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는 최초의 말도 최후의 말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있는 어떤 의미도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 그 모든 의미들은 언젠가 찬란한 귀향의 축제를 맞이할 것이다. - 미하일 바흐친


[2010-08-29 오후 11:46:09] 주낙현 신부: 앗 민노씨... 잘 지내고 계세요?
로 시작해서                                
[2010-08-30 오전 01:41:18] 민노씨: 평화!
      로 잠시 멈춘 주낙현 신부와의 대화 중 몇몇을 옮긴다(@스카이프)  


* 주낙현 신부 블로그(viamedia)로 가실 분은 글 아무데서나 주낙현 신부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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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낙현 신부님 자주 들린다는 카페 풍경 (사진은 물론 주낙현, 아이폰 'ToyCamera'로 촬영)


0. 근황

주낙현 신부 : 잘 지내요? 상지대 건도 좀 마무리가 되어 가나요? 다른 방향으로 정리가 되고 있는지요.
민노씨 : 내일 모래 국회(민주당 김상희 의원측)에서 법률검토가 있을 예정이구요. 신임 이주호 교과부장관 인사청문회 성격을 겸한 '상지대 현안 질의'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끝나려면 멀었는데... 저는 법률검토회의와 제가 참여한 체험들을 바탕으로 제 블로그에 '상지대 이야기'를 연재하는 선에서 적극적(올인?) 참여는 마무리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고요. 그리고 고대 교지에서 상지대 문제에 대해 원고 청탁을 받았는데, 그것도 4일까지 써야하고요. 이래저래 좀 정신이 없네요. 아거님과 책도 쓰고 싶고. 오는 10월 '인터넷과 저작권' 컨퍼런스도 준비해야 하는데.... 상지대는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네요...

주낙현 신부 : 아 그래요.. 하여튼 애쓰고 계시네요. 일을 마무리하는 동안에도 힘빠짐 없이, 새로운 지혜를 얻은 경험이었기를 바래요.
민노씨 : 이것저것 마음만 바빠서 그리고 제가 마음껏 실행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어서 좀 답답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그러네요..
주낙현 신부 : 예. 특히 어떤 일로 뛰면 그렇죠. 게다가 우리 사회의 모든 '운동'은 그 상황이나 방법이 거의 진을 다 빼놓는 경우가 많아서요. 원기를 충전하고 자기를 보살피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민노씨 : 아이들(상지대 학생들)도 너무 지쳤는지 약간은 기운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은 또 학교 체육대회, 축제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하겠지만요. 아이들한테 아주 작은 것이라도 좋은 체험을 전해주고 싶은데  마음만 있지 방법을 모르겠어요. 많이 친해져서 절 꽤 의지하는데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주낙현 신부 : 그들은 그들의 체험 속에서 얻고 마음에 남기는 방법이 따로 있겠죠. 저희가 그들보다 조금 젊을 때 그랬던 것처럼.

민노씨: 현답이십니다. ㅎㅎ.  아, 드디어 여기는 8월 30일이네요...시간 너무 빨리간다능..;;;
주낙현 신부 : 그러게요. 저도 해놓은 일은 없고.... 저는 뭔가 사람과 부딪히는 현장에 있어야 일을 잘 하는데, 이렇게 외따로 떨어져 있으니, 잘 안된다는 느낌이에요. 그나저나 나는 민노씨의 "온라인 실존"이 담긴 글들을 더 보고 싶은데... 다시 기운내서 컴백하기를...저도 이젠 트윗에서 블로그쪽으로 전환하려고 노력 중... 트윗은 블로그에 대한 사전 메모 정도로 삼고.. 물론 잘 안되지만...
민노씨: '상지대 이야기'를 제 개인적인 관점으로 써보려고요...;; 그런데 워낙에 관련자료들이 많아서 좀 난잡해지고, 길어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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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본 카페 풍경 (주낙현, 아이폰 'ToyCamera'로 촬영)

1. 지식권력과 지식권력자에 대한 혐오와 반감

민노씨: 트윗으로 소개해주신 박노자씨 글("명품인재"들의 천국)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실은 박노자씨 글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 글은 꽤 많이 공감 되더만요. 물론 다소 평면적인 접근이 아닌가 싶은, 늘 박노자의 글에 대해 갖는 아쉬움이 이번에도 없지는 않았지만요...;;
주낙현 신부 : 예, 그래서 관련 트윗도 했지요. 비판이 계속되면 그냥 불평으로만 들린다고.. 그래도 그 양반은 다른 이들보다 낫지요. 아픈데를 계속 잘 건드리니까... 아마도 조금은 멀리서 사태를 바라보니까 그럴거에요. 그런 점에서 평면적일 수도 있겠고요.

