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로 남겨진 곽노현의 선의

2011/09/12 22:38
* 발아점  
이슬뤼(icelui), 중언부언

이렇게 논리정연하고, 차분하며, 또 성찰이 깃든 글이 '중언부언'이라면 제 글은 '횡설수설' 쯤 되겠네요. : )

"진보의 정책적 지향은 아주 근본적인 차원에서, 도덕성을 진보와 보수 모두의 굴레로 만들어갈 수 있어야하겠기에 그렇습니다. 그 길이 매번 계란으로 바위치다 계란 살 여력마저 없어지는 길이라도, 도대체 진보 혹은 좌파라는 이름으로 한 판에 다 담을수 조차 없어 보이는 이상야릇한 계란들을 모아놓은 이 세력을 대체로 지지하는 제 개인의 동기는, 그네들이 바위를 계란으로 깨려고 한다고 믿기 때문이니 말입니다."

- icelui, 중언부언 중에서

굉장히 인상 깊은 문단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도덕성에 대한 강조가 잘못이 아니라, 도덕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평면화, 추상화시키는 게 잘못이라고요. 소위 진보 혹은 좌파에게 '도덕성을 지켜야지! 진보의 무기는 도덕성이지!'라고 훈수 두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무책임한 구경꾼에 머물면서 삶의 이율배반에 눈감고, 덕담하거나 비난하는 건 조중동이건 한겨레, 경향이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죠.

정말 필요한 건 그 도덕성을 추상적인 언어의 감옥에서 빼내오는 일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삶에 대한 논쟁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것을 입체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교훈으로 이끌어내는 대화를 시작하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어쨌든 돈 준건 잘못이지' 혹은 '나한테 2천만 선의로 땡겨주지?'와 같은 언어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이런 반응이 무의하다는 게 아닙니다. 지극히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특히나 돈 200만원도 없어서 고생하는 저 같은 가난한 사람들, 소박한 시민들에겐 더욱 상식적인 반응입니다. 다만 그 조건 반사적인 사고, 비유하자면 구체적인 고민 없이 프로그래밍된 사고틀을 넘어서는 작은 모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도덕성'에 대한 진짜 논쟁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치열하고, 때론 비루한 삶을 관통하는 대화를 곽노현 사건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하지 못하면, 우리의 도덕성은 그저 그저 추상적으로 제 살을 갉아먹는 자학적 넋두리 수준을 영영 넘어서지 못할 것으로 염려합니다. 저는 '곽노현의 행위'가 실수라는 점을 넉넉히 수용합니다. 그것이 실정법상 범죄를 구성하는 행위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까지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곽노현의 선의'를 도덕적 타락으로 단정하는 예언가의 목소리들에 대해선 당연코 반대합니다. 그 예언가들은 스스로 그 사유의 게으름을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오히려 '곽노현의 선의'를 좀더 살아 있는 도덕적 논쟁으로 이끌어내는 일입니다. 이 바보 같은 사람은 어떻게 '선의'로 적지도 않은 '2억'이라는 돈을 단일화 경선 경쟁자에게 건넬 수 있었는지, 곽노현이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걸어온 그 삶과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가식적인 이율배반의 감수성을 모두 끌어와 '법 이전에 도덕성'이라는 그 주술 같은 문구가 과연 이 땅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곽노현의 '선의'는 여전히 의미있는 고민으로, 생성하는 대화로 잉태되지 못한 채 여전히 양쪽(소위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버림받은 언어의 고아로 남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도덕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그 '선의'를 우리는 다시 화두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대화의 출발점이 저는 곽노현의 삶 그 자체와 우리시대의 기만적이고 이중적인 도덕적 이율배반에 대한 이야기가 되길 원합니다.


추.
써머즈님 추천으로 요즘 <크리미널 마인드> 봅니다. 에피소드 앞 뒤로 항상 잠언이 따라붙죠.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이런 취지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추상적인 도덕은 구체적인 삶 속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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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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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celui 2011/09/14 11:54

    읽고 보니, 제가 한 얘기는 아주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얘기라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어떻게 그것을 보다 구체적인, 살갗을 가진 듯 생생한 논의로 끌어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선의'라는 해석... 해석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해석에 대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측면에서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그것이 과연 '선의'겠느냐 하는 것이죠. 이건 별도로 대가성을 입증할 만한 녹취록, 서명 날인된 합의서 혹은 박명기 씨 본인의 일관성 있고 구체적인 증언 등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법률적으로는 '선의'가 아니라고 입증할 만한 개연적 증거의 부족 정도로 정리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뭐든 확실한 증거가 나오면 그걸로 게임 끝이죠(게임이라고 했는데, 그 순간 이 상황은 진짜 게임이자 쇼로 정리될 겁니다).

