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블로그 / 인기 블로그

2007/02/06 09:02

#. 요즘 종종 생각(?)하는 주제인데요. 아거님의 글을 읽다가 삘받아서 썼던 글을 이제야 등록합니다. 두서 없구요. 이 글은 약간 긴 글입니다.





좋은 블로그 / 인기 블로그






1.
몽양부활님의 글에 다음과 같은 인용이 있다.

Steve Adler : “프로 저널리스트들은 UGC의 확산으로 직업을 잃게 될 것으로 보는가?”

Tom Glocer : “나는 오직 한 가지 저널리즘의 유형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좋은 저널리즘이다. 나는 터무니없는 글을 쓰는 몇몇 전문 저널리스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산문체의 글을 쓰는 아마추어도 알고 있다.”

- 몽향부활님, UGC로 기자는 직업을 잃게 될까?

http://blog.ohmynews.com/dangun76/135056

이 글의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내가 굳이 인용한 건 "좋은 저널리즘"이라는 표현 때문이다. 탐 글로서의 낙관주의에 대해서, 그 바람은 물론 함께 하지만, 나는 탐 글로서처럼 낭만적인 혹은 낙관적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좋은 저널리즘만 살아남는다... 그랬으면 참 좋겠지만.. 과연?

최소한 우리나라의 블로그계(블로그 저널리즘)를 돌아보면 그런 염려가 종종 생긴다.
좋은 블로그(저널리즘)만 살아남을까?



2.
블로거들은 나르시즘적 성향을 갖는다.
내가 관찰한 바로, 내 제한적인 경험치로 한정해서, 혹은 내가 나를 들여다보면, 대체로 그렇다.

나?
나도 물론이다.
내 글이 좀더 많이 각광받았으면 좋겠고, 좀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고, 좀더 큰 의미로 퍼져가기를 원한다.

그걸 탓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없다면, 왜 굳이, 자기시간을 쪼개가면서, '공개' 포스팅하는가?
그 바람의 정도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2-1.
다만 읽히길 원하다면, 읽어야 한다.
자신만 읽히길 원한다면, 누가 읽나?
블로깅의 가치는 쓰기만큼 읽기도 중요하다.
좋은 글을 읽고, 거기에 논평하고, 거기에 적극적으로 트랙백 보내고, 또 링크로 인용하고, 그게 정말 블로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블로그의 육체들이 괜히 있는 건 아닐테다.

참고로 '불친절한'(본인 표현을 빌자면 ^ ^;;) 블로거인 eouia님의 글 [소중한 방문자]에는 eouia님이 좋아하는 방문자의 그룹의 선호 레벨(?)이 있는데

1. 링크
2. RSS 혹은 북마커
3. 검색엔진
4. 메타블로그 순이다.

나로선 적극 공감한다.



3.
블로그를 통해서 돈을 벌고 싶은가?
그걸 상징하는 장치는 '구글  애드센스'다.
나는 구글 애센에 대해서 어떤 거부감도 없다.
다만 구글 애센의 미래, 혹은 구글 애센으로 상징되는 블로그 상업주의의 경향(쉽게 말해서 자극이 강한 미끼글)에 대해선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아거님의 지적을, 좀 길지만, 인용한다.

기회있을 때마다 나는 블로그의 두가지 필수 요건으로 1. "게이트키핑이나 편집을 거치지 않는 아마추어들의 글"이라는 점과  2. "개성과 의견(관점)이 담긴 명확히 구분되는 사람의 목소리(discernible human voice)"를 꼽아왔다. 이런 점에서 유명 매체에 몸담고 있는 기자라도 편집국에 넘기는 기사가 아니고 자신의 블로그에 누군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글을 올릴 때는 '어느 블로거'가 된다. 그리고 그 아마추어 정신의 요체는 바로 "진실의 추구"이다. Lessig의 말을 들어보자.

아마추어의 덕목이 진실 혹은 진리의 추구라면, 그 덕목은 광고 수입을 벌기 위한 욕구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레식).

(... 중략 ... )

영국식 타블로이드가 신문을 팔기 위해 진실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듯이, 상업적 블로그-로이드(주: 타블로이드에 견주어 blogloid라고 함> 개인적으로는 타블로그로 부르고 싶다) 역시 시선을 잡기 위한 노력 과정에서 진실은 신경쓰지 않는다(레식).

그러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아니 누가 와서 보란 것도 아니고 누구나 말할 자유가 있는데, 하드코어를 팔든, 레이싱 걸을 올리건, 연예인 가쉽을 팔든 어떠하리? 안보면 될 것 아닌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악정보가 양질의 정보를 구축해버린 디지털 그레샴 법칙 (주 : 나쁜 돈이 좋은 돈을 쫓아낸다. "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의 시대에 블로그계 마저 타블로그가 진짜 블로그를 대체하는 날이 온다면 우리가 얻는 손실은 여간 큰게 아닐 것이다. 지금이나 몇 십년 후에나 블로그가 타블로이드적 가치에 밀리지 않고 건재하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이다.

- 아거, [타블로이드 블로그 (타블로그)에 대한 우려] 중에서
http://gatorlog.com/mt/archives/002284.htm

사람들의 호기심은 자극적인 소재와 방식에 길들여져 있다. 정치/사회/문화/철학... 고전적인 주제들에 대한 고민과 관심의 밀도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고 느낀다. 정치에 관한 글이 올블을 지배한다고 일부 블로거들이 강한 불만을 제기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정말 심각한 지경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엄밀하게 말해서, 올블 유저는 전체 블로고스피어에서 갖는 상징성이나 위상은 별론으로, 그 숫자로만 본다면, 정말 한줌도 안된다. 이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 바깥의 풍경이 그렇게 조화로운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 바깥엔 거대한 육식동물과도 같은 포털이 떡~하니 아가리를 벌리고 버티고 서있다. 



