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유통기간

2007/09/03 23:47

0. 포스팅과 시의성의 가치.

시의성은 매우 중요한 가치다.
그 시의성이라는 가치는 동시대에 유통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대상이 되는 '어떤 사건' '어떤 현상'을 '함께' 고민하고, 그 이슈에 자신의 관점과 철학을 투사함으로써(포스팅함으로써) 동시대적인 고민이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실존적이며, 능동적인 참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그것은 물론 그저 피상적인 관심, 소위 속물근성 가득한 교양적인 관심, 혹은 그저 순간적인 호기심의 발현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는 하다.

하지만 시의성 있는 이슈에 참여한다는 것은 블로깅을 통해 내가 관계맺고 있는, '나'라는 곰팡이를 자라게 하는 숙주로서의 '사회'와 '관계'에 대해 즐겁게 고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이슈들은 대체로 거대이슈들일 확률이 높고, 또 거대 미디어들에서 '선별적으로 유통시키는' 이슈일 확률이 높다(덧. 이에 대한 비판은 별론으로).

나는 시의성이라는 가치를 긍정한다.
그것은 민주주의 시민사회의 의식적 하부기제로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블로그에 대한 가치와 매우 밀접하게 호응한다.


2. 표피들

그런데 속보성 포스팅들은 대체로 어떤 '사실' '사건'을 그저 전달하고, 또 파급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기존 거대 미디어들에 부수하는 작은 확성기들에 불과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그 블로거의 실존적인 떨림을, 그 실존의 울림을 담고 있지 못하게 되는 수가 많다.

더군다나 '트래픽'에 열광한, 그리하여 구글 머슴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은 블로그들은 이런 피상적인 경향을 강화한다. 그런 블로그들이 소위 '유명 블로그'라고 사람들은 착각하거나, 혹은 그 스스로가 자신을 유명 블로그라고 착각하게 된다.

네이버를 통해 공급되는 네이버 위성언론(특히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나 인기프로그램들 줄거리 소개하는)들의 콘텐츠가 아무리 높은 노출도를 갖고, 아무리 많은 트래픽을 유치하더라도, 그 위성언론에 어느 누구도 자발적인 권위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유독 블로그에서는 이런 '가짜 권위'가 득세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특히 수용자의 비판적인 수용능력 및 그 비판적인 수용의 방법론의 부재에 연원한다.


3.
글을 쓰다 보면 내가 내가 이끌지 않은 쪽으로 글들이 스스로 여행하기도 한다. 지금 이 글처럼. 내가 처음에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이 지루한 글을 어서 마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정말 점점 더 읽을만한 글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피상적이고, 휘발성 강한 목소리들은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는데, 몇줄 읽으면 아, 그렇구나. 하게된다. 그리고 노골적인 미끼글들은 여전히, 지금 이순간에도 무한한 가속도를 갖고 생산된다.

당신은 왜 블로깅을 하는가?
그리고 블로깅을 통해서 당신이 얻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런 거창한 질문을 굳이 던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 질문은 희미하게나마 당신에게 이미 있었던 질문이다.
당신이 당신의 블로그에 첫줄을 남겼던 그 순간부터.







* 발아점
아틸라, 블로그를 하지 않으면 생산성이 높아진다? [07/29/2005]
http://koreanjurist.com/index.php?id=65

" 기술이 발전하면, 제대로 자리잡을 때 까지는 기술의 남용이 이어지는 것일까?  옛날에 쓴 기억이 나는데, google에서 웹 페이지의 내용의 질을 평가할 때 웹 사이트의 역사(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등등)도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눈여겨 볼 만한 내용이다.  어쩌면, 개인 블로그가 기술이 보여 주는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얼마후 시들해 진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식의 남용과 다른 매체에 비교해 상대적으로—아니 절대적으로—높은 소음 비율과 신뢰도의 상실과 시간 낭비를 독자들이, 그리고 저자들이 견디지 못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 위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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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유통기간... 방부제와 자연스런 소멸 사이에서..

    Tracked from blog.betterface 2007/09/04 19:31 del.

    들어가는 글..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은 아직 순혈주의적 감성과 주입식 교육이 가져다준 수용과 발언의 관점에서 도덕적 입바른 소리만 내뱉는 행위(푸코의 강연인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라는 따옴표를 씌운 책이 출간되면서 이런식의 대의명분성 발언들을 내뱉으면서 자기 권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타인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변질되는 부분에 대한 분석이었습니다.)들이 다원화되고 고도화되는 산업사회와 맞물려 엇박자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머리속과 주변 환경은..

  2. Subject : 블로그에서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Tracked from EXIFEEDI's Life 2007/11/14 12:59 del.

    문득 “블로그에서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가장 우선적으로 도대체 “좋은 글”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부터 뒤따라야 할 것 같기는 하다. 그 중에는 “좋은 글을 쓰는 비결이란 없다(블로그, 좋은 글을 쓰는 비결)”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말이다.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건 무슨 일을 하건 내 이야기, 내 생활을 이..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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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조은인상 2007/09/04 19:04

    저도 무플 방지하러 왔습니다...
    짧은 생각 조만간 트랙백 걸어두고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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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9/05 00:19

      더조은인상님께서 보내주신 글은 아까 일단 일독했습니다. : )
      진지한 논의를 더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시 한번 찬찬히 읽고 제 부족한 의견이나마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2. 너바나나 2007/09/05 19:49

    솔직히 올블 등에서 좋은 글을 읽긴 더이상 힘들 것 같구만요.
    특단의 조치를 취해서 잇다넷을 고쳐보죠!! 조만간 의견을 내겠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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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9/06 11:31

      잇다넷에 대해서는 저 역시 내내 찜찜하던 차였는데요.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기본적으로 잇다넷에서 운영자가 행사할 수 있는 재량이 한정되어 있는 것 같고, 또 올블에 종속되는 구조라는 판단이 들어서서.. 무책임하게 방치(ㅡㅡ;;) 하고 있었네요.

  3. 히치하이커 2007/09/06 21:03

    음악에 대한 글을 포스팅하면 이런 좋은 점이 있더군요. 좋은 음악엔 유통기한이 없다는. (웃음) 몇 십년 전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누군가와 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즐겁답니다. 물론 그 좋은 음악을 표현하는 제 글이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요.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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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9/06 23:49

      음악을 포함한 모든 좋은 글은 유통기한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실은 없으면 좋겠다. 이겠지만요. ^ ^;
      때론 정말 시간을 견디는 것들이 가치있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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