    다른 하나는, '선의'라 생각해서 주는 것이 개연적으로 타당한가? 곽노현 씨가 본인의 지위를 생각할 때, 박명기 교수의 선거비 보전을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생각했다면 왜 우회적인 경로로 전달해야 했을까?-와 같은 맥락의 질문들입니다. 만약 이 사실이 밝혀져서 지금과 같은 소란이 있을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건 교육감 같은 중책을 맡기에는 다소 안이한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어요. 반대로 이런 상황을 예상했으되 밝혀지지 않으리라 믿었다면, 만약 그래서 자금지원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했다면, 개인적인 연민과 선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양심이 대중의 보편적이고 비교적 상식적인 부정행위에 대한 민감성에 우선한다고 판단한 것이라 여겨지고, 그 점에 썩 공감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다소 신경 쓰이는 건, 행여 '우회적인 자금 전달'이라는 표현이 언론이 팩트 이상의 연출을 가미한 결과이고, 사실 제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유 - 가령 체면이라든지 - 로 일이 그리 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도, 그렇게까지 구구절절한 설명이 뒷받침되어야만 '선의'로 이해될 수 있는 일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맞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곽노현 씨의 '선의' 자체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중요치 않을 것 같습니다(사실 개인적으로 잘 이해가 안 되기도 하지만).

    딴라라당을 위시한 위정자들은 눈 뜬 사람의 코도 베어가는 마당에, 아주 철저한 수준의 도덕적 엄격성을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다소 현실감각을 결여하고 있진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한편으로는 곽노현 씨가 주장하는 '선의'가 바로 그런 차원의 도덕성이기 때문에 이는 어쩔 수 없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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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1/09/14 22:25

      역시나 논리정연한 말씀이시네요. : )

      "하나"에 대해선 십분 공감합니다.
      "다른 하나"에 대해선 곽노현이라는 사람이 걸어온 길을 통해 얼마든지 다른 평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공직자에게 더 무거운 도덕성을 부여하는 법률은 그럴만한 사회적 필요가 당연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정말 질문해야 하는 건 그 '사회적 필요'가 얼마나 실체적이고, 총체적인 삶의 진실에 닿아 있는가하는 점이 아닐는지요? 저는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한 때 경쟁자였지만 그보다 좀더 큰 차원에서 동지였던 자(박명기)에게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과 상황이 개입했을터이지만, 2억이라는 큰 돈을 선의로 건냈다는 곽노현을 무모한 이상주의자라거나 혹은 자신이 수행하는 그 큰 공직에 대한 의무를 적극적으로 방기한 사람으로만 몰아세우는 것은, 물론 그 관점이 전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너무 형식적인 관점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2. 희동네 2011/09/14 16:01

    '무상급식' 이라는 화두에서 파생된 여러가지 일들과 최근의 현 교육감 구속을 보면서 시민으로서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새로운 빈곤이라는 책을 보니 사회전체가 안전한 집으로 여겨지고, 권리와 의무의 적절한 균형이 이뤄지는 곳이 시민사회의 지향점일텐데...
    자산조사로 이뤄지는 복지서비스가 받는게 없으면서 주는 이들과 주는게 없으면서 받는 이들로 사회는 곧장 갈라진다....국가가 제공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거의없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의 정치적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이유를 점점 찾지 못하고...정치적으로 적극적인 시민들의 쇠퇴와 위축이 함께 나타난다...

