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푸코, 사이드

2008/03/06 09:24
회의의 3대가로 불리는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의 영향은 지대한 것이어서, 현대 철학에 있어 이들 중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영향을 받지 않은 철학자는 없다고까지 이야기되는 것 같습니다(송두율, '포스트모더니즘, 독인가 보약인가' 중에서).

니체의 영향은 (평론가들의 분류방법인) 후기 구조주의 혹은 탈구조주의, 좀더 포괄적으론 포스트모더니즘에 있어 지배적이라고, 위 짧은 소논문에서 송두율은 말하고 있는데요. 푸코나 데리다의 '반인간주의' 혹은 '반이성주의' 에 대한 영향을 들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 이성을 극도로 회의하는 점에서 그 철학을 관통하는 본류적인 공통 분모를 찾는 것 같다는 거죠.

특히나 서구 지성사에 대한 비판적인 해체(?)를 시도하고 있는 점에서 위 니체, 푸코, 데리다는 공통점이 발견될 수 있다는 소박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물론 저는 직접 데리다를 읽은 바 없기에 이는 이차평론을 참조한 추론에 불과합니다).

여형사님께서도 익히 아시겠습니다만, 푸코의 '말과 사물'에서는 '인간의 죽음'을 선언하고 있고, 니체의 '짜라'에서는 '신의 죽음'을 선언하고 있는데요. 그 의미론적 연계, 혹은 연속성(진화?)을 그저 저널평론에서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다른 한편으론 푸코와 니체의 철학적 방법론이, 앞서도 짧게 언급했던, 인간의 이성적 구축물들이 어떻게 그 이성적 담론들을 생산하고, 그 생산을 배후에서 조정하는 권력과 관계 맺고 있는 것이며, 얼마나 우연적인, 하지만 동시에 계획적인 권력의 음모에 불과한 것인지, 또 그것이 인간을 어떻게 억압하고 있는지를 니체는 '예수'로 상징되는 사제적 권위에 대한 저항을 통해, 푸코는 감옥과 병원과 말들의 위계적 질서를 미시적으로 해체함으로써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런 '계보학적'인 방법론의 공통점을 통해 양자의 적자관계를 흥미적 요소(?)로 더더욱 강조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푸코가 니체의 적자라면, 물론 이런 흥미적 요소를 강조한 철학상의 영향이론은 그 철학자의 사상적 기원, 그 계보를 추적하는데는 도움을 주지만, 한 철학자의 그 광대한 우주를 그저 단편적이며, 추상적인 흥미적 요소로 파편화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런 우려를 충분히 인정하는 전제에서, 하지만 흥미적 요소를 그저 평안하게 인정하는 전제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푸코의 적자는 단연코 에드워드 사이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 이 글은 그저 이차 평론들의 기억을 짜깁기한 글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위 위대한 저자들의 책들을 깊이있게 숙독한 체험은 없음을 강조합니다. 물론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제외하구요. 푸코의 책들은 완독한 책이 한 권도 없고, 기타 니체의 저작들은, 거의 모든 책을 그저 단편적인 재밌는 구절만 거칠게 통독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들께서 이 글의 어설픔을 좀더 구체적으로 채워주시면 저도 여형사님의 호기심을 핑계로 좀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요. 어심탄회한 논평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 )




* (느슨한) 관련글
인간복제, 인간성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질문



* 발아점
광기의 역사, 미셸 푸코 (여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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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푸코에 대하여

    Tracked from www.Scolion.com 2008/03/10 00:14 del.

    우연히 검색도중에 재밋는 제목이 있어 클릭해 보니 익히 알던 분의 블로그에 있던 글이더군요. 니체, 푸코, 사이드 원 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필요한 것 같아 답변드립니다. 우선 푸코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제 기억으론 우리나라에 한창 텔미유행 지나가듯 90년대에 푸코바람이 불었지요. 그 당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철학계가 얼마나 얄팍한지 실감했습니다. 당장 원래의 글 광기의 역사, 미셸 푸코 (여형사) 이분이 읽고 계신 푸코의 책 광기의..

  2. Subject : [그린비 학술 심포지엄] 푸코 이후의 정치와 철학

    Tracked from 그린비출판사 2012/02/20 15:15 del.

