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오랜만에 블로거 가즈랑과 만났다.
우리는 늘 그랬듯, 고상한(?) 뒷담화와 영화 이야기, 블로그 이야기, 여자 이야기 등을 나눴다.
이하 가즈랑과 나눴던 이야기와 그에 관한 단상들.

1. 맥주집과 맥주 이야기
새롭게 알게 된 사실, 가즈랑은 '맥주 마니아'였다. +_+ (가즈랑의 맥주 이야기)
마치 이국적인 아편굴을 연상시키는 한 대학가 맥주집에서, 그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아편을 빨며 몽롱해지는 그런 분위기를 연상시키면서, 어떤 면에서는 가즈랑의 지적처럼 사창가의 한 이미지와도 겹치는 그런 곳이었다. 각 테이블과 그 테이블을 둘러싼 쪽방(?)에는 붉은 발이 내려져 있었다. 그 발을 보라빛과 붉은 빛이 섞인 반투명 커튼은 감싸고 있었는데, 그런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그 발과 커튼은 그 테이블과 방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을 마치 묘한 뉘앙스로 핥고 있는 것 같았다. 혹은 바라보는 내 시선을 핥고 있거나...

아무튼 나는(우리는) 가즈랑이 추천하는 맥주를 마셨다.
세상에서 그렇게 쓴 맛의 맥주는 처음 마신 것 같다.
단 며칠이 지났을 뿐이지만, 그 맥주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체코에서 만든 맥주같은데... 암튼.

2. 영화와 드라마 이야기
기억에 남는 건 공포영화에 관한 이야기인데, 나는 크라이브 바커가 제작한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의 세계관에 관해 이야기했고, 가즈랑은 고전적인 공포물의 배경적인 코드로서 종교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에 대해 짧게 쓰자면,
이 영화의 촬영은 개인적으론 꽤 인상적이다. 특수 필터를 썼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물론 고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 아니라, 화면 속에 떠도는 내러티브에 마치 진한 커피를 탄 것 같은 묘한 몰입 효과를 부여한다. 물론 왕년의 아이콘 브룩 쉴즈의 의미없는 출연이나 여자 주인공의 말도 안되는 엉터리 연기(물론 이건 그 배역 자체의 설득력이 말이 안되는 수준이라서 더더욱 그렇지만) 때문에 영화 자레로는 그다지 높게 평가하기는 어려운 영화이긴 하다. 마지막 엔드 크레딧에 있는 크라이브 바커라는 이름에 관심이 없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잔인한 B급 고어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최근에 드디어(!) 그 베일을 벗은 [24]와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들(히어로즈, 덱스터 등)을 이야기했다. 특히 [24]의 탁월함에 대해 주로 내 쪽에서 이야기했다. 가즈랑은 [24]를 전혀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나로선 [24]를 추천하긴 했지만 가즈랑이 [24]를 본다면 조금은 미안해질 것 같다. 가즈랑 지금 꽤 시간을 규모 있게 써야 할 시기일텐데, 장담컨데, [24]를 보기 시작하는 순간으로 끝이다, 이 드라마는 시작하면 그 시간으로 끝까지 다 볼 때까지 참기 어려운 속도와 긴장의 가공할만한 매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덤으로 [로스트]에 관한 이야기. 이 드라마는 여전히 다소간 과대평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지만, 어떤 에피소드 이후 질적으로 비약해버린다. 하지만 여전히 '선'(김윤진)에 관한 에피소드는 가장 후진 에피소드들이다. 극적인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으로 후졌다. 이 점은 '가재는 게편이다' 심리랄까... 좀 짜증난다.


