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옆차기다.
오늘자 동아일보 일면 최상단 좌측 상자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다(그러니까 '거의' 머릿기사다).

땀이 기름을 이겼습니다 (상자 상단 줄제목)
태안 자원봉사 100만명의 기적 (상자 안 큰제목)

- 2008년 2월 21일자 동아일보 1면 (태안 = 지명훈 기자)


그리고 13면 거의 전체를 할애(광고와 날씨, 노홍철에 관한 작은 상자 기사를 뺀 전부)해서 자원봉사들을 '찬양'하고 있다. 관련기사는 둘이다. 우선 메인 기사는 다음과 같다.

기름띠 걷어낸 인간띠
"당신들이 자랑스럽다"
(큰제목)

- 2008년 2월 21일자 동아일보 13면 (태안 = 지명훈 기자) 


그리고 그 아래 붙어 있는 기사제목은 다음과 같다.

"함께 가요 태안으로" 인터넷 카페도 활발
- 2008년 2월 21일자 동아일보 13면 (태안 = 지명훈 기자)


1. 이건 정말 악질적인 휴머니즘이다.

아니, 휴머니즘으로 포장된 반저널리즘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자원봉사자들의 헌신과 인간애를 가장 악질적으로 활용한 반저널리즘의 사례로 기억할 만하다.


2. 이 기사는 삼성중공업은 증발해버린 '삼성중공업 기름 유출사고'에 대한 기사다.

기사 어디에서도 '삼성' 혹은 '삼성중공업'은 없다. 단 한 줄도 없고, 단 한 단어도 없다.
'책임'이나 '보상'도 마찬가지다. 단 한 줄도 없고, 단 한 단어도 없다.
삼성중공업을 지우는 '삼성중공업 기름 유출사건'에 관한 기사인거다.
물론 기사는 '삼성중공업 기름 유출 사건'이란 표현 대신에 "태안 기름오염 사고"라고 부른다.

기사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여기 삼성중공업은 없다.
그 대신에 "함께 가요 희망으로"(삼성 이미지 광고)와 닮은 "함께 가요 태안으로"가 있을 뿐이다.
장난하나?
우롱하나?
뭐하자는 건가?


3.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자.

지금 태안 주민들이 가장 원하게는게 뭐겠나?
삼성중공업과 정부의 확실한 보상과 대책이다.
지명훈이란 자, 세칭 '메이저 신문' 사회부 기자란 자가 이걸 모르겠나?

여기엔 제주도에서 온 시민, "마음은 태안에" 있다는 일본 휴학생, 각종의 종교단체들, 봉사단체들, 태안군청 관계자의 인터뷰는 있지만, 하나가 빠져 있다. 거기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없다. 삼성중공업과 정부에 분노하며 서울 상경해서 시위했던, 자살 기도했던 주민들의 인터뷰는 없다.
단 한줄도 없다.

이게 무슨 빌어먹을 기산가?
이 기사에는 삶의 터전을 빼앗겨버린, 그래서 자살하고, 서울로 집단 상경해서 시위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발견할 수 없어 자살을 기도한 그 가엾은 주민들은 없고, 뽀송뽀송하고, 살맛나는, 그야말로 동화 속 풍경 같은 휴머니즘만 만발하고 있다.


4. 가면으로서의 휴머니즘

태안에서 고생하신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그 태안에서 자원봉사하면서 '더불어 사는 보람'을 느끼셨던 그 많은 분들, 이제 100만명을 넘어선 그 한없이 착하디 착한 국민들을 생각하면 내가 다 뿌듯하다. 내가 다 부끄럽고, 내가 다 송구스럽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우리나라 저널리즘은 그 분들의 그 아름다운 헌신과 봉사와 인간애를 이따위로 활용한다. 자원봉사들이 그저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봉사하고, 베풀었던 인간애는 '삼성중공업'이란 이름을 지우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이게 정말 거지발싸개 같은 우리나라 거대신문 동아일보가 보여주는 '휴머니즘'의 정체다.

기사에는 그저 착하디 착한 천사표 자원봉사자들의 뿌듯함 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렇게 뿌듯하기만 했던가?
그렇게 뽀송뽀송 사는 맛만 맛봤던가?
그 안에 있는 분노는 어디로 다 증발해버렸나?

그 둘은 서로 다른게 아니다.
그저 한 마음이 다르게 피어난 것에 불과하다.