    2010년 그린비 학술심포지엄 ‘알튀세르 효과’에 이어, 2012년에는 ‘푸코 이후의 정치와 철학’ 심포지엄이 개최됩니다. 푸코 심포지엄은 2010년부터 준비를 해왔는데요, 이번 푸코 심포지엄 역시 결과물이 책으로 만들어지게 될 예정입니다. 2월 그린비 블로그는 푸코 특집으로 포스팅 계획을 잡았으니~ 자주 방문해주셔요. ^^☞ ‘알튀세르 효과’ 심포지엄에서 책으로 만들어진 좋은 예 : 담당 편집자 인터뷰 영상푸코 심포지엄은 22일(수요일)과 23일...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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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형사 2008/03/06 17:09

    별도로 포스팅을 해주시다니 참 고맙습니다.

    1. 친구와도 이야기를 해보고 저도 생각을 해보고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푸코와 니체는 기존의 철학적인 방법론이나 형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고 결과물을 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나 싶어요.

    2. 다만 이렇게 엉성하게 정의하면 세상에 삐딱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 모두 니체의 후손이냐는 약간 어색한 결론이 내려지기도 합니다.

    3. 한편으로는 어짜피 비주류 철학자들에게 누가 누구의 후손이니 마니 하는 것은 주류의 방식을 억지로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야기 할수록 정리가 잘 안되네요 ^^; 아무튼 포스팅 감사해요~ ㅎㅎ

    덧. 니체의 경우 인간을 억압하는 기제로서의 기독교 또는 예수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가졌다는 것이 분명한 것 같은데, 다만 그런 틀 보다 좀더 큰 틀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요.

    무슨 말이냐면 종교 / 민족 / 사회 등도 같은 레벨의 것들이고 이런 것들이 모두 인간의 근원적인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그래서 이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저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 생각합니다.

    따라서 기독교 vs. 니체의 대립각을 부각할 경우 니체형님을 너무 좁게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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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3/10 18:56

      별말씀을요.
      여형사님 덕분에 포스팅하게 되서 제가 오히려 고마움을 전해야죠.
      물론 너무 엉성한 포스트이고, 질문에 대답하는 포스트라기 보다는, 그저 다시 또 궁금해하는 포스트에 불과하긴 하지만요. : )

      니체에 관한 여형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예전에 꽤 재밌게 읽었던 거의 유일한 니체에 관한 평론서인 [니체와 현대철학](강대석, 한길사)를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아, 그리고 더불어 [니체, 키에르케고르, 사르트르, 프로이트](정확한 책 제목은 아니구요)를 다뤘던 책(종로서적 출판)도 떠오릅니다. 세 명의 저자들이 쓴 책인데요. 이 책에서 말씀하신 '기독교 v. 니체'에 대한 구체적인 지적들이 그래도 '읽을 만한' 문장들로 정리되어 있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2. 더조은인상 2008/03/07 01:13

    작년에 말과사물을 알라딘에서 찾아보다 절판이라는 것을 보곤 조금은 놀라기도 했는데(90년대에 인문학 비스무레한 이야기를 할라치면 항상 등장하던 인물중에 하나가 푸코였지요...국내에 불을 당긴 사람은 80년대의 김현이기도 했지만..) 아마 푸코뿐만 아니라 비슷한 세대의 서구의 저명하고 성실한 철학자가 니체에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특정한 입장을 가질수는 있어도 외면한다는 것은 좀처럼 산정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자로서 데카르트의 애써 간접적인 방식의 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 직접적이고 정교한 레토릭과 더불어 시대정신과 상응한 부분이 니체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국내에서의 니체수용은 이풍진세상을 만났으니.. 하는 풍의 수용과 사생활과 관련된 성병이나 정신병적 부분이 부각된 지엽적인 모습으로 엄청 개기는 객기의 인간처럼 묘사된 부분도 많지 않았나 합니다. 그런식으로 따진다면 동성애로 인해 외교관직을 박탈당하고 청년시절에는 광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던 푸코가 한국에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적도 있습니다.)

