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이미지 매체다.
신문은 시각 이미지와 즉각적인 시각 이미지에 준하는 활자이미지(이것은 주로 제목, 소제목인데)들의 조합을 통해, 단 일분 안에, 아니 불과 휙~하고 훑어보는 그 수십초 안에 이미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거의 모두 해버린다. 신문은 긴 이야기나 토론을 싫어하고(대부분의 신문들은 긴 토론이나 이야기를 할 만한 능력도 안되고), 대화하는 건 더더욱 싫어한다. 대한민국 저널리즘이 짝사랑하는 건 무식한 대중에 대한 선동과 연설, 그리고 그들의 이성이 아니라 감정을 자극하고, 불태울 드라마다.

신문은 당신의 관점을 결정하려한다.
무식한 독자, 가르쳐야 하는 독자들이 어떤 관점으로 '그것'을 보는지에 관심이 많다. 그 관점에 영향을 미치려 늘 노심초사다.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악마의 시점이든, 주인공의 시점이든, 악랄한 독재자의 시점이든, 범죄자의 시점이든, 천사의 시점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나를 보는 이 바보들(독자들)을 그렇게 바라보게 만들었을 때 그것이 '나'(미디어)에게 이익이 되는가, 나와 내 고객(광고주인 자본권력으로서의 기업과 흔히 정치권력)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저널미장센의 가장 천박한 단계이며, 우리나라 저널리즘에서는 일상화된 반저널리즘의 풍경이다.

이 글은 2008년 5월 31일과 6월 1일의 촛불시위를 통과한 그 다음 날, 그러니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의 소식을 전해주는 어떤 신문들의 일면에 관한 이야기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일면에 실린 어떤 사진에 관한 이야기다.

그 5월 31일과 6월 1일에는 경찰의 물대포가 시민들의 촛불과 함께 춤췄다.
거기에 흥겨운 어떤 군홧발은 무기 하나 없이, 어떤 저항할 기색도 없이, 그저 땅바닥에 쓰러진 어떤 여학생 얼굴을 가볍게 짓밟았다. 그 경찰새끼를 죽이고 싶다고 내가 느끼든, 느끼지 않든, 그게 나이든 나이지 않든,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우리는 대추리 싸움에서 그렇게 그 늙고 힘없는 늙은이들이 벽을 치며 메마른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도 여전히 무심하고 냉랭한 '착한 국민'들이었으니까. 포스코에서 노동자가 죽어나가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람, 우리는 그렇게 한없이 '착한 국민'들이었다.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이 하나 둘 시름시름, 병에 걸려 세상을 등져도 나와는 너무 멀리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모처럼 촛불을 들고 광장에 있었고, 거기에서 모처럼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상력, 우리가 함께 일수도 있겠다는 소망, 그래서 사회라는 관념이 아니라, 우리라는 실체로서의 공동체적 상상력을 맘껏 스스로 꿈꿀 수 있는 그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니 우리가 그 다음 날 신문 일면에 원하는 건 이런 거다.

"내 옆에 있던 어떤 전경 새끼가 저기에 쓰러져있던 어떤 여학생 얼굴을 짓밟는 사진을 보여달란 말이야." 

"비폭력을 외치는 우리들을 향해 물대포 쏘는 그 야만의 증거를 보여달란 말이다!!"

이건 촛불든 시민들의 관점이다. 이명박 더이상 견디기 힘들어서 참다 참다 거리에 나온 소박한 시민들의 관점이며, 제발 뭐라도 좀 해봐야하지 않겠니라는, 박찬희 교수와 문화부 홍보지원국 공무원들이 보기엔 '무식한 대중과 찌질한 시민들'의 관점이다. 나는 이게 민주주의의 관점에 (좀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저 무식한 시민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오."
"저 무식한 대중들이 감정에 취해 쓰레기 마구 버리는 그런 모습 보여주오"

이게 소위 '종이 유사의 어떤 것'의 관점, 혹은 사이비 엘리트주의의 관점이다.
시민혁명 수준의 저항권을 국민의 다수가 실력행사하는 와중에 쓰레기 타령하는 놀라운 '균형감각'(가령 정선희가 의식있는 척하는 발언이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 일탈적인 균형감각에 대해선 애도를 표하는 바다)에 대해선 우리는 도무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말문이 막히는 거다.

