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바나나의 글을 읽고..
그냥 묻을까 싶었던 글을 이어서 쓴다.


1. 연예인의 죽음, 더욱이 그 방식이 자살이라면 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당연하다. 그것도 한 시대를 풍미한 수퍼스타의 죽음이니 말해서 뭐하나. 이 관심은 당연하고, 이것은 '대중의 정당한 관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보도하는 것 역시 자연스런 저널리즘 행위다. 나는 블로기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2. 그런데 여기에 흔히 죄의식이 동반한다. 뭔가 심리적인 장애를 느낀다. 그것은 사회적인, 문화적인 압력이다. 죽음에 대해 경건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사회의 동의가 그것이다. 이런 사회심리적인 환경 속에서 '스타의 자살'은 어쩔 수 없는 양가적 반응을 낳는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그건 말할 것도 없이 다음과 같은 마음이다.

ㄱ. (독자의 입장에선) 궁금하다. (블로거의 입장에선) 쓰고 싶다.
ㄴ. 고인과 유족을 위해 가급적 신경 끄는게 고인과 유족을 위한 예의다. 나라도 귀 닫고, 입 다물자. (이는 특히나 우리나라 저널리즘의 만연한 선정주의 환경에서 더욱 그렇다)


3. 그런데 스타라는 '사회적 공인'은 그 죽음 마저 강한 사회성을 갖기 마련이다. 공인의 행위가 갖는 상징의 크기 때문이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위가 갖는 상징의 크기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거기에 안재환의 자살이라는 맥락 속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은 더 커다란 상징(충격과 경악)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고인과 유족을 위한 마땅한 예의로서의 존중(이것은 주로 '침묵'으로 표현된다)은 '사회적 공인'으로서의 스타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이것은 주로 '싸구려 추리극'으로 표현된다)과 대개 충돌한다. 좀 잔인한 말이지만, 이것이 죽어도 죽지 못하는 이른바 상대적인 '불멸'을 얻은 사람들(과 그들의 유족)이 받아들여야 운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죽음에 대해 경건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회적, 문화적 합의와 세속적인 호기심으로서의 대중의 관심이 정당하다는 그 양자는 어쩔 수 없이 사회적인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특히나 사회적인 의미 소통의 매개로서 언론에게는 더더욱 이런 '균형'이 요구된다(이는 새로운 미디어로서의 블로그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살 보도 권고기준' 따위의 권고안이 가이드라인으로 존재하는 거다.


4. 자살 보도 권고기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찬찬히 음미할 만한 지적들이다.

언론은 자살에 대한 보도에서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언론의 자살 보도 방식은 자살에 영향을 미칩니다. 자살 의도를 가진 사람이 모두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아니며, 자살 보도가 그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자살 보도는 사람들이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자살을 고려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자살이 언론의 정당한 보도 대상이지만, 언론은 자살 보도가 청소년을 비롯한 공중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충분한 예민성과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언론인들이 자살에 대한 보도에서 아래의 권고기준을 지켜주실 것을 권고합니다.

1. 언론은 자살 보도에서 자살자와 그 유족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만, 중요한 인물의 자살과 같은 공공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건이 아닌 경우에는 자살에 대한 보도를 자제해야 합니다.

2. 언론은 자살자의 이름과 사진, 자살 장소 및 자살 방법, 자살까지의 자세한 경위를 묘사하지 않아야

3. 언론은 충분하지 않은 정보로 자살동기를 판단하는 보도를 하거나, 자살 동기를 단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됩니다.

4. 언론은 자살을 영웅시 혹은 미화하거나 삶의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오해하도록 보도해서는 곤란합니다.

5. 언론이 자살 현상에 대해 보도할 때에는 확실한 자료와 출처를 인용하며,통계 수치는 주의 깊고 정확하게 해석해야 하고, 충분한 근거 없이 일반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6. 언론은 자살 사건의 보도 여부, 편집, 보도 방식과 보도 내용은 유일하게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입각해서 결정하며, 흥미를 유발하거나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자살 사건을 다루어서는 안됩니다.


- 출처 : 자살 보도 권고기준



 
5. 까뮈에게 자살은 철학의 제1명제였다. 그래서 인간이 가장 먼저, 가장 최후까지 고민하고, 성찰해야 하는 화두란 세상이 정말 스스로에게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에밀 뒤르켐은 자살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자살론'에서 이야기한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까뮈를 굳이 빌지 않더라도 '자살'은 우리의 삶을 위해 성찰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는 화두다. 그런 차원에서 자살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만으로 죄의식을 불러올 필요는 없다(물론 그것은 자연스럽긴 하다). 하지만 자살은 개별적 존재의 존재론의 차원에서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뒤르켐의 지적처럼 강한 '사회성'을 갖는다. 

