한 루저랑 같은 의미겠네요.)라고 일단 구분해 보죠. 사실 앞에 건 루저라는 말 자체도 어울리지 않는 게, 어떤 실패가 단지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는 더 못한 것, 더 나쁜 것일 수도 있을, 아니 그럴 개연성이 더 높은 ─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향해 착실히 나아갑니다. 평면적으로는 후퇴로 기록될 실패들은 입체적인 관점에서 비틀어 보면 그게 옆이든 위든, 아래든 계속 한 곳을 향해 상승하고 있을 겁니다. 그에 비해 패배주의적 루저는 ─ 사실 제 성격이 이러한 편인데 ─ 머릿속에서만 과정을 진행합니다. 그래서 뒤로 물러나지 않으려고 나아가길 포기하고, 그럼으로써 기회비용상에서 손실을 보지 않았다는 변명을 내세우지만 대신 어떤 성취도 이루지 못합니다. 후퇴하는 일이 없으니 전진할 일도 없고, 물론 어떤 관점에서 관찰해도 상승을 관측할 수 없습니다.

    루저란 말은 정식으로 공유된 일은 없어도, 이 후자를 가리키는 말로 누구나가 암암리에 동의하고 있다고 봅니다(혼자만의 생각이니, 이 전제가 잘못되었다면 윗글 전체가 사실 무의미해집니다). 거기에서 전자의 의미를 가리켜 '루저란 사실 이런 거야.'라고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고 생각되네요. 언제나 출발점이자 목표지점은 현실이어야겠죠.

    그리고 폐지론에 대해서는, 한 가지만 덧붙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결격이 있는 프로그램이 스스로 변혁을 시도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사라지도록 할 수 있을까. 사랑의 반대가 증오가 아닌 무관심이라는 진부한 말은 그 진부한 만큼이나 유효합니다. 광고로 먹고 살아야 하는 방송 프로그램에는 더 말할 것도 없죠. 행여 프로그램 폐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손 쉽고, 빠른 해결책이라고 해도 거기에 섞여 든 단편적이고 감정적인, 뒤를 돌아보는 일도 기억하는 일도 없이 다시금 무감각해지는 대중을 어떻게 설득해서 또 다른 쓰레기들을 치워나가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유독 냄새가 심했던 쓰레기를 한번 치우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늘 치우는 습관을 들일 수 없다면, 하나의 쓰레기를 걷어치우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패배주의적 루저의 지적이 온당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덧. 그런데 우선 그 쓰레기장에서 같이 뒹굴며 깔깔대는 저 자신이 문제입니다. 반성, 또 반성. 내가 깔깔댈 때 그러지 않은 사람들과, 같이 깔깔대다가도 짚을 건 짚고 넘어간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반성하는 걸로도 일단은 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덧2. 아. '진취적 루저'라면, 설사 오늘 한번의 악취가 심한 쓰레기를 치워낸 일이 단지 일시적 성과임이 분명해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겠네요. 넓은 견지에서 보면, 그 역시 하나의 상승곡선을 그렸을지도 모를 일이니. 아무래도 전 역시 '패배주의적 루저'다운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덧3. 가만히 제 리플을 읽다 보니 제가 지적한 루저의 의미 역시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것 같아요. '명문대를 가지 못했으면, 대기업에 입사하지 못했으면, 훈훈한 애인을 두지 못했으면, 못했으면 못했으면 못했으면…….' 이 못난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 사회에서는 루저(그리고 루저녀가 말한 루저의 의미도 사실 이것에 가깝고요.)라고 부르고 있죠. 위너들 사정은 몰라서 그네들은 실제로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미지수지만, 루저에 속하는 거의 모두는 그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가중되는 경제 위기가 있고, 명시적으로 증가하는 실업률이 맞물려 그 루저의 삶조차 영위하지 못하는 세대가 탄생했죠. 바로 저와 같은 '시도하길 거부한/패배주의적 루저'들. 그 구분을 미처 하지 못한 점은 감안해주시길 바랍니다. ㅇ_ㅇ;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11/18 15:57

