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식민통치 기간이 매우 유익하였다면서 독립운동가들을 비판한 피고인의 행위는 사자의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사례 (서울남부지방법원) (선고일 2007. 11. 22)


0. 판결문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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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사실 (검찰 공소 제기 내용의 요지)

피고인은 저술 및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대해 공부하던 중 일본의 식민통치 기간 36년이 우리 민족에게 매우 유익한 것이었고, 상해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은 잘못된 것이라는 등의 역사인식을 가지게 되어,

1. 2003. 6. 10. 아래와 같은 내용이 포함된 '새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란 제목의 책 2,000부를 출판하여 불특정 다수인들에게 허위사실을 퍼뜨림으로써(허위사실적시)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가. 광복회 회장 ### 등 생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명예훼손죄
"일제시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주로 해외에 체류하면서 동포들의 송금에 기생했던 업자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그 중에는 일부 독립이 조선민족에게 지고의 선이라고 믿고 헌신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독립운동을 명분으로 삼아 무위도식하며 동포들의 재산을 노략질했던 룸펜 집단이다"라는 내용 (1)

나. [백범 ##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죄]
"##은 낡은 왕조에 충성하면서 변화에 극렬하게 저항했던 보수반동세력의 대표인물" 

"##이나 ### 같은 인물들은 비교적 최근의 역사에서 총독부통치에 저항해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존경을 받는다는 것인데, 사실 인물 자체로는 어떤 점이 훌륭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아무리 유교교육을 받은 무지막지한 조선인이라지만 추정만으로 이런 잔인한 짓을 저지른다는 것은 타고난 살인마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자가 이후 탈옥하여 중국으로 달아난 뒤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것을 만들고 그 지도자가 되었으니 그 독립운동의 수준이 어떠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라는 내용.

다. [### 열사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죄]
"###은 폭력시위를 주동한 3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항소심 재판 도중 검사에게 의자를 집어던지는 등 소란을 피워 법정모독죄가 추가되어 도합 7년형을 선고받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의 법정 폭력에 대해서는 단순히 의자를 집어던진 것이 아니라 의자로 검사를 찍어 부상을 입혔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은 당시 대부분의 남자보다 체격이 좋아서 키가 최소한 172센티가 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법정에서도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난동을 부린 것으로 보면 ###은 상당히 폭력적인 여학생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가 주동한 시위라는 것도 결코 평화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체포되어 옥중에서 사망하기까지의 경과는 이렇게 평범한 폭력시위 주동자에 대한 정상적인 법집행이었고, ###은 재판받고 복역하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망한 여자 깡패이다"라는 내용 (5)

2.
가 2003. 11. 20. 국회의원관 101호 회의실에서 열린 '과거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위원회' 공청회의 공술자로 초청되어 국회의원과 방청객 등이 있는 자리에서, 사실은 피해자 망 ###이 1896. 10. 경 '###'라는 일본 사람을 죽인 다음 20년 이상 국내에서 종교, 교육활동에 진력하다가 1919. 3. 29. 비로소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음에도, "##은 민비의 원수를 갚는다면서 무고한 일본인을 살해한 뒤 중국으로 도피한 조선왕조의 충견이다"라는 허위 사실을 적시한 '친일은 반민족 행위였는가'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방청객 등에게 배포 (6)

나. 전항의 유인물에는 '당시 해외에서 분리독립운동을 벌이는 집단이 존재했던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이들의 무책임한 독립운동은 당시 조선 주민의 이익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못된 사상, 자신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독립을 주장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내용이 포함. 이 부분은 불특정 다수 들에게 허위사실을 적시해 광복회 회장 ### 등 생존 독립운동가들을 모욕.

3.
피고인은 2006. 2. 15. 주식회사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운영하는 '다음 아고라 코너 토론방'에 '안녕하세요. ###입니다'라는 제목 아래 '###은 옛날 조선시대로 치면 딱 산적떼 두목인데 어떻게 해서 독립군으로 둔갑했는지, 참 한국사는 오묘한 마술을 부리고 있군요'라는 허위의 글을 게시. (8)


쟁점에 대한 판단 (법원의 판단 부분)  

1. 이미 사망한 사람에 대한 명예훼손 (2)~(6), (8)은 우리 형법상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허위'의 '사실'을 퍼뜨리는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으며, 비록 비하하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의견'을 말하는 것은 위 형법법규로 처벌할 수 없다.

이 점은 삼권분립의 원칙이나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상 법원으로서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고, 위반하여서는 안되는 한계에 해당한다.

2. 유죄 부분
가. 피해자 ###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죄 (5)
- 피고인은 ##이 폭력시위를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조직했다고 주장.