3-1.
구글애드센스 이야기 그만하자, 질렸다, 이런 글을 봤다.
거기에 관심이 많으면, 어쩔 수 없이 글은 많아지기 마련이다.


일상 이야기에 관심 갖자~!! 이거랑
정치 이야기에 관심 끄자 혹은 갖자~!! 이거랑
구글 애드센스에 관심 끄자 혹은 갖자~~!! 이거랑 모두 쌤쌤이다(관심을 그만 갖자,도 당연히 그 주제에 대한 이야기다). 

결론은 어떤 글이 좀더 힘을 갖는가이다.
좀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어떤 의견과 주장이 좀더 설득력이 있는가, 좀더 강한 근거들에 의해 지지되는가이다.


그런데 그건 글의 가치(주장의 무게와 비례한 근거의 무게)로 판단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감정에 호소하고, 자신의 당파적 이익(이런 거창한 말은 좀 그렇고, 암튼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쪽에 동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4.
맥, 구글, 파폭, 마소, C2, 네이버 등등의 이야기와 정치이야기, 사회이야기, 문화이야기, 철학이야기,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일상의 상처와 개인적 실존이 개입된 '어떤 이야기'들은 모두 동등하게 가치있다. 다만 어떤 이야기 하나가 다른 모든 이야기들을 '잡아 먹는다면' 그게 불만이라면, 짜증을 내선 안되고, 유혹해야 하고, 설득해야 한다.

쉽게 말해서, 당신이 읽고 싶은 글을 당신 스스로 '매력적으로' 쓰면 된다.

거기에 '불평'하는 것 보다는 '좀더 매력적인' (다른 이슈의) 글을 쓰는게 훨씬 더 생산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5. 올블
올블이 갖는 긍정적인 역할은 앞으로도 나는 기대하는 바다.
다만 올블은 점차로 (나쁜 의미에서의) 대중주의와 감상주의, 감정적 호소에 치우친 글들이 잠식해갈 것으로 예견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제까지와 같이 웹, 블로그, IT 전반에 대한 기술적인 이해에서 앞서 있는 블로그들이 나머지 영역을 수성(?)하게 될 것 같다.

그러니 올블의 분류, 추천 시스템은 (물론 나날이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좀더 구체화되고, 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시스템이라면 다양한 유저들의 성향을 만족하기 보다는, 까다로운 올블 유저의 이탈을 가속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건데, 나처럼 복수블로그를 운영하는 유저를 위해서 복수블로그를 등록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데, 이전에 이런 장치가 없었을 때 혹은 뭣 모르고 아이디를 서너개나 만들었었다. 그걸 삭제-해지-하려고 했더니, 올블 측에 그 사유를 적어 보내야 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허락-?-을 받아야 하는 절차인 것 같다. 쉽게 말해서 탈퇴절차가 너무 까다롭다. 이런 탈퇴절차는 재고해주시길 바란다).

전체적으로 나는 그 방향이 '선택과 배제' 시스템의 구현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 구체적인 방법론은 유저의 체험치가 전체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평가 모델'의 수립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이런 쪽으론 너무도 무식해서 그 기술적인 구현에 대해선 어떤 조언도 할 수 없긴 하다. 다만 현재와 같이 전체를 획일적으로 '인기글' 혹은 '추천글'로 줄세우는 순위 시스템은 (나쁜 의미의) 대중주의로 치닫을 위험이 크다.

이에 대해선 eouia님의 지적에 대해 올블측에서 어떤 반응도 없다는 점이(최소한 내 관찰에 의한다면) 나로선 의아스럽다.

기술적인 이해도가 부족해서 eouia님의 지적을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eouia님께서 다음과 같은 글을 통해 올블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물론 이 글의 주제와 직접 관련이 없는 글도 있다).

특히 올블과 관련해서 내가 가장 주목한 글은 다음 글이다.
그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문제는, Reputation이 정보에 대한 질을 담보하기는 어렵다는 점. 모집단이 커지고 모집단의 수준이 평준화될 수록 특정 정보에 대한 가치가 낮아지게 된다. 즉, 모집단이 커질 수록 Reputation은 그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모집단이 커질 수록, 취급하는 정보의 양이 많아지고, 그 많아진 정보 중에 ‘자신이 원하는 정보’ - ‘모두가 원하는 정보’말고 - 를 찾는 것은, 또 다른 정보의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일인 셈이다.

Reputation이 높은 정보를 선택하면 되지 않겠냐고?
표준분포에 가까워질 수록, Reputation이 높은 정보란, 더 노출되기 쉽고, 더 많은 사람에게 그럭저럭 통용되는 수준이 되기 쉽다. 즉, 그것이 ‘내가 콕찝어 원하는 정보’일 가능성은 더 멀어지게 된다.

allblog나, digg 등이 점점 덩치가 커지면서 메인에 노출되는 정보들이 예전보다 ‘나’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경험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 eouia님, 평판과 신뢰 [1월 17th, 2007]
http://dnzin.com/cunningweb/2007/01/17/reputation-and-reliability/

물론 올블도 먹고 살아야 하고(대중화해야 하고, 그 덩치를 키워야겠지, 찬성이고, 환영이다), 소수의 유저만들을 위해 자선사업하거나, 동호회 수준으로 운영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올블의 대중화가 올블에 대한 '신뢰'를 희석시키는 방향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eouia님과 같은 소위 '알파블로거 '의 (거듭된) 지적이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않는 블로고스피어의 풍경이 나로선 참 신기할 지경이다.

