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과 골목으로 이어진 좁은 길은 나에겐 유년이다. 유년, 난 그게 잘 기억나지도 않지만...  하지만 희미하게나마 기억나는 몇몇 풍경들, 얼굴과 목소리들. 거기엔 골목이 있다. 거대한 모험의 나라처럼, 낯의 골목에서 아이들과 뛰어놀다 저녁으로 돌아가면 엄마가 지어주는 뭉개구름 같은 찌개 . 그 기억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인지 들어간 뒤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래간만에 초등학교에 들어가 '이렇게 작았어?" 놀라는 것처럼 그 거대한 모험의 정글, 골목으로 이어진 울창한 숲은 지금 작고, 볼품없다. 하지만 그 골목은 여전히 희미하게 기억나는 빛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람, 그 투명한 감촉으로 나를 감싸곤 한다.

그 골목이 지워지고, 무너지고, 사라지고 있다.
신비의 아름다운 프로젝트, 옥수동 트러스트는 그래서 더 따뜻하게 빛난다.
신비가 담은 저 나팔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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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 <옥수동 트러스트>
oksutrust.tumblr.com/ 


추.
물론 재개발의 문제는 이건 감상적인 기억으로만 바라볼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은 시간 속에 무엇보다 공간 속에 담긴다.
그 기억이 모두 다 지워진다면 사람이란 존재는 어디에 담길 수 있을까.



옥수동 트러스트?

드라마 [서울의 달] 배경이었다고 하는 달동네 옥수동. 끝없는 재개발의 도도한 행진으로 사방이 아파트숲으로 변해가고 있는 가운데, 거의 마지막 남은 13구역의 재개발이 최근 확정되었다. 2011년 들어서는 주민들이 속속 이사를 가면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옥수동 달동네의 마지막 모습을 발걸음 닿는대로 기록한다. 2011년 9월부터. @sinbi

옥수동을 기록하자는 아이디어는 짝꿍으로부터 나왔고, 옥수동 트러스트라는 이름은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의 오마쥬로 붙여보았다.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산 기증과 기부를 통해 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확보하여 시민의 소유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시민운동을 의미한다. 이 운동은 산업혁명을 통해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룩했던 영국에서 1895년 시작되었다. 당시 영국은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환경 파괴 그리고 자연․문화유산의 독점적 소유에 의한 각종 사회문제가 발생하였다.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존엄과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환상이 사라질 즈음, 시민들 스스로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를 탄생시켰다… (위키백과)




신비와 미니 인터뷰 


- 사진은 그 자체로 풍부한 이야기지만 이야기를 좀더 담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거기에서 직접 살았던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줬음 좋겠다. 그래서 그 분들을 만나고 싶다. 그 분들이 갖고 계신 사진들도 올리고 싶고..."

- 공간으로서 블로그가 아닌 텀블러를 선택한 이유는?

"쉽고 간단해서. 미디어의 특성을 잘 살려주는 것 같다. 사진이면 사진, 영상이면 영상, 텍스트면 텍스트. 각각에 최적화된 툴을 제공해준다." "블로그에 담으면 너무 복잡해보여서." "스마트폰에서 올리는 것도 굉장히 간단하다." "외부 참여도 가능하고.."

- 외부 참여는 어떻게 가능한가?
"텀블러에 가입하면 공동작업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고 안다. 각 지역별로 이런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좋겠다."

- 작업방법을 알려달라.
"피카사에 올리면 구글 지도에 자동으로 사진이 뜬다. 텍스트는 자막작업 정도. PC에서도 피카사를 쓰니까. 자동으로 동기화되서. 한가지 더 추가한 건, 피카사에서 본 사진은 다른 사람이 가져갈 수 없으니까, 온라인 피카사에서 구글어스에서 올리는 작업이다. 처음에는 피카사에서 시작했지만,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려고 한 것. 결국 피카사에는 로데이터가 있고, 텀블러에선 캐스팅을 하고, 임베디드 코드는 구글지도에 있는 셈이다."

