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이사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와 'Governance(가버넌스)'가 없는 이명박 정부의 실용정치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낀다”면서 “실용과 거리가 먼 인사시스템, 진정성 없는 서민행보, Governance의 부재 등을 비판했다. 'Governance'는 시민 다수가 이익집단, 시민단체, 언론 등을 통해 다차원적으로 참여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박원순 이사는 “최근 영국에 다녀오면서 대중지성과 집단지성을 활용해 행정과 정부의 기능을 강화시키려는 노력을 많이 봤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Governance는 거의 실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 류정민(미디어오늘), 박원순 “MB정부, 한순간에 무너질 것”, 2009.10.05.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3287

1. 즉각적인 느낌은... 뭥미?

(구체적인 기억은 아니고, 추상적인 기억의 집적에 불과하지만) 류정민 기자에 대해선 꽤나 호감을 갖던 터에 이런 기사를 읽으니 좀 어처구니가 없다. 그다지 길지 않은 이 기사에서 '가버넌스'라는 단어가 '가버넌스(Governance)'도 아니고, 'Governance(가버넌스)'로, 그 뒤에는 그냥 'Governance'로 연달아 4연속콤보로 등장하는 걸 보자니, 나 역시 한글을 아름답게 쓰지는 못하지만, 좀 짜증스럽다.

언론은 우리말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구사하는게 기본 의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박원순이 '가버넌스'(발음으론 '거버넌스'에 좀더 가까운 것 같다. 이하 '거버넌스'로 쓴다)라고 말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기사를 위해 그걸 꼭 인용해야겠다고 생각했더라도, 더 어울리는 우리말 표현으로 바꿔서, 바꿀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최소한 한글로 표기하는게 상식아닌가? 왜 인용어구도 아닌 곳에서 '거버넌스'(혹은 '가버넌스')를 굳이  'Governance'로 표기해가며 그 뜻을 설명하느라고 진땀 빼나? 정말 이건 뭐하자는 시추에이숑인지 모르겠다.

나는 앞서 '뭥미'라던가, '시추에이숑'이라던가 하는 야리꾸리한 표현들을 썼지만, 나는 블로거고, 류정민은 기자다. 이게 무슨 블로거들은 막말, 비속어, 은어를 써도 괜찮고, 기자는 그래선 안된다고 말하려는게 아니다. 자유로운 언어습관이 '허용'되는 영역과 그것이 '제한'되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고, 상식적인 평균인을 독자로 가정하는 언론에선, 가급적 쉬운 우리말 표현을 지향해야 한다는 거다. 왜 괜히 기사내용에 별 도움도 안되는 영어를 쓰지 못해서 안달인가? 무슨 심오한 기사라고, 박원순 동정기사고만.

2. 거버넌스(Governance)는 무슨... 염병... 지적 된장질 같다.  
이거 무슨 지적인 유행언가? 지적 된장질이라는 생각이 즉각적으로 들면서, 이걸 우리가 익숙하게 써왔던 '참여민주주의'로, 혹은 '협력적 통치'(협치), '참여적 통치' 등등으로 번역하면 그 위대하신 '거버넌스' 아니 'Goverance'에 흠이 가고, 그 의미가 달라지는 건지 알 길 없다. 이건 무슨 엄밀한 개념규정을 요하는 법률용어나 철학용어인건가? 개뿔이란 생각이 들 뿐이다. 게다가 '거버넌스'도 아니고, 'Governance'라고 쓰면 뭐 폼나는건가? 뭐하자는 짓인지 모르겠다. 어릴 적, 초딩이나 중딩 때 영어쓰면서 잘난 척 하던 유치한, 나도 물론 그 유치한 녀석들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 녀석들에게 종종 하던 말이 생각난다.