6.
물론 어떤 메타블로그 시스템 하나가 블로고스피어의 풍경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위상과 책임에 대해선, 지금도 물론 깊이있는 고민이 있을줄로 믿지만, 좀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지 않나 싶다.

'좋은 블로그(저널리즘 블로기즘)' 문화, 가치있는 블로고스피어를 만들어가는 건 소수의 '알파블로거'만의 선견지명이나 힘만도 아니고, 훌륭한 메타블로그 시스템의 조력만으로도 곤란하고, 블로고스피어를 관통하는 그 보이지 않는 '문화'가 가장 큰 궁극의 원동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덧.] 물론 그 문화의 얼개들은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조정되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스템을 활용하면서, 또 그 시스템을 비판하면서, 블로기즘은 스스로의 존재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다시 반복하지만, 블로깅은 쓰기만 갖고는 곤란하다. 내 블로그가 의미있는 독자를 원한다면, 우선은 내가 의미있는 독자로서 블로그들을 방문하고, 또 논평 남기고, 적극적으로 교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걸 강요할 수는 없지만, 읽히기만 원하는 블로거만이 남는다면, 블로고스피어의 풍경은 정말 사막처럼 황량해질 거다.

의미있는 블로고스피어는 좋은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1. '읽고', 2. '인용하면서 링크'(홍보)하고, 3. 궁극적으론 '비평'하는 과정을 통해서 살려질 수 있다는 믿는다. 궁극적으로 블로거 각자가 서로 서로에게 블로그 비평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자발적인 노력과 관심, 아니 그런 '즐거운' 블로깅이야말로 블로거의 특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상이다.



p.s.
이 글은 [  http://wnetwork.hani.co.kr/skymap21/5763 ]에 동시등록합니다.
동시등록은 앞으론 좀 자제할까 싶은 생각도 있지만.. 아직 복수블로그 운영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요. (물론) 메타블로그에 동일한 글이 등록되지는 않습니다. 이 글은 올블에선 비공개로 돌렸습니다.


덧. 위 필넷(현재는 '한겨레블로그')에 등록했던 글은 지웁니다.
한겨레블로그의 정책에 대한 제 나름의 정책이구요. 한겨레 블로그에 있던 글들은 원칙적으로 모두 여기 혹은 http://kino21.com 로 옮겨올까 합니다.



#. 물론 일부 블로거들에게는 익숙한 개념이겠습니다만, 저부터도 좀 낯선 개념이라서요. 저 역시 배우는 의미로, 일단 제가 읽은 글 중에서(그러니 제 주관적 경험치와 주관적 성향의 범위 내입니다, 물론) 가장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 글을 소개합니다.




파드캐스트란 무엇인가?

- 아거님의 글을 중심으로






0. 파드캐스트(Podcast)

혹은 팟캐스트, 포드캐스트, 팟캐스팅, 포드캐스팅.. ^ ^ ;;
이거 철자부터 일원화하면 좋겠는데요.
아직 국어사전에 등록된 어휘는 아닌 것 같네요.

1) 우리나라 네티즌이 가장 쉽게 접근하는 N백과(오픈백과사전)의 설명 일부.

팟캐스트는 애플의 아이팟(Ipod)과 방송(Boradcasting)을 결합해 만든 신조어로, 포터블 미디어 플레이어(PMP) 사용자들에게 오디오 파일 또는 비디오 파일 형태로 뉴스나 드라마, 각종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 집필자 : joy_jn13041  (2006-10-27 15:19)

2) 위키피디아 - 한국어판의 설명부

http://ko.wikipedia.org/wiki/%ED%8C%9F%EC%BA%90%EC%8A%A4%ED%8C%85

포드캐스팅이 다른 온라인 미디어와 다른 점은 그 구독 방식이다. 포드캐스팅의 구독 모델은 RSS 2.0 XML (또는 RDF XML) 파일 포맷을 사용하여 파일을 제공한다. ( RSS 파일 내에서 enclosed 태그를 사용한다.) 포드캐스팅을 통해서 독립 제작자들은 자신만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고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청취자들은 아이튠즈 와 같은 포드캐스팅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정기적으로 새로운 라디오 프로그램이 나왔는지 자동적으로 검사하고 다운로드 받아 청취할 수 있게 되었다. 일부 포드캐스팅 소프트웨어들은 그러한 라디오 방송을 MP3 플레이어에 자동적으로 저장하여서 다른 장치로 쉽게 들을 수 있도록 해 준다. 동영상 파일에도 같은 과정을 적용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동영상 포드캐스팅을 지원하는 휴대용 장비는 없지만 곧 지원하는 장비가 탄생할 것이다.

- 위 글 중에서.


1. 아거님의 파드캐스트 관련글

1) 블로그계의 빅뱅 파드캐스팅 [연재 1]: Podcasting killed video star [March 09, 2005]

http://gatorlog.com/mt/archives/002206.html


* 아담 커리(Adam Curry)
* 그가 MTV를 떠난 것은 인터넷에서 기회를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인터넷 마케팅 회사를 차렸다. 오랫동안 이 동네에서 수없이 뜨고 지는 별들을 잘 관찰했기 때문일까? 그는 이제 전세계에 podcasting의 창시자로 기억된다. 물론 그는 무엇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어떤 경향을 읽는 감각이 있었고 이걸 첨단 기술과 연결시켜보려는 창의적인 생각을 해 낸 것이다.
- 위 글 중에서


2) 블로그계의 빅뱅 파드캐스트 [연재 2]: RSS는 mp3를 싣고 [March 09, 2005]
http://gatorlog.com/mt/archives/002207.html

* 2001년 BloggerCon행사에서 그는 블로그계의 대부이자 RSS의 아버지로 불리는 Dave Winer에게 한 수 지도를 받는다. 와이너가 아담 커리에게 준 훈수는 인터넷과 비디오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엄밀한 의미에서 파드캐스팅이라는 것은 "웹에 기반한 컨텐츠 배급의 가장 진화된 형태인 RSS기술과 디지털 주크박스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iTunes, 그리고 그 iTunes에 의해 탄알을 제공받는 mp3 플레이어의 지존 iPod" 이 세가지 기술이 절묘하게 결합됨으로써 탄생한 새로운 아마추어 방송을 의미한다.