- 당시 작성된 판결문에 의하더라도 ###은 태극기만을 준비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대열을 지어 장터를 행진하였을 뿐 아무런 물리적 실력행사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일본 헌병이 먼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면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실이 인정되는 점 등에 비추어 위 표현은 허위의 사실 적시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는 평화를 사랑하지만 침략에 대해서는 단호히 저항하는 우리 민족의 고결한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피해자 ###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결국 사자명예훼손죄 성립한다.

나. 피해자 ##에 대한 2007. 11. 20. 자 사자명예훼손죄 (6)
- '##은 민비의 원수를 갚는다면서 일본인을 살해한 뒤 중국으로 도피하였다'라는 표현은 일반인에게 '##은 일본인을 살해한 후로 그로 인한 체포나 처벌을 면하기 위해 곧장 중국으로 도망하였다'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런데 증거에 의하면 피해자는 1896. 3.경 ###라는 일본인을 살해한 후 집으로 귀가하여 머무르다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고,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중 탈옥하여 국내에서 종교, 교육활동에 진력하다가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1919. 3. 29. 비로소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 부분은 허위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 따라서 사자명예훼손죄 성립한다.

3. 무죄부분

가. 생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명예훼손 및 모욕의 점 (1)(7)
명예훼손죄 또는 모욕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특정되어야 하여, 막연하고 광범위한 집단에 대한 표현은 해당하지 않는데, '독립운동가', '해외에서 분리독립운동을 벌이는 집단'이라는 표현이 생존해 있는 독립운동가인 ### 등 개별 피해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나. 피해자 ##에 대한 2003. 6. 10.자 사자명예훼손의 점 (2)(3)(4)
이 부분 표현은 의견표명에 해당하며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다. 피해자 ###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의 점 (8)
'조선시대로 치면 산적떼'라는 표현은 ###이 이끈 항일무장활동의 성과와 가치를 폄하하기 위한 모욕에 해당하지만,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나. 다. 의 경우 사실적시가 없는 이상 명예훼손죄는 성립하지 않고, 그 표현이 악의적, 모욕적이기는 하나 사망한 사람에 대한 모욕죄는 처벌조항이 없다.


양형 이유

1. 아래와 같은 사정을 고려할 때 피고인을 엄히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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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만,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할 때 징역형을 선택하는 것은 부절적하므로 벌금형을 선택하되, 벌금 액수는 법에 규정된 최대한인 750만 원으로 정한다.

- 표현의 자유는 기본권의 측면에서나 민주주의 제도의 측면에서나 매우 중요하게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 피해자들은 모두 공적 인물로서 역사적인 평가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이 사건 범행은 피해자들이 행한 역사적 행적에 관한 것인데, 이처럼 공적인 인물들의 역사적인 행적에 관한 논의과정에서 저질러진 잘못을 너무 무겁게 처벌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악의적이고 모욕적인 표현에 대해서까지 형사처벌에 의한 국가의 개입은 가능한 한 최소화되어야 하고, 역사적 인물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논의가 정치적 토론과 학술의 장에서 자유롭게 유통되게 함으로써 건전한 여론 형성 및 학술적으로 올바른 견해의 정립에 기여할 수 있또록 용인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 사회의 사상적 다양성과 포용력을 드러내는 길이다.

- 피해자들을 비롯한 독립운동가와 순국열사들이 목숨을 걸고 건국하고자 하였던 나라는 대한민국 헌법에 표현되어 있는 바와 같이 사상적 다양성에 대해 포옹력을 갖춘 민주국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재판장 판사 윤성근
판사 서아람
판사 정의정




단상 혹은 단평

1. 백범 김구와 유관순을 각각 '살인마' '여자 깡패'로 묘사한 한 저술가(ㅡㅡ;)의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죄 성부를 판단하고 있는 사건이다. 부분적으로 유죄를, 부분적으로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이 사건은 유죄 부분보다는 무죄 부분이 더 중요한 사건이다.


2. 판결은 '사실'과 '의견'을 엄격하게 구별하고 있다.
형법상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의 (구성)요건인 '허위의 사실'이 아닌 경우에는 그 표현이 아무리 모욕적이고, 악의적이더라도 그 '의견'이 못마땅하다고 하여 죄의 근거로 삼을 수 없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3. 죄형법정주의(법률 없으면 범죄 없고, 형벌 없다)는 근대 형법의 제1정신이며, 기본원리다. 죄형법정주의란 "어떤 행위가 범죄로 되고 그 범죄에 대하여 어떤처벌을 할 것인가는 미리 성문의 법률에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의미"(이재상)한다. 그리고 우리 헌법은 제12조 제1항 후문에서 "누구든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규정함으로써 헌법상 기본권으로서 죄형법정주의를 거듭 확인하고 있다.