위 '자살 보도 권고'안에서 가장 먼저 예시하는 것처럼, "언론의 자살 보도 방식은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 '언론의 자살 보도' 그 자체가 사회적인 (외부) 사실로서 인간 내면에 투사되기 때문이다. 병원의 연못이라는 '객관적인 외부의 물질'이 자살에 직접적인 계기를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뒤르켕).

어떤 스타의 자살를 통해 우리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것이 안타깝고, 슬픈 것이긴 하지만 그 자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상처를, 결국은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그저 침묵만 지키는 것이 고인에 대한, 유족에 대한 예의인 것은 아니다. 그 죽음을 통해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사회를 우리 문화와 제도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가치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거다. 그것이 우리가 때론 증오와 질투와 시기를 보냈던, 하지만 무엇보다 큰 애정을 보냈던 그 스타의 죽음을 얻는 마지막 슬픈 선물이다.


7. 최진실 자살이 갖는 사회적인 파장, 그 좀더 현실적인 문제는 찌라시즘과 악플 문제,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인터넷정책이다. 너바나나는 이를 지적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인터넷(억압)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로 이 사건이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공감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 사건을 악용할 소지가 크다.

정말 경솔하고, 폭력적이기 짝이 없는 악플은 물론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그 저속한 현상들은 문화의 힘으로, 좀더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의 힘으로 사라져야한다. 그것이 일방적인 검열적 억압정책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 위험한 공권력 친화적 발상이다.

더욱이 어떤 스타의 자살이 그 '악플' 때문이라고 공격하는 고귀한 저널리즘의 자기 모순적 행태는 역겨움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언론의 선정주의적 보도행태는 어떤 의미에서는 악플을 자라게 하는("악플 호객행위") 숙주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연예 찌라시즘의 도를 지나친 선정주의적인 싸구려 추리극은 오히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좀더 비판받아 마땅하다. 악플러를 논하기 전에 자신의 행태를 스스로 되돌아보는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테다.

이런 차원에서는 위에 언급한 '자살보도 권고 기준'에 부합하는 보도행위를 보여준 언론사들이 과연 얼마나 되지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저널리즘은 한 스타의 죽음이 갖는 사회적인 의미를 '싸구려 추리극'으로 추락시키고, 자신들의 자극적인 뉴스로 가공해, 그것을 의미없는 피상적인 호기심 상품으로 확대재생산했을 뿐이다. 그리고 더불어 짐짓 고귀한 양, 엄숙한 척 하며 일부 철없는 네티즌들의 악성 댓글을 사건의 원흉으로, 자신들의 '희생양'으로 몰고 간다.

희생양 제의는 한 사회의 유지와 존속, 그리고 그 사회의 지배적인 권력이 스스로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행위다(르네 지라르).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그 권력의 공모자인 (지배적) 담론권력이 가담한다. 스스로의 원죄는 까맣게 잊는다. 그리고, 손쉽고 만만하며, 가시적인 악(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악플 새디스트')을 악당으로 만들어 그 무찔러야 한다고 선동한다. 자신을 숙주삼아 자라는 자신의 '자식들'을 스스로 처단해야 한다고 선동함으로써 정의의 수호자를 자칭하게 되는거다. 이건 명백하게 근친살해의 폐륜적 의식이다. 그렇게 사회의 정화를 명분 삼아(마치 전두환처럼!)굿판을 벌인다. 최진실 자살이 가장 섬뜩하게, 의미없이 '소비'되고, '재생산' 되는 과정은 아마도 이럴 것이다.

고인을 위해서라도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악플 새디스트 때려잡는 살풀이 굿판이 고인의 유지는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좀더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회,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는 사회를 고인은 원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진실씨, 하늘나라에서는 늘 따뜻하고, 평온하시길...



추.
이런 안타까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김현의 지적.
이건 내 자신이 처량해지면 스스로에게 종종 들려주는 말이기도 하다.


자살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
살아서 별별 더러운 꼴을 다 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삶이니까.
- 김현




* 발아점
익명이 왜? (너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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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연예인이 뭐길래

    Tracked from Delusion Laboratory™ 2008/10/04 10:53 del.

    1. 문희준은 악플의 대명사였다. 한데 그는 갖은 악플에 시달리다가 군대를 다녀온 이후로는 그 후광 효과와 김구라 따위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한 동정까지 얻으며 현재는 예전의 악몽을 상당 부분 털어냈다. 재밌는 점은 그의 음악은 여전히 '졸구리다'는 사실이다. 그는 음악인이고, 음악인이라면 음악으로 평가받아야 할진데 그는 변함없이 구린 음악을 가지고도 이제는 '그냥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말까지도 듣고 있다. 애초에 그에 대한 비판은 없었던 걸지도...

  2. Subject : 대한민국 인터넷

    Tracked from 이야기하듯, 살아가듯 2008/10/04 13:23 del.