* 특히 이 세가지 기술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RSS이다. 파드캐스팅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TV는 사랑을 싣고"처럼 "RSS는 mp3를 싣고"가 되겠다. "iTunes와 iPod과 RSS중에 그 중에 제일은 RSS이다."

* 블로그의 전형이 편집되지 않고 게이트키핑이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아마추어 글쓰기에 있듯이, 파드캐스팅의 전형도 고급 장비가 아닌 집에 있는 컴퓨터 앞에서 자신의 아날로그 음성을 디지털로 바꿔주는 아주 간단한 mp3 녹음 소프트웨어와 헤드폰 마이크를 뒤집어 쓰고 아무런 대본도 없는 상태에서 내보내는 아마추어들의 재잘거림에 있는 것이다.

- 위 글 중에서


3) 블로그계의 빅뱅 파드캐스팅 [연재 3]: 왜 파드캐스팅을 듣는가? [March 13, 2005]
http://gatorlog.com/mt/archives/002208.html

*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필요(needs)는 무엇이고 그런 기술적 진화와 그 구현체가 어떻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 파드캐스팅의 수용자
1. 케이블과 인공 위성이 열어놓은 다채널 다편성 시대의 컨텐츠도 내 관심과 호기심을 충족할만큼 다양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미디어 소비자들
2. 두번째 유형의 파스캐스팅 수용자는 역시 온-오프라인 관계를 중시 여기는 이른바 사교적 오디언스 (social audience)
3.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영어를 배우기 위한 도구 혹은 수단으로써의 파드캐스팅 청취

- 위 글 중에서

4) 스타벅스 파드캐스트가 남긴 교훈 [November 29th, 2006]
http://gatorlog.com/?p=623

* 스타벅스 파드캐스트가 실패한 것은 장비가 없어서도 대본을 쓰는 작가가 없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좋은 장비와 목소리 좋은 성우를 가지고 엉뚱한 방향으로 삽질을 했기 때문이다. 바로 블로그와 파드캐스팅의 본질은 관계속에 살아 숨쉬는 커뮤니케이션인데, 관계를 구축하지도 않고 바로 공장 소개나 팔고 있는 커피 소개나 하려고 했으니 이게 잘 될 턱이 없다.
- 위 글 중에서


2. [금요 테크 토크]를 주목하자

금요테크토크 : http://www.alpakorea.com


앞으론 아거님께서도 파드캐스팅을 재개한다고 하시는데요, 개인적으론 블로그계의 지존(^^)으로 생각하시는 아거님께서 파드캐스팅을 다시 하신다고 약속해주시니, 정말 기대가 큽니다. 아거님의 파드캐스팅은 그 때 그 때 듣는 대로 그 내용을 정리, 비평(-_-)할 생각입니다. 확정적으로 약속할 수는 없겠지만요. 워낙에 제가 게을러서요.

아거님의 파드캐스팅에 대한 기대와는 별개로, 현재 막 의미있는 파드캐스팅을 진행하고 계시는 블로그가 있는데요. [금요테크토크]입니다. 주간 단위로 매회 30분에서 40분 분량의 파드캐스팅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금요 테크 토크]의 파드캐스팅에 관한 글(일단은 홍보를 위한 '요약정리' ^ ^; )은 이 글 다음에 바로 등록할 생각입니다.


고맙습니다. 




p.s.
이 글은 '읽히기만을 원하는' 블로그계의 풍토랄까요? -_-;
의미있는 블로고스피어는 좋은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읽고'(1), '홍보'(2)하고, 궁극적으론 '비평'(3)하는 와중에 살려질 수 있다는 믿음의 연장인데요. 이에 대해선 따로 글을 쓸까 합니다.



악플러, 과장된 희생양

2007/01/25 17:32

#. 이제 좀 잠잠해진 것 같습니다. 회고적인 문제제기의 차원으로 보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냥 넘길까도 싶었지만, 그러기엔 꽤나 중요한 논점들을 갖는 문제라고 생각해서요. 약간 긴 글입니다.






악플러, 과장된 희생양




0.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는 경건해야 한다고 배웁니다. 한 평론가의 말을 빌자면, 죽음은 모든 것을 허용하긴 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죽음에 대해 경건해야 합니다. 모두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1. 
저 악플 싫습니다. 정말 미워합니다(이 글은 악플 편들자는 글이 아닙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 오죽하면 글꼭지로 [찌질이]가 다 있겠습니까? 자신의 말이 갖는 책임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태도는 정말 옳지 못합니다. 더욱이 그 말 때문에 타인이 큰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그저 극단적인 감정에 휩싸인, 그저 휘발적인 자기 만족을 위한 욕설이나, 비난이라면 더 더욱 그렇습니다. 정말 그런 찌질스런 행위들은 사라지기를 원합니다.