민노씨: 너무 옳은 이야기를 너무 학자적(?)으로 올곧게(??) 하니까 좀 맥빠지는 느낌이랄까요... 현실과 유리된 (그래서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교과서 같은 느낌이랄까... 더불어
인정 욕구의 순기능(?)이랄까요? 혹은 박노자씨가 단정적으로 표현한 '노르웨이에서는 평등이라는 가치가 굉장히 중요하다'까지는 인정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자기 현시욕에 대해선 너무 '무관심'할 정도로 통달한 느낌으로 글을 써서 좀 현실감이 떨어진달까... 저만 해도 '유명해지면 좋지. 그럼 최소한 돈 걱정은 안하면서, 좋은 일도 할 수 있잖아' 이런 마음이 들거든요. 이게 없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 관념적인 이상론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주낙현 신부 : 박노자에게서 읽으며 확인하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어쨌든 너무 쉽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안달인 어떤 '욕망'이 만개해 있어요. 진보나 보수나... 저도 주위에서 그걸 너무나 많이 보고요. 제 어제 트윗도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마침 박노자의 글과 아귀가 떨어지더군요. (...)

한국의 집권 수구, 혹은
기득권의 정치 전술은 항상 밥줄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인데, 거기서 자유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긴 하죠. 그런데, 실은 밥줄 정도는 아니고, 자기의 안위가 더 걸려 있는 문제를 잘 파고 든단 말이에요. 거기에 걸려드는데는 보수고 진보고 구분이 없어요. 어쨌든, 지금처럼 그물처럼 뒤덮고 있는 어떤 욕망 - 그것이 유명세이든 자리이든, 재산이든 - 많은 이들을 유혹하고, 결국 거기에 걸려들게 해서 죽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봐요. 또 사람들은 그것을 변호하는 행동과 글로 다시 자신을 팔고요.

어떻게 촘촘히 우리를 억누르는 그물들에 균열을 낼 것인가 하는 점이 너무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균열이라기 보다는 '그물에 걸리는 않는 바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훨씬 종교적인 요청이에요.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욕망 발전소인 까닭에, 그 종교적인 요청을 돌아보고 수행하기가 더욱 어렵고요.

민노씨: 물론 공감합니다만.. 그 균열의 방식이 '계몽'일 수 있다는 기대는 이미 포기한지 오래라서요. 박노자씨 글은 교양적이고, 계몽적인데요. 그 박노자씨의 실존 자체가 이방인 표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좀더 효과적으로 우리들에게 의식적인 '소외'(충격)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요. 하지만 박노자의 올바른 지적 "교양/계몽"이라는 방식이 말씀하신 균열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박노자라는 지식인의 존재는 대단히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요. 다만 강단좌파/진보의 한계를 박노자씨 스스로도 적극적으로 깨뜨리려는 시도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지식인이라는 존재가 글/말로 실천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한겨레의 우산 속에 너무 안주하는 느낌도 들고요. 특히 한겨레 쪽(?) 지식인 가운데 가장 아쉬운 분은 홍세화씨인데요. (예전에 한겨레 블로그) 홍세화 글방에는 별별 짓을 다해가면서 '대중과의 소통'을 건의(항의?)했는데.. '젊은 친구들과 소통하겠다'고 선언만 하시시더니 결국 별다른 액션이 없으시더군요. 한겨레 '고급지' 선언도 그렇고요. 홍세화씨, 참 존경하고 좋아하는 지식인지만 그 때엔 뭔가 깊은 아쉬움이랄까 실망스런 이율배반을 느꼈었습니다.  

주낙현 신부 : 그에게 얼마나 많은 '실천'을 요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대적으로... 게다가 이른바 교수/지식인 집단의 문제점을 오히려 자기 성찰로 이끄는 이들은 적거든요. 그런 점에서 그의 '블로그' 글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고요.

