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딱히 '나경원 남편 김판사 기소청탁 의혹 사건'에 관한 글은 아니다. 이 글은 그저 우리시대의 논객 진중권(이 쓴 글)에 관한 글인데, 뭐 소심한 상념에 가까운 글이거나, 혹은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이길 바라는 글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진중권의 존재가 우리 사회에서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물론 나는 진중권이 재수 없을 때가 아주 많고, 이건 나꼼수 뻘짓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굳이 비교하면 막상막하랄까. 각설하고.

"박은정 검사는 ‘양심선언’을 할 의사가 없었다. 그저 자신의 발언을 폭로했다가 곤경에 처한 주진우 기자를 조용히 도우려 했을 뿐이다." (진중권, '기소청탁사건의 아주 건조한 시나리오' 중에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을 '기소청탁사건의 아주 건조한 시나리오'라고 쓰고 있지만, 이건 물론 '시나리오'가 아니다. 그러니 이건 픽션이거나 판타지가 아니라 논객이 어떤 논리적 가설을 세워서 무엇인가를 논리칙으로 입증, 주장하기 위한 글이다. 그런데 그 논객이 궁예가 된다. "박검사는 양심선언을 할 의사가 없었다."는 문장은 관심법이 아니고선 설명이 불가능한 문장이다. 그 문장에 이어져 나오는 "(박검사는) ~ 도우려 했을 뿐이다."라는 문장 역시 마찬가지다. 진중권 글은 심지어 박검사가 '진술서'를 경찰에 전달하기 전에 쓰여진 글이다(
참고. '관계자' 저널리즘에 대한 궁금증).

당사자는 입 다물고 있는데, 그 당사자 의사를 자기 마음처럼 들여다보듯 "없었다."고 쓸 수 있는건지, "조용히"(시끄럽겐 아니고?) "도우려 했을 뿐"이라고 타인의 의사를 임의로 참칭할 수 있는지, 그야말로  불가사의하다.

좀 자세히 설명하면, 어떤 정황 근거에 바탕해서 가설을 세울 수도 있고, 정황의 맥락을 재조직화해서 전혀 새로운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다. 그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그러니 "의사가 없었다고 보여진다"라거나 "의사가 없었다고 생각한다"라는 표현은 무방하다. 이건 의견이나 판단에 불과하니까. 이건 '사실 진술'이 아니다.

그렇지만 "의사가 없었다"라고 말하면 얘기가 아주 달라진다. 이건 '의견 진술'이 아니라 '사실 진술'이 된다. 더불어 논리적으로도 비문이다. 어떻게 직접적 관련없는 정황적 근거를 통해 당사자 의사를 추출해낼 수 있는가? 이 사실 진술이 신비롭게까지 느껴지는 건 당사자는 이 '진술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에 대해선 계속 '침묵'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진중권이 아무리 우리 시대의 논객이라 하더라도 '침묵'으로부터 '사실(진술)'을, 어떤 당사자의 '의사'를 확정적으로 도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건 신도 못한다(궁예만 한다). 더불어 "도우려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거나 "도우려 했을 뿐이라고 보여진다"가 아닌 "도우려 했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 

간단히 말해서, 진중권의 '박검사 아우팅' 드립은 정황에 근거한 가설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가설이 표현되는 형태는 단정적인 사실 진술이다. 그 순간 가설은 더 이상 가설이 아니다. 그 순간 그토록 힘들게 쌓아놓은 논리의 아름다운 구조물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버린다. 더불어 그 순간, 그 가설은 진중권이 그토록 비난하고, 경멸하는 일부 나꼼수 팬덤의 맹목적 행태, 즉, '신앙'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리며, '건조한 시나리오'는 '느끼한 자뻑'이 된다. 안타깝다.


추.
박검사의 진술서에 대한 '해석질'이 분분하다. 심지어 진술서 전달 직후 중앙,동아는 '청탁은 없었다'라는 취지로 기사를 쓰고 있는데, 어제 저녁 기준 한겨레 기사를 읽으니 정반대 해석을 사실처럼 전하고 있다. 이건 정말 기자인지 점쟁인지 구별이 안갈 지경이고, 이게 정말 뭐하는 시츄에이숑인가 싶다. 여전히 공식적으로 박검사 자신이나, 책임있는 수사당국에선 입장을 공표하지 않고 있다. 비는 안오고, 굿판만 떠들썩하구나.


* 관련 추천글  
기소청탁 의혹 사건에서 물론 사건의 알맹이는 '기소청탁' 여부다. 정치인 와이프를 돕기 위한 판사 남편의 애정 행각이 권력남용이라면, 그런데 그 권력남용을 정치인 와이프가 교사/방조 혹은 방관했다면, 그 사랑 넘치는 부부의 애정 행각은 공적 책임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정보원 보호 이슈'는 부가적 이슈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저널리즘적 관점에선 아주 중요한 문제다. 이에 대해선 캡콜사마의 아주 훌륭한 글을 강추하는 바다.

캡콜드, 나꼼수 사법청탁 폭로, 정보원 보호 측면



트랙백

트랙백 주소 :: http://minoci.net/trackback/1309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
  1. 민노씨 2012/03/07 07:01

    김용철이 참 연기 잘 했는데.. ㅎㅎ 옛날 생각나는구먼.

    perm. |  mod/del. |  reply.
  2. 민노씨 2012/03/07 07:56

    * 진중권 글은 별로 추천하는 글이 아니라서 링크를 안걸려다가, 그래도 대상글인데 안걸면 안될 것 같아서 검. 그런데 직접 링크를 걸긴 싫어서, 구글 검색어 링크로 우회적으로 검.

    perm. |  mod/del. |  reply.
  3. opne 2012/03/07 09:37

    진중권씨 요새는 완전히 맛이 가신 것 같습니다.

    예전에 심형래 영화때만 해도 나름데로의 자기 철학이 어느정도 이해할 만 했었는데,
    요새는 강용석이랑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요새는 어거지 부리는 것 밖에 안보이네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2/03/08 01:35

      진중권 씨는 정말 의미있는 지식인인데, 제가 진중권 씨를 오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 입장에선 많이 아쉽네요...;;; 특히 나꼼수, 곽노현 등 최근 이슈에선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4. 민노씨 2012/03/08 02:48

    * 사소한 추고.

    perm. |  mod/del. |  reply.
  5. 민노씨 2012/03/09 02:14

    * 이고잉 님과 새벽에 대화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유시민의 <글을 잘쓰는 방법>(5/5) : 아주 재밌다. 청소년들이 보면 아주 좋을 듯! : )

    http://www.youtube.com/watch?v=xfdg7m7bJOc

    perm. |  mod/del. |  reply.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댓글 입력 폼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