3. 연애 이야기
언젠가 내가 썼던 글이 있다.
내가 대학시절 무척 좋아했던 어떤 아이가 결혼했던 직후에 그 감정이 너무 무거워서 그걸 덜어내기 위해 썼던 글이다. 그 아이는 내 장롱환상과 관련이 있다... 아주 쓸쓸한 장롱환상이다... 그 글에서 나는 "그 아이는 이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내와 매일, 혹은 자주 섹스를 하겠구나..." 라고 썼던 것 같은데, 가즈랑도 그 글을 읽었다고 했다. 그 글 때문에 예전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한다.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4. 이글루스 이야기

이글루스의 뻘짓 약관 수정 해프닝(이라고 하기엔 함의가 중대한)에 대해 가즈랑이 이야기해줬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뻘짓이 많았더라. 이에 대해선 따로 글을 쓸까 싶다.


5. 블로그래픽 이야기

나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걱정을 하면서도 정작 블로그래픽를 열어보기 민망하달까 겁난달까...  어린 아이가 숙제를 회피하고 싶어하는 그런 심리일텐데, 이에 대해 가즈랑과 깊은 공감을 나눴다..;;; 하지만 가즈랑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블로그래픽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가보곤 한다고(블로그래픽 툴인 워드플레스도 가즈랑이 가장 최신판까지는 업뎃했다고 하더라).

아무튼 블로그래픽을 조금씩이나마 정상화할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 서로 이야기했다. 정말 무수히 많은 회의와 고민들을 이미 나눴지만, 그걸 실천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ㄱ. 가령 '과대평가 받은 블로그' '과소평가 받은 블로그' 이런 재밌는(?) 기획
ㄴ. 기존의 회의 자료들을 스스로에 대한 반성의 자료로 정리해서 공개하는 문제(블로그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폼나고 멋진 실천의 성과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그 실패에 관한 성찰의 기록을 보여주는데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ㄷ. 블로그래픽 동인(우리는 블로그래퍼라고 부르는데) 블로그를 중심으로 블로그래픽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블로그래픽과 다소 동떨어진 감수성을 회복하는 방법
ㄹ. 써머즈와 새드개그맨과의 회의에서 나눴던 출판 모델에 관한 아이디어
ㅁ. 블로그그래픽 배너 제작에 관한 것

가즈랑의 이야기 가운데 인상적인 것 하나.

블로그래픽에 가보면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회의하고, 논의하고, 이야기했던 그 모든 열정들이 박제화된 느낌... 그래도 블로그래픽을 좋아하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가죠.

6. 쌤통 
맥주집에는 나름으로 있는 힘껏(?) 멋을 낸 어떤 여자아이가 있었다(물론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긴 했지만). 당근 처음 보는 여자였는데, 2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아무튼 나는 오, 귀엽다, 이런 주책맞은 농담을 가즈랑에게 건냈다. 그녀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우리가 있는 쪽방을 지나치곤 했던 거다. 아무튼 그녀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다시 일어섰을 때 의자에 걸려 완전히 엉덩방아를 찧고 나동그라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대한 가즈랑의 의외의 논평. ㅎㅎ.
마치 악동 톰소여가 된 것 같은... 그럼 나는 허클베린감? ㅎㅎ


7. 블로그 이야기
가즈랑이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 외국의 모 블로그(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끊임없이 자신의 체험 중에서 의미있는 체험, 물론 그것은 웹에 기반한 정보에 관한 것인데, 그 체험들 중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매순간 올린다고 하더라. 그래서 포스트 하나의 부피는 단 몇줄에 불과하지만, 의미있는 링크들과 이에 대한 논평들은 많은 독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당연히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올린 건 마이크로 블로그와 메인 블로그와의 상관관계와 총체적 블로깅(블로거의 전인격적인 풍경과 관심사가 모두 드러나는)의 문제였다. 이에 대해선 나중에 글을 써보고 싶다. 점점더 블로그의 주제가 고립적으로 단절되는 현상이 벌어지는데, 이는 물론 달리 파악하면 전문적인 주제를 갖는 블로그의 경향이라고 파악할 수 있을테다. 이것은 반드시 좋기만 한 것 같지는 않다. 언젠가 아거와도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경향은 한 블로거의 '온라인 실존'의 한 편린이 확대되고, 총체적인 인격의 전면적인 소통 가능성을 축소시키고, 블로그의 기능적 차원만이 강조되는 경향이다.

