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 혹은 아주 우울한 코미디

2007/08/30 13:56
#. 이 글은
김규항, 평론가
http://gyuhang.net/archives/2007/08/29@04:44PM.html
http://www.gyuhang.net/mt/mt-tb.cgi/1143.1310912592
에 보내는 트랙백입니다.


1.
자신의 글이 싸늘하다고 말하는, 거기에 더해 재밌다고 말하는 김규항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게 역설, 그러니 스스로에 대한 반성적인 사유가 아니라면, 정말 재앙에 가까운 글일 뿐이다.

이 글만을 말한다면, 물론 그래야 할테지만, 그 편협하고, 고리타분한 인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지경이다.
아무리 읽어도 이건 역설이 아니다.
싸늘하지 않고, 섬뜩하게 코믹하다.
우울하기 그지 없는 코미디.

안타깝다.


2. "평론가란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에 기생하는 사람'이다." (김규항)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고전적인 의미(라기 보다는 고답적이며, 상투적인)에서의 생산자, 특히 문화 영역에서의 생산자 역시 세상을 해석하는 자일 뿐이다. 그는 세상을 바라보고, 그리고 그 세상을 자기 식으로 읽는다. 그리고 그 해석을 음악에, 영화에, 미술에, 소설과 시라는 형식에 담을 뿐이다. 누구도 그들을 세상에 '기생'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김규항의 이 발언은 마치,
청소부는 쓰레기에 기생하고,
의사는 환자에 기생하고,
택시기사는 자동차에 기생한다는 말처럼 어처구니 없는 말이다.

생산자의 대립항으로 설정된 평론가는 어떤가?
그가 읽는 텍스트 역시 세상이다.
다만 그는 세상이라는 텍스트가 담겨진 또 다른 텍스트인 음악을, 미술을, 문학을 (동시에 컨텍스트이기도 한 세상이라는 맥락 속에서) 다시 읽을 뿐이다.

그럼 텍스트와 텍스트가 만들어진 컨텍스트(맥락)의 관계는 어떤가?
이것은 상대적이다.
텍스트로 둘러싸여진 텍스트들의 관계망은 그 자체로 컨텍스트(맥락)가 된다.
텍스트를 만들어낸 세상이라는 맥락은 당연히 컨텍스트이지만, 그것이 관계의 관점에 따라, 그것이 읽혀진다는 관점에서 파악하면 텍스트가 된다.
그러니 텍스트와 컨텍스트는 따로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김규항이 말하는 생산자/평론가의 이분법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허위 속에 존재하는 지를 증거한다.


2-1. 좀더 풀어서 이야기해자.

영화 감독과 영화 평론가가 있다.
영화 감독은 영화(생산물 A)를 만들어냈고, 평론가는 영화비평(생산물 B)을 만들어냈다.

A와 B는 왜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

이것이 근본적인 질문이다.

A는 B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B 역시 A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A와 B는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위해 존재하게 된다.
그것은 C라는 관객(독자)이 여기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C에는 물론 A와 B가 포함된다.

왜냐하면 모든 창작자는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을 읽는 가장 빠른 독자이자 비평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본래 존재했던 모든 텍스트의 텍스트이자, 모든 텍스트의 컨텍스트로서의 세계가 있다.

이 삼각형은 김규항이 생산/평론이라고 말하는 모든 텍스트와 콘텍스트라는 관계, 그 상대적인 역설의 기본적인 원형이다.

그는 창작/비평이 서로의 그림자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그는 세상이 서로 관계맺고 있고, 결국은 상대적으로 서로에게 서로의 반의어로 불려지기도 한다는 자명한 진실을 기계적인 이분법으로 위장하고, 심지어 그것이 서로 종속관계에 있다고 설파한다.

그리하여 이 모든 것들이 그저 단지 세상을 좀더 풍요롭게 읽고, 그 세상에 개입하는 '생산'이며, '소비'라는 자명한 진실, 창작이면서 비평이라는 자명한 진실을 엉터리 논리로 덮어두고 있을 뿐이다.