- 옥수동 13구역의 느낌은 어떤가.
"풍경이 이쁘다. 스토리도 많고. 많은 이야기들을 상상하게 된다.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저기 머물렀을까. 아이들은 어떻게 이곳에서 놀았을까. 물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가 상상한 이야기들을 확인할 방법도 기회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상상하면서도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처음엔 재개발 구역에 들어와 산다는 게 불편했다. 무섭기도 하고, 지저분하다고도 생각하고. 하지만 지금은, 익숙해져서도 그렇겠지만, 정이 들었다.옥수동 트러스트를 하면서 더 그런 것 같다. "

- 재개발에 대해.. 
"재개발. 돌이킬 순 없다는 걸 알다. 정말 신기한 공간, 신기한 건물들이 많다. 살던 사람들에겐 고통스런 기억일 수도 있겠지만. 한층이라도 더 올리려고 건물이 이상해지기도 하고. 그렇다고 다 버리고 아파트를 짓는 건 슬프다. 얼마 전에 근대건축에 관한 세미나에게 가려고 한 사이트에 갔다. 건축 전공자 사이트 같더라. 재개발 지역에 관한 글이 있었는데, 날림으로 지어진 비위생적인 건물은 좋지 않고, 어쨌든 개발이 필요하다는 글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팍 상해서 세미나엔 안갔다. 뻥튀기해서 아파트 지으면 값은 오르겠지만....

- '미래가치'에 대해
내셔널 트러스트를 하는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미래가치'라는 말을 하더라. 북촌 한옥마을. 거기엔 새로 짓는 집들도 있다. 지금 짓더라도 '미래가치'를 생각하는 건축이 되어야 한다. 북아현동인가? 뉴타운지역, 다 밀어버리는 건 미래가치를 무시하는 것 같다. 아파트가 미래가치가 될까? 그럴 것 같진 않다. 이 작업을 하면서 생각이 확장되는 것 같다. 재개발은 돌이킬 수 없고, 나도 떠나기는 하겠지만, 지금 이 작업은 내가 살아가는 공간을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생각하고, 그 기억과 상상을 쌓아둘 수 있어서 좋다."

- '사람들, 사람들이 사는 공간, 공동체'에 대하여
"이 프로젝트를 좀더 일찍 시작했다면 지역에 스며들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내 성향상 사람들과 더 친해질 수 있었을 것 같다. 지금은 누가 언제 떠날지 알 수 없는 상황. 지금 남은 사람들은 주로 세입자들일텐데...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하니까. 쓸쓸하다."

- "온라인에선 그 공간이 살아 있을 수 있도록.."
"온라인에서 공간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 증강현실처럼. 그 곳에 있는 건물은 바뀔지 몰라도 온라인에선 그 공간이 살아 있을 수 있도록. 언젠가 기회가 되면..."  

* 신비 (@sinbi)
<호기심은 공포를 이긴다>
<옥수동 트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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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크와 블로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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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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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비 2011/11/13 23:33

    꺄아.. 스카이프의 대화가 이렇게 기록되다니. 역시 민노씨의 정리력에 놀랐어요.
    그리고 옥수동 트러스트 너무 예쁘게 담아줘서 고맙구요.
    옥수동에 대한 추억과 이야기를 갖고 계신 분들을 차차 만나게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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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1/11/13 23:52

      정리력이라고 할 것도 없는데 말이죠.
      그냥 타이핑하는건데. ㅡ.ㅡ;;;
      저도 왕십리 트러스트 혹은 행당동 트러스트 해볼까요? ㅎㅎ

    • 신비 2011/11/14 23:14

      해요해요! 제가 세팅까지 다 해드릴께요~~ 히히

  2. 강정수 2011/11/13 23:43

    저는 최근 옥수동 트러스트 지역이 매일 매일 보이는 지역으로 이사왔어요. 걸어서 가도 10분 거리. 그래서 시간날 때마다 그 골목길을 가보곤 한답니다.
    신비님 작업을 저희 인주찾기나 또는 또 다른 동인들과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이 곳 어느 공간에서 지역민들과 같이할 수 있는 '생활 블로그'를 진행하고, 지역민들과의 인터뷰를 대학생들과 함께 진행해서 이를 다른 틀로 묶어본다든지.... 여하튼 곧 '옥수동 트러스트 회동' 한번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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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1/11/13 23:55

      좋죠! : )
      좀 다른 이야기인데 '데이터 저널리즘'에 대해서 한번 조언을 들어보고 깊습니다. 오늘 주신부님과 우재씨, 피타님의 버클리 회동(ㅎㅎ. 종종 그렇게 모여서 한잔씩 하시는데요)에서 특히 피타님께서 '데이터 저널리즘'에 대해 깊은 관심과 의욕을 보이셔서 말이죠. 인주찾기에서 한번 함께 고민해볼만한 테마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나 정수씨께선 이에 대해 깊이있는 안목을 갖고 계시니까요.