그런데 블로그의 본질적인 기능이란 전인격적인 만남의 가장 경제적인 수단으로서 블로그가 갖는 그 잠재력과 가능성이다.


* 가즈랑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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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블로그래픽"에 대해..

    Tracked from 펄의 Feelings... 2008/12/01 09:18 del.

    블로그래픽(http://blographic.net)이 출범한 지도 벌써 5개월이 됐습니다. 출범 후 많은 분들의 격려가 있었지만 출범 후 활동은 이 같은 많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친 것이 사실입니다. 블로그래픽 출범 전 동인들이 보여줬던 엄청난 열기는 막상 출범 전후로 크게 줄어들었고, 사실상 '정신적 지주'였던 아거님까지 절필을 선언하면서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후 오프라인에서 동인들이 여러 차례 만나서 특정 주제에 대한 공동 포스팅 등 다양한 제안을..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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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01 09:17

    "블로그의 본질적인 기능이란 전인격적인 만남의 가장 경제적인 수단으로서 블로그가 갖는 그 잠재력과 가능성이다."
    정말 공감 가는 말씀이에요.
    제가 어릴 적부터 접해 본 여러 가지 도구 중 블로그만큼 서로 얼굴조차 모르는 사이인데도 자주 보는 친구나 회사 동료보다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 건 없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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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2/01 09:39

      앗, 펄님. : )

      블로그래픽에 관한 이야기를 써주셨고만요.
      ( http://pariscom.info/227 )
      이제야 읽네요. ^ ^

      우선 블로그래픽과 동인들의 블로그 간의 관계설정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큰 것 같습니다. 예시하자면 '중복 등록'의 문제인데, 이걸 어캐 해결해야 할는지...;;

  2. 민노씨 2008/12/01 09:40

    * 제목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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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성치 2008/12/01 09:44

    24 시즌7 0화라고 할 수 있는 TV영화판 24를 봤는데 좀 실망스럽더군요. 시간이 길어져서 그런지 실시간이라는 게 큰 의미가 없더라구요.

    기억나는건 중간에 나온 현대 제네시스 P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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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2/01 09:50

      ㅎㅎ
      저도 그 두 시간 분량의 에피소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건 제네시스 간접홍보 영상이었습니다. : )

      하지만 토니 알메이다가 등장하는 본격적인 시즌 에피소드부터는 정말이지 어떻게 또 각본의 마술을 부리려나... 여전히 기대 만빵입니다.

  4. 이정일 2008/12/01 12:27

    아! 정말 뜻깊은 자리를 하셨군요.
    저도 맥주 좋아하는데,, (실은 술이라면 다 좋습니다).

    예전에 갖었던 민노씨와의 술자리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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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2/01 16:50

      언제 기회가 다시 있겠죠. ^ ^;
      저도 정일님, 도아님과 함께한 술자리 기억이 생생하네요.

  5. 이승환 2008/12/01 15:35

    6번 읽다 살짝 기대했는데... -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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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2/01 16:51

      요즘 승환씨는 쵝오(!)라는 생각이 듭니다.
      http://realfactory.net/802 ㅎㅎ

      물론 위 글이 쵝오라는 생각은 들지만, 전적으로 찬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예시한 블로그들 가운데 별로 좋아하지 않는 블로그가 있어서...;;; (물론 승환씨 블로그는 아니구요)

  6. 가즈랑 2008/12/01 19:45

    RSS리더를 읽다가 반가운 마음에 와서 읽었습니다. ㅎㅎ 짧은 시간동안 꽤 여러가지 이야기가 오갔네요. 아쉬움과 그리움이 많이 남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장소도 괜찮았습니다. 다음에 만나도 또 가고 싶을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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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2/01 22:30