3. 언어에 담겨지고, 담겨지지 않고는 가치의 위계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

황지우의 시들이 위대한 것처럼,
김현의 평론들은 동등하게 위대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민케인'(오손 웰즈)이란 영화가 위대한 것처럼,
'영화란 무엇인가'(앙드레 바쟁)란 영화비평서도 동등하게 위대하다.




p.s.
디빠나 디까도 마찬가지다.
그 이분법에의 강요가 파시즘이라면 파시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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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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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푸른가을 2007/08/30 15:59

    재미있기는 한데요?
    평론가가 '생산하는 자에게 기생하는 자'라니.. 피식하기는 했지만.
    웃기기는 합니다.. -_-;

    ps. 아..스킨 바꾸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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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8/31 00:07

      예.
      좀 안정감 있는 스킨으로 바꿔보고 싶어서..
      써머즈님 스킨으로 갈아탔습니다. : )

  2. 윤군 2007/08/30 16:32

    김규항씨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연륜에 맞는 스스로의 세상을 구축중인 것 같습니다. B급좌파는 옛날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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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8/31 00:09

      어떤 취지로 이런 글을 쓰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대한민국의 구체적인 현실(평론가 집단)에 실망하셨더라도 이렇게 추상적으로 싸잡아 비난하고, 조롱할 수 있는 건지 의문이에요.

    • 윤군 2007/08/31 09:21

      아. 그냥 요즘 김규항씨의 글이 예전과는 많이 분위기가 다른 듯 하여 의미 없이 올린 글입니다. 예전 B급 좌파 시절의 글에 비해서 많이 무뎌지신 것 같아서요. 좀 안타깝기도 하고... (말주변이 없어서 말줄임으로 갈음합니다.)

    • 민노씨 2007/08/31 09:26

      이런.. ^ ^;;
      (김규항씨께서) 어떤 취지로 이런 글을 올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뜻이었습니다. 윤군께서 남긴 논평이 그렇다는 게 아니었는데... ^ ^

    • 윤군 2007/08/31 10:22

      아 저는 첫줄은 저에게 나머지 두줄은 김규항 씨에게 하는 말인줄 오해했군요 ^^

  3. 하늘빛마야 2007/08/31 13:21

    앞서의 [타인의 취향]이라는 글을 안좋게 본 저로서는 [평론가]와 [타인의 취향]이 같은 선에 놓여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작품에 대한 모든 분석과 판단의 기준이 개인의 "취향"으로 귀결된다면 사적 취향을 강매하는 평론가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도둑놈들일 수밖에요.

    제게는 김규항씨가 실망해서 저렇게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말로 저렇게 생각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지식인들은 먹물장사꾼이고 언론인들은 거짓말장사꾼이고 평론가들은 헛소리장사꾼. 본인도 몇해 전에 쓴 글이라 말하고 있는 걸 보면 하루이틀 사이의 변화는 아닌 것같네요.

    보는 사람으로서는 김규항씨 말마따나 웃기는 글이긴 한데, 쓴 본인이 읽는 사람들과 같이 웃어버리니 이건 완전히 비극이 되어버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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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8/31 23:51

      평론계의 권력관계, 인맥, 그 부정적인 '끼리끼리' 혹은 '패거리즘'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있고, 또 비판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다만 김규항씨의 위 대상글은 (그런 인식에서 출발한 글이라고 해도)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글이라고 생각해서 아쉬움이 깊네요.

      말씀 고맙습니다.
      마야님의 글은 종종 읽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이견을 갖기도 하고, 또 때론 깊이 공감하기도 합니다만..
      글 자체로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종종 교류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 )

  4. capcold 2007/08/31 18:00

    !@#... "좋은 평론이란 어디까지나 '글로서의 그럴싸함'을 기준으로 하게 마련이다" 라니, 결국 평론은 '글'이라는 자체적 기준을 가진 독립된 생산물이라고 인정하는 것이군요. 그런 평론을 써내는 사람을 굳이 "생산에 기생하는 사람"이라고 칭하는 모순이라니... 오늘날에는 아주 시대적 유행이 되어버린 '닥치고 증오'가 낳은 걸작 블랙코미디. // 참, 규항넷에 트랙백 아직 안걸렸습니다. 한번 다시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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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8/31 23:54

      저로서는 스스로 (광의의) '평론가'면서 이런 글을 쓴 취지가 역설적으로 자신을 반성하는 취지가 아니었겠나 하면서 여러번 읽었는데요. 이는 아닌 것 같더군요. 도무지 어떤 취지로, 무엇을 위해 이런 글을 썼는지 저로서는 불가사의할 뿐입니다. ㅡㅡ;;

      p.s.
      트랙백은 여러번 보냈는데요...
      "걸 수 없었습니다" 라는 짜증스런 대답만 팝업으로 계속 뜨네요. ㅡㅡ;
      예전에도 무버블타입에 트랙백을 보내면 종종 그런 멘트가 올라오고, 대신에 트랙백은 보내졌던 기억도 있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올라오지 않네요. ㅡㅡ;

