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러, 과장된 희생양

2007/01/25 17:32

#. 이제 좀 잠잠해진 것 같습니다. 회고적인 문제제기의 차원으로 보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냥 넘길까도 싶었지만, 그러기엔 꽤나 중요한 논점들을 갖는 문제라고 생각해서요. 약간 긴 글입니다.






악플러, 과장된 희생양




0.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는 경건해야 한다고 배웁니다. 한 평론가의 말을 빌자면, 죽음은 모든 것을 허용하긴 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죽음에 대해 경건해야 합니다. 모두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1. 
저 악플 싫습니다. 정말 미워합니다(이 글은 악플 편들자는 글이 아닙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 오죽하면 글꼭지로 [찌질이]가 다 있겠습니까? 자신의 말이 갖는 책임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태도는 정말 옳지 못합니다. 더욱이 그 말 때문에 타인이 큰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그저 극단적인 감정에 휩싸인, 그저 휘발적인 자기 만족을 위한 욕설이나, 비난이라면 더 더욱 그렇습니다. 정말 그런 찌질스런 행위들은 사라지기를 원합니다.

다만 악플러(혹은 찌질이)가 (제가 지금 체감하는) 현재의 여론처럼 대단히 반사회적이고, 극단적인 악성을 가진 '악마'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사이코 물론 있겠죠. 그런 사이코가 없는 영역 있나요? 어디에나 있고,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형법은 '행위'와 '행위자'를 구별합니다. 형법은 매우 철학적인 학문이면서 법규범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신체와 자유와 목숨(사형제도)까지를 다루는 최후수단적 의미를 갖기에 그렇습니다. 어떤 악플 때문에 존중받아 마땅한 법익이 침해되었다면, 그 행위를 법의 심판에 맞기면 됩니다. 다만 이렇게 악플러에 대한 과도한 마녀사냥을 '선동'하는 방식이 되어선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그 선동의 일선에 이런쪽으론 더 더욱 순발력 일등인 조선일보가 있습니다. 전 그 순발력 자체는 높게 평가합니다). 이런 집단적이며, 극단적인 감정과잉의 방식은 항상 억압적인 전체주의의 유령을 데려왔습니다. 저는 그 점을 우려합니다.

현재 그 법제도는 '형법상 명예훼손'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입니다. 특히나 정보통신망법은 일반법인 형법의 명예훼손에 대한 특별법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 벌칙은 형법의 명예훼손보다 엄합니다.

제61조 (벌칙)
①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제1항 및 제2항의 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반의사불벌죄입니다).

충분히 엄한 규범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3.
문제는 항상 다층적인 이면을 갖기 마련입니다. 어떤 결과도 단일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복합적입니다. 구조적(공적)이며서, 동시에 개개 사건마다의 특성들은 개인적이기도 합니다.

악플러, 때려잡을까요?
악플러, 능지처참형으로 다스릴까요?

제도의 형식은 지금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형식으로서의) 법규범과는 별개로, 우리를 둘러싼 구조가 오히려 '악플러'를 양산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에 아예 댓글을 다는 기능을 없애자"구요?(스포츠 서울. 1월 23일자 일면 기사중 네티즌의 의견을 인용 -_-;) 정말 그렇게 하면 악플로부터 자유로운 사회가 될까요? 이게 바로 박정희 방식이고, 전두환 방식입니다.

'악플러' 때려잡자고 난리쳤던 포털은 정말 입 다물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포털은 '악플러'와 협업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환경을 자기들이 조성합니다. 그걸 즐깁니다. 그런 가학적인 문화들을 양산하고, 장려합니다. 자극적인 뉴스들, 허접한 말초신경 자극하는 연예인의 신변잡기들은 포털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주니까요. 여기에는 여지없이 '경제논리'가 작용합니다.