물론 세상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고, 어떤 촛불든 어떤 개인의 내면에서조차 그 작은 우주는 온갖 욕망과 소망으로 서로 싸우고, 서로 투쟁하며, 과연 내 행위에 대해 내가 얼마나 알고 있나, 느끼고 있나... 헷갈리기도 하다.

선량한 자들의 무관심은 악한 자들의 폭력만큼이나 해롭고, 무서운 거다.
하지만 선량한 자들의 지나친 도취는 악한 자들의 침묵만큼이나 두렵다.

그건 지속 가능한, 계속해서 끊임없이, 그렇게 꺼지지 않을 촛불이어야 하니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하니까...

역시나 헛소리가 너무 길었다.
어제는 글까지 날려먹고...
원래 어제 아침에 쓰려던 글을 이제야 이어서 쓴다.

아무튼 두 개의 세계가 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진실에 닿아 있는, 그 진실은 각자에게는 너무도 간절하게 진실이지만, 서로에게는 너무도 혐오스러운 기만인, 그런 두 개의 진실이 있다. 나는 물론 더럽게 재수없고, 구질구질하고, 이랬다 저랬다 하며,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너무 사랑스런 촛불 편에 서련다. 게네들이 나라서... 이게 그 무시무시한 당파성이란 건데, 나는 그게 좋다. 왜냐하면 내가 그 구질구질하고, 가진 것 없고, 허공에 헛발질하는 그 '우리'라서다. 사이비 엘리트주의의 야만보다는 그게 차라리 나으니까. 그게 오히려 폼나고, 멋지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한겨레 (2008. 6. 2. 일면)
제목 : 물대포 안피한다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31일 밤 촛불집회 마치고 거리행진에 나선 시민·학생들이 1일 새벽 청와대로 통하는 삼청동 들머리에서 미국산 쇠고기 고시 철회와 재협상, 이명박 대통령 퇴진 등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하다 강제해산에 나선 경찰이 쏘는 물대포를 맞으며 버티고 있다. 김정효 기자

물론 한겨레 마음 이해하긴 하지만, 물대포 피하지 말라고까지 선동(여기에 어떤 감정적인 반감도 없다)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하다. 물대포 피하라고 말하는 한겨레였으면 좋겠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조선일보 (2006. 6. 2. 일면)


이런 후진 사진에 도메인까지 정중앙에 박아 넣는 조선일보의 센스는 뭐랄까, 좀 짜증스럽다. 아직 사태파악 안되고 있나보다. 물론 대중들이란게 가공할만한 건망증(황우석 파동은 솔직히 좀 그렇다)과 얼마든지 그 의식을 조작가능한 멍청이들의 총합에 불과하다고 찰떡같이 믿고 있나보다. 게다가 18대 국회도 개원했겠다, 이명박은 신문법 개정을 공약으로 약속했겠다, 이제 바야흐로 KBS2와 MBC 민영화 시나리오도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겠다... 몇 번이나 강조했지만, 이 자들은 지금 믿는 구석이 있다. 미친소에 쏟는 관심만큼 미친 말과 글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지속가능한 저항의 방법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나는 그게 블로그라면 좋겠다, 정말 보잘 것 없고, 아직은 너무도 미약하지만....

설마 이 조선일보 일면 사진이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이렇게 협동심이 대단하다우, 이런 건 아니겠지? 혹은 운동회 줄다리기를 연상시켜서 훈훈하게 이 대열에 합류하시라니깐여~! 이런 건 아닐테지... (물론 아니다.) 식상하게 설명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무식한 대중들은 이렇게 폭력적이라니깐여~! 를 강조하고 싶은데, 솔직히 그런 자료들이 별로 없어서 이렇게 버스랑 줄다리기 하는 모습이라도 일면에 실은거다. 그게 조선일보다.