민노씨: 말씀에 공감합니다. 기대가 크니 아쉬움이 있는거죠.. 박노자 글이 이야기하는 바, 그 방향에 대해선 이견이 별로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주낙현 신부 : "교양/계몽"이라는 문제도, 이게 매우 복잡한 권력 관계가 있기는 한데, 이른바 포스트모던한 입장에서 보면 계몽은 권력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경우처럼, 서양의 시대적 경험이 풍성하지 않고, 자기 반성들이 긴 기간에 걸쳐 일어나지 않고, 갑작스럽게 닥쳐온 상황 속에서 '교양/계몽'을 쉽게 몰아가면 놓치는 것이 더 많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교양/계몽' 이전의 시대이기도 해요.  물론 '교양/계몽'의 권력관계 혹은 이익 관계를 좀 더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어떤 평등한 가치를 부각시키는 면에서 보자면요.

제 트윗은 대체로 사회에 대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속한 교회에 관한 고민 속에서 많이 나오는데요. (교회라는 조직은 사회 전체의 소우주이니까요 ㅎㅎ) 거기서 보면, 이젠 사람들이 '배울 생각'을 전혀 안해요. 그냥 자기 주장만 하죠. 자기를 성찰한다는 것은 어떤 거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거울을 모두 "계몽"이라고 규정해서 거부해 버려요.

민노씨: 주신부님의 문제의식과 아쉬움은 말씀을 통해서, 또 트윗 단상들을 통해서 늘 접하는 것입니다만... 그런 견고한 오만(?)이랄까, 굳어진 자기기만의 틀이랄까.. 그걸 깨뜨리기 위해서 필요한 '지적 요소'가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사회는 그 지적 요소가 굉장히 부족한 사회라는 인식에도 공감하지만... 양분화된 지적 불균형을 깨뜨리는 방식은.... 여기까지 쓰고 생각이 막히네요...;;;;;

주낙현 신부 : 예, 저도 막히는 부분이에요. ;)

민노씨: 저도 방법을 도무지 잘 모르겠어요. 다만 좀더 많은 개체들이 유연하게 연합/연대하는 작용들이 많아지면... 지금까지와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특히나 지적인 '계급성'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지적인 계급성, 간극을 뛰어넘는 유연한 연대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런데 제가 참여하는 '인터넷 컨퍼런스'만 해도... '학력 좋은 지식인'들이 대부분이죠.;;;

그러니까 끼리끼리를 탈피하는 방식의 확장적인 놀이로서의 연대, 그런 움직임들이 많아지면 좋겠는데요..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아쉬운 점은 오히려 자기네들끼리의 '폐쇄성'(그게 학벌이든, 지식이든, 소위 말하는 스펙이든...)을 여전히 강하게 갖고 있어서... 특히나 진보를 이야기하는 친구들 역시도 너무 또래집단적 폐쇄성이 강한 것 같아 아쉬움을 느낍니다.

주낙현 신부 : 예, 어떤 점에선 그것이 계몽주의자들의 문제이지, 계몽 자체가 갖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한편, 학문 방법에도 어떤 힘의 관계가 있어야. 간단히 말해서 어떤 지식과 이론은 평범한 인간 군상의 삶에 대한 경험과 자료, 그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추상화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지식 권력은 일반 사람의 경험과 자료에 귀를 기울이지 않죠. 그냥 수입 이론 가져다가, 현상을 구겨 넣어요. 여기서 지식 권력에 대한 거부감, 혹은 그들을 계몽주의자로 규정하여 반대하는 것이 생기죠. 공감할 수 있어요.
문제는 여기서 그친다는 것이에요. 그치는데 머물지 않고, 역설적이게도, 이제는 귀를 틀어 막아버려요. 즉 대화가 없어진다는 것이죠. 이러면 배울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어 버려요. 지금 우리 상태는 그런 점이 지배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우리는 이론(특히 서구 이론)에 대한 환상은 엄청나게 가졌으면서도, 우리 자신의 경험을 추상화하거나, 거기서 귀기울여 우리의 이론을 만들 생각은 안하죠.

누가 어떤 이론을 더 잘 아느냐,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만 가지고 싸우지, 그 개념이 일반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 어떻게 소비되느냐,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자기를 구성하느냐에 대한 관심은 없단 말이에요. 지식인이 자기 성찰을 하지 않는데, 누가 자기 성찰을 하겠어요. 지식인들이 남에게 손가락질 하듯이, 그들도 모두 남에게 손가락질 하게되는거죠.

