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단상 - 2. 미인과 권력, 그리고 스펀지

2008/04/0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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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몇 주전(3월 15.16일자) 조선일보 토-일요일 판에 실린 조경란의 서평에서 출발한 글이다. 그 서평이 대단해서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물론 아니고, 그 글이 대단히 후졌기 때문에 비판해야겠다는 것도 물론 아니며, 그냥 내가 느낀 그 글의 '자기배반'에 대해 쓰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서평이란 건 도대체 뭔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건 기약은 없지만, 세 번째 글로 써야겠다. 일단 조경란 글의 자기배반, 자기모순에 대해 짧게 쓴다.

이 글은 '책 단상 - 1. 책 분류법 혹은 독서법'에서 이어지는 글이다.


1. 아름다움과 권력, 그리고 과학 : 어떤 대단히 '논쟁적'인
[아름다움의 과학]이라는 잘 팔린 만한 책을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있는 조경란 서평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대개의 다른 순진한 책과 달리 이 책은 저자의 의학지식에 문화사적, 진화생물학적, 언어학적 그리고 뇌과학적 연구 성과가 더해져 육체적인 아름다움이 새로운 권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조경란)

그런데 내 보이기엔 엉뚱하게도 결론은 다음과 같다.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아름다움 그 자체를 알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칸트가 말한 '지식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인간이 불행한 건 본능적으로 자신을 남과 비교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이미 아는 사람,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조경란)
어이없이 '순진한' 혹은 좋게 표현해서 '상식적인' 결론이다.
여기에 칸트는 도무지 왜 등장하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그렇다.

조경란의 책 분류법(친절한, 순진한, 독발적인, 논쟁적인, 까다로운, 무뚝뚝한, 흥미로운)에 의한다면, "까다롭고, 도발적이며, 논쟁적인 책"(ㅡ.ㅡ;)이라고 평가한 책에 대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서평을 써버린 셈이다. 달리 말하자면, '아름다움'에 대한 상투적인 도덕적 진술에 대해 '순진하다'고 평가한 뒤에, 스스로 그런 상투적이고, 순진한 결론에 머문다.

그런데 더 순진하고, 게다가 따분하게 느껴지는 건 소개하고 있는 그 '도발적인, 논쟁적'이라는 책의 내용이다. "'아름다움'은 권력... 미인은 항상 승리한다"라는 표제기사로 설명(혹은 광고)되고 있는 그 책은 아무리 "의학지식에 문화사적, 진화생물학적, 언어학적 그리고 뇌과학적 연구 성과가 더해져" 있더라도 식상하다. 이게 그 책을 읽지 않은 무식의 소치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서평을 통해 느끼기엔 그렇다.

미인은 승리한다... ㅡ.ㅡ;

아름다움은 권력이다.... ㅡ.ㅡ;
이걸 누가 모르나. 이건 KBS (교양빙자 오락) 프로그램 [스펀지]도 아는 내용이다.

2. [스펀지]도 아는 진실
언젠가 스펀지에서 황당한 실험을 했다. 이 실험이 위 [아름다움의 과학]이란 책에 영감받아 행한 실험인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방송 시점을 보건대, 이 책이 우리나라에 출간되기 한참 전에 그 실험을 한 건 확실한 것 같다.

이쁜 여자 A.
그다지 이쁘지 않은 여자 B.
(이 실험은 정말 그 실험에 참여한 여성, 물론 B에게는 그야말로 '야만적인' 실험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

ㄱ. 사람들을 상대로 한 실험
A와 B가 길거리에  전단지를 나눠준다. 결과는 당신이 예상하는 바로 그대로다. A는 B가 아직도 열심히 돌리고 있는 전단지를 가뿐하게 털어버린다.

ㄴ. 동물을 상대로 한 실험 (이 결과가 개인적으로 좀 놀라웠다)
A와 B가 나란히 각 동물들이 좋아하는 먹이를 들고 동물들을 유혹한다. 물론 A와 B가 들고 있는 먹이는 같다. 결과는? 이 놈의 짐승들도 이쁜 건 알아서, 이쁜 A에게 몰린다. 어떤 동물에게 실험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방구나 뽕이나.. ㅡ.ㅡ;