      안그래도 가즈랑님이 주인공인 글이라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 했었는데, 늦지 않게 찾아주셨네요. ㅎㅎ

  7. JNine 2008/12/02 01:33

    좋아하는 드라마 이야기가 있어서 들렀습니다. ㅎㅎ
    24시는 시즌 6의 10화 근처까지 봤는데...시즌 5 이후로 잭바우어 형님을 의심하지 말지어다!!! 가 되어버리니 긴장감이 좀 하지만 일단 시즌 시작하면 말 그대로 24시간 동안 꼼짝마라이기 때문에 조심해서 시작해하는 드라마

    로스트는 제이제이씨의 연출을 쫌 좋아해서 간혹 뭥미(?)가 나와도 그냥 보고 있지요. 앨리어스도 시즌 3 넘어가면서 욕하면서 봤는데(끊지는 못함;;). 요즘은 사이비 과학은 무섭다 정도의 교훈을 주고 있는 프린지에 빠져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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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2/03 21:04

      제이나인(이렇게 한글로 호칭해되는지 모르겠네요. 혹 성함이 '재구'인가요? ^ ^; )님 반갑습니다.
      연달아 논평을 주셨고만요.

      제 경우엔 '로스트'가 '욕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경우였는데(이런 분들 많으셨겠지만요), 여전히 전체적인 주제의 디자인이 구성되었다는 믿음이랄까, 신뢰는 전혀 생기지 않지만, 뭐랄까 정말 본문에 쓴 것 처럼 질적으로 비약해버리는 것 같습니다.

      저도 잭 형님의 굉장한 펜입니다. ㅎ
      여전히 미국식 영웅의 관성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물형은 아니지만...
      뭐랄까 오이디푸스왕과 햄릿의 액션 히어로 버전이랄까...
      ( http://kino21.com/63 )

    • JNine 2008/12/03 23:19

      네...제이나인이라고 쓰시면 됩니다. ㅎㅎ
      이름은 끝에만 맞습니다요. 따로 쓰던 아이디와 닉네임이 있었지만 티스토리 오면서 모두 사용중이기에

      로스트는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때
      http://gall.dcinside.com/list.php?id=lo ··· page%3D1 를 보고서 끝까지 볼만 하겠군...혹시 108화로 끝낼 생각이려나? ㅎㅎ
      로 돌아섰다는...

      잭이라는 이름이 주는 강인함 (제이제이씨의 첩보드라마 앨리어스에서도 여주인공 시드니의 아버지 이름이 잭...)이 마음에 들더라는...이 아저씨 사건 맡으면 화장실도 한 번 안가신다는OTL (장면 전환할 때 가려나요;;)

    • 민노씨 2008/12/03 23:46

      링크로 소개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 )

      대단히 흥미로운 글이네요. +_+;;;
      다만 저는 그 과학적인 인과율에 대한 불만 때문에 로스트가 불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고, 그래서 그런 과학적인 인과율에 대한 설명들 때문에 로스트에 대해 흥미가 생긴 것은 아니고요...;;;

      제이제이씨의 밑밥 드라마가 갖는 그 끝없는 밑밥이 실은 삶에 대한 어떤 모티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그 수간부터 로스트라는 천재적인 밑밥의 대명사가 문득 철학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의 에피소드는 최악이긴 하지만요.
      갠적으론 데스몬드의 에피소드들이 역시나 흥미롭긴 합니다. ㅎㅎ

    • JNine 2008/12/04 12:20

      데스몬드 에피는 로스트 에피가운데 최고라고 할만 하죠. 아이디어도, 연출도, 떡밥도.

    • 민노씨 2008/12/04 21:38

      데스몬드의 전화(?) 에피소드 이후로 로스트가 그냥 '미끼'만은 아니구나... 뭐, 이런 강한 호감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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