다만 악플러(혹은 찌질이)가 (제가 지금 체감하는) 현재의 여론처럼 대단히 반사회적이고, 극단적인 악성을 가진 '악마'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사이코 물론 있겠죠. 그런 사이코가 없는 영역 있나요? 어디에나 있고,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형법은 '행위'와 '행위자'를 구별합니다. 형법은 매우 철학적인 학문이면서 법규범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신체와 자유와 목숨(사형제도)까지를 다루는 최후수단적 의미를 갖기에 그렇습니다. 어떤 악플 때문에 존중받아 마땅한 법익이 침해되었다면, 그 행위를 법의 심판에 맞기면 됩니다. 다만 이렇게 악플러에 대한 과도한 마녀사냥을 '선동'하는 방식이 되어선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그 선동의 일선에 이런쪽으론 더 더욱 순발력 일등인 조선일보가 있습니다. 전 그 순발력 자체는 높게 평가합니다). 이런 집단적이며, 극단적인 감정과잉의 방식은 항상 억압적인 전체주의의 유령을 데려왔습니다. 저는 그 점을 우려합니다.

현재 그 법제도는 '형법상 명예훼손'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입니다. 특히나 정보통신망법은 일반법인 형법의 명예훼손에 대한 특별법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 벌칙은 형법의 명예훼손보다 엄합니다.

제61조 (벌칙)
①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제1항 및 제2항의 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반의사불벌죄입니다).

충분히 엄한 규범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3.
문제는 항상 다층적인 이면을 갖기 마련입니다. 어떤 결과도 단일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복합적입니다. 구조적(공적)이며서, 동시에 개개 사건마다의 특성들은 개인적이기도 합니다.

악플러, 때려잡을까요?
악플러, 능지처참형으로 다스릴까요?

제도의 형식은 지금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형식으로서의) 법규범과는 별개로, 우리를 둘러싼 구조가 오히려 '악플러'를 양산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에 아예 댓글을 다는 기능을 없애자"구요?(스포츠 서울. 1월 23일자 일면 기사중 네티즌의 의견을 인용 -_-;) 정말 그렇게 하면 악플로부터 자유로운 사회가 될까요? 이게 바로 박정희 방식이고, 전두환 방식입니다.

'악플러' 때려잡자고 난리쳤던 포털은 정말 입 다물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포털은 '악플러'와 협업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환경을 자기들이 조성합니다. 그걸 즐깁니다. 그런 가학적인 문화들을 양산하고, 장려합니다. 자극적인 뉴스들, 허접한 말초신경 자극하는 연예인의 신변잡기들은 포털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주니까요. 여기에는 여지없이 '경제논리'가 작용합니다.

거기에 초딩 마인드의 찌질씨들이 달려듭니다. 그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 찌질씨들의 개인적인 책임을 없던걸로 하자는 거 아닙니다. 다만 그 환경을 조성한 포털이야말로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원칙도 없는 상업주의, 천박한 상업주의야 말로 '악플러가 자라나는 비옥한 토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4.
한 연예인의 죽음을 '뉴스'로 가공하고, 그것을 '상품'으로 포장해서, 배포하는 '언론'의 그 천박함에 대해서 저는 오히려 더 우려합니다. 그 언론은 또 다른 '악플러'에 다름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이에 대해선 따로 글을 쓸까 합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의 기사라면, 거기에 '댓글'을 다는 건(가장 대표적인 리플러는) '언론'입니다. 그 언론은 죽음에 대해서 경건하지 않습니다. 그 죽음을 이용해서 장사하려고 하고, 그 죽음이 갖는 감정적인 폭주들에 편승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깁니다.

그걸 즐기는 여러분/우리들은 '악플러'가 아니라고, 그 구조에서 자유롭다고 단언할 수 있으십니까?


5.
너무 성급하게 일방적으로 감정의 편향적인 폭주가 사회전체를 지배하는 이런 '전체주의적'인 분위기가 저는 우려스럽습니다. 황우석의 망령이 아직도 인터넷을 떠돌고 있습니다. 황우석씨에게 90% 이상의 절대적인 신뢰를 보냈던 일방적인 사회가 저는 정말 염려스럽습니다. 그 전체주의적 경향, 그 관성은 온전하게 해체된 겁니까?

악플은 정말 나쁜 짓입니다. 하지만 그 악플을 양산해내는 사회는 건강한가요? 그 시스템은 아무 문제 없습니까? 이런 과도한 마녀사냥과 가학적 심리는 고양된 태도라고 말할 수 있나요? 악플러는 더 큰 악을 숨기기 위해, 스스로의 치부를 위장하기 위해 언론이 '상품'으로 내세운 일종의 '희생양'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더 큰 악플러들, 더 큰 악의 구조(-_-;)에 대해 근심하기를 원합니다. 죽음에 대해 진심으로 경건할 수 있는, 또 그 죽음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찬찬히 토론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파스 법안

2007/01/17 13:03
복지부의 (소위) '파스 법안'
- 휴머니즘적 보도의 맹점과 그 이면.


[관련글]
땡글아빠, 무상 의료혜택만이 능사일까?
| 낙서장  2007/01/15 18:25




위 '파스 법안'은 '의료급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이다.
그 입법취지는 '의료급여 재정절감'을 위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땡글아버님의 글과 관련 링크들(한겨레의 사설과 관련기사)을 읽으니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항상 모호한 경계에 선 문제들이 존재한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감상적 휴머니즘에 치우친 비판은, 물론 그 즉시의 카타르시스는 있지만, 결과적으론 그 문제에 관여하는 전체에게 손해로 돌아간다(물론 나는 이 사안에 대해 확고하게 정립된 입장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한겨레 사설과 김양중 기자의 글은 '소수자'를 옹호하고, 개선입법의 잘못된 지점들을 비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적극적인 대안에 대해선 무심하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도 선정주의' 혐의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김양중 기자의 글에 수사처럼 인용된 시민단체와 그 주장들은 정말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다만 그것은 너무 일방적이고, 감상적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를 비롯한 의료·빈곤 단체와 종교·인권·여성·노동 분야 시민사회단체 등 27개 단체는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의료급여 대책은 엉터리 ‘오남용 통계’를 바탕으로 입안된 것”이라며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또 “가난한 이들의 치료권을 박탈하는 반인권적 정책을 강행하는 것은 사회적 범죄”라고 주장했다.

