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섹스 : 즉흥적인 단상들

2009/06/05 22:45
* 이 글은 섹시고니님의 가벼운 질문에 대한 가벼운 단상에 불과합니다.
* 이 글은 제 트위터에서 작성된 즉흥적인 단상(주로 여기에서 여기까지의 단상)을 다시 정리한 글입니다.
작성 시각순으로 간단히 추고(보충)해서 정리합니다.


질문.
섹시고니 2009/06/05 13:40
한가지 부탁하려고요. 제가 토크온섹스에서 진행하는 팟캐스트 이번주 주제가 '영화 속에 비친 섹스'라는 주제입니다. 여기서 한 꼭지로 '영화속에서 섹스는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나?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하는 황망한 부분이 있어요. 이에 대한 민노씨님 의견을 좀 들어보고 소개할가 합니다. 가능하시다면요. 웅?

- 섹시고니, 방명록 문의글 중에서


0. 질문에 대해
6월 13일에 섹스파티 준비중인 섹시고니님이 방명록에 이런 질문을 해왔다. "영화속에서 섹스는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나?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개인적으론 질문이 좀 아리까리하다. 차라리 "당신이 기억하는 영화 속 가장 멋진 섹스는?" 혹은 "당신이 기억하는 영화 속 가장 후진(불쾌한) 섹스는?" 또는 (선호와는 상관없이) "당신이 영화 속에서 접한 가장 인상적인 섹스는?" 이렇게 평이하고, 친근(?)하게 접근하면 어떨까 싶다. "영화 속에서 섹스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나"라는 질문은 마치 페미니즘적 전제가 깔린 도덕적인 질문이란 생각도 얼핏 든다. 물론 그런 취지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1. 로라 멀비 : 가부장의 시선, 관음주의, 여체의 수동적 대상화.

로라 멀비(Laura Mulvey. 영화비평가)는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시네마. Visual Pleasure and Narrative Cinema. 1975.]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고, 언젠가 여성영화제 관련 소개책자(꽤 두꺼운 것이었는데)에 번역되어 수록된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물론 그 기억도 희미하다(영화학도 독자들의 조언을 부탁). 아무튼 멀비 주장은 명료하다.

헐리웃 영화는 ㄱ. 여성을 시각적인 쾌감의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고, ㄴ. 그 여체를 시각적으로 수동화시키며(카메라의 시점), 의미론적인 맥락에서 그런 일련의 경향들은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 여성/여체에 대한 성적인 수동성/대상화와 관음증을 부추기고, 결국은 남성사회의 가부장적인 속성을 은연중에 강화한다는 거다.

이런 구도에서 섹스는 여성의 피동성, 수동성, 대상화를 극단적으로 상징화하는 영화적인 관음장치의 일부로 사용되어 왔던게 사실이고, 또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80년대 이른바 '호스티스 영화들'이 전두환의 폭압적 통치의 파트너로서 다수 제작되었다. 전두환의 노골적인 3S(스크린, 스포츠, 섹스) 정책하에서 섹스와 영화의 만남은 그저 국민을 순응화시키는 정치적인 기제의 일부에 불과했다.

2. 3S는 무조건 악인가? : 정치적 순응화 기제 / 문화적인 자아발현 기제
특히 3S 가운데 두 가지 축인 섹스(산업)와 영화를 하나의 관점으로 해석해보자.
지금은 거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노라 멀비의 '가부장적인 관극틀' 혹은 '남성의 질서를 견고하게 구조화하기위한 시각적인 내러티브'에 배판은 물론 여전히 의미있는 것이다. 하지만 3S는 그저 정권이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순응화시키는 폭압적 정치기제의 파트너로만 역할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3S에 대한 비판은 하지만 때로는 '교조적인 페미니즘'의 관점과 결합하기도 하는 것 같다. 가령 박쥐에 대한 레디앙의 극단적인 감정적 혐오와 징징거리가 그 가장 안타까운 예시에 속한다.

즉, 순응화 기제로서의 3S와 인간적인 자아표현의 문화기제로서의 3S가 현실속에선, 특히 진보파 일부의 도덕적 결벽주의와 결합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이거 난 폭력이거나 위선이라고 느낀다. (레일린, 제프와의 대화 중에서) 그런 차원에서  3S에 내재된 해방적 속성까지를 적극적으로 견인하는 문화운동, 사회운동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3S를 전적으로 도덕적 비난대상화시키면, 그 순간 대중적인 사회/정치/문화 운동으로서의 생명력은 게임 오버하지 않을까 싶다. (제프, 레일린과의 대화 중에서)

