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용산참사 판결이 아주 아주 엿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제는 하루종일 이 엿같은 나라에 희망이란게 있나, 대한민국에서 과연 '인간'이란 가치는 존재하는건가.. 이런 자못 심각하게 우울한 생각들을 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밥먹고, 농담하고, 밀린 [몽크]와 [덱스터]도 보고... 할 짓은 다 했지만. 암튼 이 판결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고에 입각하고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그러나 이 글은 그 판결에 대한 가치판단과는 별 상관 없다. 이 글은 용산참사 판결 관련 기사들을 읽던 중 좀 특이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어 이를 기록하고자 간략하게 쓰는 글이다. 그래서 이 글의 분류는 '정치/사회'가 아니라 '저널리즘'이다.

용산 피고인들에 최고 '징역 6년' 선고, 재판부 "화염병 던져 국가 법질서 유린"
[용산 재판] 유가족들 통곡...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09.10.28 16:33 ㅣ최종 업데이트 09.10.28 23:41
- 오마이뉴스 권박효현, 권우성.
위 제호 하에 실린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28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에서 열린 용산재판에서 형사합의27부(한양석 부장판사)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9명에게 최고 징역 6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이충연 용산4구역철대위원장 등 피고인 2명에게 6년형을 선고했으며, 다른 피고인 5명에 대해서도 5년형을 선고했다. 농성 참여 정도가 가벼운 두 피고인은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 위 기사 중에서

그리고 이 판결에 대한 유가족, 범대위(용산범국민대책위원회), 변호사, 재판부, 검찰의 입장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좀 특이하다. 1. 유가족 2. 범대위 3. 변호사 4. 재판부 5. 검찰 6. 경찰 등의 입장으로 나눠서 인용해보자.

1.2. 유가족과 용산범국민대책위원회는 ~ 하겠다는 입장이다.
1. 성연씨는 ~ 고 말했다.
3. 김형태 변호사는 ~ 이라고 말했다.
3. 범대위 역시 ~ 고 밝혔다.

5. 검찰은 ~ 했다.
3. 변호인단은 ~ 를 주장했다.

4.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 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고 말했다.
4. 피고인들 양형과 관련해서는 ~ 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 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5. 검찰은 ~ 고 주장했으나,
3. 변호인들은 ~ 고 맞섰다.

6. 법정에 선 일부 경찰특공대원들은 ~ 고 증언했다.

3. 변호인들은 ~ 을 제시했다.

4. 그러나 재판부는 ~ 고 밝혔다. 또한 ~ 고 강조했다.
4. 재판부는 ~ 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 고 유죄를 선고했다. ~ 고 주장했다.
 
3. 그동안 변호인들은 ~ 고 주장했다.
6. 소방대원이나 특공대원으로 현장에 있었던 한 증인들이 ~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5. 그에 대해 검찰은 ~ 고 반박했다.
4. 재판부는 ~ 이라고 밝혔다.

4. 재판부는 이에 대해 ~ 고 말했다.

3. 김형태 변호사와 이충연 위원장 등 피고인 2명은 라고 외치며 법정을 나섰다.
2. 방청객들도 ~ 고 외치며 일어섰고

1. 유가족들은 ~ 라고 소리쳤고, ~ 도 했다.

- 위 기사 중에서 문장 종결형태 요약

이게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재판부에 대한 불신과 짜증과 원망이 은연중에 반영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기사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ㄱ. 어떤 사건 판결에 대한 재판부의 입장을 기사가 전할 때 "~를 강조했다"는 서술은 이상하지 않지만, "~을 강조했다"와 "~을 주장했다."가 함께 등장하면(이 기사에선 이게 쌍으로 두 번 등장한다) 이건 기존 기사 서술방식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체험적으로 판단하기에 대부분 기사들은  "재판부는 ~라고 주장했다"는 식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재판부는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 대립하는 당사자의 "주장"을 "판단"하는 사람들, 그러니 '중립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오마이 기사에서는 재판부 입장을 "~라고 판단했다"가 아니라 "~라고 주장했다."라고 전한다. 마치 '변호사'와 '검찰'입장과 마찬가지로 '적대적 당사자'의 한 축으로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ㄴ. 평소 경우라면 이런 식 기사에 대해 수사적 장난이라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대립적인 관련자들 입장을 전할 때의 저널리즘은 그걸 어떻게 균형감 있게 전할 것인지를 당연히 고민하게 된다. 그것이 논설이나 칼럼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보도준칙 따위를 갖게 되고, 일정한 관습적 서술 원칙을 갖게 된다. 그러니까 내용으로선 저널리즘의 가치판단 개입이 좀더 넓게 허용되지만, 수사적인 장난으로 가치판단에 개입하면 다소 반칙스럽다. 왜냐하면 이런 유치한 짓을 가장 노골적으로 하는 곳이 바로 '조중동'이기 때문이다.

ㄷ. 이 오마이 기사에서 그걸 기자들이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재판부에 대한 반감이 어떤 식으로든 기사의 수사(서술)에 내재된 것 같다는 정도로만 추정할 뿐이다.

ㄹ. 이런 식 수사가 다소 반칙스럽다고 나는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반칙스러움에 대해 별다른 저항감이나 불쾌를 느끼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아마도 재판부에 대한 내 주관적 가치판단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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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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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어필 2009/10/29 11:03

    저도 ㄹ에 동조하게 되는 군요^^;
    독립성을 완벽하게 유지한다면 (특히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성) 사실상 사법부가 가장 높은 권력을 가진 셈인데...
    그렇지 않음을 오마이뉴스는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PS.
    기소 자체를 막아버리면 사법부도 바지 사장이 되버리긴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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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10/31 03:16

      아이코, 밀린 글 쓰다가 답글이 늦어졌습니다. ^ ^;
      읽기는 진즉 읽었는데 말이죠.
      늘 무플탈출의 견인차 역할을 해주시는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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