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앞으론 판결문을 가급적 쉽게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 연재를 진행할까 싶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이 연재는 그저 교양법학 수준의 지식 정도 밖에는 없는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판례를 통해 사건의 의미들을 살펴보고, 그런 사건들을 판결 원문을 통해 가급적 쉽게 독자에게 전달하고(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부족함은 서로 채워가면서, 그 의미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소박한 바람에 불과하다.


0.

초등학교 1학년생인 아동이 사설학원 수업 중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학원 앞 이면도로를 횡단하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면, 학원(장)은 아이의 죽음에 책임이 있을까?

쟁점 : 사설 학원(장)의 보호, 감독의무의 범위 (초등학생 저학년 아동이 보호범위에 포함되는지가 문제)

2007다40437.pdf

이하 대법원 판결문을 재구성하여 위 점에 대한 대법원 입장을 알아보자.


1. 사실

ㄱ. 망 ###(남자아이. 이하 망인)은 이 사건 교통사고가 발생한 2005. 7. 11. 당시 동해시 소재 초등학교 1학년생으로서, 피고가 속셈, 피아노, 입시를 교습과정으로 하여 설립, 운영하는 '####' 사설학원에서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피아노를 배우고, 월, 수, 금요일에는 피아노 외에 주산까지 배웠다.

ㄴ. 망인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위 학원에 다녔는데 그때는 망인의 집 부근에서 위 학원이 운행하는 차량을 타고 갔다가 학원수업이 끝난 다음 학원차량을 타고 귀가하였으며,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학교수업이 끝난 뒤 학교 부근에 대기하고 있던 학원차량을 타고 갔다가 학원수업이 끝나면 다시 학원차량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ㄷ. 위 학원의 수강생 100여 명은 모두 초등학생이고 피고(학원장)를 포함한 강사의 수는 5명이다.

ㄹ. 위 학원 내부는 사무실과 6개의 강의실 및 7개의 피아노실로 이루어져 있고 화장실은 2층 현관문 바깥쪽에 설치되어 있다.

ㅁ. 위 학원이 입주해 있는 상가건물은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고 차량과 보행자의 통행이 빈번한 시장 앞 이면도로에 접하여 있는데, 학원 수강생들은 평소 수업 중간의 쉬는 시간 등을 이용하여 학원 밖으로 나가 인근 상가의 문방구나 분식집 등에 다녀오기도 하였으며 학원측에서도 이를 특별히 제지하지 않았다.

ㅂ. 이 사건 사고 당시 망인은 피아노실에서 수업을 마친 후 주산 강의실로 이동하여 수업준비를 하다가 학원 밖으로 나가 우산을 쓴 채 위 이면도로를 횡단하던 중 제1심 공동피고 김##이 운전하던 승합차에 치여 외상성 뇌손상 등으로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2. 원심판단 : 학원(장)은 책임 없다.

피고에게 망인이 쉬는 시간에 임의로 학원 밖으로 나가 이 사건과 같은 교통사고를 당할 것을 예측하여 이를 미연에 방지하여야 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보호, 감독의무가 있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이하 원심의 판단 근거)

ㄱ. 그 학원에 다니는 초등학교 1학년생 10명 중에서 절반 정도는 학원 앞 이면도로를 걸어서 통학하고 있었다.

ㄴ. 위 학원 수강생들은 한 과목의 수강이 끝나면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진 후 다른 과목의 강의실로 수강생 스스로 이동하였다.

ㄷ. 위 학원의 수강생 및 강사의 숫자와 학원건물의 구조, 수강생들이 학원 측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경우에도 그에 대한 마땅한 제재방법이 없었다.

ㄹ. (따라서) 피고가 학원 직원이나 강사를 출입문에 배치하여 출입하는 수강생들을 일일이 통제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ㅁ. 그 밖에 망인이 학원을 이탈하게 된 경위

ㅂ. 이 사건 사고의 발생 경위 등


3. 대법원의 판단 : 학원(장)은 책임있다.

위와 같은 사정들이 피고의 책임범위를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피고의  망인에 대한 보호, 감독의무 및 그 의무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책임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이하 대법원이 설시한 판단 근거)

ㄱ. 유치원이나 학원 원장, 교장 및 교사는 교육기본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그들로부터 교육을 받는 유치원생과 학생들을 친권자 등 법정감독의무자에 대신하여 보호, 감독할 의무를 진다(대법원 1996. 8. 23. 선고. 96다19833 판결. 대법원 2002. 5. 10. 선고 2002다10585, 10592판결 등 참조)

ㄴ. 그런데 유치원생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활동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특히 우리 교육현실을 보면 [학원 설립, 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 운영되는 학원이나 교습소에서 학교교육의 보충 또는 특기, 적성교육을 위하여 지식, 기술, 예능을 교습하는 형태의 '사교육'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ㄷ. 이러한 사교육은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교육 못지 않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바, 공교육을 담당하는 교사 등과 마찬가지로 위와 같은 형태의 사교육을 담당하는 학원의 설립, 운영자나 교습자에게도 해당 학원에서 교습을 받는 수강생을 보호, 감독할 의무가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ㄹ. 교육기본법 제12조 제1항은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은 학교교육 또는 사회교육의 과정에서 존중되고 보호된다"고 규정하여 포괄적인 학습자 보호의무를 선언하고 있다.

