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새겨야 하는 말

2009/05/02 06:42

마음이 어지러우면 염치 없게 찾곤 하는 '비아메디아'에서 귀한 말을 들었다. 이 귀한 말을 나 혼자 듣고, 나 혼자 위로 받는게 염치 없는 짓인 것 같아서 특히 나에게 깊이 머물렀던 문장들을 빌려온다. 물론 직접 가서 전문을 모두 읽고, 새기고, 그 말들이 그저 말이 아니라, 그저 의견이나 겉멋든 사상이 아니라, 그 마음이 소리가 되고, 그 마음 소리가 글이 되고, 그 글이 몸이 되는 육성의 호흡을 느껴보는 것. 그래서 그 말이 글이 소리가 몸에서 흐를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그 말들이 그저 모두 지워져도 상관 없도록 자신의 깊은 흔적이 되도록 거듭 자신의 욕망과 나와 당신과 우리들 사이의 단절을, 그 단절을 무한하게 확장시키는 세계를 둘러싼 권력의 탐욕과 영혼없는 속도와 경쟁을 되돌아보고, 그렇게 다시 스스로에게 돌아와 함께 소망한다는 것의 의미를 성찰해보는 것. 그것을 감히 권하는 바다. 석가탄신일 아침에, 예수와 석가가 어찌 다르다고만 하겠는가, 내가 내 자신의 졸렬함을 스스로에게 야단치고, 다짐해보는 것이기도 하다.


“교회는 그 원래 의미에서, 예수의 정치학을 행동하는 사회적 공간이다. [....] 이 말은 교회가 - 비그리스도인과 협력해서라도 - 평화와 자비의 공간, 정의로운 경제 교환의 공간을 창조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말이다.”

“교회가 폭력에 저항한다면, 교회는 그 사적인 개인주의에서 벗어나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지녀야 한다. 그것은 국가 권력을 다시 획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대해서 참된 말을 발설하기 위한 것이다”

“교회가 어떤 전쟁이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고 결정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 전쟁에서 싸우는 것을 거절해야 한다. 이것이 현재 미국 교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라 생각한다. 정당한 전쟁 이론이 한치라도 의미있는 것이라면, 그 때문에라도 교회는 정당한 전쟁에 대한 결정을 국가에 미룰 수 없는 것이다.”

“자유 시장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강박감을 갖게 되는가? 이론적으로, 자유 시장에서는 모든 개인은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무엇이 객관적으로 좋다는 감각이 없는 문화 속에서, 남는 것은 힘이다. 의지는 좋은 것(선한 것)으로 이끌리지 않고, 마케팅의 권력이 의지를 움직인다.”

““아직 아닌” 것은 우리가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그리 살아가고 있다. ”

- 주낙현, 전례와 정치, 고문과 국가, 그리고 현실주의 : '윌리엄 카버너의 인터뷰' 중에서

4.
어떤 전략과 전술도, 그리고 어떤 생존 훈련도 시키지 않은 채 밖에 나가서 정체성을 갖춰라, 성장시켜라 하고 윽박지르는 것은 앵벌이하라는 말이다. 그 앵벌이의 실체는 굽신거리고 거짓말하는 일이고, 좀 힘이 있을라 치면 그마저 없는 이를 ‘삥’ 뜯는 일이다. 앵벌이로 나서는 이들 역시 힘에 눌려 여기서 도망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 일이 반복된다.

6.
질투와 시기는 차이에 대한 비교에서 비롯된다. 차이가 만만한 것이라면 경쟁하면 될 일이고, 넘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차이에서 배우는게 남는 일이다. 질투와 시기는 경쟁을 통한 발전으로 이끌지도 못하고, 배움을 통해서 스스로를 먹이지도 못한다. 하느님께서 저마다 주신 다양한 은사를 늘 설교하면서도 자신은 그 말에 절대로 순응하지 않기에, 결국 복합 감정의 노예가 된다.

7.
가까운 사람들, 자신이 믿는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좀더 인색한 식별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도전해야 한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 가까움이 자칫 식별의 눈을 가리고 도전을 멈추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을 자주 경험하고 전해 듣고, 또 발견하게 된다. 그 잣대로 인해서 그와 멀어진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역으로, 무엇이든 받아주리라 생각했는데 애정과 합리로 도전을 해오는 이가 있다면, 그를 붙들어야 하겠다.