민노씨: 아주 아주 공감합니다. 이론과 현실, 실천과 사유가 서로 따로 노니까... 그게 가장 문제인 것 같아요. 젊은 친구들은 겉멋으로 그렇다 치고, 그래도 좀 연륜이 있는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겉멋이거나 이런 것도 아닐텐데... 너무 삶과 유리되거나 혹은 거대한 정치적/사회적 이슈에만 경도되는 경향을 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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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풍경 (주낙현, 아이폰 'ToyCamera')

2. "잔치에 초대 받아야 할 사람"

주낙현 신부 : 한편, 오늘 미사에서 읽고 나눌 예수님 이야기가 흥미로워요. 한번 살펴 보세요.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예수께서는 손님들이 저마다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 하나를 들어 말씀하셨다.
"누가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가서 앉지 마라. 혹시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또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주인이 와서 너에게 '이분에게 자리를 내어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무안하게도 맨 끝자리로 내려 앉아야 할 것이다. 너는 초대를 받거든 오히려 맨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사람이 와서 '여보게, 저 윗자리로 올라 앉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다른 모든 손님들의 눈에 너는 영예롭게 보일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예수께서 당신을 초대한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놓고 사람들을 초대할 때에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잘사는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마라. 그렇게 하면 너도 그들의 초대를 받아서 네가 베풀어준 것을 도로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오히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들을 불러라. 그러면 너는 행복하다. 그들은 갚지 못할 터이지만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대신 갚아주실 것이다."

"너무 삶과 유리되거나 혹은 거대한 정치적/사회적 이슈에만 경도되는 경향..."

저도 늘 돌아보는 주제인데요. 한마디로 지식인들이 떠드는 게,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어떤 도움도 안된다는 거에요. 우리 사회처럼 지식인 - 일반인의 관계에서 그 관계가 너무나 직접적이고, 그 중간에 끼어있는 전문적인 가공인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봐요. 가공인 체 하는 사람들은 책 팔아먹을 생각을 하는, 오히려 지식인입네 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고요. 실제로 써먹은 가공업이 없다는 생각이에요.

결국, 위에 복음 이야기에 나온 것처럼,
우리가 초대할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욱 중요하다고 봐요. 누구를 초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것인가? 그 주체에 대한 문제에요. 결국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이 잔치의 주된 손님이 되지 않는 한, 잔치는 지식인들과 기득권을 누릴 만한 사교 모임으로 끝나는거죠.

민노씨: '실용적 지식'과 '교양적 지식'이 서로 만나는 방식에 대해서도 좀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그 '실용'과 '교양'이 반드시 나뉘는 것은 아니고, 지식인의 본령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교양적 지식/성찰을 통해 '존재를 살찌우는 것'에 있다는 생각이긴 하지만요... 그런데 그 존재를 살찌우는 지식이 너무 '먼나라' 이야기들이라는 점은 지식인들이 스스로 반성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습니다.

주낙현 신부 : 약간은 다른 말이지만, 아까 위에 적은 "잔치에 초대받아야 할 사람"에 대한 생각이 중요하다고 보고요. 우리 문화 속에서, 특히 지식의 기반이 되는 어떤 기록 문화 속에서, 그 '초대 받아야 할 사람'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고민이 적다는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외국에서 보면, 그 옛날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그가 죽으면 일기나 기록들이 정리되면서 전기가 나오거나 글이 묶어져 나오거든요. 그게 한 시대의 삶에 대한 한 시각을 엿보게 해줘요. 위인 전기도 있지만, 위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시각 말이죠. 이론은 이런 시각들에 대한 경험적 조사를 통해서 나오는 것인데요. 우리는 그런 경험적 지식을 갖출 기반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르긴 몰라도, 블로깅이나 트위터, 그리고 촛불 집회 등에 관한 여러 조사 자료가 진보/보수를 떠나서 이미 많이 나왔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경험적 조사가 별로 없어요. 예전에 이택광과 조정환이 논쟁했을 때도, 이건 그냥 라깡과 네그리의 싸움이지, 우리 고민이 아니었단 말이죠. 프레임을 들씌워서 분석하고 말아요. 촛불 집회에 참여했던 이들을 그들의 논쟁 "잔치에 초대하지 않으면서" 지식인입네 하고, 어떤 운동의 방향을 말하려 한단 말이죠.