거기에 초딩 마인드의 찌질씨들이 달려듭니다. 그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 찌질씨들의 개인적인 책임을 없던걸로 하자는 거 아닙니다. 다만 그 환경을 조성한 포털이야말로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원칙도 없는 상업주의, 천박한 상업주의야 말로 '악플러가 자라나는 비옥한 토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4.
한 연예인의 죽음을 '뉴스'로 가공하고, 그것을 '상품'으로 포장해서, 배포하는 '언론'의 그 천박함에 대해서 저는 오히려 더 우려합니다. 그 언론은 또 다른 '악플러'에 다름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이에 대해선 따로 글을 쓸까 합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의 기사라면, 거기에 '댓글'을 다는 건(가장 대표적인 리플러는) '언론'입니다. 그 언론은 죽음에 대해서 경건하지 않습니다. 그 죽음을 이용해서 장사하려고 하고, 그 죽음이 갖는 감정적인 폭주들에 편승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깁니다.

그걸 즐기는 여러분/우리들은 '악플러'가 아니라고, 그 구조에서 자유롭다고 단언할 수 있으십니까?


5.
너무 성급하게 일방적으로 감정의 편향적인 폭주가 사회전체를 지배하는 이런 '전체주의적'인 분위기가 저는 우려스럽습니다. 황우석의 망령이 아직도 인터넷을 떠돌고 있습니다. 황우석씨에게 90% 이상의 절대적인 신뢰를 보냈던 일방적인 사회가 저는 정말 염려스럽습니다. 그 전체주의적 경향, 그 관성은 온전하게 해체된 겁니까?

악플은 정말 나쁜 짓입니다. 하지만 그 악플을 양산해내는 사회는 건강한가요? 그 시스템은 아무 문제 없습니까? 이런 과도한 마녀사냥과 가학적 심리는 고양된 태도라고 말할 수 있나요? 악플러는 더 큰 악을 숨기기 위해, 스스로의 치부를 위장하기 위해 언론이 '상품'으로 내세운 일종의 '희생양'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더 큰 악플러들, 더 큰 악의 구조(-_-;)에 대해 근심하기를 원합니다. 죽음에 대해 진심으로 경건할 수 있는, 또 그 죽음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찬찬히 토론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파스 법안

2007/01/17 13:03
복지부의 (소위) '파스 법안'
- 휴머니즘적 보도의 맹점과 그 이면.


[관련글]
땡글아빠, 무상 의료혜택만이 능사일까?
| 낙서장  2007/01/15 18:25




위 '파스 법안'은 '의료급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이다.
그 입법취지는 '의료급여 재정절감'을 위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땡글아버님의 글과 관련 링크들(한겨레의 사설과 관련기사)을 읽으니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항상 모호한 경계에 선 문제들이 존재한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감상적 휴머니즘에 치우친 비판은, 물론 그 즉시의 카타르시스는 있지만, 결과적으론 그 문제에 관여하는 전체에게 손해로 돌아간다(물론 나는 이 사안에 대해 확고하게 정립된 입장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한겨레 사설과 김양중 기자의 글은 '소수자'를 옹호하고, 개선입법의 잘못된 지점들을 비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적극적인 대안에 대해선 무심하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도 선정주의' 혐의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김양중 기자의 글에 수사처럼 인용된 시민단체와 그 주장들은 정말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다만 그것은 너무 일방적이고, 감상적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를 비롯한 의료·빈곤 단체와 종교·인권·여성·노동 분야 시민사회단체 등 27개 단체는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의료급여 대책은 엉터리 ‘오남용 통계’를 바탕으로 입안된 것”이라며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또 “가난한 이들의 치료권을 박탈하는 반인권적 정책을 강행하는 것은 사회적 범죄”라고 주장했다.

정부 의료급여 정책…빈곤층 ‘병원 문턱’만 높였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183666.html




그 주장이 신뢰를 얻으려면, 반대쪽의 주장이나 근거들에도 관심을 갖아야 하고, 또 그 대안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더불어 수반되어야 한다. 그 고민을 땡글아버님의 글에서 본다.