  5. 히치하이커 2007/08/31 23:36

    '기생'이란 표현은 과합니다만, 평론이란 무언가가 먼저 존재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쓴 것이 아니가 싶기도 합니다. 평론은 무언가에 영향을 끼치고, 무언가는 평론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고, 평론은 다시 무언가를 자극하고...이런 순환이 계속 되긴 하지만, 그 시작은 분명하니까요.

    그리고 씁쓸하긴 합니다만, 그의 저런 표현은 작금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을 조소하는 글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도대체 이땅의 지식인(엘리트, 지도자, 리더, 먹물 뭐든지요)이란 자들은 대체 어디서 뭘 하며 살고 있는 걸까'란 의문을 도저히 풀 길이 없는 저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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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8/31 23:58

      그 조건(인과)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따라서는 세상의 모든 창작자들은 어떤 것이 이왕에 존재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것이 이왕에 존재했고, 그것을 매개로 해서 어떤 새로운 '창작'(비평. 저는 비평 역시 광의의 창작행위라고 생각합니다)한다고 할 때 , 그 생산된 것을 기준으로 그 가치를 판단해야 하지, 그것이 매개된 창작물이기 때문에 '열등'하다는 논리는, 그런 기계적이며, 천박한 사고는, 스스로가 비평가이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그토록 태연스럽게, 웃기다, 재밌다 이러면서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저 역시 우리나라의 비평계, 혹은 지성계라고 불리는 그 패거리즘에 굉장히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김규항식의 신경질적이며, 편협하고, 스스로의 존재기반을 부정하는 이런 접근방식은 곤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히치하이커 2007/09/01 15:08

      그 조건을 넓히자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고 할 수 밖에 없겠죠. (웃음) 기생이란 표현이나, 모든 평론을 깍아내리는 듯한 뉘앙스는 저도 탐탁치 않습니다. 말하신대로 그 스스로도 평론을 하는 사람이고. 저도 건강한 평론이 있어야 더 좋은 작품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한데도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이해가 가는 건 역시 '그들을 향한 불신'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쓰고 보니 이건 또 이대로 서글프군요. ㅜ ㅡ

    • 민노씨 2007/09/01 18:55

      저로선 가장 서글픈 건 스스로에 대한 반성적 사유는 그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평론가이면서 말이죠. ㅡㅡ;

  6. 김민섭 2007/09/01 23:12

    창작과 비평사라는 이름의 정확한 기원은 모르겠지만, 김규항의 식으로라면 쓰레기와 청소부 정도가 적절한 뜻이겠군요. 혹은 승리자와 패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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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9/02 21:41

      창비나 문지가 날렸던(?) 시기, 특히 80년대는 시의 시대이면서, 또 동시에 평론의 시대였는데.. 라는 착잡함이 어렴풋 떠오르네요. 창작과 비평은 동일하게 가치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짓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백낙청씨 속마음이야 모르는거지만요.

  7. 2008/07/14 12:54

    근본적으로 평론가는 생산에 기생하는 존재가 맞습니다.
    또한 속성상 권력 지향적이지요.
    이건 제가 만난 평론가들이 대부분 인정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생산에 실패해서 평론가가 되었다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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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7/14 13:15

      의견만 있고 논거가 없으시네요. ^ ^;

  8. 앤나도좋아해요 2008/07/14 14:37

    트랙백 대상인 http://gyuhang.net/archives/2007/08/29@04:44PM.html 이 글이 사라졌습니다. 졸지에 이 글은 끈 떨어진 연이 되어버렸군요. 애도를 표합니다. 원출처 링크 보유자의 책임감이란 참 종종 너무 쉽게 경시되지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8/07/17 06:20

      저 역시 아쉽긴 하지만...
      그리고 어떤 논쟁적인 성격의 글을 임의로 삭제하는 것은 토론에 참여하는 자세가 아니라고까지 생각 하지만...
      결국은 궁극적으론 그 글을 삭제하고 말고는 그 블로거에게 속한 권한이라서 말이죠...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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