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스포일러 (전혀, 민감한 경우라면 거의) 없습니다.

날아라펜귄

0. 인권위에서 제작비 댄 영화. 정확한건진 모르겠는데 '만든 사람들 자막'에 올라간 제작자가 MB정부 비판하면서 떠난 전(前)인권위원장 안경환인 것 같다. 혹 동명이인인지 모르겠지만, 아, 인권위에서 제작하면 인권위원장이 제작자로 이름을 올리는구나... 싶어  신기했다.

1. 좋게 보면. 사교육. 직장내 소외. 기러기(펭귄)아빠. 노년(황혼이혼)이라는 일상적인 주제에 대한 균형감 있는 접근.

2. 나쁘게 보면. 중산층의 배부른 고민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는 면죄부.

3. 연기는 썩 훌륭하지도 썩 어색하지도 않은 기대에 딱 부합하는 정도. 문소리가 "요즘 젊은애들은..."하면서 어처구니 없어하는 정도가 인상적으로 기억난다. 손병호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배운데, 뭐랄까 좀 심심하게 역할 자체가 스테레오타입이다.

4. 실험적인 이미지, 전복적인 서사는 기대하기 어렵다. 몇몇 신경 쓴 디테일들(가령 거북이, 채식주의) 역시 좀 식상하다는 느낌이 앞선다. 특히 '나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나?'... 좀 손발이 오그라드는 착함이랄까(그래서 그게 위선이라는 건 아니지만 좀 별종같다는 느낌, 친하지 않은 느낌.. 뭐 그런 것).

5. 결론은.. 보는 동안은 꽤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영화. 보고 나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40대 이상의 직장인 주부가 보면 꽤 좋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러니 임순례를 작가라고 기대한다면 피하길  권한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착하고, 적당히 문제의식을 담고 있으면서, 큰 과장 없이 담백하고, 맛깔스런 영화를 기대한다면 충분히 권할만한 영화라는 생각이다. 

추.
제목은 나름 미끼다(이게 솔직히 무슨 호기심을 자극하겠냐만..ㅎㅎ).
나는 이 영화가 싫지 않다.


참조. 영화 상영시각표 (2009-10-08 기준)
씨너스 이수 - 서울 동작구 사당동  :  09:30  13:45  18:00  20:10
CGV-압구정 - 서울 강남구 신사동 (구 씨네플러스) : 10:00  14:20  18:40  23:00
미로스페이스 - 서울 종로 : 11:30  16:00  18:20  20:30   
씨네코드(선재) - 서울특별시 종로 : 10:40  14:30  18:30  20:40
아트하우스 모모 - 서울 서대문구 : 12:40






* 주의 : 이하 스포일러 있습니다.








보충 : 중산층의 배부른 고민에 대한 고민 없는 면죄부
댓글로 궁금증을 표해주신 쉐부랑코님 덕분에 보충합니다. " 중산층의 배부른 고민에 대한 고민 없는 면죄부"라는 문구는 제목으로도 쓰인 문구인데, 가만히 보면 본문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이하 평서문으로 작성합니다. : )

[날아라 펭귄](이하 '펭귄')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특히 부부들의 직업과 거주환경은 다음과 같다.
1. 문소리(시청 공무원) + 박원상(회사원) 부부 : 아파트 거주.
2. 손병호(시청 공무원) + 김예령(전업주부. 조기유학한 아이들과 함께 외국에서 생활) 부부 : 아파트 거주.
3. 박인환(은퇴한 교육자?) + 정혜선(전업주부) 부부 : 아파트 거주.

아마도 서울 근교 시청 혹은 서울의 한 구청을 모델로 한 것 같은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고민은 자녀교육(1.2.)과 황혼이혼(3.)이다. 그 구도 안에서 문소리와 박원상은 자녀교육관 차이로 충돌하고, 손병호는 스스로 돈벌어주는 기계로 전락한 채 나머지 가족으로부터 소외를 겪는다. 박인환과 정혜선의 갈등은 그나마 자기 관여적인데, 그것은 가부장적 권위에 찌든 은퇴한 남편으로부터 이제 좀 자유를 만끽하려는 한 여자의 반란(가출)로 표출된다.

인물들의 갈등상황은 사회경제적인 모순 구조(특히 교육의 문제)에 기인하거나, 혹은 문화적 관습에 기인하고 있다.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설정이다. 즉, 이 갈등 구조는 대한민국 중산층의 고민을 대변한다. 그렇다면 감독은 당연히 질문한다. 이 대한민국 중산층을 둘러싼 모순은 어떻게 일상적으로 표출되는가? 표출된 모순과 갈등은 인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아쉽게도 표출되는 갈등의 모습도, 그 질문에 답하는 인물들의 행위들도 스테레오타입이다. 그러니 임순례는 이 영화 속에서 좀더 밀고 나가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멈춰선다. 여기에는 임순례라는 '작가'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타협하는 

승윤이의 일탈은 박원상의 우연적인 해프닝, 작은 선물(배려)로 마무리되고, 손병호의 실존적인 고민은 적당한 자기 타협으로 지워진다. 문소리는, 그 빼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 구조 속에서 여전히 낯선 타자처럼 대상화된 것처럼 느껴진다(물론 대부분 인물들이 그렇다). 그러니 모순적인 환경과 부조리한 구조 속에서 번민하고, 고뇌하는 인물들이 작가(임순례)의 고민어린 '선택'을 거쳐 영화로 형상화되었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관습적인 이야기 요소들이 '대한민국 중산층의 고민은 뭐야?'라는 라는 질문에 기계적으로 답해지고, 배치된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이것은 대단히 상식적이고, 또 건강하며, 도덕적으로 올바른 방향성을 갖는 것 같다.