3. 자기모순의 귀결 : 장식적 글쓰기의 공허함
아름다움은 권력이다. 그리고 이건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이게 현대인에게 대단히 새로운 진실이라거나, 혹은 무슨 대단한 실험을 통해, 어떤 놀랄만한 과학적 실증을 통해 '밝혀진' 진실이라는 생각은, 개인적으론, 전혀 들지 않는다. 조경란은 서평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이런 까다로운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아름다움을 향한 광기가 왜 나쁜 것인가? 하는. '아름다움의 신화'를 쓴 미국 작가 나오미 울프는 '이제까지 여성들이 얻어낸 것, 아이, 부엌, 여성적인 것에 대한 집착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자 아름다움의 신화가 그들을 구속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 세계의 여성을 아름다움에 집착하게 하는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그러면서 '전지현'을 예로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전지현의 "주근깨가 고스란히 보이는 맨 얼굴로 인터뷰한 사진"은 "'나는 완벽해 보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보이고 싶어요'라는 듯 느껴졌다"
참, 어처구니 없다. ㅡ.ㅡ; 예를 들 사람이 없어서 전지현을 예로 드나. 전지현은 맨얼굴이 더 이쁘다는 CF 모델(개인적으론 김태희 전지현은 배우라기 보단 CF 모델인데)아닌가? 전지현은 그렇다치자. "전 세계의 여성을 아름다움에 집착하게 하는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라는, 그래도 흥미를 느낄 만한 질문에 대해  조경란은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써야 한다면 여기에 대해 좀더 썼다면 흥미로웠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선 어떤 대답도 없다. 그렇다고 책을 읽는다고 이에 대한 해답이나 혹은 해답에 대한 상상력을  얻을 것 같지도 않다. 이게 뭔가, 허탈하게시리. (여기에 대해선 따로 글을 쓰고 싶다. 물론 언제 쓸지 모르지만).

이 '논쟁적인 책의 결론'은 "아름다움은 확실히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자신 스스로가 아름답고다고 느끼는 경우에만 그렇다고 한다"란다. 참 논쟁적인 결론이다.(아놔, 장난하냐?) ㅡ.ㅡ;

대체로 대단히 논쟁적인, 무슨 대단히 독창적인 관점과 놀라운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글의 결론은 의외로 허무할 수가 있다. 그 허무의 풍경은 두 가지다. 그 결론이 상식에 바탕하기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미처 느끼지 못했던 어떤 근원적인 아이디어들, 어떤 원형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능동적인 허무, 공감이 그 밑바닥에 닿아 있는 허무감일 수 있다는 거다.

반면 뻔한 이야기를 놀랄만한 둔갑술로 위장하고, 치장해서 생겨나는 감정은 수동적인 허무, 즉, 공허함이다. 그러니 뻔한 이야기를 놀랄만한 둔갑술로 포장한 글, 그런 이야기들에 대해선, 새로운 상상력이나 머리와 가슴을 모두 채우는 만족감(그로 인해 생겨나는 존재론적 허무감)이 아닌, 배반감을 느끼게 된다.

[아름다운의 과학]이란 책은 차치하고, 조경란의 서평은 전형적으로 이런 '둔갑술'에 바탕하고 있다. 속류 도덕론에 바탕한 순진한 이야기 밖에는 할 이야기가 없는데, 그걸 세련된 양, 혹은 굉장히 도발적인 양 포장하려니 결국 그 바닥이 드러나는 셈이다. ㅡ.ㅡ; 여기에는 어떤 고민어린 자기 체험의 투사도 없고, 그렇다고 관념의 치열한 노동이 담겨진 흔적도 없다. 그냥 되는대로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평균적인 저널 서평보다는 꽤 나은 서평이긴 하지만.

대충 잘 팔리는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이름값(솔직히 조경란에 대해 나는 아는 바 없지만)의 관성에 의지해서, 약간 감각적인 언어들, 혹은 어떤 상투적 권위의 표시들(가령 '의학지식, 문화사적, 진화생물학적, 언어학적, 그리고 뇌과학적 운운이나 '칸트의 지식의 아름다움' 따위의 인용... 이게 도무지 이 서평에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 그저 과시적, 장식적 수사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로 그 공허함을 치장할 뿐이다.


* 관련글
책 단상 - 1. 책 분류법 혹은 독서법'



추.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 스스로도, 공허한 글을 쓰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싶은 반성이 밀려오긴 한다. 그냥 되는대로, 혹은 어떤 매너리즘에 빠져 왜 쓰는지도 모르면서 쓰는 글들... 그래도 조경란은 조선일보라는 반역사적 저질매체에 기고한 대가로 빠방하게 원고료 타먹었을거 아닌가... 란 생각이 더불어 변명처럼 떠오른다. ㅡ.ㅡ;

아, 문득, 떠오른, 총선이 정말 코앞이다.
심상정, 노회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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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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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정일 2008/04/07 13:01

    이쁜 아가씨와 덜 이쁜 아가씨(?)의 전단 실험은 가히 폭력적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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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4/07 17:34

      그러게요. 정말 제가 다 민망한 기분이 들더군요.
      암튼 정일님 덕분에 다시 무플 면했군요. ㅎ

  2. 그럭저럭 2008/04/07 18:20

    광고에 혹해서 살려고 했던 책인데 이 글 읽고 생각이 약간 변했군요.
    친구가 어찌되었건 산다 하니 빌려서 봐야할 듯 싶습니다.