    연대도 공동채 의식도 없는 지금 너무 공감이 간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미디어의 도덕기준이 한탄스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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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1/09/14 23:03

      희동이 왔구먼! : )
      추석은 잘 보냈는지...
      하루종일 어떤 마감 일 때문에 붙들려 있다가 마침 답글쓰고 있는데 오랜만에 아는 동생한테 전화가 와서 길게 수다떨다 이제야 답글을 쓰네 ...;;;

      가만히 생각하면 도덕이라는 게 무슨 숭고한 것이라기 보다는 정말 치사하고, 구질구질한 삶 속에서 생성되는 거, 그 치사하고 구질구질한 현실을 그저 당연히 인정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인간'의 최소한을 발견하는 노력, 그런 역사의 집적이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삶과 도덕은 서로 점점 더 별개인 것 같고...(나부터도..;; ) 도덕을 이야기할 때는 무슨 공상과학을 이야기하거나 혹은 현실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적이나 못마땅한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한 관념의 무기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능...;;;

      언제 맥주 한잔 시원하게 하자. : )
      기운내고!!

    • icelui 2011/09/15 00:05

      오늘 덧글 많이 다네....;

      http://sovidence.tistory.com/452

      위 지적과 관련해서는, 이 글도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어느 정도로 신뢰해야 하는지, 표본 간의 인과 혹은 인과적 개연성에 대한 가설이 높은 수준에서 성립 가능할지... 그런 점까지 판단이 서지는 않습니다. 다만, 주는 것 없이 받고, 받는 것 없이 주는 계층 간 괴리현상의 심화에 대한 해법으로, 위 글에서 주장하는 부분도 고려대상이 될 것 같습니다.

    • 민노씨 2011/09/15 15:38

      이슬뤼님 댓글이 많아서 저는 너무 좋은데요? ㅎㅎ
      링크 소개하신 글은 통독했는데(가카를 위한 책...이라.. 아이디어 좋네요), 제가 지금 딴 급한 마감(있는) 일에 붙들려 있어서, 그거 좀 한 뒤에 다시 제대로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3. 써머즈 2011/09/14 21:26

    이런 논란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단일화 과정에서의 선거비 보전 같은 문제로도 논의가 확장되서 나은 제도에 대한 토론들이 많아지면 좋겠는데, 그냥 인물을 죽이네 살리네, 그 인물이 끌고 온 정책이 정지하네 마네 하는 이야기들만 있어서 좀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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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1/09/14 23:04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나저나 친애하는 써머즈님께서 댓글을 남기시니 기분이 좋구먼요!
      이번 글 댓글은 네 개씩이나 모두 제가 친애하는 벗들의 댓글!!

  4. 행인 2011/09/14 21:41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짝꿍이 추석 전에 "곽감 구속 될 거 같아?"라고 묻기에 절대 그럴 수가 없다고, 법리상 이러저러하며 이 사건은 요러조러 하므로 검찰의 구속영장청구는 닭짓이고 법원이 제정신이라면 구속영장은 기각될 거라고 했다가...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척 했다고 쿠사리 엄청 먹었습니다. ㅎㅎ(물론 울 짝꿍 역시 이번 구속에 대해 지극히 분개하고 있음을 첨언합니다.)

    지나가는 말이지만, 도덕성과 관련해서, 원천적으로 '도덕'이라는 것이 현실에 대한 긍정을 넘어 현실 그 자체를 추구해야 할 가치로 전제한다고 할 때, 진보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이죠. 오히려 도덕은 보수의 가치가 되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게 참 웃기는 게, 보수의 타락은 대부분 "그럼 그렇지..."하는 수준에서 여론이 정리가 되는 반면, 진보의 '탈선'은 용납이 불가능한 어떤 것이 되죠.(뭐 그렇다고 진보가 부도덕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번 곽감 사건의 경우, 사실 "제대로 된 보수"라면 오히려 공직선거법이 한 사람을 파탄지경에 몰아넣고 있는 것을 지적하면서, 법률이 치유하지 못하는 현실적 문제를 한 사람이 사적으로 해소하려고 했던 것에 대해 높이 평가했어야 할 겁니다. 물론 진보 역시 마찬가지로 행위해야 하겠지만, 특히 '도덕'이라는 가치를 놓고 볼 때 이러한 행위의 주체는 당연히 '보수'가 되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민노씨가 언급하신 것처럼, 시공의 세계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의 '도덕'은 2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의 문제라고 봅니다. 그걸 왜 '진보'에게 요구합니까? '보수'가 먼저 챙겨야지. 사실 자신들의 잣대가 x축과 y축 안에서만 놀고 있다는 것을 남한의 소위 '보수'는 간과하죠. 아니 어쩌면 이 영악한 부류들은 의도적으로 논쟁의 프레임을 평면구조 안에 결박하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경험에 따르면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군요. 그렇다면 결론은 이들이 '보수'가 아니라는 거죠. 걍 듣보잡이라고나 할까...