어떤 점에서는 그런 경험과 고민들, 그들의 이야기들 - 민노씨가 상지대에서 하는 것과 같은 - 실존의 이야기들이 퍼져서 모아지고, 그것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이론적 주장이 나오는 것, 그것이 지식인이 할 일이죠. 여기에 기반하지 않기에, 우리는 늘 수입상만 하는 것이고요.

물론 이 말은 모두 제게도 해당... ;)

민노씨: 저 역시도 (제가 무슨 지식인이라고 불릴만한 사람은 전혀 아니지만요..) 그런 한계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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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풍경 (주낙현, 아이폰 'ToyCamera')

3. 일요일 아침

(민노씨 주 : 주신부님 계신 곳은 미국 버클리. 현지 시각은 일요일 아침)
주낙현 신부 : 일요일 예배를 오후로 미뤘더니, 일요일 아침이 좀 한가해집니다. 잘 지내시고요. 어서 주무세요.
민노씨 : 그러시고만요. 한가한 일요일 오전이라니.. 신부님께서 즐겨 쓰시는 인사말처럼 '평화'가 연상되는고만요.
주낙현 신부 : 아내도 아직 안 일어나고, 아이들도 잠 자느느라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예전엔 제 가족에겐 일요일 아침이 전쟁이었거든요. ㅎㅎ
민노씨: 예전엔? 아침에 예배를 집전하셨을 때요?
주낙현 신부: 9시에 미사여서, 7시 반부터 일어나서 아이들 깨우고 씻고 하면 정신 없겠죠? ㅎㅎ 그나저나, 오늘 아침은 다들 일어나길 거부하네요.

4. 인터뷰에 대한 단상들

민노씨: 제가 이야기하는 걸 꽤 좋아하는 편이라서.. 언제 주신부님을 본격(!) 인터뷰해서 작은 책이라도 하나 내면 좋겠습니다.
주낙현 신부: 좋은 아이디어이긴 한데, 대상을 잘못 잡은 것만 빼놓고...
민노씨: ㅎㅎㅎ 겸손이 과하시면 예가 아니라고 했습니당. :)

주낙현 신부: 다만 제 블로깅은 이제 너무 교회 일로만, 제 사적인 방향으로만 가서 다른 독자들에게는 조금 미안... 게다가 성실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이런 대화를 어떻게 민노씨가 블로깅화하느냐를 보면서 좀 배워야죠. 그래서 생각 나는건데, 외국 인터뷰를 읽을 때보면, 그 인터뷰의 광경, 그러니까, 예를 어떤 어떤 침묵과 표정,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어떤 공감과 이질감, 긴장 등을 인터뷰어가 책으로 쓸 때, 매우 '소설적'으로 묘사하면서 썼던 것들이 기억에 남아요. 우리한텐 별로 안보이든 것 같은데...물론 잘 아시는 것이겠지만..
민노씨: 우리네 인터뷰는 (세칭) '빨아주는' 인터뷰들이 대부분이라서...;;;; 저 역시 인터뷰의 생명력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긴장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대화의 긴장이 없는 인터뷰는 재미없죠...;;;

주낙현 신부: 인터뷰어로서 능력을 좀 더 발전시켜 주시길.. 블로깅이 그런 것이 돼도 좋을 것 같은데...
민노씨: 제가 인터뷰어로선 좀 너무 '공격적'인 것 같기도 해서요. 특히나 오프라인에서는 그런 말을 종종 들어요. 그저께는 개그맨 김제동씨를 잠깐 만났는데요(민변 특강에 오셨더만요). 나은이 소개로 뒷풀이에 상지대 친구들과 함께 갔는데, 거기서도 제가 유명인/공인의 사회적인 '책무'에 대해 강하게 어필하니까 제동씨께서 약간 불편해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제가 좀 눈치가 없어서리... 그리고 언제 제동씨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몰라서... 제동씨에게 그만큼 기대가 커서요...제동씨 같은 연예인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주낙현 신부: 앗 그래요? 그런데 인터뷰 자체는 문제가 아니죠. 그것이 생방송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그것이 어떻게 그 '긴장'을 드러내고, 그 긴장 사이에서 인터뷰어의 고민과 창조성이 드러나느냐,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활자화되느냐는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은데. / 둘 만의 대화가 아닌, 몇 사람이 낀 상태에서는 좀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중에 어떻게 조정하거나 '가공'할 수도 없고..ㅎㅎ
민노씨: '인터뷰'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인터뷰어'의 창작이라고 평가하시는건가요? 인터뷰에는 편집으로서의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리... 하지만 신부님 말씀 들어보니 그럴 여지가 전혀 없는 것 같지도 않네요. 하지만 인터뷰이의 '진의'를 왜곡하면 안되기에, 여전히 인터뷰어로서의 '편집요소'는 극히 제한될 것 같기는 합니다. 다만 그 '진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사소한 해석으로서의 '부기' 정도를 변주적으로 더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주낙현 신부: 모르겠어요. 저는 인터뷰어가 끄집어 내야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러지 않을 바에야 그 사람 불러 주는대로 쓰면 되지, 왜 인터뷰를 해요? 인터뷰이에게서 "발견적으로 끄집어 내는 일"이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그 인터뷰이의 맥락을 살펴서 (그의 표정, 인상, 몸짓, 어투  등이 어떤 말에 어떻게 연결되는가)을 드러내는 주는 하나의 장르가 아닐까요?
민노씨: 아주 공감합니다.
주낙현 신부: 좀 장르를 개척합시다. ㅎㅎ