정부 의료급여 정책…빈곤층 ‘병원 문턱’만 높였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183666.html




그 주장이 신뢰를 얻으려면, 반대쪽의 주장이나 근거들에도 관심을 갖아야 하고, 또 그 대안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더불어 수반되어야 한다. 그 고민을 땡글아버님의 글에서 본다.


땡글아버님의 견해는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전체 빈곤층을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복지부안은 제한된 재원을 가지고 (무상의료혜택을 남용하는) 극히 일부 빈곤층보다는 전체 빈곤층을 위해 최대한의 효율적 운용을 고민한 흔적" 
(무상 의료혜택만이 능사일까? 중에서)


2) 기사의 사례로 등장하는 '특수한 경우'에 대한 대처는 좀더 특수한 법안을 마련하여 대처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일부 의료보호환자들의 경우, 무료이기 때문에 필요이상의 파스를 남용하는 경우가 매우 자주 있다하니, 그 파스가 꼭 필요한 소외환자가 존재한다면 이들을 위한 특수정책을 제안함이 옳은 것 ... 중략 ... 차라리 특수성의 원칙을 적용하여, 보호환자를 세분화시켜 보호의 수준을 좀 더 세분화시키는 것(예를 들어, 보호1A, 보호1B)을 대안으로 .. 후략.. "
(무상 의료혜택만이 능사일까? 중에서 )




3) 극단적인 사례를 통해 정책(개선입법)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은 '선정적 저널리즘'의 혐의가 있다.

4) (이 점이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부' 의료계의 반발은 당장의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이기주의'에의 혐의가 짙다. 즉, 무절제한 '의료 쇼핑'(쉽게 말해서 파스사용이 많으면 많을수록)는 의료계에는 이익이다.


"극단적 자본주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의료계 입장에서는 의료보호환자들의 무제한적 의료혜택의 결과로서 얻어지던 수입이 많은 부분 줄어들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의료계에 이로울 것이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무상 의료혜택만이 능사일까? 중에서)





감상적 휴머니즘으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의 모순은 그다지 많지 않다.



p.s.
1. 물론 나는 김양중 기자의 마음만은 가득하다고 믿고 싶다. 그는 한겨레의 금속노조 광고 거절 사건을 -명시적으로- 비판한 한겨레 내부 성원들 중 한 명이다.

2. 위 땡글아버님의 글은 '필넷블로그', 즉 한겨레 블로그의 글인데, 한겨레 기사에 대해 비판적인 글이 '온라인 기사화'된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블로그육체, 블로그정신

2007/01/07 14:28

#. 부족한 부분은 많은 조언과 애정어린(까지는 아니어도^^) 비판 부탁드립니다. 저는 초보블로거이고, 아는 것도 별로 없어서요(슬프게도 진실 -_-). 


블로그 육체, 블로그 정신


0.  서

이 글은 그냥 '내 주관적 표준'에 따른 서술이고, 분류다. 이게 이미 있는건지, 내 표준이 얼마나 설득력있는지 난 모른다. 다만 블로그의 육체만으로, 그리고 블로그의 정신만으로 블로그를 규정할 수 없다면, 양자 모두에 대해 근심하고,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건 누가 대신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체험하고, 고민해야 하는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1.
블로그의 몸


1.1 몸의 구성요소들


ㄱ. 필수요소
글쓰기툴 - 블로그의 본질요소 
링크 - 자기 중심적 해석으로서의 관계
RSS - 독자
트랙백 - 대타적 관계


ㄴ. 선택요소
댓글창 - 블로깅의 순발력을 확보하는 수단
방명록공간 - 블로그의 개인적 소통
기타 등등 - 각종의 유용한 블로그 툴, 혹은 장난감


1.2 쓰는 블로그 ; 독립형과 가입형, 설치형과 서비스형


이에 대해선 우선, 김중태님의 다음 글을 참조하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2년전 글이긴 하지만(블로그에 관한 글의 유효기간은 짧은 경향이 있는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유효한 지적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포스트 역시 위 김중태님의 글을 많이 참조하고 있다.


1) 중앙 시스템

독립형 / 가입형

독립형의 예 : 호스팅업체와 계약해서 자기의 소유로 웹공간을 임대하는 블로그들(태터툴스, 워드프레스, 무버블타입)

가입형의 예 : 이글루스, 티스토리, 포털 블로그(네이버,다음,엠파스,파란,미디어몹?)와 언론사닷컴 블로그(필진네트워크^^, 오마이블로그, 민중의소리 블로그, 조선닷컴블로그, 조인스블로그 등등)