    광기의 역사는 저술전이나 그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광인들과의 조우속에서 즉 임상경험에 바탕해서 저술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푸코의 아버지는 의사였기도 했지만(성장기의 푸코는 세속적인 의미의 성공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아버지와 같은 의사가 되는것은 싫어했다고 합니다.) 두번째 저술인 병원의탄생(혹은 진료소의 탄생이라 번역하는 분도 있더군요)같은 저술도 단순한 탁상공론이아닌 이런 임상경험과 푸코의 명민함이 결합된것입니다.
    (푸코의 전기는 국내에도 번역된 디디에에리봉이 저술한것이 가장 정교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래전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덜덜덜...
    그나저나 오랫만에 댓글남기네요..
    저는 블로깅이 요즘 뜸한데 민노씨는 여전히 활발하네요.. 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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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3/10 19:17

      인상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말씀처럼 김현의 마지막 주제는 푸코에 닿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좀더 오래 생존했다면 더 넓고 다양한 주제로 향했을 거란 아쉬움이 남지만요. 김현의 '시칠리아의 암소'는 여러번 읽었던 책이지만, 어떤 명료한 인상이 남는 책은 아니라서요.

      생각난 김에 책을 찾아봤는데요(본가에서 가져온 책이라서 다행이 옆에 있네요). 푸코 - 데리다 논쟁에 관한 구절 중 '데카르트'를 인용한 부분이 있어서 적어봅니다. 아래의 대화는 가상적인 대화로 갈리마르판 '광기의 역사' 부록에 수록된 것의 일부와 이에 대한 김현의 논평입니다.

      데리다 : 꿈은 광기의 경험보다 더 공통적이며 더 보편적인 경험이다. 광인이 언제나 무엇에나 속지는 않는다. 광기는 우연히 그리고 부분ㅇ적으로 감각적 인식의 어떤 영역에만 작용한다.

      푸코 : 데카르트는 꿈이 광기보다 더 공통적이며 더 보편적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는 또한 광인들을 때때로 특수한 점에서만 광인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데카르트는 회의의 과정에서 광기보다 꿈에 특권을 부여한다. 꿈은 이중의 이점을 갖고 있다.

      하나는 그것이 광기와 동등하거나 때로는 그것을 뛰어넘는 미친 짓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습관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것은 논리적이며, 논증적인 부류에 속하며 두 번째 것은 실천적 부류에 속한다. 꿈의 미친 짓은 예로서의 논증적 성격을 보장하고, 그것의 빈도는 훈련으로 도달 가능한 성격을 보증한다.

      데카르트를 사로자고 있는 것은 그 논쟁적 성격보다는 그 도달 가능한 성격이다. 데리다는 꿈의 그 두 성격을 혼동하여 보편적이라는 모호한 말로 그것을 감싸고 있다. 그 말은 그러나 데카르트의 텍스트에서 그 두 성격의 특이한 역할을 지우고, 미친 짓보다는 습관에 더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을 것을 못 보게 한다.

      (중략)

      푸코-데리다 논쟁은 데카르ㅡ의 한 문단의 해석 논쟁이다. 꿈과 광기를 구분할 것인가, 하지 않아야 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주석의 논쟁이지만, 해석이 주석만으로 끝나는 법은 없다. 그것은 세계관의 논쟁이기도 하다.

      푸코는 이성이 광기를 배제했다고 보고, 광기의 역사를 씀으로써, 고전주의적 이성의 한계를 드러내려 하고, 데리다는 이성 속에 광기가 숨어 이싸고 보고, 그 숨김의 양태를 드러내려 한다. 논리적으로 본다면, 이성과 광기를 균형있게 보려는 데리다의 태도가 먼저이고, 이성의 광기 억압의 역사를 쓰는 푸코의 태도가 그 다음이지만, 실제 이뤄진 것은 그 반대이다.

      그들은 둘 다 합리적인 것의 폭력을 잘 느끼고 있으나, 데리다는 이성의 한계 내에서 그것을 극복하려 하고, 푸코는 이성 밖에서 그것을 뛰어넘으려 한다. 데리다가 이성 속에 감춰진 광기를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면, 푸코는 이성이 억압한 광기를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

      데리다는 이성적인 언로, 푸코는 침묵의 언어로 그 작업을 한다 데리다는 그 점에서 푸코보다 더 고전적이며, 푸코는 데리다보다 그 점에서 더 낭만적이다. 데리다의 이성이 추론적, 입증적 이성이라면, 푸코의 그것은 역사적, 구성적 이성이다. 거기에서 잔절의 개념에 대한 찬반의 태도가 갈린다.

