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에게 매맞고 싶지 않다

2013/07/24 10:02
* 발아점(發芽點): 포털 뉴스 담당자에게 듣는다 5: 편집권에 관한 고민과 전망

"포털들은 광우병 시위를 비롯해 사회의 크고 작은 사태와 소동의 발화점(發火點) 노릇을 해 왔다. 그런데도 이런 탈선을 걸러내거나 피해를 구제할 장치도 없다" (조선일보 2013년 7월 5일 자 사설)

1. 언론 사설이라기 보다는 무슨 근엄한 집안 어른의 목소리 같다. 혹은 무슨 박정희 시대의 경찰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참 놀고 있다.

2. "광우병 시위를 비롯한 사회의 크고 작은 사태와 소동"은 그 자체로 "탈선"이 아니며, 그 사태와 소동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증거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탈선이라면 '선'을 정하는 건 누구인가? 그것은 언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그 소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대화과 토론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언론은 '정답'을 말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 대화의 실마리를 풀어주고, 그 대화의 공간을 마련해주는 존재이어야 한다. 조선일보는 그런 점에서, 일은 정말 열심히 한다고 하던데, 언론으로서의 철학을 논할 수 없을만큼 오만하고, 독단적이다.

3. 이런 조선일보가 '일등신문'이라고 광고하는 이 사회는 매맞고 싶은 사람들이 주인(?)인 그런 민주주의 사회인건가? 그런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고마해라, 많이 맞았다 아이가!"

4. 발아점인 '포털 뉴스 담당자 인터뷰 정리'는 아주 뜻깊은 시도다. 물론 이 쪽으로 고민했던 사람이라면 대개 예상 가능한 이야기들이긴 하다. 그럼에도 포털 내부에서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살아 있는 사람', 때론 분노하고, 때로는 열변을 토하는 그런 목소리의 '인간'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자료로서는 그 어떤 감동적인 칼럼이나 그 어떤 풍부한 비평보다도 값지다. 5회의 마지막 연재인 이번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목소리는 다음과 같다.
“언론이란 건 같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나아갈 방향을 설계해 나가는 논의의 장이다. 그 각축 과정에서 세상은 조금씩 달라진다. 공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갈등이 중요하다. 객관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합리적인 주관이 중요하다.”

언론의 객관성이라던가, 불편부당을 정면에서 비판하는 맥락이다("같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언론이 순결하고 투명한 하얀 도화지 같은 것이라거나, 혹은 사실만을 전달하는 무생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언론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언론을 사회의 공기라고 하는 이유라 믿는 사람들을 탓하지 않는다. 그런 신념조차도 충분히 존중할만하다. 하지만 세상에 온전하게 객관인 사실도 그 사실에 관한 평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합리적인 주관"을 통해 이 세계를 해석하고, 그 해석을 통해 '대화'할 따름이다.

5. 가령 기사투 글쓰기의 관습적인 행태 중 하나인 "나"의 생략을 생각해보자. 글을 쓰는 기자는 실존의 인간이다. 그는 기계가 아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다. 그 인간이 아무리 다양한 취재원의 목소리를 균형감 있게 배치하고, 아무리 깊이 고민해 사안을 다루더라도 그 인간 자체가 하나의 관극적인 틀에 불과한 것이다. "합리적인 주관"을 가진 인간과 객관적인 척 하는 세계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저널리즘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많은 저널리즘의 철학적이거나 기술적 발전들이 녹아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나"를 지운다고 해서 기사에서 그 "주관"이 거세되거나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세계의 모든 언론들은 다들 저마다 주관적이다. 다만 객관과 실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격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조선일보의 격은 술취한 가부장 혹은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의 그것이다. 나는 취객이나 폭력 경찰을 언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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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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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현 2013/08/21 15:53

    어떤 사람의 시선 하나 쯤으로 넘겨버리기에는 "조선일보 사설"이 목소리도 크고 힘도 무시할 수 없겠네요. 근엄한 집안 어른 목소리에 세대차이 난다며 툴툴대는 풍경입니다. 뒷담화도 논의의 장일까 하는 생각을 붙잡으며 유쾌하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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