땡글아버님의 견해는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전체 빈곤층을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복지부안은 제한된 재원을 가지고 (무상의료혜택을 남용하는) 극히 일부 빈곤층보다는 전체 빈곤층을 위해 최대한의 효율적 운용을 고민한 흔적" 
(무상 의료혜택만이 능사일까? 중에서)


2) 기사의 사례로 등장하는 '특수한 경우'에 대한 대처는 좀더 특수한 법안을 마련하여 대처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일부 의료보호환자들의 경우, 무료이기 때문에 필요이상의 파스를 남용하는 경우가 매우 자주 있다하니, 그 파스가 꼭 필요한 소외환자가 존재한다면 이들을 위한 특수정책을 제안함이 옳은 것 ... 중략 ... 차라리 특수성의 원칙을 적용하여, 보호환자를 세분화시켜 보호의 수준을 좀 더 세분화시키는 것(예를 들어, 보호1A, 보호1B)을 대안으로 .. 후략.. "
(무상 의료혜택만이 능사일까? 중에서 )




3) 극단적인 사례를 통해 정책(개선입법)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은 '선정적 저널리즘'의 혐의가 있다.

4) (이 점이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부' 의료계의 반발은 당장의 자신의 '이익'을 위한 '이기주의'에의 혐의가 짙다. 즉, 무절제한 '의료 쇼핑'(쉽게 말해서 파스사용이 많으면 많을수록)는 의료계에는 이익이다.


"극단적 자본주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의료계 입장에서는 의료보호환자들의 무제한적 의료혜택의 결과로서 얻어지던 수입이 많은 부분 줄어들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의료계에 이로울 것이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무상 의료혜택만이 능사일까? 중에서)





감상적 휴머니즘으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의 모순은 그다지 많지 않다.



p.s.
1. 물론 나는 김양중 기자의 마음만은 가득하다고 믿고 싶다. 그는 한겨레의 금속노조 광고 거절 사건을 -명시적으로- 비판한 한겨레 내부 성원들 중 한 명이다.

2. 위 땡글아버님의 글은 '필넷블로그', 즉 한겨레 블로그의 글인데, 한겨레 기사에 대해 비판적인 글이 '온라인 기사화'된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블로그육체, 블로그정신

2007/01/07 14:28

#. 부족한 부분은 많은 조언과 애정어린(까지는 아니어도^^) 비판 부탁드립니다. 저는 초보블로거이고, 아는 것도 별로 없어서요(슬프게도 진실 -_-). 


블로그 육체, 블로그 정신


0.  서

이 글은 그냥 '내 주관적 표준'에 따른 서술이고, 분류다. 이게 이미 있는건지, 내 표준이 얼마나 설득력있는지 난 모른다. 다만 블로그의 육체만으로, 그리고 블로그의 정신만으로 블로그를 규정할 수 없다면, 양자 모두에 대해 근심하고,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건 누가 대신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체험하고, 고민해야 하는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1.
블로그의 몸


1.1 몸의 구성요소들


ㄱ. 필수요소
글쓰기툴 - 블로그의 본질요소 
링크 - 자기 중심적 해석으로서의 관계
RSS - 독자
트랙백 - 대타적 관계


ㄴ. 선택요소
댓글창 - 블로깅의 순발력을 확보하는 수단
방명록공간 - 블로그의 개인적 소통
기타 등등 - 각종의 유용한 블로그 툴, 혹은 장난감


1.2 쓰는 블로그 ; 독립형과 가입형, 설치형과 서비스형


이에 대해선 우선, 김중태님의 다음 글을 참조하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2년전 글이긴 하지만(블로그에 관한 글의 유효기간은 짧은 경향이 있는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유효한 지적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포스트 역시 위 김중태님의 글을 많이 참조하고 있다.


1) 중앙 시스템

독립형 / 가입형

독립형의 예 : 호스팅업체와 계약해서 자기의 소유로 웹공간을 임대하는 블로그들(태터툴스, 워드프레스, 무버블타입)

가입형의 예 : 이글루스, 티스토리, 포털 블로그(네이버,다음,엠파스,파란,미디어몹?)와 언론사닷컴 블로그(필진네트워크^^, 오마이블로그, 민중의소리 블로그, 조선닷컴블로그, 조인스블로그 등등)