      추론적 이성은 단절이 표면적인 것이라 보려 하고, 역사적 이성은 그것이 계시적이라고 보려한다. 추론적 이성은 단절의 역사가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어하며, 역사적 이성은 단절의 역사도 역사라고 부고 싶어한다(그 역사를 푸코는 고고학이라고 부르게 된다).

      푸코는 뒤에 단절의 역사나 고고학이라는 개념의 상당 부분을 수정하지만, 이성 밖으로 나가는 행위(그것이 또한 단절이다. 그 단절은 뒤집음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포기하지 않는다.

      푸코의 입장에서는 단절이 없는 역사란 기원을 중요시하는, 기원의 변형들의 역사이며, 다시 말해 관념들의 역사이며, 데리다의 입장에서는 단절의 역사란 조작적인 전체주의적 구성의 역사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 점에서 의견을 갖고 있다. 그것은 광기가 타기되고, 버려져야 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의 광기에 대한 관심은 합리적 이성의 폭력성을 직접 체험한 데서 자라난 것이다. 합리적인 것이 극단화될 때, 그것은 파시즘이 된다.

      파시즘의 극우는 우생할적인 히틀러이고, 그 극좌는 이상주의적 스탈린이다. 그 둘은 다 합리적 이성의 이름으로 집단 학살을 감행한다.

      그들의 논쟁과 관련하여, 한국에서 상상적인 것의 올바른 위치를 되찾아보려는 힘든 작업(왜 힘든가 하면 그런 작업도 비-합리적, 반동적 작업으로 매도되기 때문이다. 마치 이성적인 것만이 혁명적인 것처럼)을 하고 있는 진형준의 비평 자업은 주목을 요한다.

      그가 합리적인 것 속에, 뒤에, 혹은 앞에 숨어 있는 상상적인 것의 모습을 밝히려고 애쓸 때는 데리다와 닮고, 상상적인 것의 역사적 구조를 밝히려 할 때, 푸코와 닮는다. 그리고 이인성이 침묵의 언어 쪽으로 다가갈 때, 그는 얼마나 암묵적으로 폭력적 이성을 비판하고 있는 것인지.

      - 김현, '푸코-데리다 논쟁에 대하여', [시칠리아의 암소], p207 ~ 213. 중에서 (문학과 지성, 김혅전집 10).

  3. 더조은인상 2008/03/11 01:20

    본인들의 의도는 절대 아니라고 이야기했지만 데리다와 그의 해체주의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예일학파는 나치의 이론적인 피난처가 될수도 있다는 부분과 현실과 실제적인 연루설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금 다른방향을 가지기는 하지만 이런 부분은 군국주의의 부활을 외치며 할복했던 미시마 유키오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의 저술을 보면 반어법적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졌던 그렇지만 직선적인 시선이 가지는 자기 정당성의 논리(결론적인 궤변)가 자기모순에 빠지는 것을 보기도 했었지요...

    데카르트는 신학과 과학의 분리가 되는 이론적인 시발점으로서 서구사상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어간 사람으로 기억(계속 기억이네요..)합니다. 푸코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방법론 가운데 하나는 고고학적인 발굴의 시선과 번역할수 없는 문학작품으로 알려진 단절적 언어를 구사한 레이몽 루셀의 방법론이 혼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김현의 푸코의 문학평론을 주목한 부분도 있는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그러기에 김현의 지적능력은 문학이라는 테두리에 가둬두기에는 너무 박식하고 동시에 열정적이었기에 많은 반향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젊은 시절의 푸코는 방브니스트같은 언어학자와 교류했던적도 있었다고 알려졌으니 일치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아주 특이하기도 합니다. 타고난 논리와 매혹의 세계에 동시에 뛰어난... 파리고등사범의 동급생은 최고중에 최고라는 수식어를 기념사진에 메모했다고도 하더군요) 어떤 연구가는 밀림이라는 단어로 푸코의 저작물을 표현하기도 했었지요..

    삐걱삐걱 돌아가는 뇌를 혹사하며 댓글다는 것도 한계가 온듯합니다....