    현실계와 이상계의 혼란속에 어느센가 한 곳에서 섞이고 섞여 환상계가 되어가고 있는듯 하다. 멍청이들아 진짜 환상계처럼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곳이 아니야 이곳은. 악플이 사람죽였다는 기사내보내고, 악플러들때문에 분통터졌다는 기사 내보내기전에 트래픽이 인터넷의 모든것이라는 착각속에 빠져 자극성 보도문만 내던지는 기자들부터 좀 어떻게 하자. ▶◀ 최진실씨 하늘에서는 행복하시길

  3. Subject : '최진실 법'에 대한 한 중앙일간지 기자의 의견에 대해..

    Tracked from 펄의 Feelings... 2008/10/05 18:16 del.

    가급적 최진실씨의 죽음과 관련한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 중학생 때 최씨의 사진을 책받침이나 연습장 표지로 사용했을 정도로 우리 사이에 그가 인기 있었기에, 이후로도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인기를 이어 오면서 톱스타임에도 마치 우리 옆에서 살던 이웃처럼 친근하게 느껴져 왔기에, 너무나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또 이슈에 '묻어가면서' 트래픽을 올리려는 의도가 보이는 몇몇 포스팅에 불쾌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급적 송원섭 기자의 글에..

  4. Subject : '최진실법'을 보며 '청소년보호법'이 떠오르다.

    Tracked from Skyjet의 매일매일의 감성일기 2008/10/05 21:02 del.

    1996년, YS정부는 역대 최악의 법을 통과했드랬죠. 그 법의 이름은 '청소년 보호법'. 물론 당시까지 청소년을 위해서 제정된 법은 전무해서, 관련 법의 제정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일명 '청소년에 유해한 매체'를 판매를 금지시키거나 어렵게 만들고, 창작자를 구속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당시 '일진회' 멤버들은 하나같이 잡혀가면 '폭력 만화를 보고서' 폭력 써클을 결성했다고 주장, 사람들은 전부 모든 문제가, 학..

  5. Subject : 익명이 왜?

    Tracked from 너바나나♡아홉그루 2008/10/06 11:49 del.

    연예인 자살사건만 나오면 터지는 인터넷 실명제 얘기와 악플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격은 짜증이 나기 짝이 없다. 연예인이건 누구건 간에 허위사실이나 악성 음해 등으로 악플을 받는다면 물론, 괴롭고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근디 여태 자살한 연예인 중에 악플 때문에 죽었다는 정확한 사실이 있었나? 우울증=악플이라는 말도 안 되는 등호로 몰아갔던 것이 아니냔 말이다.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은 인터넷이 있기 전부터...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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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히치하이커 2008/10/04 11:16

    4번이 심히 문제라고 봅니다. 그렇잖아도 이번 학기에 스트레스에 관한 심리학 수업을 듣고 있는데, 안재환씨 사건이 터졌을 때 선생이 지적하더군요. 언론에서 자살을 그런 식으로, 특히 방법이나 상황까지 자세히 묘사해 가며 보도해선 절대 안 된다고. 자살에는 전염성이 있다고 보는 게 중론이라면서.

    하여간 세상 참 구리하네요. 그치만 살아내긴 해야겠고.

    민노씨도 기운내시길!!
    (요즘 상태가 영 아니라고 하셨던데...)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8/10/07 19:23

      이 글에 있는 댓글을 깜빡했군요. ^ ^;;
      하이커님은 요즘 좀 살만하신지요? ㅎㅎ
      사는 곳도 멀지 않은데 언제 맥주라도 근처에서 한잔 하죠. : )

  2. 비밀방문자 2008/10/04 16:40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8/10/07 19:24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선 ***님의 견해와는 정반대에 가까운 입장이라서요. ^ ^;

  3. 너바나나 2008/10/05 23:35

    물론 무조건 엄숙하게 아무말도 하지 말자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좀 너무하더라구요. 창의적인 글과 담론들이 오갈 수 있을건디 찌라시 연예면에서 본 듯한, 장식장에 누가 왔냐느니에 글 따위로 트래픽을 목표로 한 거이 뻔히 보여서요. 더 가관은 그러구선 끝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니 어쩌니 하는디 화가 나더군요. 근디 저 또한 그 핑계로 뻔한 글을 쓰게 되어서리 기분이 드럽고 미안하더라구요.

    답답해서 생략하고 표현력이 딸려서 생각만 한 것을 이리 잘 풀어주셔서리 고맙구만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8/10/07 19:25

      이게 참 애매모호한 경계에 걸쳐 있으면서, 또 관점이나 입장에 따라 달리 판단되는 여지가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 ㅡ.ㅡ;;

  4. 민노씨 2008/10/20 17:40

    * 사소한 추고.

    perm. |  mod/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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