ㄱ. 태터툴스와 워드프레스, 무버블타입
블로그의 툴(건물, 옷, 물적 얼개)을 (무료로) 제공해주는 회사들이다. 따라서 '독립'블로거는 스스로 웹공간(호스팅업체와 계약)을 임대해야 한다. 블로그툴이 건물, 옷, 물적 얼개라면, 호스팅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마련한 공간은 토지, 옷장, 물적 얼개들이 구성될 공간적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ㄴ. 이글루스와 티스토리
양자의 독립성은 상당부분 '존중'되고 '보호'된다고 (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다만 이글루스는 sk컴즈라는 거대 자본의 수중에 떨어졌다. 장기적으로 어떤 전략적 고려가 상부에서 결정되어 개별 '이글루'에 영향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티스토리는 태터툴스의 기술력과 daum의 자본력이 결합된 형식으로 안다. 용량 무제한, 트래픽 무제한은 태터툴스의 가장 큰 장점으로 생각한다. '독립성'에 대한 나의 우려에 대해, 기업도 '착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내가 많이 배우는 KJ님은 답하더라. 물론 나도 그렇게 믿고 싶지만, 위 김중태님의 지적처럼, 가입형 블로거는 그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완전하게 결정'할 수 없다. 그 자기결정권에는 필연적인 한계가 따른다. 그는 이미 '약관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ㄷ. 미디어몹
어떻게 분류해야 할는지 난 잘 모르겠다. 다만 미디어몹의 위험한 상업주의와 운영원칙에 대해선 심히 우려하는 바다. 다음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ㄹ. 포털블로그
포털은 블로그의 개방적인 육체와 호응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블로그를 자신의 '제국' 안에 가두려는 속성을 지닌다. 로그인 화면(자극적 정보들과 광고)과 블로그 상단의 툴바(안에서 놀기)는 그걸 상징한다. 이에 대해선 김중태님의 다음 글을 참조하자.


ㅁ. 언론사닷컴 블로그
이 글을 동시등록하는 '필진네트워크(필넷)'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오마이블로그, 민중의소리블로그, 조선닷컴 블로그, 조인스 블로그 등이 있다. 내가 가장 많이 활동한 '필넷'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도무지 블로그를 왜 만들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그 비전을 찾기가 힘들다. 물론 한정된 인력과 한정된 투여자본으로 '놀랄만한' 비전을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언론사닷컴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철학'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필넷 얘기가 나와서 또 열내는구나, 각설하고).


언론사닷컴은 블로그와 '상생'해야 한다. 거시적으론 언론사, 주류 미디어 전체가 블로그의 저널리즘적 속성, 그 창조적이며, 파괴적인 에너지를 어떻게 자사의 에너지로 흡수하고, 협력적인 파트너 쉽을 마련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언론은 아직도 너무 권위적이고, 그저 유행에 편승하는 정도로만 블로그를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마디만 더 하자면, 블로그에 관한한 가장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비전'을 보여주는 매체는, 유감스럽게도, 한겨레 필진네트워크가 아니라 조선닷컴이다.


이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룬다(기 보다는 솔직히 꾸준히 관심있게 지켜보고,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으로 생각한다).


2) 툴 설정의 자유도

설치형 / 서비스형

'설치형'은 '독립형'블로그와 '거의' 일치하고, '가입형' 블로그는 '서비스형'와 '거의' 일치한다.
완전하게 일치하지 않고, 거의 일치한다고 말한건,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몇 만원의 돈만 있다면 '설치'를 대행해주는(서비스해주는) '호스팅업체'는 쌔고 쌨다. 그런 관점에서 블로그를 '초호화판'으로 설치(꾸미기, 치장하기)하는 걸 '서비스' 받는 건 일도 아니다. 그 블로그는 서비스형인가 설치형인가?


문제는 설치한다는 것, 블로그 툴을 확장하고, 자신의 개성에 맞게 꾸미고, 보강한다는 게 블로그 정신, 그 개별블로거의 개성과 어떻게 조화하고, 그 정신을 구현하는데 이바지 하는가이다. 블로그 툴을 확장, 보강하는 것이 그 블로거의 철학과 동떨어져서, 그저 싸이월드의 도토리 아이템 놀이에 머문다면, 가장 기술적으로 뛰어난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설치형 블로그라고 해도, 그건 그저 사상누각에 불과할 뿐이다.


이를 강한 개성으로 지적한 미리야님의 글을 소개한다. 이 포스트를 작성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다.

그리고 다음의 졸고를 더불어 참조하다면 고맙겠다.