    그나저나 민노씨는 블로거의 뜨거운 상징이 될것같은 생각이 점점 현실화 되는듯합니다...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8/03/11 02:54

      마지막 과분한 격려 말씀에 대해선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런데 예일학파와 나치스의 연관을 이야기한 부분은 예일학파의 두목급이었던 폴 드 만의 87년 스캔들(2차 대전중 나치의 벨기에 점령 당시에 나치에 협력하는 글을 썼다는 사실이 밝혀진) 때문인 것 같은데요. 그것만으로 데리다의 사상 혹은 그 사상을 미국(특히나 문예비평이론으로 수용한) 예일학파가 '나치스'에게 이론적인 도피처를 제공했다고는 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 ^;

      직접적인 사례는 아닙니다만, 예전에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에 관한 사이비 이론이 풍미했던 즈음, 그 사상적 원류라 할 수 있는 데리다가 '오히려 지금 다시 마르크스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창하면서,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란 책을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물론 저는 이 책을 읽지 않았고, 그 당신의 저널 비평에서 읽었던 기억일 뿐입니다만...).

      그리고 '예일학파'가 차지하는 미국 내에서의 문학사적 위상에 대해선, 제가 예전에 키워드로 정리했던 김성곤의 짧은 논문이 있는데요. [신비평 이후의 미국문예비평] 중에서 해당 부분을 발췌해서 옮깁니다. 특히나 마지막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평가는 많은 시사점을 주지 않나 싶어서 말이죠.


      ~~~~~~~~~


      1970년에 들어서면 미국의 문학비평은 소위 [예일학파 the Yale School]들인 제프리 하트만, J. 힐리스 밀러, 폴 드 만, 그리고 해롤드 블룸의 전성시대가 된다. 현재까지도 미국 비평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오고 있는 이 네 사람의 비평가들의 공통점은 유럽비평과 유럽문학을 숭상한다는 점(에머슨에 대한 블룸의 존경은 예외가 되겠지만), 불란서 철학자 자끄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추종자라는 점, 사변적이고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비평이론에 이끌린다는 점, 비평을 비평가 사이의 대화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비평은 작품해석의 수단이라기보다는 비평 자체를 위한 목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점, 그리고 불란서 식의 언어의 유희를 즐긴다는 점에서 서로 공통된다.

      - 제프리 하트만

      1970년에 나온 제프리 하트만의 [형식주의를 넘어서 Beyond Formalism]는 신비평의 한계를 극복하며 새로운 사변적 비평시대의 막을 여는 한 선언이 되었다. 이 책에서, 그리고 같은 제목의 타이틀 에세이에서 하트만은 신비평의 비평수단이었던 해설(explication)과 분석(analysis)을 공격의 대산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그는 해석과 분석을 주로 하여 비평하는 클렌스 브룩스와 조르쥬 풀레를 공격했으며, 단순한 해설을 넘어서 비평적 직관과 역사의식을 통해 작품의 객관적 질을 성찰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하트만은 다만 당시의 형식주의의 상태와 질에 불만이 있었고, 따라서 자유로운 유희와 역사의식이 허용되는 차원높은 형식주의를 원했던 것이었지, 형식주의 그 자체에 반대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 J. 힐러스 밀러

      J. 힐러스 밀러는 원래 신비평가 로 시작을 했다가 존스 홉킨스대에서 강의하는 동안 만난 조르쥬 풀레(Georges Poulet)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아 1960년대에는 현상학적 문학비평에 심취하였고, 그 후 예일대로 옮겨 온 후에는 다시 해체주의(deconstruction)로 전향하는 변모를 보여주었다.

      밀러는 1965년에 있었던 예일대 문학비평 심포지엄에 서, "문학연구에 있어서 전진을 위한 앞으로서의 자극은 여러가지 형태의 유럽비평으로부터 올 것이다. 최근의 가장 좋은 유럽의 비평에 동화됨으로써 미국학자들은 미국문화와 유럽사상과의 만남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형태의 비평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그가 자신의 비평태도를 천명한 저서 중 가장 탁월한 것은 [사라진 신 The Disappearance of God](1963)과 [픽션과 반복 Fiction and Repetition](1982)이다. 밀러는 최근에 캘리포니아대로 옮겨갔다.

      - 폴 드 만

      1983 년 12월에 작고한 폴 드 만은 미국 해체주의 이론의 대표자로 할 수 있으며, 자끄 데리다의 해체이론을 변용하여 극도로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해체이론을 전개하였다. [눈멂과 성찰 Blindness and Insight](1971)과 [독서의 알레고리 Allegories of Reading](1979)에서 드 만은 모든 언술행위를 '가면'과 '거짓'으로, 시니피에와 시니피앙 사이에는 끝없는 단절이 있는 것으로, 그리고 모든 의미는 불확실한 것으로 제시하고, 모든 독서를 오독으로 해석하여 절마의 해체이론을 창출해냈다.