세종대왕이 지하에서 울겠다.  ㅠ.ㅜ;


* 발아점
"자리를 지키기 위한 박기성의 애처로운 몸부림을 지켜보면서 또 하나 생각난 것은 이 정권이 1년 내에 일패도지할 것이라고 '예언'한 박원순이다. (....) 진보세력에게 대안을 가지라고 충고하는 박원순을 보면서 해주고 싶은 말은 다른 것이 아니다. 당신의 대안은 뭔가? 충고하는 거 빼고."
- 행인, 그 날이 오나? 중에서
위 행인의 글 중에서 "이 정권이 1년 내에 일패도지할 것이라고 '예언'한 박원순"이라는 부분에 걸려 있던 링크가 미디어오늘 류정민 기사다.

* 참조
1. 거버넌스에 관하여 - 2009년을 맞이하며 (백낙청. 2008.12.30.)
http://weekly.changbi.com/blog_post_336.aspx
영어의 거버넌스(governance)와 거번먼트(government)는 원래 '다스림[政]'을 뜻하는 동의어다. 다만 후자가 공권력을 갖고 다스리는 '정부'라는 뜻으로 자주 쓰임에 따라 더 넓은 의미의 이런저런 다스림을 가리킬 때 '거버넌스'라는 낱말을 택하기도 한다. 그래서 국가가 아닌 기업(business corporation)이 다스려지는 방식을 corporate governance라 하며 우리말로는 '기업의 지배구조'라고 (약간 부정확하게) 번역한다. 또한,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치하지 않고 시민사회의 여러 세력과 협동하고 합의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행태를 거버넌스라 칭하면서 더러 '협치(協治)'로 옮기곤 한다.
- 위 글 중에서
백낙청 덕분에 소위 지식인 사회에서 유행어가 된건가?
그런건가? 아는 분 댓글 플리즈~!  

2. 거버넌스(governance)와 거번먼트(government)
거번먼트(Government)가 정부 중심의 국정 운영이라면, 거버넌스(Governance)는 정부와 시민 사회가 협력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거버넌스'라는 용어는 정부의 의미 변화, 또는 공적인 업무 수행 방법의 변화를 지칭한다. '정부(Goverment)'는 공식적인 권위에 근거한 활동을 하는 반면, '거버넌스'는 공유된 목적에 의해 일어나는 활동을 한다.

이러한 논리에 근거하여 최근에는 '정부 없는 거버넌스(governence without government)' 또는 '정부에서 거버넌스로(from government to governence)로' 표현하기도 한다.

거버넌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중앙 정부, 지방 정부, 정치적 ·사회적 단체, NGO, 민간 조직 등의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를 강조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든 구성 요소들이 상호 독립적이라는 것이 모든 참여자가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정부는 기본적으로 동등한 입장에서 전체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조정자의 입장에 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네트워크의 연결성도 순수 시장 메커니즘보다는 종속적이지만, 계층적인 전통적 조직보다는 덜 종속적이다.

- 다음 카페 '계명대학교 경영정보학과(MIS)' 게시글 중에서
위 링크에 대해선... 나는 비회원이라 접근이 안된다.. 어떤 Q&A 게시판에서 출처로 표기되어 있길래 원문출처 우선원칙(ㅡ.ㅡ;)에 의거해서 굳이 카페 주소로 걸어본다. 카페들이 좀 문호를 개방하면 좋겠는데 말이지...

3. leopord가 남긴 인상적인 논평. http://leopord.egloos.com/
정치학에서는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에 꽤 유행했다가 지금은 좀 잠잠해진 걸로 알고 있는데, 냉전으로 상징되던 양극체제가 다극체제로 전환될 거라는 국제정치학상의 기대를 반영하는 개념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덧붙여 IT 거버넌스라는 개념은 탈산업시대의 네트워크 정치로서의 거버넌스가 경영 분야와 IT 분야의 변화를 설명할 수단으로 선택된 거라고 봐야겠고요(금융의 경우와 같이 경영과 IT는 20세기 말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기도 하고요.).