조선닷컴에서 촛불시위에 관한 화보를 검색해봐라.
뉴시스에서 제공받은 시위 현장의 쓰레기에 대한 다양한 시선들을 만날 수 있을거다. (물론 직접 이런 허접한 사진들을 확인하기 위해 시간낭비하고, 조선닷컴 트래픽 올려주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한데... 그 허접함을 확인하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들긴 한다).

두 개의 사진은, 두 개의 세계를 상징한다.
물론 그 두 개의 세계는 궁극적으로 만나야 하지만, 이런 허접한 수준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깊은 간극이 그 두 개의 세계 사이에는 있다.



* 관련 추천글 및 팟캐스트
제가 여러분의 배후가 되어드리겠습니다 (블루룸)
촛불문화제 vs. 거리시위 (새드개그맨) : 나는 전략적인 차원에서는 '문화제'를 찬성하지만, 마음으로는 '시위'를 찬성한다. 그게 내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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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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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hain 2008/06/04 01:37

    시간이 벌써 6월 4일이군요..
    어떤 의미로는 시간이 참 안가기도 하고..
    (주중에는 바쁘니까..) 어떤 의미로는 시간이 참 빠르기도 합니다.
    백일이 백년 같다는 표현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다가올 만큼 그렇네요..
    지금은 약간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만
    초반 촛불집회 때 초기 진압이 벌어진 그 날,
    그럴 줄 알고는 있었지만 '국민에 대한 훈계'로 도배된 기사를 보니 어이가 없긴 한참 없더군요.. 올인코리아도 아니고 코나스넷도 아니고 반공닷컴도 아닌데 그런 글이 올라오다니요..
    자주 가던 디시인사이드 기타 음식갤엔 모금 둘째 날에 1,800 만원이 음식 후원금으로 모였는데.. 배후 세력이 어쩌고 저쩌고.. (자발적 성금이 하루 만에 그 정도가 되긴 어렵죠).. 이미 훈계를 들을 사람은 속어로 '꼰대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민영화가 염려스러운 MBC의 전면전이 안쓰럽기도 하고, 한겨례나 경향의 선전이 내심 고맙기도 합니다만.. 국민이 감시하지 않는 한 언론은 항상 힘을 따라 귀를 쫑긋하겠죠.. 현장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금요일이 어서 왔으면 좋겠네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8/06/04 02:24

      너무 뻔한 글이라서 댓글이 없는 중에 shain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건네주시니 참 반갑습니다. 물론 이런 글을 쓰는 마음은 한편으론 여전히 찹잡하지만요.

      한겨레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경향은 체험치가 별로 크지 못해서요, 관성이 작용해서 경향쪽 기사도 살펴야지 살펴야지 하면서... 마음처럼 살피지는 못하게 되네요... 꽤 좋은 기사, 분명한 관점들이 광우병 파동 와중에 실리고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말이죠) 솔직히 여전한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물론 한겨레에 대해 제가 개인적으로 좀더 크게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만요(이것도 관성이네요... : )

      아무튼 오는 금요일에 연락주시면 참 많이 반가울 것 같습니다.
      연락주세요. ^ ^

  2. Jinny 2008/06/05 13:36

    조선일보의 의도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저는 나름대로 두번째 사진이 마음에 드는데요? :) 조선일보 사진을 보고 든 생각은 1) 진짜 다양한 사람들이 나왔구나 2) 정말 일반 시민들인데? 3) 위험한 거 들고 나온 사람들 없구나 4) 나름 질서정연한데? 5) 정말 평화적으로 시위하긴 하는구나. 버스를 손상시키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끌어서 옮기다니. 물대포 맞는 모습은 좀 마음이 아파서 두번째 사진을 보니 좀 재밌고 흐뭇하고(?) 그래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8/06/05 16:37

      Jinny님께 연거푸 논평을 받으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댓글창이 썰렁해서 shain님과 jinny님께서 연대의식을 발휘하신 것 같지만요. ㅎㅎ

      저도 지니님 댓글 덕분에 므훗하네요.. : )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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