    최근엔 미인은 고사하고 벗는쪽에 치중하는 방송이 많아서 민망할때가 많습니다.

    ......군인이다보니 주변에선 환호하는 분위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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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4/08 02:54

      군인이시군요. : )
      일단 빌려서 보시고, 거듭 읽을만한 책이라고 판단하시면 그 때 구입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

      추.
      스스로 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하는 차원에서 벗는 느낌이면 좋을텐데..
      벗기고, 거기에 채색하고, 무슨 미끼처럼 사용하는거.. 그게 참 불만입니다.

  3. 히치하이커 2008/04/09 00:50

    전지현이 예쁘다는 데에 절대 동의할 수 없는 1인. (물론 노골적으로 말해 그런 처자가 같이 자자면 잘 용의는 있지만...단지 그 뿐.) 하는 짓 때문인지, 저런 인간에 왜 사람들이 열광하나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능.

    이게 왠 '뻘' 덧글이냐고 하셔도 좋습니다(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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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4/11 02:40

      저는 김태희에게 그런 비슷한 감정(왜 사람들은 김태희에 열광하나)을 느끼는데 말이죠. ㅎ

      총선 쇼크로 답글이 좀 늦었네요..
      잘 지내시죠?

  4. 가즈랑 2008/04/11 00:09

    어제부터 만든 스킨을 IE6에서 테스트해보려고 PC방에 와있어서 겸사겸사 답글 남깁니다. ^ ^;

    일단 책을 읽어본 게 아니라 저자의 주장을 잘못 이해할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습니다만...저는 여자(또는 남자)의 외모만 콕 찍어서 아름다움에 관한 주장을 편 것이 아니라면 어떤 면에선 수긍할 만한 면도 있다고 보거든요.

    이를테면, 요 며칠간 스킨 작업을 하면서, 끊임없이 수정하는 그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아름다움'이란 것에 집착하지 않았나 싶어요. 별거 아닌데 말이죠...아름다움이란 것에 대해 좀더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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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4/11 02:42

      새로운 스킨 만드셨나요?
      마실가봐야겠네요. : )

      저도 이 책을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책의 주장에 대체로 공감할 것 같다는 추정을 해봅니다. 제 글은 그 책의 주장과는 별론으로, 그 책이 뭔가 대단히 새로운 어떤 파격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고 설레발치는 서평(그 책의 주장도)이 좀 뜨아하달까.. 그런 것입니다. ^ ^

  5. blueroom 2008/04/11 23:07

    1. 로스쿨 인터뷰 마저 끝내죠. 연락 주세요.

    2. 사형제도 이야기에 답글을 어떻게 다는지를 몰라서... 영화는 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책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물론 제가 하는 말과 방향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금자씨"나, "세븐"이나, "데드맨 워킹"도 좋지요. 뭐, 사형제도보다 덜 자극적이면서 훨씬 중요한 문제들이 흐지부지 덮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도 공감이고요.

    3. 뭐, 상식이 아닌 것이 상식으로 둔갑하는 게 우리네 사는 세상이지요... (뭔가 본문과 관련된 답글을 쓰려고 억지로 짜낸 말. -_-;;;)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8/04/11 23:37

      *
      안그래도 연락드려야지... 하고 있었습니다. ^ ^;
      게으름이 너무 길어졌네요.

      블루룸님께 죄송스런 마음입니다.
      인터뷰하자고 졸라놓고, 사정이 어찌되었던 넋놓고 있었던 것 같아서 말이죠. ㅡ.ㅡ;
      블루룸님께서는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기셨는지 모르겠네요.
      블루룸님께서 일정을 잡아주시면 거기에 스케줄을 맞추겠습니다.
      제가 곧 메일 보낼게요.

      **
      오랜만에 글을 올리셔서, 반가운 마음에, 일단 미투로그에 단상을 기록했습니다.
      사형제도에 대해선 좀 정리해서 글을 쓰고 싶기도 한데..
      가능하면 인터뷰에서 사형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구요.


      ***
      적절한 논평이시네요.
      다만 억지로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 )

      추.
      정말 오랜만이네요.
      너무 반갑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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