하지만 국제정치경제체제에서 글로벌 거버넌스가 보편화되었다고 성급하게 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국적으로 봐도 국가(정부)-시민사회-시장이라는 축 가운데 균형을 담당할 시민사회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함께 무너진 경향이 있고, 아프리카 등 시민사회가 심각하게 취약한 곳에선 폭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국경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자본(주로 금융) 사이의 담합 및 갈등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거버넌스는 일종의 수사로 그친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계급적 갈등을 부차적으로 보거나 혹은 근대의 유산 정도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고요. 정치학적으로 제대로 파고들지 못해 섣부른 판단일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박원순 씨의 거버넌스 발언에는 '중도 실용' 이명박에 대한 '중도 실용'으로서의 배신감이 배어있지 않은가 싶네요.

- http://minoci.net/968#comment21079


* 추천
"외래어는 한국인이 편리하기 위해 표기하는 것이지, 외국 발음에 가깝게 쓰기 위해 표기하는 것이 아니다."  (리승환, 개념 번역보다 외래어 표기법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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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Governance 거버넌스

    Tracked from Fly, Hendrix, Fly 2009/10/11 00:06 del.

    민노씨: 거버넌스(Governance) 혹은 지적 된장질 : 이건 무슨... 오마이뉴스 - 박원순 "좋은 정부 만들기 고민" 민노씨에게 답글을 달라다가 길어져서 트랙백 처리를 한다. leopord의 말에 대해 좀 지적질을 해야겠네요. 저도 전공이 정치외교인데가 쓸데없이 가방끈 길게 정치학 석사과정을 조금 더 한 관계로.. ;; 거버넌스는 논의가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까지 논의였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는(90년대 초 중반) 최장집이..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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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이아 2009/10/07 13:35

    제 직장 경험때문인지 몰라도 IT Governance 라는 말이 이 단어의 확산에 한 몫 했던 것 같습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IT에서의 논의가 이 단어의 명확한 의미에 기반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있어보이는 말"로 빠르게 퍼진 것이지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10/07 23:24

      유행어라는게 뭐 그런 모호한 속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과시적인 수사로서의 치장적 성격도 강하고요. ^ ^

  2. 시퍼렁어 2009/10/07 13:40

    뭐 의미상 문제가 있는것들이긴 하지만 공무원 시험상에서 거버넌스는 사뭇 다르거든요 행정학계열 공부하는 사람들도 아마 다를거에요 뉴거버넌스니 거버넌스니 하는 식으로 시대를 구분하고 각 시기의 정책기조를 구분해서 그럴거에요 (난 이거 왜 나누는지는 모르겠지만... 시험이 4지선다인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10/07 23:25

      시퍼님께서도 공무원 공부하셨나요? : )

    • 시퍼렁어 2009/10/12 16:01

      개인적으로 흑역사라죠... (먼산)

    • 민노씨 2009/10/13 21:23

      암흑의 역사라는 취지신가요? ^ ^;

  3. leopord 2009/10/07 21:10

    오랫만에 덧글 남깁니다.

    위에 가이아 님은 IT업계 종사자의 경험에서, 시퍼렁어 님은 행정학의 범주에서 설명하시네요. 전 정치학의 개념이 우선 떠오르더군요.^^;(원전공이 정치외교다 보니;)

    거버넌스의 사전적인 의미는 민노씨가 삽입하신대로입니다. 정치학에서는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에 꽤 유행했다가 지금은 좀 잠잠해진 걸로 알고 있는데, 냉전으로 상징되던 양극체제가 다극체제로 전환될 거라는 국제정치학상의 기대를 반영하는 개념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덧붙여 IT 거버넌스라는 개념은 탈산업시대의 네트워크 정치로서의 거버넌스가 경영 분야와 IT 분야의 변화를 설명할 수단으로 선택된 거라고 봐야겠고요(금융의 경우와 같이 경영과 IT는 20세기 말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기도 하고요.).