4. "죄형법정주의는 형법학의 산물이 아니라, 전제적 형사사업에 대한반동으로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정치적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근세자연권적 인권사상 내지 계몽주의 국법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이재상). 그러니 쉽게 말하자면, 죄형법정주의는 '시민계급'의 성장이 이뤄낸 정치적 투쟁의 결과물인 셈이다. 즉 죄형법정주의는 형법학의 논리적  진화과정 중에 채택된  이론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피흘려 쟁취한 역사적 성취물이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그 정치적 투쟁의 결과는 '헌법'을 통해 기록되곤 한다. 우리가 대통령을 직접 우리 손으로 뽑게 된 것 역시 20년 밖에 되지 않았다(87년 항쟁의 결과물로서의 87년 헌법).


5. 죄형법정주의는 '악당'(범죄자)를 두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악당마저도 그 행위만을 통해, 성문의 형법을 통해, 그리고 그 행위와 형법 규정의 구체적인 요건 적합성(구성요건 해당성)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는 정신을 천명하고 있다.

때로는 국가가 '악당'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가령 1935년 독일 형법 제2조는 "건전한 국민감정에 반하는 행위는 법률의 규정이 없어도 벌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 시대가 히틀러의 시대였음을 상기하자. 또 하나 상기해야 하는 것은 그 히틀러의 시대가 가장 합리적인 헌법으로 알려진 바이마르 헌법의 시대 직후에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1935년 독일 형법 2조가 이 사건에 적용되었더라면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까, 유관순을 여자깡패로 부르고, 백범 김구를 살인마로 부르는 자를 '건전한 국민감정'이 용서할 수 있었을까? 사자에 의한 명예훼손을 규율하는 형법조문에 '허위의 사실'이라는 요건을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으리라.

국민감정을 앞세운 '히틀러'가 우리 시대를 지배하게 된다면 그 때는 어떻게 될까? 그 '히틀러'는 형벌권을 강화하고, 형법을 자신의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할 것이 분명하다. 죄형법정주의가 통치자를, 독재자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한 근대 시민세력의 위대한 성취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



p.s.
뉴 라이트의 역사인식은 이 글을 참조.
"과거사 청산이라는 해서 안 될, 해도 되지 않을..." - 뉴라이트, 쇼아, 그리고 낮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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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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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삼봉 2007/12/04 05:18

    저 사람 예전 인터뷰 영상에서 의자 뒷편 책장에 '스타크래프트'가 떡하니 있던 정신세계가 실로 아스트랄한 그 사람 아닌가요? 스타크래프트에 필이 꼿혔으면 '테란연대기'나 작성할 것이지... 게임적 상상력으로 굴곡진 역사를 평하려하다니 가당찮은 인물이라 여기던 중에 검색엔진에서 이 사람의 웃기는 과거를 발견했습니다. 가당찮은 인물이 대선유세를 하는 광경을 보니 그 드러난 폐단이 미미한 빛고을에 산다는 ###와 같은 이에서는 따로이 말할 꺼리가 없네요(물론 민노씨가 이 글을 게시한 이유는 인물에 대한 것이 아니라 법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것이겠죠?).

    http://www.dal.kr/blog/archives/000812.html

    그런데 블로그의 우상단에 자리하던 '이랜드 불매' 띠는 어디로 가셨는지?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7/12/04 19:36

      한겨레 블로그에서 오셨네요. ^ ^
      반가움이 더 크네요.

      우상단의 이랜드 배너는 스킨이 문제가 생겨서 다시 교체하는 과정에서 깜빡한 것입니다.
      사이드 바로 옮겨서 조만간 다시 게시할까 싶네요. ^ ^;
      세심한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 )

  2.   2007/12/04 16:16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황빠나 심빠(여기서 심빠란 심형래팬과 디워팬 전체가 아닌 반대의견 블로그 같은 데 가서 하이에나처럼 난리쳤던 일부 광적인 부류라는 거 아시죠?) 또는 환빠(환단고기파) 등이 판결한다면 한 징역 10년쯤 때리지 않을까 싶네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7/12/04 19:39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 ^;
      말씀처럼 감정과 정서에 바탕한 판단은 그 편에 선 자들에게는 감정적인 쾌감과 만족감을 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정서적인, 감정적인 것에 기반한 제도는 그 자체가 그 사회성원들을 공격할 수 있는 '잠재적' 폭력성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을 좀더 깊이 염려하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 )

  3. 속류히피 2007/12/04 22:23

    민노씨의 이전 성시경 관련 글과는 같은 사안을 다르게 보시는 듯한 생각이 든 것은 제가 이전 글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일까요?

    "감정과 정서에 바탕한 판단은 그 편에 선 자들에게는 감정적인 쾌감과 만족감을 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정서적인, 감정적인 것에 기반한 제도는 그 자체가 그 사회성원들을 공격할 수 있는 '잠재적' 폭력성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성시경의 유승준 관련 발언에 대한 민노씨의 논평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이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을 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신 것인지 아니면 그것과는 사안이 다르다고 판단하신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perm. |  mod/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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