민노씨: 링크님한테 빌린 책 중에 '거장의 노트를 훔치다'라는 인터뷰집이 있는데요. 그 인터뷰집은 인터뷰어로서의 개성이 완전히 거세된 인터뷰였지만 꽤 흥미롭더만요. 워낙에 인터뷰이들이 개성 넘치는 감독들이라서 일부러 그렇게 인터뷰어로서의 개성을 지워버리고, 인터뷰이의 자유로운 진술(영화에 대한 생각)에 충실한 인터뷰 같더라고요. 각각의 감독들이 서로 같은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너무 달라서.. 그 개별 인터뷰로선 매력이 없었는데, 그게 모이니까 굉장히 시너지가 생기더라고요.

5. 죽라면과 미역국

민노씨: 아침식사는 뭘로 드실 예정이신가용? 저는 라면에 죽을 넣어서 먹을까 생각중입니다. ㅡ.ㅡ;; 죽라면.
주낙현 신부: 헉... 이 저녁에 라면... 라면은 피하고, 그냥 죽만...
민노씨: 오늘 점심에야 일어나서요. 아직 자려면 대여섯 시간은 남은 듯요.

주낙현 신부: 노닥거리는 사이, 아내가 일어나서 밥하러 갔네요. 물어보니, 미역국 끓여서 먹자고.., ㅎㅎ
민노씨: 아, 부럽당. 제가 미역국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쩝...ㅜ.ㅜ;
주낙현 신부: 저도 아주 좋아해요. 가장 간단하고도 청결한 느낌...

민노씨: 그러게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좋습니다. 미역국...ㅡ.ㅡ;;
주낙현 신부: 미역국 끓여 드세요. 라면 끓이지 말고... 하여튼, 오늘 대화 즐거웠고요. 잘 지내세요. 평화의 합장...
민노씨: 미역국 맛나게 드시고 기운 만땅으로 충전하시길!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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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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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봤어요. 2010/08/30 10:42

    잘 봤어요.
    참 대화가 기네요. ㅋㅋㅋㅋㅋㅋ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9/08 10:56

      ㅎㅎ
      그나마 줄인겁니다.

  2. 2010/09/10 14:49

    끝까지 잘 읽었어요. 오랜만에 민노씨네에서 많은 공감을 하는 글을 봤네요. ^^
    (최근엔 상지대 이야기가 대부분이어서;;)
    블로그래픽 때에 비해 인주찾기 하면서 더 자주 보기는 하는데, 주로 업무적(?) 대화를 하다보니 어째 이런 대화를 나누는 일은 거의 드물어진 것 같아요. 컨퍼런스가 목전에 다가왔으니 당분간은 여기에 집중해야겠지만, 이번 컨퍼런스 끝나면 그냥 이런저런 얘기 할 수 있는 자리 한번 마련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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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9/10 23:34

      앗, 친애하는 펄님께서 오랜만에 댓글을 주셨군요.
      상지대 문제..;;;;
      요즘 너무 상지대 이야기만 한 것 같기도 합니다.
      상지대 문제에 대해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좀 가져야겠네용. ㅎㅎ

      말씀처럼 "그냥 이런저런 얘기할 수 있는 자리" 마련하면 좋겠네요! :)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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