    하지만 국제정치경제체제에서 글로벌 거버넌스가 보편화되었다고 성급하게 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국적으로 봐도 국가(정부)-시민사회-시장이라는 축 가운데 균형을 담당할 시민사회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함께 무너진 경향이 있고, 아프리카 등 시민사회가 심각하게 취약한 곳에선 폭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국경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자본(주로 금융) 사이의 담합 및 갈등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거버넌스는 일종의 수사로 그친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계급적 갈등을 부차적으로 보거나 혹은 근대의 유산 정도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고요. 정치학적으로 제대로 파고들지 못해 섣부른 판단일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박원순 씨의 거버넌스 발언에는 '중도 실용' 이명박에 대한 '중도 실용'으로서의 배신감이 배어있지 않은가 싶네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10/07 23:26

      절적하고, 인상적인 논평이시네요. : )

      특히 말미 "박원순 씨의 거버넌스 발언에는 '중도 실용' 이명박에 대한 '중도 실용'으로서의 배신감이 배어있지 않은가"라는 말씀은 탁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 인용할까 싶네요.

    • leopord 2009/10/08 23:48

      앗. 인용글로 올라갔군요.ㅎㅎ;

      거버넌스 개념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쉽게 말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만, 지적이 나오면 제가 더 잘 알아보고 고쳐야죠ㅎㅎ;

  4. 민노씨 2009/10/07 23:31

    *보충.
    leopord 논평 본문 보충.

    perm. |  mod/del. |  reply.
  5. capcold 2009/10/08 00:01

    !@#... 된장질의 느낌은 강하지만, 지적인지는 모르겠군요(핫핫). 원래 이건 통치 개념을 특정 핵심기관(예를 들어 중앙국가, 중앙정부나 각 분야에서 그에 준하는 주무기관)이 아닌 "행위" 자체에 맞춤으로써, 그 과정에 개입하는 여러 주체들과 역학관계의 시스템을 강조하기 위한 다분히 전략적인 용어짓기였죠. 하지만 심지어 영어에서조차 그런 전략적 뉘앙스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해서 웬만하면 발아점 기사의 그런 의미를 표현하고자 할 때 'participatory governance'라고 쓰는 판에, 도대체 어째서... OTL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10/08 08:49

      그런 '전략적 고려'가 담겼던 표현이었고만요. : )
      수재님 글( http://inthenet.tistory.com/675 )에서도 캡콜님의 보충설명이 큰 도움이 되었는데 말이죠.
      보충 설명 고맙습니다.

  6. Hendrix 2009/10/11 00:30

    트랙백 걸었습니다. 오랫만에 놀러왔다가 재미있는 글이 보이길래 ㅎ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10/12 14:24

      http://flyinghendrix.tistory.com/412

      보충 논평 고맙습니다. : )

      이 글이 제 글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다에 대해선 다소 의아한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만, 제 부족한 글을 매개로 논의를 확장하는 차원에서 매우 고맙고, 또 반갑게 생각합니다. 다만 제 글 취지가 다소 오해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굳이 짧게 제 입장을 부연합니다. ^ ^

      1. 다만 제 글에서 주목했던 것은 이런 학술적(?) 논의 과정에 대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제가 문제삼은 건 저널리즘 기본에 속하는 외래어 표기에 관한 무개념이었습니다. 제 글이 속해있는 카테고리가 '저널리즘'인 것은 그래서입니다.

      2. 그런 이유에서 '박원순'에 대해 주목한 것이 아니라, '미디어오늘 류정민'의 기사 쓰기에 주목한 것입니다. 이는 한글날을 앞둔 시기적인 조건이 어느 정도는 개입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죠. 저는 박원순과의 인터뷰를 짧게 인용하면서, 기사 내용의 실질에 그다지 도움되지 않는 '거버넌스'를 영어 표기로 거듭 반복하는 행태가 된장질처럼 느껴졌을 뿐이에요.

      3. 즉, '거버넌스' 그 자체를 '된장질'이라고 폄하하지 않았습니다. '거버넌스'를 어떤 설득력도 없이 그저 악세사리처럼 과장 혹은 강조하는 기사쓰기의 행태가 '된장질'이라고 느꼈을 뿐입니다.

  7. 민노씨 2009/10/14 01:08

    * 추천 링크 본문 보충.
    http://www.realfactory.net/1128 : 리승환의 글

    http://wiki.kldp.org/wiki.php/%BF%DC%B7%A1%BE%EE%C7%A5%B1%E2%B9%FD

    perm. |  mod/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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