인간애 가득한 착하디 착한 국민들의 따뜻한 손길에도 불구하고,
그 휴머니즘을 삼성중공업을 씻어내기 위한 걸레로 사용하는 동아일보와 그 일당들에 의해
태안은 여전히 울고 있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이 이상하기 짝이 없는 사고 처리 방식은 일반인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중략)

액슨 발데즈호 사건의 처리 과정을 보면 국민을 배려하는 정부와 그렇지 못한 정부 사이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정부는 직간접 피해 보상은 물론 청소비용까지 남김없이 지급하게 했다. 책임감 있는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셈이다.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사고 유발 기업에 철저한 책임을 묻는 선례를 명확하게 확립해 놓아야 한다. 지금 정부가 무엇보다 우선 해야 할 일은 백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흘린 땀의 대가를 징구할 방법을 찾는 일이다. 그 부분은 청소비용으로 당연히 사고유발 기업이 부담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주먹구구로 계산해 보아도 그 금액은 천억원을 넘는 수준이다.

울고 있는 태안을 달랠 유일한 방안은 직간접 피해 전액을 보상해 주는 것밖에 없다. (중략) 중과실을 입증해 사고 유발 기업에 무한책임을 묻든지, 아니면 정부 스스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만이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정부가 피해 주민에게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이준구 칼럼, '태안이 울고 있다' 중에서 (한겨레)


* 관련 추천글
여기 (긴 글)
그리고 여기 (짧은 글)
아, 그리고 여기도 (팟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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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우리는 삼성이 지난해에 한 일을 기억하고 있다

    Tracked from nooegoch 2008/07/16 21:57 del.

    울게하소서-조수미 또 하나의 가족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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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adGagman 2008/02/21 10:53

    기름 유출사고 관련 제 팟캐스팅에서 기성언론들의 접근 패턴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후에 애프터 서비스 때도 잠깐 언급하였습니다만 기성 언론들은 사건의 포커스를 엉뚱한데 두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요.
    뉴스 보셨나요? 그 태안의 기적을 이루러 내려간 자원봉사자들에게 지급된 옷은 기름이 숭숭 스며들어 인체에 해악을 일으키는, 방제복이 아닌 방진복이었답니다. 갔다 오신 분들 중에 피부병으로 고생하신 분들 꽤 계시겠네요~ 잘못을 엉뚱한 넘이 하고 뒤치다꺼리는 국민이 하는데 (태안의 기적 어쩌고 하는 기사를 보면 북한의 천리마 운동 선전지 같기도 하고...) 그런 착한 국민들마저 끝까지 고생시키는게 이나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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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2/21 10:58

      새드개그맨님의 주옥같은 팟캐스트야 당연히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드개그맨님의 문제의식은 저 역시도 몹시 공감하고, 아주 지겹고 뼈져리게 절망(?)하는 부분이죠.

      추.
      직접 방송(TV 방송 쪽인 것 같던데 말이죠. 추천글 두번째 링크)을 접하지는 못했습니다. 구글링해도 잘 나오지 않아서.. 아무튼 주민 가운데는 '실명'한 분도 계신 것 같던데 말이죠... 물론 아직 그 정확한 인과관계를 확정할 수는 없겠지만요...

  2. mindfree 2008/02/21 18:38

    악랄합니다. 정말.
    거기에 합류한 박카스도 얄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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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2/22 08:07

      그러게요..
      정말 뻔뻔하게 악랄한 느낌입니다...

  3. 5throck 2008/02/22 08:48

    늘 그렇듯이 한국의 언론은 기업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언제쯤 한국언론의 독립성이 보장될지 참 답답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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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2/26 03:39

      앗, 제가 주말 이후로 잠귀신에 빠져서 댓글을 이제야 발견하네요.
      정말 답답합니다.
      대안 미디어로서의 블로그에 대해서도 다소간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말이죠.

  4. 너바나나 2008/02/22 15:43

    백만 명을 울린 돈성으로 기사를 써야지.. 망할 놈들
    뭐, 니들이 그런식으로 나올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보니 개짜증이구나. 담에 니가 가라 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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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2/26 03:41

      이건희, 홍라희씨이 태안에 가서 죄송하다는 '시늉'이라고 해야 하는거 아닌가 싶습니다.
      좀 너무들 하는 것 같아요.
      ㅡ..ㅡ;

  5. nooe 2008/02/28 23:28

    뜨악. 제목이... 이거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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