ㄱ. 태터툴스와 워드프레스, 무버블타입
블로그의 툴(건물, 옷, 물적 얼개)을 (무료로) 제공해주는 회사들이다. 따라서 '독립'블로거는 스스로 웹공간(호스팅업체와 계약)을 임대해야 한다. 블로그툴이 건물, 옷, 물적 얼개라면, 호스팅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마련한 공간은 토지, 옷장, 물적 얼개들이 구성될 공간적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ㄴ. 이글루스와 티스토리
양자의 독립성은 상당부분 '존중'되고 '보호'된다고 (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다만 이글루스는 sk컴즈라는 거대 자본의 수중에 떨어졌다. 장기적으로 어떤 전략적 고려가 상부에서 결정되어 개별 '이글루'에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티스토리는 태터툴스의 기술력과 daum의 자본력이 결합된 형식으로 안다. 용량 무제한, 트래픽 무제한은 태터툴스의 가장 큰 장점으로 생각한다. '독립성'에 대한 나의 우려에 대해, 기업도 '착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내가 많이 배우는 KJ님은 답하더라. 물론 나도 그렇게 믿고 싶지만, 위 김중태님의 지적처럼, 가입형 블로거는 그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완전하게 결정'할 수 없다. 그 자기결정권에는 필연적인 한계가 따른다. 그는 이미 '약관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ㄷ. 미디어몹
어떻게 분류해야 할는지 난 잘 모르겠다. 다만 미디어몹의 위험한 상업주의와 운영원칙에 대해선 심히 우려하는 바다. 다음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ㄹ. 포털블로그
포털은 블로그의 개방적인 육체와 호응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블로그를 자신의 '제국' 안에 가두려는 속성을 지닌다. 로그인 화면(자극적 정보들과 광고)과 블로그 상단의 툴바(안에서 놀기)는 그걸 상징한다. 이에 대해선 김중태님의 다음 글을 참조하자.


ㅁ. 언론사닷컴 블로그
이 글을 동시등록하는 '필진네트워크(필넷)'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오마이블로그, 민중의소리블로그, 조선닷컴 블로그, 조인스 블로그 등이 있다. 내가 가장 많이 활동한 '필넷'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도무지 블로그를 왜 만들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그 비전을 찾기가 힘들다. 물론 한정된 인력과 한정된 투여자본으로 '놀랄만한' 비전을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언론사닷컴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철학'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필넷 얘기가 나와서 또 열내는구나, 각설하고).


언론사닷컴은 블로그와 '상생'해야 한다. 거시적으론 언론사, 주류 미디어 전체가 블로그의 저널리즘적 속성, 그 창조적이며, 파괴적인 에너지를 어떻게 자사의 에너지로 흡수하고, 협력적인 파트너 쉽을 마련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언론은 아직도 너무 권위적이고, 그저 유행에 편승하는 정도로만 블로그를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마디만 더 하자면, 블로그에 관한한 가장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비전'을 보여주는 매체는, 유감스럽게도, 한겨레 필진네트워크가 아니라 조선닷컴이다.


이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룬다(기 보다는 솔직히 꾸준히 관심있게 지켜보고,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으로 생각한다).


2) 툴 설정의 자유도

설치형 / 서비스형

'설치형'은 '독립형'블로그와 '거의' 일치하고, '가입형' 블로그는 '서비스형'와 '거의' 일치한다.
완전하게 일치하지 않고, 거의 일치한다고 말한건,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몇 만원의 돈만 있다면 '설치'를 대행해주는(서비스해주는) '호스팅업체'는 쌔고 쌨다. 그런 관점에서 블로그를 '초호화판'으로 설치(꾸미기, 치장하기)하는 걸 '서비스' 받는 건 일도 아니다. 그 블로그는 서비스형인가 설치형인가?


문제는 설치한다는 것, 블로그 툴을 확장하고, 자신의 개성에 맞게 꾸미고, 보강한다는 게 블로그 정신, 그 개별블로거의 개성과 어떻게 조화하고, 그 정신을 구현하는데 이바지 하는가이다. 블로그 툴을 확장, 보강하는 것이 그 블로거의 철학과 동떨어져서, 그저 싸이월드의 도토리 아이템 놀이에 머문다면, 가장 기술적으로 뛰어난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설치형 블로그라고 해도, 그건 그저 사상누각에 불과할 뿐이다.


이를 강한 개성으로 지적한 미리야님의 글을 소개한다. 이 포스트를 작성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다.

그리고 다음의 졸고를 더불어 참조하다면 고맙겠다.


1.3. 메타블로그  ; 모으고, 분류하는 블로그, 혹은 블로그 허브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메타블로그는 글을 쓰는 블로그가 아니다. 메타블로그는 이미 발행된 블로그의 개별 포스트들을 1) 수집, 2) 분류하고, 3)다시 확산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수집과 분류(혹은 편집)와 확산은 메타블로그의 주된 기능이다.


요즘 태터툴스와 작은 논란(?)에 휩싸인(까지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올블로그는 대표적인 블로그 허브, 혹은 메타블로그다. 그리고 미디어몹의 오픈블로그, 조인스닷컴의 블로그플러스, 태터의 메타블로그인 이올린 등이 있다.


1) 수집 - 본질요소
2) 분류 - 개별 메타블로그의 정체성과 개성이 구현되는 부분
3) 확산 - 결과적 기능


특히 2) 분류(편집)는 그 메타블로그의 철학이 거기에 구현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1)수집은 본질적 전제요소이고, 3)확산은 결과(기능)다. 3)확산의 효율성, 그 파급력은 물론 1)수집된 정보(포스트)의 질과 크기와 2)그 개별포스트를 유용하게 '분류'하고 '편집'하는 메타블로그의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정신병자님(http://psychoic.dothost.co.kr)의 지적처럼 미래의 언론은 '거대한 메타사이트'로 변화할 수도 있다. 지금 당장도, 네이버라는 거대한 포털은 언론사로부터 정보를 '몽땅 전달받아서' 그것을 자신의 메인화면에 '분류'(편집)해서 퍼뜨리고 있다. 이는 명백하게 '저널리즘'적 요소다. 