ㅁ. "학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여 학원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평생교육의 진흥에 이바지함" 등을 목적으로 하는 [학원의 설립, 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제4조 제3항

- 학원설립, 운영자 등의 책무로서 "학원설립, 운영자 및 교습자는 특별시, 광역시, 도 및 특별자치도의 조례가 정하는 바에 따라 학원, 교습소의 운영과 관련하여 학원, 교습소의 수강생에게 발생한 생명, 신체상의 손해를 배상할 것으로 내용으로 하는 보험가입 또는 공제사업에의 가입 등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법률적 근거 1.)

- 뿐만 아니라 학원의 운영자나 교습자로서는 교습계약(수강계약)의 당사자로서 상대방측인 수강생이 그 계약에 따라 교습을 받는 과정에서 부딪힐 수 있는 위험을 미리 제거할 수단을 강구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수강생의 생명, 신체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할 신의칙상의 주의의무가 있기 때문이다(민법 2조에서 파생). (법률적 근거 2.)

ㅂ. 물론 유치원이나 학교 교사 등의 보호, 감독의무가 미치는 범위
a. 유치원생이나 학생의 생활관계 전반이 아니라 유치원과 학교에서의 교육활동 및 이와 밀접,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생활관계로 한정된다(요건 1. 업무관련성 - 밀접 불가분).

b. 또 보호, 감독의무를 소홀히 하여 학생이 사고를 당한 경우에도 그 사고가 통상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는 것에 한하여 교사 등의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요건 2. 예견가능성).

c. 이때 그 예상가능성은 학생의 연령, 사회적 경험, 판단능력, 기타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앞서 든 각 대법원 판결 등 참조).

ㅅ. 이러한 법리는 학원의 설립, 운영자 및 교습자의 경우라고 하여 다르지 않을 것인바, 대체로 나이가 어려 책임능력과 의사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유치원생 또는 초등학교 저학년생에 대하여는 보호, 감독읜무가 미치는 생활관계의 범위와 사고발생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더욱 넓게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ㅇ. 대법원은 이미 이러한 취지에서, 유치원생들에 있어서는 (유치원 사례의 경우와 이번 사례의 경우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의 설시)

a. 다른 각급 학교 학생들의 경우와 달리 유치원 수업활동 외에 수업을 마치고 그들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기까지가 유치원 수업과 밀접,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생활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b. 유치원 담임교사에게 원생들이 유치원에서 도착한 순간부터 유치원으로부터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법정감독의무자인 친권자에게 준하는 보호, 감독의무가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위 대법원 1996. 8. 23. 선고. 96다19833 판결)

c. 이러한 법리가 반드시 유치원생에 한정해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 하겠고,

- 특히 유치원생이나 그와 비슷한 연령, 사회적 경험 및 판단능력을 가진 초등학교 저학년생(!)을 통학차량으로 운송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경우에는 (보호감독 의무 대상자의 확대)

- 그 유치원, 학교 또는 학원의 운영자나 교사 등으로서는 보호자로부터 학생을 맞아 통학차량에 태운 때로부터 학교 등에서의 교육활동이 끝난 후 다시 통학차량에 태워 보호자가 미리 지정한 장소에 안전하게 내려줄 때까지 학생을 보호, 감독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보호감독 의무 행위의 구체적인 시기와 종기를 확정)

결국(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김황식(재판장) 김영란 이홍훈 안대희(주심)


4.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5. 평가

나는 대법원 입장을 지지한다.

쟁점은 학원이 실질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학원생에 대한 보호, 감독의무의 범위이다. 좀더 구체적으론 유치원생이 아닌 초등학생 '저학년생'까지를 보호감독 의무의 대상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가 현실적으로 문제된다. 이번 판결을 통해 보호감독 대상이 확장(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사건의 현실적 파장은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한다. 이건 정말 기존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획기적으로 확장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대법원은 학원의 보호, 감독의무를 판단할 기준으로 다음 두 가지 요건을 제시한다.

ㄱ. 학원 수업과의 밀접, 불가분성 (업무관련성)
ㄴ. 피보호아동의 행위에 대한 예견가능성

이러한 관점에서 판단건대, 원심 판단에 이해할 만한 부분이 없지 않으나, 대법원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초등학생 저학년(이게 판결의 핵심 : 유치원생 => 초등학생 저학년으로!)도 유치원생과 마찬가지로 그 판단능력이나 지각능력을 보건대, 차이를 두기 어렵고, 마찬가지로 좀더 두터운 보호, 감독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대법원의 입장을 지지한다.




트랙백

트랙백 주소 :: http://minoci.net/trackback/388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
  1. cansmile 2008/02/10 20:12

    이런 경우를 보면 초등학교 고학년(4~6)이상을 대상으로 학원을 운영하는게 이런 가능성에 대한 위험 부담이 적다고 할 수 있을까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8/02/11 00:36

      캔스마일님 덕분에 무플 면했네요. :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 싶기는 하네요.
      제도적인 차원에서는 보험(관련 법규에서도 이를 규정하고 있고 말이죠. 이게 강행규정은 아닌 것 같지만요)으로 통해 효율적으로 대비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학원 자체 내에서 아동에 대한 보호시스템이랄까를 두텁게 마련해야겠지만요.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댓글 입력 폼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