3. 피상적인 이미지와 내재적인 맥락 : [피아노]의 경우
나는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시각적인 내러티브의 구조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영화의 맥략 속에서 그 장면들에 내재된 함의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제인 캠피언의 [피아노]이 페미니즘영화로 해석되는 경향에 나는 강한 이견이 있다. [피아노]에서 홀리 헌터가 주체적인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위해, 자아의 실현을 위해 '희생양'이 된 자신의 정치경제적인 조건을 뛰어넘는 '모험'을 펼친다는 구도는 너무 작위적인 페미니즘의 관극틀이라는 생각이 드는거다. 물론 그런 그렇게 해석될 여지는 없지 않고, 그렇게 해석한다고 해서 그 해석이 '틀렸다'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웃긴거지만, 적어도 그 해석은 나에겐 설득적이지 않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피아노. The Piano](제인 캠피언, 1993) 
제국주의가 어떤 정치경제적인 메카니즘을 통해 욕망을 실현하는지를 멜러드라마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걸작.
페미니즘의 해석은 매우 지엽적이고, 교조적이며, 피상적인 관극틀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피아노]는 제국주의 정치경제학을 기본 얼개로 품고 있는 멜러드라마라는 해석이 훨씬 설득적이다. 거기에서 여체는 하나의 도구이며, 화폐처럼 하나의 '교환수단'에 불과하다. 그 교환수단으로서의 여체는 끝내 그 속성을 극복하지 못한다. 일부 페미니즘 영화 비평가에게는 '새로운 출발'이라고 해석되는 영국으로 향하는 홀리 헌터의 선택은, 새로운 자아의 발견이 아니라, 제국주의로의 회귀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은 이제 언어적인 위계의 권력을 획득한(홀리 헌터로부터 글씨를 배운다) 하비 케이틀(베인스)의 제국주의적 욕망을 눈뜨게 하는 도구로써 머문다는 점에서 오히려 절망적이다. 결국 [피아노]에서의 홀리 헌터는 끝가지 제국주의 남성 드라마의 '희생양'으로 남는다. 그러니 이 영화는 전혀 '페미니즘'의 비전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닌 셈이다. 특히나 제인 캠피언('피아노'의 감독)이 가장 존경하는 이가 구조주의 인류학의 창시자인 '레비스트로스'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물론 그녀의 전공이 인류학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지만).  물론 해석이 감독에게 종속되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4. 권력과 지식이 조율하는 섹스 : [아이즈 와이드 셧] 혹은 [색/계]
섹스는 항상 권력의 역학과 엉켜있기 마련이고, 후진 영화는 빼고, 그래도 괜찮은 영화들에서 섹스는 항상 당대의 계급적 지배관계와 고뇌하는 실존의 풍경들을 어떤 식으로든 반영한다. 가령 '색/계'는 그런 뛰어난 예시다. 그리고 여기에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좀더 건조하게, 하지만 동시에 환각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이 존재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이즈 와이드 셧. Eyes Wide Shut](스탠리 큐브릭, 1999)
미국 중산층 부부의 성적 위기가 표피적 내러티브라면,
그 이면에서 욕망과 권력을 매개하고, 그것이 조율하는 섹스, 혹은 영화적인 재현 현상 그 자체를 탐구한다. 

특히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섹스는 ㄱ. 우선 욕망의 매개다. 탐 크루즈에게 섹스는 권력의 성채로 들어가기 위한 목적이 된다. 권력은 빌에게 그 섹스를 그 권력에 맞게 허용한다. 여기에서 권력 = 섹스라는 구도가 전제된다. 권력의 목적은 섹스의 지배적인 배타성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ㄴ. 그리고 섹스는 제도를 배반하고, 전복하는 해방적인 본능이기도 하다. 니콜 키드만의 '환상'은 그런 예시로서 탐 크루즈의 '안락한 삶'을 무너뜨린다. ㄷ. 그리고 섹스는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조절장치이며, 또 궁극적으론 욕망 그 자체이기도 하다. 권력적이고, 본능적인 섹스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시스템은 어떻게 두 개이 서로 다른 위계를 만들어내는가(여기서 우리가 떠올려야 하는 사건은 '장자연'과 '해당언론사'다). 이런 질문은 미셸 푸코가 '성의 역사'에서 빅토리아 시대를 분석하며 전하는 전언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5. 저항으로서의 섹스
가장 전형적인 예시. 가령 [감각의 제국]. 혹은 소비에트가 해체되기 전의 동구권 영화의 과도한 성적인 묘사들은 권력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를 표현하기 위한 성적 제스처의 해방적인 이미지들, 절망/저항의 이미지들을 반영한다.