1.3. 메타블로그  ; 모으고, 분류하는 블로그, 혹은 블로그 허브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메타블로그는 글을 쓰는 블로그가 아니다. 메타블로그는 이미 발행된 블로그의 개별 포스트들을 1) 수집, 2) 분류하고, 3)다시 확산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수집과 분류(혹은 편집)와 확산은 메타블로그의 주된 기능이다.


요즘 태터툴스와 작은 논란(?)에 휩싸인(까지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올블로그는 대표적인 블로그 허브, 혹은 메타블로그다. 그리고 미디어몹의 오픈블로그, 조인스닷컴의 블로그플러스, 태터의 메타블로그인 이올린 등이 있다.


1) 수집 - 본질요소
2) 분류 - 개별 메타블로그의 정체성과 개성이 구현되는 부분
3) 확산 - 결과적 기능


특히 2) 분류(편집)는 그 메타블로그의 철학이 거기에 구현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1)수집은 본질적 전제요소이고, 3)확산은 결과(기능)다. 3)확산의 효율성, 그 파급력은 물론 1)수집된 정보(포스트)의 질과 크기와 2)그 개별포스트를 유용하게 '분류'하고 '편집'하는 메타블로그의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정신병자님(http://psychoic.dothost.co.kr)의 지적처럼 미래의 언론은 '거대한 메타사이트'로 변화할 수도 있다. 지금 당장도, 네이버라는 거대한 포털은 언론사로부터 정보를 '몽땅 전달받아서' 그것을 자신의 메인화면에 '분류'(편집)해서 퍼뜨리고 있다. 이는 명백하게 '저널리즘'적 요소다. 

2. 블로그 정신 - 온라인 실존


블로그는 사적 성격과 공적 성격을 모두 갖는다.
블로그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정의로 이야기되는 '1인 미디어'라는 말은 그것을 함축하고 있다. 블로그가 개인적인 이야기(1인)만 해야 한다거나, 블로그의 공적 성격(미디어)만을 강조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건 개별 블로거의 '선택'사항일 뿐이다.


이에 대해선 간단하게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굳이 부연하고 싶은 생각이, 당장은 들지 않기 때문이고, 블로그 정신은 이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정신은 '자라는 것이고' 지금/여기의 블로그 정신이 내일/거기의 블로그 정신은 아니며, 나의 블로그 정신이 당신의 블로그 정신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건 각자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존중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블로그 정신은, 내 나름의 조어를 빌자면, '온라인 실존'의 방향과 풍경에 다름 아니다.


다만 우리는 설득하고, 유혹하며, 자신의 소망과 신념을 전염시키고자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즐긴다.
블로깅은 유희이며, 놀이이며, 게임이다.
그건 자기의 실존을 투사하는 게임이면서, 다른 블로거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또 그 반응들에 복잡다단하게 다시 반응하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게임'인거다.


나는 블로그의 저널리즘적 속성을 강조하는 나름의 블로깅 철학을 갖고 있다. 그건 내 온라인 실존이 갖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지, 그것이 전부는 물론 아니다. 블로그의 저널리즘적 속성을 강조하는 그 관점에서, 물론 나의 한정된 글읽기와 내 개성이 강하게 개입된 것은 당연한 전제로, 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포스트는 아거님의 [블로기즘과 저널리즘 1][블로기즘과 저널리즘 2]이다. 강력하게 일독 권한다.

아거님의 관점에서 내가 특히 주목하는 점은 블로거의 '개성'이 드러나는 글쓰기, 즉 곤조저널리즘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선 내가 이왕에 쓴 글을 더불어 참조한다면 고맙겠다. 블로거는 어줍잖은 객관성의 환상과 신화를 거절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3. 결어

블로그는 이제 갓 태어난 갓난아이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 누가 감히 블로그란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 아이는 좀더 자라야 하고, 그런데, 이미 눈부시게 자라고 있다. 그 아이를 둘러싸고, 그 블로그 헤게모니를 쟁취하기 위해 자본권력과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맞붙을 것이다. 그리고 기술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IT전사들이, 그리고 블로그, 그 한복판에 있는 우리 블로거들이 서로 엉켜서 교류하고, 싸우며, 즐기고, 또 투쟁하기를 반복할 것이다.