      - 해롤드 블룸

      해 롤드 블룸은 그의 유명한 '영향이론'과 '수정 비판이론'으로 1970년대를 풍미한 영향력 있는 비평가이다. [영향에 대한 불안 The Anxiety of Influnce](1973), [오독의 지도. A Map of Misreading](1975), [시와 억압. Poetry and Repression](1976) 등의 저서를 통해 블룸은 과거의 업적과 선배작가들에 대한 현대작가들의 불안의식을 명징하게 표출해주고 있다.

      즉 그에 의하면 현대의 시인은 '너무 뒤늦게 시작했다. the sence of belantedness'라는 의식으로 인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작가의 과거의 업적에 대해 굴복하거나, 저항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블룸은 과거와 전통에 굴복하는 시인은 약한 시인이 되고,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오독을 통해 전통과 자신의 문학적 선구자들의 업적에 도전하는 시인은 강한 시인이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블룸은 [실락원]에서 성서 및 성서의 저자와 투쟁한 밀턴을 강한 시인으로, 그리고 과거와 전통에 머리를 숙인 T.S. 엘리어트를 약한 시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엘리어트야말로 20세기에 가장 과대평가된 시인이라는 블룸의 유명한 1977년 선언도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 예일학파의 공과

      ' 예일스쿨' 비평가들이 미국의 문학비평에 유럽식의 이론적, 철학적, 사변적 성찰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점은 분명 그들이 이룩한 공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용적인 미국문화가 이론적인 유럽문화에 대해 본질적으로 저항적이라는 사실은 간과하였다.

      그 결고로 그들이 주도하고 있는 최근의 미국문화비평은 실제 미국문화와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진 채, 문화적 공백상태 속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자기네들 자신을 위하여 그들이 창출하는 철학적 이론과, 일반독자들 및 지식인들을 위해 씌어진 미국의 전통적 비평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괴리가 생기게 되었다.

      그들을 움직이고 또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작가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들은 일반 독자들의 경험과는 거리가 먼, 그리고 난해하여 주석을 필요로 하는 자기도취적 비평체계를 구축해 왔으며, 매슈 아놀드식의 귀족적, 독선적 문화를 만들어 왔다.

      오늘날 미국문학비평이 극복해야 될 것은 바로 그러한 '워즈워드 없는 콜리지'같은 비평가들의 이론 만능주의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와 문화의 대변자요, 문인이었던 에드먼드 윌슨이나 라이오넬 트릴링 같은 사회비평가 또는 문화비평가들이, 또는 F.o. 매티이슨이나 R.P. 블랙머 같은 독특하나 그릇이 큰 대가들이 배출되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비평이 내면세계와 외적 현실을 모두 탐색하지 못하고 극도로 이론적이 될 때 얼마나 많은 것을 상실하게 되는가를 우리는 윌슨이나 트릴링의 경우에 특히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 세속적 비평 : 에드워드 사이드의 등장

      현 대의 이러한 극도로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형식주의적이고 현실과 괴리된 비평에 정면으로 도전한 비평가가 바로 [시작. Beginning]과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다.

      사 이드는 현대비평은 너무 고답적, 귀족적이기 때문에 현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그것이 보다 더 세속화(worldly)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이드에게 있어서 비평행위는 곧 현실참여가 되고 삶 그 자체가 되는 것이며, 그렇게 때문에 이 세계도 곧 하나의 커다란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1983년에 나온 그의 비평서의 제목이 [세계와 텍스트와 비평가 The World, the Text, and the Critic]인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는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처럼 급진적 마르크시스트 비평가도 아니고, 월터 잭슨 베이트처럼 보수적 극우파 비평가도 아닌 다만 고뇌하고 행동하는 오늘의 지식인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80년대 이후 미국문학비평의 미래는 어쩌면 에드워드 사이드 같은 비평가들의 노력에 의해 밝아질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사이드는 우리의 주목에 값하는 이 시대의 중요한 비평가라고 할 수 있다.

      - 김성곤, '신비평 이후의 미국문학비평', [미로 속의 언어], pp. 11~22. 민음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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