      0. 오타나 오기 지적은 기본적으로 환영합니다. : ) 그 지적이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고 호들갑 떠는 아주 극소수의 댓글러를 제외하면요. 특히나 이슬루이님과는 '오타 협약'(?ㅎㅎ)을 맺었던 터라 당근 환영이죠. 오타에 대해선 미닉스님의 명언, "블로그에서 오타(오기)는 당대에는 발견되지 않는다."이 항상 떠올려지곤 합니다. '비로서'는 추고할 때 고쳐야지했던 부분인데 그냥 남겨 뒀었네요. ㅎㅎ. '든/던'은 쓰면서도 헷갈렸던 건데 지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민노씨"라고 호칭하시면 됩니다. ^ ^

      1. 이 글은 지적해주신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글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정합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 ( http://minoci.net/510 )게 제가 세계와 삶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이기 때문에 글 자체의 분위기가 너무 현실의 저와도 동떨어지게 거룩(ㅡ.ㅡ;)해진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다만 '루저'라는 말에 그저 이 사회의 틀과 관성이 만들어놓은 부정적인 의미만을 덧씌우지는 말고, 거기에 있을지 모를 긍정적인 이미지들을 모색해보면 어떨까.. 뭐 이런 자기 성찰과 도전으로서의 '과정'을 강조하다보니...

      "언제나 출발점이자 목표지점은 현실이어야겠죠."라는 말씀에 강하게 동의하면서도, 이 글이 현실과의 접점이 전혀 없는 관념적인 몽상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접점 모색에 실패하고 있다면, 그것은 제 인식의 일천함과 표현의 부족 때문이지, 제가 현실을 등한시하는 관념숭배자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2. 폐지론에 대해 덧붙인 말씀에는 크게 공감합니다. 무관심을 강제할 수는 없고, 그 무관심 역시나 '설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상업적인 담론시장(연예 찌라시즘)의 그물에 빠져 노이즈 마케팅에 일조하는 목적이 전도된 것이 되지 않도록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도 당연히 합니다.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은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국가(제도)에 의지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요. 부질없어 보이고, 무력하기 짝이 없더라도 이렇게 그저 제 소박한 생각을 들려주고, 또 거기에서 대화의 끈을 이어가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하나의 쓰레기를 걷어치우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패배주의적 루저의 지적이 온당"하다는 말씀에는 왜 그것이 '온당'한 것으로까지 정당화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3. 덧.에서 부연하신 말씀들은 제 졸문에 대한 과한 고민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 괜히 기분이 좋네요. 이런 풍요로운 사유들은 루이님의 블로그에 곱게 보관하셔서 트랙백 한방 쏴주시길 바라봅니다.

      고민어린 논평에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재주가 짧아 답글 쓰는게 곤혹이긴 합니다만, 저로선 반갑기 짝이 없는 고마운 논평이십니다...

    • 서울비 2009/11/18 17:33

      이렇게 즐겁고 솔직하고 천천히 짚으며 읽게 하는 댓글도 오랜만입니다. 동감, 동감.

    • 민노씨 2009/11/19 20:18

      루이님과의 대화는 블로깅하는 즐거움이네요. : )

      추.
      "글을 남기고 안부를 묻는 형식적인 관계가 고착되는 것도 좀 싫어하고..." 이 구절에 굉장히 공감한다능... 그런데 블로깅 구조적 얼개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물적 얼개를 떠나서라도 우리문화의 특질(정?)이란게 그런 "형식적인 관계"를 패턴화시키기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같다면 댓글창이 사라지는 대신에 이를 대신할 각자의 댓글모음 서비스창이 생기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혹은 트위터류의 서비스가 이런 것을 대신한다던가... 뭐 이런게 벌써 나오긴 한 것 같지만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직접 웹사이트에서 댓글 대화까지 살펴보는 '적극적인 독자'에게는 꽤나 불편이 생기겠지만요...(우려하셨던 것처럼요..그런데 댓글창에 쓰고, 자동으로 각자의 댓글모음 서비스-디스커스를 트위터와 연동한 그런 류의 서비스-에 기록되는.. 그런 형식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 icelui 2009/11/20 00:58

      1. 처음 읽을 때 뭔가 감이 온다 싶어서 적었는데, 지금 보면 또 느낌이 다르고 그래요. 좋은 말이지만 개인적으로 내재화할 관점일 순 있어도 일반화하기엔 좀 어려운 다소 붕 뜬 얘기 아니냐, 뭐 그런 건데, 그런 부분을 파고 드는 데 신을 내기는 했지만 '현실'이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대체로 좀 낮게, 나쁘게 보는 경향은 있어요. (그리고 보는 대로 보이지요, 아마.)