다만 그것을 그저 건강한 상식주의라고 평가하기 어려운 건, 작가 임순례의 '선택'이라고 보기 어려운 건, 그 상식주의가 그저 기계적인 모범답안처럼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식주의 혹은 그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채 점점 더 미쳐가는 이 사회의 야만에 대해 인물들은 별다른 고민없이 낭만적으로 타협(박원상)하거나, 혹은 기계적으로 그 구조를 스스로 체현(문소리)한다. 나머지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마치 그들은 역할 기계들의 의미 조합처럼 단순화되고, 평면화된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임순례가 창조한 인간은 단 한명도 없다. 어디서 봤던, 그런데 그게 삶이 아니라, 삶을 표피적으로 모사하는 기존의 관습적 이야기 요소들에서 느꼈던 그 파편들이 그저 따뜻한 느낌으로 채색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가 실패작이라거나 혹은 쓰레기 영화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을 통해 일상의 고민들, 자신들의 고민들이 좀더 이야기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고민들을 적당한 수준으로 이끌어내기엔 충분히 훌륭한 영화다. 다만 그 모순의 밑바닥에 있는 질문을 탐구하거나, 고민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 중산층의 고민에 대해 별다른 고민없이 기존 이야기 관습의 요소들을 작가적 고민없이 배치하고, 조합한 영화다. 그것이 임순례라는 내가 애착하는 감독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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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임순례, <날아라 펭귄>, 2009 : 누구를 위해 살고 계십니까?

    Tracked from DO YOUR THING!! 2009/10/13 21:27 del.

    날아라 펭귄 감독 임순례 (2009 / 한국) 출연 문소리, 박원상, 최규환, 손병호 상세보기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 같은 것, 사실은 매우 지루한 소재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 매일의 24시간 자체가 일상인데 더 들을 이야기가 아직도 남아 있을까? 사는 것도 지겨워 죽겠는데 그 이야기를 영화에서까지 보라니!! 그래서 우리는 블록버스터를 찾는지도 모른다. 평소에 경험하지 못한 것을 대리 경험해보고 싶어하니까. 다시 한 번 묻는다. 매일의 '일상'..

  2. Subject : [영화] 날아라 펭귄 '일상을 아우르는 칼날'

    Tracked from 필그레이's 컬처 파르페 2009/12/12 22:54 del.

    드디어. 이 얼마만의 문화생활이랍니까.급 감개무량해지는..ㅠ_ㅠ;;;;;; 사실 보려면 볼 수도 있었을 영화이건만. 이상하게 미루게 되고 구찮아지고 그렇더라고요.문화적으루다가 게으름이 늘었다고나.ㅋㅋ 오늘 일요일. 간만에 본 영화는 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임순례 감독의 <날아라 펭귄>입니다. 일상속에서 일어날법한 소재를 서너가지 다루고 있는데요~ 어찌나 에피소드 곳곳에 유머 섞인 칼날을 들이대시던지. 깔깔거리며 배꼽 잡으면서도 이 시대만이 가질 수 있..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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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9/10/08 22:16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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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10/09 02:15

      비밀입니다. : )

  2. 종소리 2009/10/08 22:17

    정말 멋진 분석이군요
    임순례감독 작품이라고 하기엔 조금 가벼운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재미있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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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10/09 02:15

      얍, 저도 가벼운 마음으로 재밌게 봤습니다. : )

  3. 쉐부랑코 2009/10/13 21:28

    마지막에 쓰신 것처럼 담백하고 맛깔스럽게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저의 느낌을 한 줄로 이리도 명확히 표현해 주시다니....

    '중산층의 배부른 고민에 대한 고민 없는 면죄부'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음.. 민노씨님, 헨드릭스님 블로그에서 뵈었던 것 같네요 ㅎㅎ

    트랙백 하나 걸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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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10/13 23:08

      본문에 좀더 보충했습니다. : )
      질문 주셔서 반갑습니다.

  4. 쉐부랑코 2009/10/14 07:45

    보충 설명 감사합니다. 이리도 상세히.. :)

    제가 '결말은 우리의 몫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것과 맞닿아 있는 부분인 것 같기도 하네요.
    별다른 고민이 없다는 것...

    저는 '문제의식'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아요.
    사실 '너도 일상에서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어'라는 말을 듣는 것은 거북한 일인데,
    영화는 이 말을 참 맛깔스럽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맞트랙백도 감사드립니다~

    행여나 <펭귄, 날다>와 같은 제목으로 속편 나와도 재밌을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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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필그레이 2009/12/12 22:53

    이 영화 예전에 보셨군요.^^
    인상깊게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ㅎㅎㅎ 최근엔 줄리 앤 줄리아 를 봤는데요.한번 보러가셔도 괜찮을 영화가 아닐까해요.물론 저같은 경우는 영화에 완전 환장?하며 웃어댔어요.ㅋㅋ

    날아라 펭귄은 트랙백 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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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12/15 20:39

      아이코, 필그레이님 댓글을 이제야 발견하네요. : )

      '줄리 앤 줄리아'는 저 개인적으로 '블로거'가 주인공인 첫번째(?)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꼭 보고 싶은 영화들 가운데 하납니다.

      트랙백 감솨~!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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