2. 블로그 정신 - 온라인 실존


블로그는 사적 성격과 공적 성격을 모두 갖는다.
블로그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정의로 이야기되는 '1인 미디어'라는 말은 그것을 함축하고 있다. 블로그가 개인적인 이야기(1인)만 해야 한다거나, 블로그의 공적 성격(미디어)만을 강조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건 개별 블로거의 '선택'사항일 뿐이다.


이에 대해선 간단하게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굳이 부연하고 싶은 생각이, 당장은 들지 않기 때문이고, 블로그 정신은 이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정신은 '자라는 것이고' 지금/여기의 블로그 정신이 내일/거기의 블로그 정신은 아니며, 나의 블로그 정신이 당신의 블로그 정신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건 각자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존중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블로그 정신은, 내 나름의 조어를 빌자면, '온라인 실존'의 방향과 풍경에 다름 아니다.


다만 우리는 설득하고, 유혹하며, 자신의 소망과 신념을 전염시키고자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즐긴다.
블로깅은 유희이며, 놀이이며, 게임이다.
그건 자기의 실존을 투사하는 게임이면서, 다른 블로거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또 그 반응들에 복잡다단하게 다시 반응하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게임'인거다.


나는 블로그의 저널리즘적 속성을 강조하는 나름의 블로깅 철학을 갖고 있다. 그건 내 온라인 실존이 갖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지, 그것이 전부는 물론 아니다. 블로그의 저널리즘적 속성을 강조하는 그 관점에서, 물론 나의 한정된 글읽기와 내 개성이 강하게 개입된 것은 당연한 전제로, 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포스트는 아거님의 [블로기즘과 저널리즘 1][블로기즘과 저널리즘 2]이다. 강력하게 일독 권한다.

아거님의 관점에서 내가 특히 주목하는 점은 블로거의 '개성'이 드러나는 글쓰기, 즉 곤조저널리즘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선 내가 이왕에 쓴 글을 더불어 참조한다면 고맙겠다. 블로거는 어줍잖은 객관성의 환상과 신화를 거절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3. 결어

블로그는 이제 갓 태어난 갓난아이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 누가 감히 블로그란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 아이는 좀더 자라야 하고, 그런데, 이미 눈부시게 자라고 있다. 그 아이를 둘러싸고, 그 블로그 헤게모니를 쟁취하기 위해 자본권력과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맞붙을 것이다. 그리고 기술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IT전사들이, 그리고 블로그, 그 한복판에 있는 우리 블로거들이 서로 엉켜서 교류하고, 싸우며, 즐기고, 또 투쟁하기를 반복할 것이다.

우리는 블로거라는 그 삼음절에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부족한 잠을, 그리고 우리의 사소한 일상과 우리들의 불타는 애정행각을 맞바꾸기로 작정했다. 아니 우리의 영혼과 부족한 잠, 그리고 일상과 애정행각들은 블로그 속에서 그 희미한 온라인 실존의 테두리를 조금씩 뚜렷하게 해가고 있다.

그리고 블로그의 죽음 이후, 우리가 남겨 놓을 블로그에는 이런 묘비명이 적힐 것이다.

블로깅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


[링크]

'블로깅 에티켓' - 링크를 생활화 합시다! ^^

미리야님, 포탈 블로거가 죄냐? | 긴 글들 2007.01.06 19:45
http://blog.daum.net/miriya/10435604

이하 김중태님
[가입형 블로그와 설치형 블로그](2004년 10월 21일)
http://www.dal.co.kr/blog/archives/000597.html

구글과 네이버는 어떻게 다른가? [2006년 11월 30일]
http://www.dal.co.kr/blog/2006/11/mal200612.html

이하 아거님
1. 블로기즘과 저널리즘 1 (June 01, 2004)
http://gatorlog.com/mt/archives/001771.html

2. 블로기즘과 저널리즘 2 (November 12, 2006)
http://gatorlog.com/mt/archives/002340.html

3. 블로그의 활용 (September 28, 2003)
http://gatorlog.com/mt/archives/001197.html


이하 민노씨
1. 미디어몹 비판 - 위험한 상업주의 | 오블 / 미몹  2006/11/30 00:55 
http://wnetwork.hani.co.kr/skymap21/4781

2. 장난감 구경에 날새는 블로그들 - 네이버블로그 시즌 2 | 블로그  2007/01/05 00:18 
http://wnetwork.hani.co.kr/skymap21/5401

3. 초보 블로그 오딧세이 - 1.블로그의 몸 | 블로그  2006/01/16 11:18 
http://wnetwork.hani.co.kr/skymap21/748

4. [BO] 2. 블로그의 마음 - (2) 온라인 실존 | 블로그  2006/08/17 23:36 
http://wnetwork.hani.co.kr/skymap21/3352

5. [BO] 3. 블로그의 죽음 - 序 | 블로그  2006/11/27 00:02 
http://wnetwork.hani.co.kr/skymap21/4723

6. 게임과 블로그 민주주의 | 블로그  2006/12/05 08:49 
http://wnetwork.hani.co.kr/skymap21/4872

7. 민노씨, 곤조 저널리즘과 블로그 정신 | 저널리즘  2006/11/16 16:49 
http://wnetwork.hani.co.kr/skymap21/4495


p.s.
이 글은
1.   http://wnetwork.hani.co.kr/skymap21/5423
2. 여기
에 (예외적으로) 동시등록합니다.

다만 메타블로그 수집은 http://minoci.net/3 으로 제한합니다(똑같은 글 동시에 보이게 할 수는 없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