      2. 맞아요. 열렬히든 조용히든 대중운동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유지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리플 정도로만. ㅇ_ㅇ;

      '온당하다'는 말은, 이런 노력이 끝끝내 일회성에 그친다는 가정하에서, 그럼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결국 마찬가지 아니냐는 주장이 그 나름의 정당성을 지닌다는 얘기입니다. 정당화의 맥락이란 게 판단의 문제로 귀결되고,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선 그것이 온당해질 수 있겠지요. 반대로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선, 아무런 성과를 내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시도하는 것에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을 테고 성패에 상관없이 그런 시도를 정당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골을 뛰어넘어, '패배주의적 루저'들을 설득하려면, 결국 그런 시도가 가시적인 성공으로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런 주장이 온당하다.'고 적었습니다(이걸로 충분히 설명이 될까 모르겠어요).

      사람마다 독특한 버릇이 있잖아요. 성격도 다르고. 저는 일종의 결벽증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블로그 놀이를 ─ 좋고 나쁘고를 가리지 않고 ─ 좀 꺼려 합니다. 글을 남기고 안부를 묻는 형식적인 관계가 고착되는 것도 좀 싫어하고. 그런 식이다 보니, 트랙백도 의견이 확산되는 수단으로 보질 않고 시선을 자기 쪽으로 돌리려는 것처럼 ─ 남이 하는 것도 꼭 그렇게 고깝게만 보는 건 아닌데, 제가 하면 꼭 그런 걸로만 ─ 생각하게 되서 잘 손이 가질 않습니다(그냥 방문자가 소소하고 알 만한 사람만 다니는 블로그에는 트랙백을 잘 넣지만요. ㅇ_ㅇ;). 그런 점도 있고, 또 한편으론 논의가 그 현장에서 잘 보존되는 게 그 흐름을 흥미 있게 지켜보는 사람이 따라오기엔 더 좋다고 생각하는 점도 있고, 리플을 다는 저는 그 나름의 저이고 제 블로그에 내어 놓는 저는 다소 시류와 동떨어진 저로 내버려 두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하니 앞으로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덧. 설마 또 덧을 붙이게 될지는 몰랐는데, 민노 씨만 기분 좋게 읽고 반갑게 느끼셨다면 굳이 생색내어 잘 보아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적지 않겠는데, 서울비 님께서도 즐겁게 읽으셨다고 하니, 고민고민하여 써낸 저도 보람을 느껴서 좋네요. 고맙습니다.

      (11/20 기준으로 '보관되는'을 '보존되는'으로 수정했더니 바로 위 덧글과 순서가 바뀌었네요. 몰래 몰래 고치는 걸 좋아하는데 이런 낭패가.)

  7. rururara 2009/11/18 21:54

    고양이진공법칙(???)인가 뭔가가 떠오르네요. 고양이를 한곳에서 빼버리면 그곳에 다시 고양이가 들어간다는 법칙(???)이였죠-_-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11/19 20:18

      그런 법칙이 다 있군용! ㅎㅎ

  8. 지나다 2009/11/19 19:08

    http://www.ddanzi.com/news/1110.html

    루저의 난에 대한 얘기들 중 가장 괜찮게 읽은 글

    미수다를 평소에 안 보셨나보군요. MC를 포함한 제작진이 많이 아닌건 사실이지만 한국의 속물근성을 은근히 까주는 몇 안되는 프로인데 말이에요. 그럴리는 만무하지만, 짜여진 대본 없이 자유롭게 수다를 떨게 놔두면 아마 백분토론만큼 재밌는 프로가 될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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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11/19 20:23

      소개해주신 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 )
      우선 고마움을 전합니다.

      위 소개해주신 글에 대해선 꽤 공감하는 부분이 컸습니다만,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너무 대결적인 관점이 부각되는 것 같아서(이것은 정치적인 계급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된장녀' '무개념녀' 혹은 여성일반에 대한 감정적인 공격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그 욕망은 남녀불문이고, 또 남성이 주도적으로 구조화시킨 대상적 시선인데, 들뢰즈를 인용하면서 다수의 네티즌-특히 남성들 자신의 성찰적인 고민은 거세시킨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좀 아쉬웠습니다.

      미수다 이번에 두번째로 본겁니다. ^ ^;;
      제 이전 관련글을 참조하셨으면 아시겠습니다만, 제가 집에 TV가 없어서요.. 그리고 미수다류의 프로그램은 꽤 싫어하는 편이라서리...;;;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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