7.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섹스 : 성스러운 일상, 일상이라는 성스러움. 
서설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앞서의 간단히 재설정한 질문으로 돌아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섹스는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의 섹스, (영화는 아니지만) [덱스터]에서의 섹스다. 전자는 인간이 구할 수 있는 성스러움을 가장 비루한 일상 속에서 구원의 이미지로 만들어내고 있고, 후자는 섹스가 상대방을 위로하고, 상대방의 상처에 관여하는 고양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섹스에서 포르노 영화는 대상에서 제외. ㅡ.ㅡ;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브레이킹 더 웨이브. Breaking The Waves] (라스 폰 트리에, 1996)
기적같은 연기를 보여주는 에밀리 왓슨


* 이 글은 추고해서 추후 제 영화블로그(kino21.com)에 수록할지도 모릅니다.
게을러서 안그럴지도 모르지만요.



트랙백

트랙백 주소 :: http://minoci.net/trackback/876

  1. Subject : 태국 맥씸 섹시 엔젤 완소녀 2009[Maxim Sexy Angel Girls 2009]

    Tracked from Humanist 2009/06/06 01:41 del.

    태국 맥씸 섹시 엔젤 완소녀 2009 Maxim Sexy Angel Girls 2009   Journal by Joon H. Park Photos by Media Thai Post   오늘에야 비로소 태국내의 양대 상인 잡지사의 금년도 상인 모델 모집을 완료하였다.  사실 오늘이 아니고 지난 2틀 전인데 단군 박공이 다소 바빴다는 이유로 오늘에서야 짤막한 글과 함께 대략 42장의 사진을 간략히 추려서 눈요기로 올리고자 한...

  2. Subject : [Pod Cast 3] 영화 속 섹스

    Tracked from 토크온섹스닷컴(TalkOnSex.com) - Beta 2009/06/09 10:39 del.

    오늘은 '영화 속 섹스'를 주제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평상 시에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탓에 제대로 주제를 다루지도 못하고 주변만 맴돈 것 같아서 조금 죄송하네요.2회 캐스트를 많이 들어주셔서 정말 감동하고 있어요. 이번에도 많이 들어주시고 많이 표현해주세요.이번에도 시그널음악 없이 업로드 한다고 하니, 하늘보며님께서 다음 회에는 해결해 주신다고 하는군요. ㅎ * 캐스트 내용- 2회 피드백 소개- 이슈소개처녀막의 군사적 가치지나친 배려는...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
  1. 띠용 2009/06/05 23:53

    우왕 민노씨도 브레이킹 더 웨이브를 보셨군요~!
    전 이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어요. 제 1회때 상영되었던 작품이죠^^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06/07 01:18

      부산국제영화제 1회 상영작들 가운데 하나였군요. : )
      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나 에밀리 왓슨은 정말 좋아하는 배우고요..

  2. 단군 2009/06/06 01:41

    아, 골아포~...섹스는 걍 섹스여요...골때리게 생각할 필요없는것 아닙니까?...^^...전 워낙에 단순해서...

    그러지 마시고 제 블로그에 오셔서 머리나 식히시라능...맥심 입니당...ㅋㅋㅋ...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06/07 01:18

      너무 골 아프게 썼나요? ㅎㅎ
      그저 떠오르는대로 썼는데요, 역시나 표현력이 딸려서 그런가봅니다.

      트랙백 고맙습니다. ^ ^;

  3. 서울비 2009/06/06 09:37

    굉장히 흥미롭게 읽고 갑니다.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06/07 01:19

      그렇담 가볍게 트랙백 한방 쏴주시지요. : )

      추.
      메일 답장 보냈습니다.

  4. 서울비 2009/06/07 03:06

    새벽에.. 그냥 사람 목소리 듣는 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 그리고,

    저 영화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서 리뷰같은 거 못 써요.
    미투데이 트랙백이라도 몰아드릴까요? 흐흐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06/07 04:48

      저도요. : )

      저도 영화에 대해서 아는거 쥐뿔 없습니다.
      그냥 영화를 매개로 이야기하면 그게 리뷰지 뭐 별개 리뷴가요. 흐흐.

  5. 민노씨 2009/06/07 04:47

    * 로라 멀비 관련 링크 및 논문 제목 보충

    perm. |  mod/del. |  reply.
  6. Bok 2009/06/09 04:31

    키노에도 블로그를 가지고 계시군요..
    전 이런 글은 사진부터 봅니다.. ㅎㅎ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06/09 09:14

      키노에도 블로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고, 영화블로그 이름이 키노21입니다. 키노와 씨네21을 짬뽕한 도메인이죠. ㅎㅎ 그나저나 사진이 부실(?)해서 죄송합니다. ^ ^;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댓글 입력 폼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