    공직선거법이 돈 있는 자, 즉 선거운동에 소요된 재원을 공적으로 환수하지 못하더라도 생계에 지장이 없는 자에게만 정치인이 될 기회를 제공한다는 현실은 달리 이야기하면 돈 없는 자는 유권자로 만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한계로 인하여 박교수는 죽음까지도 고민할 파산지경에 놓이게 된 것이고, 법은 이러한 긴급한 사정을 전혀 돌봐주지 않았죠. 이 때, '도덕'을 입에 달고 사는 보수는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지 이건 굳이 설명을 요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 어떤 '선의'라기보다는 보수의 '의무'차원에서 곽노현 교육감의 행위를 판단하고 있으며, 당연히 곽노현 교육감의 교육정책이 '진보'로 대접받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보수의 사고방식이 이젠 z축을 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만 이번 사건을 보면서 아직은 요원한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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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1/09/14 23:17

      아이코 행인님!
      행인님이시야말로 추석 잘 보내셨는지요?

      곽노현 구속은 그야말로 쇼크였습니다.
      만약에 곽노현이 소위 민주진보 교육감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싶은 생각이 당연히 들더만요. 진영논리라 생각해도 어쩔 수 없지만, 저들과 저들의 도구 노릇을 하는 법원과 검찰의 행태가 참으로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검사들도 물론 있겠고, 법 그 자체의 명령에 의해서만 법의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판사들도 물론 많겠지만... 이번 구속 사태는 정말 너무하네.. 이런 짜증스러움이랄까, 적개심이랄까를 불러일으키더만요.

      "원천적으로 '도덕'이라는 것이 현실에 대한 긍정을 넘어 현실 그 자체를 추구해야 할 가치로 전제한다고 할 때, 진보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지적은 인상적이네요. 요즘 방치해놓고 있던(물론 제가 산 책은 아니고) 마이클 샌델의 <왜 도덕인가?>를 곽노현 사건 때문에 읽어볼까 생각중입니다. (1부 5장은 '정치적 도덕'에 관한 사례들에 대해 썰을 풀더만요)

      말미에 명징하게 지적하신 "공직선거법이 돈 있는 자, 즉 선거운동에 소요된 재원을 공적으로 환수하지 못하더라도 생계에 지장이 없는 자에게만 정치인이 될 기회를 제공한다는 현실은 달리 이야기하면 돈 없는 자는 유권자로 만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지적은 위에 써머즈님께서도 지적하신 것처럼 마땅히 곽노현 사건에서 주된 논점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제를 심도있게 이야기하는 분은 정말 드문 것 같아요...

      "보수의 '의무'"라...
      역시나 행인님 답습니다.
      냉철한 이성에 바탕한 상식적 저항의 상상력이 그야말로 눈부시구먼요!

    • icelui 2011/09/15 00:00

      흥미롭네요. '도덕'은 진보만이 아니라 보수의 굴레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할 때, 제가 염두에 둔 기사는 이거였는데...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0905074033

      행인 님의 지적도 출발은 같은 맥락이군요.

      선거비용 보전이 불필요한 후보입회자를 늘리지 않으면서 - 특정종교 정당 같은 - 제 2의 박명기 교수 사태를 최소화하는 길이 무엇인지의 고민이 정말 필요하다 싶습니다.

    • 민노씨 2011/09/15 15:39

      정희준씨 칼럼은 서너번 읽었는데 이번 칼럼 재밌네요.
      물론 너무 멀리, 지나치게 현상적인 부분에 이끌려 말미에는 균형과 긴장이 현저히 떨어진 것 같지만요...

  5. 희동네 2011/09/16 14:29

    헨리 지루가 그랬다네...사회국가가 점점 그러나 꾸준히, 일관되게...군국주의 국가로 변해간다고. 그것이 지구적인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점점 더 보호하면서 '국내에서는 억압과 군국주의의 수위를 높혀가는 국가'라고 설명한다고.