    • 신비 2011/11/14 23:16

      와아~ 정수님^^ 그래요. 저도 드디어 오늘 사소하지만 재미난 놀이가 하나 생각났거든요. 어디다 먼저 말할까나 두근두근!

  3. 행인 2011/11/14 13:47

    옥수동의 추억은 아니고 '서울의 달'의 추억이 있습... ㅋ
    지금의 구로 디지털단지역(예전 구로공단역)에서 남부순환도로 시흥방면으로 조금 내려오다보면, 지금은 아파트단지를 비롯해 완전 딴 세상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공단 벌집촌이 있었더랍니다. 그 쪽방에서 살 때인데, 하루는 밤 늦게 자러 들어가는 데 골목이 막혔더군요. 소방차까지 와있고. 그 골목은 사람 두어명 나란히 서면 꽉차는 그런 크기였는데, 그 길이 아니고서는 집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죠. 근데 그 밤중에 물뿌려가며 무슨 촬영을 하는데, 한 두 번도 아니고 계속 엔지... 지나가려 하면 좀만 기다려라 그러면서 계속 통행 방해, 참다 참다 성질이 나서 욕지거리 좀 하고 쥐랄 좀 떨었더니 미안하다면서 길을 비켜주더만요. 시끈벌떡하면서 지나가다 흘깃 봤더니 채시라랑 한석규. '서울의 달' 촬영 중이더만요. 아놔... 씅질 부리지 않았으면 싸인이라도 해줬으려나 했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 성질 부린 게 쪽팔려서 죄다 쌩까고 부지런히 기어들어가버렸는데 며칠 뒤 방송에서 그 골목이 나오더만요. ㅋㅋㅋ 국산 드라마 중에서 그나마 기억에 남는 드라마 중 하나인데, 갑자기 '서울의 달' 생각이 나서 끄적거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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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비 2011/11/14 23:18

      크하하. 재밌네요. 언젠가 금호역 (옥수동은 금호역에 있답니다) 구내에 있는 대형TV에서 매일같이 드라마 '서울의 달'을 보여준 적이 있었어요. 케이블에서 한 건지 일부러 튼 건지 지금도 궁금...

    • 민노씨 2011/11/14 23:55

      행인님께서 그런 추억이 계셨군요. ㅎㅎ
      예전 글( http://minoci.net/1086 )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김운경의 '서울의 달'은 저 개인적으론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죠.

      추.
      행인님 뵌지도 정말 오랜데 언제든 시간나시면 전화 한방 주십쇼.
      꼭 만나고 싶습니다!

  4. 희동네 2011/11/14 18:15

    출장갈 때 경부고속도로를 많이 타는데, 한남대교 건너가서 고속도로에 진입하면 분당 근처까지 도로 양옆으로 고층 아파트가 즐비해. 아파트에 살면서도 그 길을 지날 때면 늘 답답하지. 걱정도 되고, 몇년후가 될지 몇십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에너지 대란이 올거라고 보는데...그럼 그런 고층 아파트는 저소득 주민이 살게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에너지가 없으면 편한 생활공간이 더할나위없이 불편한 공간이 될테이까.
    굳이 이런 이유를 붙이지 않더라도 사람내음나는 옥수동....혜화동(낙산공원 근처)같은 동네가 우리동네가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친구가 동네사람이면 더 좋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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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비 2011/11/14 23:20

      그렇죠.. 심지어 아파트는 수명도 짧아서 길면 50년 짧으면 20년만에도 재건축을 한다니.. 이 동네도 정말 지금 남은 13구역을 빼면 사방이 아파트로 꽁꽁 둘러싸여 있답니다. 도망갈 곳 없이 포위당한 느낌 ㅠㅠ

    • 민노씨 2011/11/15 00:03

      희동네 /

      오, 그런 생각은 못해봤는데 '에너지 대란'이라...
      그런 문제가 있을수도 있겠구먼.

      그나저나 지난 번에 함께 간 혜화동 낙산공원 부근 동네..
      지금 떠올려도 참 푸근하고 좋은 느낌.
      그런데 아래 신비님께 그 이야기를 했더니 고딩들, 데이트족들이 굉장히 많이 출몰한다고 하던데, 너랑 갔을 땐 꽤나 한적한 편이었던 듯. ㅎㅎ

    • 민노씨 2011/11/15 00:04

      신비 /

      인터뷰이께서 꼼꼼하게 출장 답글까지! ㅎㅎ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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