9.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더이상 그렇게 부르지 않고, “벗”이라 부르겠노라 하셨다. 서로들 벗으로 여기지 않으니 불행한 일이다. 어른이고 젊은이고 할 것 없이 이 “벗”에 대한 갈망과 실천을 말과 몸에 속속들이 배이도록 하지 않는 한, 결코 예수를 따르지 못한다.

- 주낙현, ‘성직자’ 잡감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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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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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eopord 2009/05/03 01:47

    이 분이 주낙현 신부님이시군요. 이름만 듣다가 뒤늦게 링크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육화가 되는 체험이란, 역시 지극히 내밀한 개인적 경험이면서도 그걸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조금씩 퍼질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어떤 내가 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과 뗄레야 뗄 수 없을 것 같아요. 어쩐지 여기서 '교회'의 의미가 잠시나마 블로그를 통해 확장된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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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5/03 15:14

      말미의 말씀처럼 주 신부님의 말씀은 비단 '교회'라는 테두리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고민되어야 하는 욕망과 권력과 그 가운데서 찾아야 하는 우리의 소망이라는 보편성을 갖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더더욱 주낙현 신부님의 성찰에 큰 의미와 위로를 얻곤 합니다. : )

  2. 의리 2009/05/04 14:01

    가끔 궁금해지는게 세상 모두가 동감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하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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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5/04 20:07

      없는 것 같습니다. ^ ^;
      문득,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는 절대적인 진리'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다만 차이를 인정하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과정(실천) 속에서 그 진리라는 것이 존재할 뿐 아닌가 싶기는 하네요.

  3. _-_ 2009/05/06 00:03

    교회라는 집단은 결코 완벽한 집단이라고 할 수 없죠.. 종교로서의 기독교도 그렇고..
    전 저와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저 사람도 뭐랄까, 하늘만큼 푸르른 어떤 것을 좇고 있다는 점은 저와 같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그가 믿고 우러르는 대상이 천주님이든 하나님이든 알라든 부처님이든 공자님이든 자기 자신이든 (등등..) 말이에요.
    천년 전 (몇몇 극렬) 기독교인들의 십자군 원정을 생각해 보면 (몇몇 극렬) 이슬람교도들도 (결과적으로) 나름 그런 것을 거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기본적으로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는 하지만 제 나름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거죠. 그리고 둘이 완전히 같다라는 건 아니구요) 좀 아이러니 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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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5/06 15:08

      세속적인 종교집단의 상당수는 이미 그 자체로 '이익집단'에 불과한 성격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http://nooegoch.net/410

      위 링크에 담긴 동영상은 차라리 절망교회라는 생각이 들더만요...

    • _-_ 2009/05/07 00:42

      동영상 봤는데.. 저분 반말하시는거나.. 받았다면 다가 아닌데.. 증여세 양도세 이런거 내긴 내셨나? 암튼 별로 신뢰가 안가네요..이해도 안가고.
      저는 저런분들은 피해서 교회다닌다고 다녀왔는데
      생각해보니까 피한다고 저런분들이 안그러는건 아니네요.
      누군가 직접 대놓고 그렇게 활개치고 다니는거 아니라고 말해주어서 충격좀 드시면 좋겠어요.
      이익집단...어찌보면 그런면모는 전기철조망 같죠.

    • 민노씨 2009/05/07 00:45

      동영상의 막강(막장?) 내공으로 보건대...;;;
      어떤 진심어린 조언을 들어도 가쁜하게 훈계조로 튕겨 내실 것 같더만요...;;;;;

  4. 비밀방문자 2009/05/17 19:43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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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5/18 13:14

      저도 비슷한 생각 자주 합니다.
      그래도 살아야지... 하면서 살고 있긴 합니다만... 때론 허무가 너무 커져서 될때로 되라지.. 뭐 이런 생각도 하고..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제 에고인지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에서 뭔가 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안된다"( http://www.minoci.net/510 )는 생각을 붙잡으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물론 그러기에도 저는 너무 게으르지만요.... 종종 마음이 횡하시면 오시면 좋겠네요. 서로에게 말벗 역할이라도 할 수 있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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