    사회문제는 오늘날 날이 갈수록 범죄로 규정되는 경향이 있다.는데...
    지루의 표현 그래로 옮기자면...'억압이 증가하며 공감을 대체한다'

    '억압이 증가하며 공감을 대체한다' 문장때문에 책장이 뒤로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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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kanie 2011/09/18 12:40

    '선의'가 화두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는... '도덕'은 철학의 영역이나 '선의'와 '악의'는 문학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움직이는 원리를 얘기할 때 문학이 끼어들어서는 안됩니다. (문학이 철학보다 저급하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은 아시리라 믿습니다.)
    선의로 해석하면 고위공직자들의 탈세도 몰라서 그런 것이지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자본주의 4.0 따위의 기획도 바로 자본가들의 '선의'로 자본의 패악을 막을 수 있다 주장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삶에서 유리된 도덕을 다시 삶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출발점이 '선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1/09/19 16:09

      적극적인 의견 고맙습니다.

      철학과 문학을 구별하신 취지는 이 논의가 인정주의로 이끌려선 안된다는 취지 정도로 이해합니다. 제 해석이 맞다면 당연히 그렇게 말씀하신 취지를 긍정합니다.

      다만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행위로 추론되는 어떤 행위자의 '동기'라는 부분은 매우 중요한 것이고, 이것은 도덕과 철학과 문학을 막론하고 "사회를 움직이는 원리"(이것은 특히 '법 제도'의 차원을 지적하신 것인가요? ^ ^;; )에 있어서도 보이지 않는 바탕을 이루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행위자와 행위는 구별되어야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행위를 '사회적으로'(이 표현은 '법적으로'와 대비하는 의미로 썼습니다) 재구성해낼 수 있는 역량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그것이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구요.

      저는 조선일보 자본주의 4.0이 무엇인지 모르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지만, 제 소박한 취지가 조선일보 따위의 전략적인 선동 기제의 아류로 취급당하는 것은 대단히 불쾌하군요.

      다만 적극적인 논평에 대해선 여전히 고마움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7. 희동네 2011/09/19 09:38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753091
    새로운 빈곤/지그문트바우만(저)/이수영(역)/천지인(출판)/2010...입니다.

    정책국에서 주1회 공부모임을 하는데, 최근 빈곤의 역사 끝내고 지금은 연구소에서 나올 출판물 초고를 보고있는 와중에 다음 공부거리로 추천하려고 먼저 읽어봤어.
    번역이 어렵게된것인지...원래 어렵게 쓰여진 책인지 판단은 안되지만 책장이 잘 넘어가진 않더군.

    말미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
    알랭 핑켈크로트는 최근 저서에서, 윤리적인 마음이 사실상 침묵하고, 공감이 사라지고, 도덕적 장벽이 걷힐 때, 무슨일이 일어나게 되는지 우리를 일깨워 준다.
    '나치 폭력이 저질러진건 폭력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의무이기 때문이었다. 가학증 때문이 아니라 장점 때문에, 즐거워서가 아니라 수단이기 때문에, 야만스런 충동을 발산하고 양심의 가책을 외면해서가 아니라, 상위가치라는 이름으로, 전문적 능력과 앞으로 꾸준히 수행될 과제를 갖고 저질러졌다.'
    ....곤란한 문제들의 합리적 해결책이 도덕적 무관심과 결합되면 폭발물이 된다...

    어제 다 읽었는데, 한 번 더 읽어야겠어.
    빈곤에 대한 정책적 해결점이 있는것은 아니지만...
    나의 지향점을 구체화 할 수 있을것 같아.

    마지막 문장
    패트릭 커리 '집단적인 자발적 소박함이 집단적 궁핍화에 대한 유일한 긍정적 대안이 되고 있다'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1/09/19 16:26

      아, <새로운 빈곤>에서 헨리 지루가 인용된 건가? (설명 감솨~!)
      니가 인용한 문구들을 접하니 한나 아렌트가 떠오르는구먼(오래전에 잠깐 흝어본 정돈데, 니가 <새로운 빈곤>을 다시 읽어야지 하는 것처럼 다시 제대로 정독해봐야지 하는 생각도 들고...).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 한길사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56615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하는 '악의 평범성'이 갖는 그 뿌리와 메커니즘(세 가지 무능 : 말/사유/공감의 무능)은 바우만이 이야기하는 '기능적이고 도구적인 인간'으로 전락한 존재의 전도된 목적(수단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에 대한 지적과 통하는 것 같다. ( 관련해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 http://minoci.net/5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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