우리는 블로거라는 그 삼음절에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부족한 잠을, 그리고 우리의 사소한 일상과 우리들의 불타는 애정행각을 맞바꾸기로 작정했다. 아니 우리의 영혼과 부족한 잠, 그리고 일상과 애정행각들은 블로그 속에서 그 희미한 온라인 실존의 테두리를 조금씩 뚜렷하게 해가고 있다.

그리고 블로그의 죽음 이후, 우리가 남겨 놓을 블로그에는 이런 묘비명이 적힐 것이다.

블로깅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


[링크]

'블로깅 에티켓' - 링크를 생활화 합시다! ^^

미리야님, 포탈 블로거가 죄냐? | 긴 글들 2007.01.06 19:45
http://blog.daum.net/miriya/10435604

이하 김중태님
[가입형 블로그와 설치형 블로그](2004년 10월 21일)
http://www.dal.co.kr/blog/archives/000597.html

구글과 네이버는 어떻게 다른가? [2006년 11월 30일]
http://www.dal.co.kr/blog/2006/11/mal200612.html

이하 아거님
1. 블로기즘과 저널리즘 1 (June 01, 2004)
http://gatorlog.com/mt/archives/001771.html

2. 블로기즘과 저널리즘 2 (November 12, 2006)
http://gatorlog.com/mt/archives/002340.html

3. 블로그의 활용 (September 28, 2003)
http://gatorlog.com/mt/archives/001197.html


이하 민노씨
1. 미디어몹 비판 - 위험한 상업주의 | 오블 / 미몹  2006/11/30 00:55 
http://wnetwork.hani.co.kr/skymap21/4781

2. 장난감 구경에 날새는 블로그들 - 네이버블로그 시즌 2 | 블로그  2007/01/05 00:18 
http://wnetwork.hani.co.kr/skymap21/5401

3. 초보 블로그 오딧세이 - 1.블로그의 몸 | 블로그  2006/01/16 11:18 
http://wnetwork.hani.co.kr/skymap21/748

4. [BO] 2. 블로그의 마음 - (2) 온라인 실존 | 블로그  2006/08/17 23:36 
http://wnetwork.hani.co.kr/skymap21/3352

5. [BO] 3. 블로그의 죽음 - 序 | 블로그  2006/11/27 00:02 
http://wnetwork.hani.co.kr/skymap21/4723

6. 게임과 블로그 민주주의 | 블로그  2006/12/05 08:49 
http://wnetwork.hani.co.kr/skymap21/4872

7. 민노씨, 곤조 저널리즘과 블로그 정신 | 저널리즘  2006/11/16 16:49 
http://wnetwork.hani.co.kr/skymap21/4495


p.s.
이 글은
1.   http://wnetwork.hani.co.kr/skymap21/5423
2. 여기
에 (예외적으로) 동시등록합니다.

다만 메타블로그 수집은 http://minoci.net/3 으로 제한합니다(똑같은 글 동시에 보이게 할 수는 없죠. ^^ ).



이 블로그 만든지 얼마나 됐나? 한 한달 반 정도 됐나? ..... 블로그를 일년 반쯤 써오고 있다. 지난 일년 동안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블로그는 [필진네트워크]다. 거기에 쓴 글이 한 삼백개가 조금 넘는데... 옮겨오려니, 이런 저런 잡생각이 많다.

1. 추고해서 옮기기 -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2. 그냥 옮기기 - 거기에서 활동했던 '순간'들의 실존은 휘발되는 느낌이다.
3. 선택적으로 옮기기 - 어떤 표준으로?

암튼.. 이런 저런 잡생각 끝에... 하나도 옮기지 못했다. 완벽주의자가 되기에는 난 너무도 게으르고, 또 현명하지도 못하며, 게다가 잡생각까지 많다. 완벽보다는 최선을 다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정성일에게 들은 제임스 카메론의 일화가 기억났다. 어떤 기자가 제임스 카메론에게 이렇게 물어봤다더라.
기자 : 당신은 완벽주의자라면서요?
카메론 : 아니요, 전 최고주의자죠
최고주의자는 매력적이지만, 내 능력 밖이고, 나는 최선주의자 흉내라도 내야겠다. 말도 안되는 완벽주의자 흉내는 쫑내고 말이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